2013.04.0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집권 한 달을 넘기고서야 박근혜 정부가 국정방향과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2013년 경제운영 방향을 발표한데 이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 그리고 부동산 시장 정상화(?) 대책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개념이 바로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대선 공약에서 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 ‘보편복지’, ‘일자리창출’이라는 3대 핵심의제를 내걸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여기에서 크게 후퇴했다. 특히 경제민주화는 마치 ‘계륵’처럼 형식적으로 끼어 넣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대신 집권 초기 각종 무리수까지 감수하면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행정부 구성이 한 달 동안 미뤄진 것이 그 사례다. 당초 미래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김종훈 전 내정자는 잘못된 인사 파동의 정점에 서 있기도 했다.

 

문제는 갈수록 박근혜 정부에서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창조경제’의 실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 안의 정책 책임자들도 정확히 맥을 짚지 못하고 있다. 유민봉 대통령 국정기획수석은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슨 말이냐”는 여당 의원 질문에 동어 반복성 답변만을 내놓아 질타를 받았다. 창조경제를 일선에서 이끌어가야 할 미래부 장관 내정자인 최문기 후보자 역시 창조경제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핵심개념에 대해 그 구체적 실체를 잡지 못한 채 정권이 시작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떠나서 창조경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몇 가지 맥락은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로 ‘일자리’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 난국을 돌파하고 특히 국정지표인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바다. 둘째로 창조경제는 주로 IT기술을 동심원으로 한 기술혁신과 그로 인한 혁신산업 지원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토건산업 지원이나 녹색성장과 구분되며, 최근 복지와 관련해 강조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강화와도 구분된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조해온 사회혁신과도 구분된다.

 

셋째로 창조경제의 대표적 참조모델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2000년 세계적인 벤처거품 붕괴에도 상대적으로 지속성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벤처창업과 기술혁신 추세를 벤치마킹해 만들어낸 개념이 ‘창조경제’인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최근 수 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던 복지국가(welfare state)와는 다른 이스라엘식의 창업국가(start-up nation)를 목표 모델로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대체로, “IT중심의 융합산업에서 벤처 창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주도해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국가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지금 시점이 “IT융합 부문을 중심으로 벤처창업 열풍을 만들어서 경기회복을 꾀하고 산업구조조정을 실현하며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을 짜야할 상황인가. 1990년대 말 벤처육성 붐의 재연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1990년대 말 시점은 비록 거품임이 드러났지만 세계적으로 ‘신경제’라고 불릴 정도의 수요확대가 있었던 시기다. 반면 지금은 '수요 부족'이 세계화되고 있는 국면, 즉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요 위축'이 상당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혁신적인 기술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면 무한히 수요가 따라주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최근 수 년 동안 스마트폰과 SNS가 급팽창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대기업 위주의 하드웨어 제품이 주도하거나 페이스북과 같은 몇 개의 외국 플랫폼 회사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크다. 많이 사례로 드는 모바일 앱 시장은 소문보다 큰 시장이 아니며, IT융합 산업도 대기업 주도로 제한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벤처 창업공간이 넓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두 번째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융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고 코스닥 시장은 2001년 수준에서 사실상 멈춰있는 상황이다. 민간 벤처 투자자금 역시 1990년대 말에 비하면 턱 없이 위축된 상황이며 정부에서 자금 공급을 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은 수요 측면이나 투자 자금측면에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데 자금도 영업 경험도 없는 젊은 청년들에게 모험적인 벤처 창업을 유도하는 행위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모델로 한다면서 내세우는 창업국가 비전은 대단히 불투명한 전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타산도 없고 계획도 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피해가기 위해서 창업국가와 창조경제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일자리는 창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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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애플의 주도하에 일궈진 스마트폰 혁명은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불리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모바일은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인터넷 접속도구가 됐다. 이메일이나 메신저 확인은 사무실 책상을 벗어나 어디서나 가능하게 됐다. 더욱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와 친화도가 가장 높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은 개인 일상의 변화를 넘어 경제·사회·정치 영역까지 새로운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접촉하는 프런트 엔드(Front-End) 영역을 넘어 백 엔드(Back-End)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기술의 활용과 확산이다. 수십억 세계 인구가 수시로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와 SNS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비정형 데이터가 서버기기에 쌓이면서, 이를 기반으로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정보 분석과 추이 예측이 점점 더 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 역시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걸면서 출범한 뒤 행정부 구성을 거의 한 달을 미루면서까지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것도 이러한 정보통신 기술혁신을 경제에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기 때문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다. 엄청난 기술혁신의 세계적 추세를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산업구조 개편과 일자리 창출에 활용하자는 것 자체는 사실 나쁜 발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스마트 시대에 오면서 우리 일상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생활의 편의성이 크게 좋아졌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변화와 편의성은 상당한 경우 ‘소비 영역’에 관한 것이다. 맛집을 찾기가 쉬워졌다거나, 결제를 하기가 편해졌다거나,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사용하기 쉬워졌다는 것들이 그것이다. 스마트 혁명으로 정말 편리하고 쉽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기가 편하게 된 것은 틀림없다. 다만 돈이 두둑하게 있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필요욕구를 채우기 위한 소비는 불편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편의성이 아무리 혁신돼도 소비할 돈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면 기술혁신은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려 주는 그런 이익은 선물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우습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늘리기는 고사하고 줄여 왔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노동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극심한 고용불안과 좋은 일자리 부족현상이었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단기이익 추구 속성이 고용을 비용절감 대상으로 간주해 인건비 절감과 비정규직 선호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일부 주류 경제학자들은 90년대 이후 정보기술 혁명과 자동화로 인해 상당한 작업들이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된 결과 체계적으로 일자리가 줄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주장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둘 중 어느 경우를 수용하더라도 창조경제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용불안과 좋은 일자리 부족이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때문이라고 진단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노동유연화 정책을 폐기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다시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각종 임금 차별을 금지하며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을 쉽게 결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정책을 전환해야 괜찮은 일자리가 확보되는 것이지 기술혁신을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술혁명과 자동화가 고용불안과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수용한다면, 정보기술혁명을 전 산업으로 확장시키는 융합경제를 정책으로 도입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고용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스스로 추진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기술혁신이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제까지 고용불안과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 기술혁신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때문이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스마트 혁명 이전에도 기술혁신은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결론은 기술혁신보다는 노동시장 정책 전환으로 결론이 난다.

 

사실 기술혁신이 거듭되는 것은 인류에게 이로운 것이다. 어렵고 힘든 노동으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줄 뿐 아니라 더 많은 여가와 문화활동을 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모두 기술혁신 덕분이 아닌가. 더 단순하고 위험하고 힘든 노동은 기술혁신으로 대체해야 한다. 기술혁신으로 필요 노동시간을 더 줄여서 더 많은 여가와 문화활동을 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즉 기술혁신은 더 고급하고 인간다운 노동을 하게 해 주고, 그조차도 더 적게 해 줘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스마트 혁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본은 노동의 편의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을 위해 기술투자를 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을 작업장에서 쫓아낼 기술혁신을 추구하게 되고, 기존 직원의 노동시간을 줄이기보다는 직원 자체의 숫자를 줄이는 식으로 기술혁신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유죄인 것은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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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5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소비자 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라는 것이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물가수준을 지표화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책적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 내는 통계지표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달 세 번씩 전국 32개 도시의 1만2천개 소매점포에서 거래되는 500여종의 상품과 서비스를 통계청이 현장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다. 적지 않은 인력과 장비가 지속적으로 투입돼야 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많은 상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소매 판매액에서 온라인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처음으로 10%대를 넘어 10.5%를 기록했다. 앞으로도 계속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는 데이터로 기록되지 않지만 온라인 쇼핑은 모두 데이터로 저장된다. 누가 언제 어느 쇼핑몰에서 무슨 상품을 얼마 주고 샀는지, 결제수단은 무엇이었는지, 계좌는 어느 은행을 이용했는지 모조리 기록된다. 

그렇다면 단번에 이런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굳이 통계청 직원들이 매달 몇 번씩 전국 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가를 조사하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해 소비자 물가지수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온라인에서 저장되는 데이터 분석으로 곧바로 소비자 물가지수(CPI)를 계산할 수 있지 않을까. 

정답은 "그렇게 할 수 있다"이다. 세계적인 검색회사 구글의 ‘구글 가격지수(GPI; Google Price Index)’가 그것이다. 온라인 거래는 아직 소비자들의 부분적 구매행위이므로 제대로 가격변동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글측에 의하면 2008년 이후 각국의 인플레이션 조짐 등에 대해 구글 가격지수가 해당국보다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할 만큼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데이터 분석과 활용기술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빅 데이터(Big Data)’ 기술이다. 인터넷을 통해 쌓이는 엄청난 정형·비정형 데이터와 클릭 스트림·로그기록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분산처리 기법과 정교한 데이터 분석방법을 통해 과거에 불가능했던 의미 있는 결과를 유도해 내는 것이다. 구글이나 야후, 국내의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업체들이 이 분야에 먼저 뛰어들고 있는 중이다. 

분명히 중요한 기술적인 진보이며 우리의 삶을 더욱 개선시켜 줄 것이다. 구글 가격지수와 유사하게 구글 독감 트렌드(Google Flu & Dengue Trends)라는 것도 있다. 사용자들의 검색어에서 독감 관련 빈도가 증가하면 이를 분석해 독감발생 추이를 예측해 주는데, 미국 질병관리국(CDC)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예측하는 것과 거의 일치했다고 한다. 상업적인 회사인 구글이 자사의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 비영리 서비스를 해 주고 있으니 이 역시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지만.




그런데 구글에게 이렇게 호의적인 뉴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난해 말 조세회피 논란이 그 사례다. 구글이 2011년 세전수익의 80%에 해당하는 98억달러를 법인세가 전혀 없는 버뮤다로 옮겨 세율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는 것이 밝혀져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구글을 포함해 명성 있는 많은 미국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다국적 기업은 소득의 원천지에 관계없이 전 세계 소득에 대해 미국 법인세 기준을 적용받는다. 

그런데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해당국가에 법인세를 내고 난 나머지 세금은 그 수익을 미국으로 반입하는 순간 납부하게 되기 때문에 해외에서 번 소득을 미국으로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2년 현재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해외 자회사들이 해외 취득소득을 본국에 돌려보내지 않아 1조7천억달러의 현금이 해외에서 보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적자와 증세 논란으로 수년째 미국 정치권이 극단의 대립을 하고 있고, 높은 실업 상황에서 사회보장 지출 감소로 수많은 미국 시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첨단기업들의 세금 회피는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구글이 세금을 내지 않는 공백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내야 하거나 공공서비스가 줄어든다는 것이 아닌가. 구글의 조세회피는 명백히 많은 미국 시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역행한 처사였다. 구글이라는 회사가 2013년 지금 시점에서 미국 시민의 삶에 기여하는 가장 긴급하고 우선하는 것을 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새 정부 출범 보름이 지나도록 행정부 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국회의 최종 통과가 지연된 사정이 있다. IT와 기술 융합이 범정부적으로 추진되면 분명히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술이 모자라 세계가 경제위기에 빠졌고 기술혁신이 안 돼 세계 각국이 실업과 저임금으로 고통 받고 있는 중인가. 기술혁신은 대개의 경우 이로운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때와 조건에 맞게 강조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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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이명박 정부 5년간 노동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가운데 규모 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보건·복지서비스 노동자의 급팽창이다. 전체 종사자가 74만명에서 140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동안 4대강 사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은 7만명이 순감소했고, 제조업도 9만명 정도만 늘어나는 데 그쳤던 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폭발적 팽창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라고 부르는 21세기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 5년 만에 두 배의 일자리 증가라니.

과연 경제위기와 보편복지의 분출은 복지서비스 종사자, 특히 노동자를 거의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한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국민들의 복지서비스도 늘고 동시에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도 폭발했으니 말이다. 그동안 진보가 복지를 늘리라고 정부를 압박하면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이중의 효과(복지와 일자리 증가)가 액면 그대로 실행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복지서비스가 늘어나는 방식이 공적 인프라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보육이나 요양 등의 분야 민간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방치한 상황에서 정부가 복지서비스 이용 시민들에게 바우처 형식으로 현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폈다. 통계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노인요양 복지시설은 2007년 900개에서 2011년 3천개 이상으로 3배 이상 팽창했다. 보육시설도 같은 기간 2만4천개에서 3만4천개로 급증했는데 대부분이 영세 민간업체였다. 이에 따라 노인요양 복지시설 종사자는 같은 기간 120% 증가했고, 보육시설 종사자는 52% 늘어났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가. 양적인 복지인프라는 사적부문 중심으로 팽창했고 정부 재정지원도 늘어났지만, 복지서비스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은 1천700만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나쁜 노동환경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이 69%에서 55%로 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된 유일한 분야가 복지서비스 분야다. 이명박 집권기간 동안 비정규직의 임금 절대액수가 하락한 유일한 분야도 다름 아닌 보건·복지서비스 분야다. 신자유주의 유연 노동시장은 이렇게 복지서비스 분야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주변 노동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노동시장 왜곡이 건설 분야가 아니라 보건·복지서비스 분야라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가장 진보적인 해법은 사적 복지서비스 업체의 난립을 억제하고 공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 복지정책도 현금지원 방식보다는 공적 인프라 확대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적 인프라의 구체적 구현방법이 국공립인가 아니면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지역공동체 방식인가 정도의 고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도 공공어린이집을 선호하는 등 공적서비스 인프라에 대한 지지는 높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난제가 있다. 이미 들어선 사적서비스 업체들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만 개의 사립 보육시설을 포함해 상황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계속 이들에게 현금지원을 할 것인지, 또는 경영이 쉽지 않은 업체들을 중심으로 점차 공적소유 경영구조로 이전을 유도할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의 사적업체 난립을 억제하면서 공적 인프라 확충을 직접 시도할 것인지 현실적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복지서비스에서 급팽창하고, 대부분 여성·비정규직인 이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그들에 의해 불가피하게 공급될 낮은 복지서비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다. 그러면 복지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복지를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에 의해 제공되는 복지서비스의 질을 올리는 선순환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그 열쇠는 복지서비스 노동자들 자신이 쥐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들이 스스로 노동권을 회복시켜 나가고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가되, 그것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에게 좋은 복지서비스를 위하여’ 단결해 가는 것이다. 사업체당 평균 10명도 안 되는 복지서비스 산업구조의 특성상 사업장별 조직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청년유니온과 유사하게 사업장을 뛰어넘어 지역별로 노동자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지자체 및 지역단위 사용자집단과 노동권 및 좋은 복지서비스 제공에 대해 논의를 준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볼 때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복지 발전은 복지서비스 노동자에게 상당부분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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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게도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1953년 GM 최고경영자였던 찰리 윌슨이 국방장관 임명 청문회에서, 기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행정부에 입성하는 것을 두고 반대에 직면하자 말했던 너무도 유명한 얘기다.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당시에 미국경제에서 GM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할 법도 하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9년 GM의 파산과 국유화를 겪은 후로는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60년 전의 GM처럼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삼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해 쟁쟁한 일본기업들을 연이어 따돌리고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면서 애플과 세계시장을 놓고 겨루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가 만년 중하위 그룹의 자동차기업 이미지를 벗고 세계 5위로 도약해 품질경쟁력 등을 개선하면서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금, 삼성과 현대차에 좋으면 우리 국민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 9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글로벌 생산체제의 구축이 가속화하면서 유력 대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국민경제와 국민이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 성장→고용 확대→소득 증대→구매력 증가→수요 확대→생산 확대'라는 사이클이 한 국민경제 안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2007~2011년 경제위기 기간에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선방했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그랬다.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1억대 가까이 팔려 나간 삼성의 스마트폰 10대 중 1대 정도만 삼성 구미공장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만든 것일 뿐이다. 나머지 9대는 중국·베트남·브라질·인도에 있는 삼성공장에서 해당 나라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삼성을 포함해 엘지·팬택 등 휴대폰 산업이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전인 2007년만 하더라도 휴대폰의 해외생산이 35.9%밖에 안 됐는데, 2011년 기준으로는 거의 80%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스마트폰이 선전했다고 박수쳤지만 그 대부분은 해외에 공장을 지어 만들어 낸 것이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대박을 낸다 한들 삼성 구미공장 생산노동자는 1만명 내외에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전체 휴대폰 관련 일자리도 2000년대 중반 이후 4만명 선에서 거의 고정돼 있다.

현대차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2007년 국내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170만대였고, 2011년에는 190만대로 20만대가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해외생산은 90만대에서 220만대로 무려 130만대나 증가했다. 중국·미국·인도·터키·러시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0년에 이르러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의 국내생산과 해외생산 비중이 역전됐다.

삼성과 현대차 등 자본의 세계화는 국내 일자리 감소를 넘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 줬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생산기지를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자국으로의 생산기지 유치를 위해 임금을 낮추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또는 자국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임금상승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런데 글로벌경제 전체로 보면 글로벌 총수요를 줄여 고용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와 국가 사이의 경제적 협력(Thomas Palley(2011))


 

‘나’ 국가

임금 인상(협력)

임금 삭감(배반)

‘가’ 국가

임금 인상(협력)

5, 5

-10, 10

임금 삭감(배반)

10, -10

-5, -5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각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의 임금상승을 기대하면서 자국의 임금은 삭감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모든 국가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모두가 임금을 삭각하게 되고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려면 모든 국가들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 간 정책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과 현대차는 점점 더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국내 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줄어드는 일자리를 걱정하느라 임금인상을 압박할 수도 없다. 결국 각 국가의 내수구매력과 글로벌 총수요를 약화시킬 것이지만 지금 세계는 수출경쟁과 통화가치 하락경쟁에 몰두하는 중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협력과 해법은 진정 불가능한 것인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