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0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조세도피처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역외탈세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 언론사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7차례에 걸쳐 대표적 조세도피처인 버진아일랜드의 한국인 소유 페이퍼컴퍼니를 폭로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부 중견 재벌가 인사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국내 최대 재벌그룹인 삼성이나 현대자동차·SK·엘지 등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정말 우리나라 핵심 재벌들은 역외탈세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준법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다른 소식이 들린다. ‘사악하지 말라’는 사훈으로 유명할 정도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구글이나 애플·아마존 같은 IT회사들이 최근 역외탈세 등의 혐의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영국에서 32억파운드의 돈을 벌었으나 법인세는 600만파운드만 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애플 역시 2012년 아일랜드 자회사를 이용해 90억달러의 세금을 덜 낸 것으로 알려져 미국 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영국에서 43억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는데 법인세는 매출의 0.1%만 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럼 뭔가. 우리의 핵심 재벌기업들은 미국의 최고 IT회사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하나 유의할 것이 있다. 지금 뉴스타파가 폭로하고 있는 조세도피 행위는 대표적인 노골적 조세도피처 중 하나인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국한돼 있다. 이런 식으로는 대부분 개인적 수준의 조잡한(?) 역외탈세 행각들이 폭로되는 정도로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대규모 역외탈세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글로벌 금융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이 바로 그들이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은 조세도피처를 포함해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수백 개의 자회사를 두고 다양하고 복잡하게 내부거래를 한다. 2008년 미국 연방 회계감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100대 기업 중 약 80%가 조세도피처에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 교역의 3분의 2는 다국적 기업 내부에서 발생한다. 음성적으로 조세도피처에 자산을 숨겨 두거나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일부 부유층은 몸통이 아닌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은 낮은 세금과 적은 규제, 비밀주의를 기업에게 보장하는 나라를 찾아 경쟁적으로 자회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각 국가에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협박도 한다. 세계화되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의 공세 앞에 국경에 갇힌 국민국가들은 무력했고, 결국 신자유주의 분위기에 휩쓸려 조세인하·규제완화·임금인하 경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역외탈세 수법은 바로 합법과 불법 기준이 모호한 ‘이전가격 시스템(transfer price system)'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 본사를 둔 자동차 회사가 프랑스에 법인을 세우고 자동차를 판매했다고 하자. 프랑스 법인이 직접 소매 판매하는 대신 세금이 낮은 아일랜드 법인에 원가보다 조금 높게 넘기고, 아일랜드 법인에서 이익을 크게 붙여 판매했다면 프랑스 법인은 이익이 거의 없을 것이므로 세금도 거의 안 낼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세금이 낮은 이웃 룩셈부르크에 금융법인 계열사를 설립한 뒤 프랑스 법인이 여기서 금융대출을 받게 하고 그나마 이익도 이자비용으로 룩셈부르크 금융법인에 돌려줬다면, 프랑스 법인은 매출이 아무리 많아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낼 수 있다. 이익은 없고 비용만 잔뜩 늘어났으므로. 

이런 식으로 소득은 저세율 국가로, 비용은 고세율 국가로 이전시키는 방법을 통해 역외탈세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수많은 계열사와 자회사의 중개망을 통해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구글·애플·아마존이 했던 수법도 이렇게 이전가격 시스템을 통했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알다시피 우리나라 재벌은 엄청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총수가 있는 43개 재벌이 거느린 계열사는 1천500곳이 넘는다. 삼성도 76곳이나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외 계열사가 빠져 있다.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는 국내 규모의 두 배 가까이 되는 2천693곳이다. 삼성그룹은 440곳이 넘고, 현대차와 엘지·SK·롯데도 200여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함에 따라 전 세계 국가에 수백 개의 계열사와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각 국가별 세율 차이와 제도 차이를 악용해 역외탈세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국내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결코 무리한 예측이 아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정말 제대로 조세정의를 세우고 싶다면, 막대한 해외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를 포함한 내부거래’를 주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우선 조세도피처에 있는 핵심 재벌들의 해외 계열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해외계열사 사이의 편법적인 내부거래를 통한 이전가격 조작으로 납세의 의무뿐 아니라 금융규제·형법 준수의무와 상속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감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본규모·매출·고용 등을 감안해 이익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해외 계열사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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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최근 서울 강변역 부근에 서울시가 700실 규모의 공공기숙사를 지어 대학생들의 주거를 안정화하려는 계획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우범지대화 우려’ 등 다소 당황스런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하고 있단다. 대학생들을 보는 시선이 언제부터 그렇게 차갑게 됐는지도 놀라울 뿐 아니라 자신들이 보유한 집값, 즉 재산권에 대한 집착이 젊은 대학생들의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에 대한 배려를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현실도 무섭다. 목동에서는 주민들이 인구 과밀화와 교통대란, 유수지 해체로 인한 안전성 문제를 이유로 행복주택 건설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중인데 이 역시 ‘교육특구’ 이미지 상실과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늘 그렇듯이 구체적 현실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을 것이다. 또한 어느 한 개인이나 특정지역 주민만의 양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 대부분이 최근 십수 년 동안 유사한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택을 소유한 주민들이 어떤 이유로든 주거공간이 마땅치 않은 젊은 대학생들의 주거공간 건축을 반대하고 있다면, 그 내부에 ‘부에 대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면 부에 대한 욕구가 멈춰질 수 있을까.

케인스 전기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스키델리스 부자의 최근 저작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에서는 ‘끝없는 욕구’와 ‘상대적 필요’를 구분한다. 좋고 안락한 삶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인 '필요(needs)'는 양적으로 한정돼 있지만 '욕구(wants)'는 순수하게 심리적인 것이므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가 사회의 도덕 윤리나 종교 등에 의해 일정하게 제어됐는데, 자본주의 체제가 물질적 부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탐욕을 모든 사회적 제약과 규범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과거 시대와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한 생산력과 물질적 풍요를 창조했지만 한편으로는 끝없는 불만족과 탐욕 또한 체계적으로 창조하면서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가져왔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탐욕의 정점에 금융시장이 있다고 봤다. 현실 사물에 대한 가치는 잊은 채 숫자 그 자체에 불과한 가격만 보고 있다.

바로 그 모습이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 최신 버전이었던 것이고 지금도 우리는 그 영향권 안에 살고 있다. 이미 주택을 가지고 있는데도 주택 없는 어린 학생들의 주거권보다 자신의 집값이 더 오르길 바라는 욕구가 압도하는 것은 이렇게 볼 때 개인의 탓이 아닐지 모른다. 이제는 이런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부에 대한 탐욕은 엄청난 생산력 발전을 넘어섰다. 지구환경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단계에 와 있다. 놀라운 생산력 발전의 결과조차 1%만이 독식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위험스런 불평등 수준까지 이르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만큼’으로 돌아오고 ‘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해야 한다. 

두 가지 보상기준을 생각해 보자. 하나는 성과를 기반으로 보상해 주는 것이다. 더 나은 성과를 낸 노동자에게 더 많은 연봉을 책정하는 것이 이런 방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연공서열 임금체계가 깨지고 능력에 따른 연봉제가 확산되는 배경이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필요기반 정의’에 입각해 분배를 하거나 보상을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절실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혜택이 가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치료가 급한 환자에게 가장 먼저 의료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바로 필요기반 정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 신자유주의는 필요기반 정의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성과기반 보상체계로 환원했고, 더 나아가 작은 성과의 차이를 확대해 보상 격차를 확대시켰다. 그 결과 치열한 승자독식 경쟁을 통해 최고의 성과를 내서 최고의 보상을 얻는 데 집착하도록 만들었고, 사회적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방치했다. 사회적 약자들의 최소한의 안전망은 무시됐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의 모습이다.

노동과 건강, 교육과 주거 등 모든 국민의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헌법은 이를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권으로, 헌법상의 권리로 명문화해 놓고 있다. 그렇다. 지금의 시대는 국민들의 사회적 필요를 사회적 권리로 실현시켜야 하는 그런 시대다. 그것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헌법에도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헌법 제23조2항) 제한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재산권을 보장해 주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해 주지만, 공공의 이익과 충돌하면 사적 재산권보다 공공의 기본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택재산을 늘릴 자유가 존재하지만 주거권과 충돌하면 적절히 양보할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사회적 필요를 사회적 권리로 만들어 주는 사회다. 이제는 탐욕에의 집착을 버리고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국민에게 시혜를 베풀려 하지 말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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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경제 민주화, 두 번째 라운드로 진입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민주당 전당대회가 치러지던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시대정신이라고 떠받들던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취임 이전부터 경제 민주화 과제의 위상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박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대기업을 옥죄고 때리고 이런 것은 옳지 못하다"거나, "제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스스로 국민과 중소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여가는 것"이라면서 이른바 재벌의 '자율적 개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대선 공약에 담겨 있었던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 완전히 일탈하는 내용들이었다.

 

여당의 정책적 후퇴가 이토록 심각하면 당연히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당제 정치일 터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5월 4일 개정한 당 강령에서 명백히 우클릭이라고 할 만한 행태를 보였다. 강령 전문에 "경제민주화와 함께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존중과 지원",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의 완성 추구 및 복지와 함께 선 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을 의도적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정국을 주도하는 정부 여당도, 이를 비판해야 할 야당도 시대를 바꾸기 위해 경제 민주화를 추진할 방향도 의지도 상실한 순간이었다.

 

▲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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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경제 현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퍽퍽한 시민들이었다. 편의점 점주들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잇달아 발생하던 와중에 남양유업 대리점 폭언 사태까지 공개되면서, '슈퍼 갑'에 대항하는 '힘없는 을'을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민주당의 수장이 된 김한길 대표는 "자본과 노동의 문제라는 전통적인 갑을관계보다 훨씬 광범위한 갑을 문제가 많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 '을'을 위한 경제 민주화의 전의를 불태웠고 그 분위기는 6월 임시국회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20만 편의점과 80만 대리점 점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가맹사업법 개정안과 신규 대리점법이 과연 입법화될 것인지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집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재벌 내부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비생활적 경제 민주화가 주종이던 지난해와 달리 '생활 밀착형 경제 민주화'로 진입했다면서, 최근 부활된 경제 민주화의 차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경제 민주화가 이번에는 일정한 성과와 지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 민주화 운동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2011년 월가 점령운동을 전후로 세계적인 불평등 개혁운동과 긴축 반대운동, 복지축소 반대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세계 운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경제 민주주의'라는 높은 추상 수준의 담론 아래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여기에 매달린 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이미 10여 년 전에 주주자본주의 비판과 경제 민주화를 내용으로 한 저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를 써서 유명해진 미국의 마조리 켈리(Majorie Kelly)는, 최근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시대정신으로 격상된 경제 민주화 현상을 두고 "오늘날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강력한 구호가 내걸리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놀라워했다.

 

그런데 10년 전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면서 대단히 강력한 경제 민주화 의제를 제기했던 저자 자신이 10년 후인 오늘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민주주의가 해결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지난해에 출간하고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된 신작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Owing Our Future: The Emerging Ownership Revolution)(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은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물론 터무니없이 강도가 낮은 것이기는 하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 미국을 필두로 하여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융 규제를 검토하거나 실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세계 금융과 경제가 달라지고 있고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유럽위기에서 보이듯 글로벌 채권시장을 매개로 하여 금융 자본은 남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고 있는 중이며, 초유의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여전히 실물경제가 아닌 주식시장으로 몰려서 주가만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는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행태의 주범인 재벌에 대한 규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비록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재벌개혁만으로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국민들의 삶이 달라지는 조건이 형성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나치게 폭주하던 기존의 금융시스템과 기존의 독과점 시스템에 대한 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윤리(Business Ethics)>라는 잡지의 대표이자 기업 컨설턴트로서 수십 년 동안 좋은 기업에 대해 연구하고 컨설팅하고 현장 조사를 해왔던 저자 마조리 켈리는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에서 이렇게 운을 뗀다.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언제나 그럴 것이고, 지금은 보다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심오한 꿈을 꿀 때다. 공정성과 공동체, 지속 가능성과 같은 이상을 중심에 둔 경제,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공정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경제, 소수보다는 다수에게 유익한 경제, 번성하는 지구위에서 인류가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하는 경제를 꿈꿔야 한다. 그런 세상은 가능하다. 신전의 파수꾼이 입 밖에 내고 싶지 않는 이단의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대안은 있다."

 

새로운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

 

▲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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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는 경제학자 하먼 데일리를 빌어 현재의 세계경제가 한계상황에 도달했으며 과거의 규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물리학에서처럼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고전적 이론은 한계에 가까운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금융경제가 실물경제의 4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여기에 더하여 파생상품시장이 세계 GDP의 10배까지 커진 한계상황이 오게 되면서 이제 시스템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한계를 깨고 어떤 대안 구조를 고려해야 하는가? 어쩌면 지금 모든 진보적 사회세력의 고민이 멈춰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선뜻 '이것이다'라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주저하는 대목 역시 여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세계의 진보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멈춰선 바로 그 장벽을 저자는 도대체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마조리 켈리는 전통적인 경제학자가 아닌 현장 전문가로서의 자신만의 특유한 장점을 발휘한다. 경제학의 학술적 개념을 동원한 논리구조나 통계해석을 동원한 설명이 아니라, 잘 기획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문제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추적해 나가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흔히 국지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원래의 핵심 문제의식에서 벗어나기가 일쑤이지만, 저자는 많은 경험과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핵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의 어느 마을 협동조합에서 영국의 거대 백화점, 시골의 작은 어촌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사례들을 어지럽게 좇아가면서도 일관된 맥락을 쥐려고 노력한다. 바로 '소유'의 문제다. 논리적 체계로만 대안을 설명하는데 익숙한 한국의 진보세력들도 이런 유형의 대안 고민 방법론은 그 자체로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저자가 대안을 설계하기 위해 넘나드는 영역의 반경이 엄청나게 크다. 저자는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나 소유주가 아니라, 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우리가 창조하거나 건설한 모든 것은 지구위에 있는 게 아니라, 지구에 속한 것"이라면서, 대안 경제 모델이 기본적으로 생태경제의 토대 위에 있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동시에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대안 경제구조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른바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앞의 생태경제의 전제와 연동시키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까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단선적 고속 성장은 최근 100~200년 산업사회에서만 일시적으로 가능한 것일 뿐 절대 영원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정책연구소(IPS) 수석연구원 척 콜린스 역시 최근에 "우리는 가치를 바꾸지도 않고, 권력의 엄청난 불균형을 해소하지도 않은 채, 규칙(rule)만 바꿔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와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구조는 개인주의, 성장지향, 최대의 금전적 이익 추구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른 생태적 감수성은 새로운 핵심가치들을 형성해내고 있다. 지속 가능성, 공동체, 충족성 등이 그 가치다. 이러한 가치의 전환은 새로운 종류의 생성적 소유구조, 근본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길러낼 온상을 창출해낸다."

 

대안 모델을 제시하기 이전에 대안 가치를 제시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직관적으로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 진보 노선과 가치논쟁이 활발한 우리에게도 생각해볼 여지가 꽤 있기도 하다.

 

대안은 우리 곁에 있었으며 커질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주주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존 모델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충족시켜줄 경제 모델은 무엇일까? 저자의 답은 여기서 의외로 너무 친숙한 해법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열풍(?)이 일고 있는 협동조합 모델이 저자가 중시하는 대안 모델의 하나인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과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면서 지역 공동체가 관리하는 다양한 소유구조를 수년 동안에 걸쳐서 탐색한다.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멕시코의 '마을산림', 일종의 무허가 이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뉴햄프셔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역은행에서 대출받아 살고 있는 토지를 공동으로 매입한 '거주민 소유 공동체' 모델도 있다. 또한 덴마크와 독일, 미국에서 발견되는 협동조합 소유 풍력발전 모델도 있다. 공동체 풍력은 청정에너지 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 거주민 소유 공동체는 부를 널리 확산하며, 마을 산림은 삼림파괴를 막는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2009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이 강조했던 공동체에 의한 성공적인 공유지 관리이론에 천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적 속성과 공적 속성을 가진 제도가 풍성하게 혼합되어 자연 친화적이고 공동체 밀착적인 다양한 소유 모델, 운영 모델, 성장 모델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로 고민을 이어간다. 이 대목에서도 역시 저자는 또한 체계적인 논리구조와 법칙 규명 보다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과감한 개념화와 패턴 모델링을 주로 시도한다. 건축학이나 IT분야에서 주로 적용되었던 패턴 이론을 대안 사회모델링에 적용한 것은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네 가지 소유 모델을 제시한다. 우선 바다, 숲, 토지, 공원, 공공 발전소 등과 같은 공유자원에 대해 적용되는 '공동 소유와 공동관리' 모델이다. 둘째는 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파트너십, 종업원소유기업 등을 모두 묶어서 '이해당사자 소유기업' 모델로 불렀다. 그리고 셋째로 사회적 기업을 따로 구분한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사기업이지만 사회적 사명을 경영목표로 내걸고 있는 기업들, 북유럽에서 발견되는 재단경영기업 모델까지를 미래적 모델에 과감히(?) 포함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과 달리 이런 유형의 미래적 모델은 지금 현실에서도 의외로 많다는 점을 저자는 덧붙인다.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은 모든 다국적 기업을 합한 것보다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미국에서는 1만개가 넘는 종업원 소유 기업이 있고 총 참여인원이 14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어쩌면 논리학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경제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주장들이 너무 큰 얘기들을 넘나들면서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절충적으로 섞어놓은 대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냉정히 판단해봐야 한다. 미래사회의 소유구조, 기업구조에 대한 기존 논리들은 대부분 폐기처분된 상태가 아닌가? 지금은 섣부른 논리의 재구성보다는 현실에서 맹아적으로 발견되고 있고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작은 경험들을 발로 뛰며 찾아내고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이를 기초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일지 모른다. 발로 뛰면서 새로운 싹을 조사하는 한편, 인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자의 노력은 평가 받을 만하다.

 

"이익 극대화를 위한 기업 구조라는 단일 문화가 특정한 상황에만 들어맞고 다른 상황에서는 해로운, 산업화 시대만의 산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구조는 어디에나 산재해 있지만 나는 그 시대가 끝날 수도 있다는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 시민이 깨어날 때 그 시대의 막이 내릴 것이다."

 

저자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 민주화가 목표로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어떤 대안일까? 적어도 그 하나의 해법을 저자는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는 경제 민주화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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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8김병권/새사연 원장

새 정부 임기 초반인데도 도대체 ‘비전’이 안 보인다. 취임 두 달이 가깝도록 장관 인선이 제대로 안 된 탓도 있을 것이다. 당 강령을 개정하면서까지 의지를 보였던 경제민주화가 오리무중에 빠진 원인도 보태졌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비전이라고 제시된 ‘창조경제’의 실체가 더 불투명하게 되면서 결정적으로 ‘비전 실종’을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으로 가는 길이 미로가 돼 버린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IT와 과학기술을 지렛대로 한 ‘기술혁신’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특히 자연 자원이 제한된 우리나라에서 더 긴요하다는 사실은 수십 년 동안 반복됐던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난제를 기술혁신으로만 풀 수는 없다. 특히 지금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수요가 제약돼 있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가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융합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창조경제’라고 명명하면서 비전을 제시했지만 국민에게 공감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혁신 이외에 지금까지 당연시 됐던 제도와 규칙을 바꾸려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당연시 됐던 관행들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문제를 시장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였다. 발전이 지체되면 시장에 맡겨 경쟁을 촉진하자고 한다. 부실이 생기면 시장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자고 한다. 고용이 문제가 되면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하자고 했다. 그것을 ‘구조개혁’이라고 하고 ‘경영혁신’이라고 했으며 선진화라고 불렀다.


그런데 십수 년 동안 의심 없이 추진됐던 일련의 ‘시장개혁’의 최종 도달점이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고 지금의 장기침체다. 이제는 시장에 모든 문제를 맡기는 개혁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의 실패를 통제하는 방향의 개혁을 해야 한다. 특히 시장이 초래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부채를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을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란 바로 시장을 향한 맹목적 개혁에서 벗어나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개혁이다.

 

과거에 이 과정은 오직 중앙권력을 지렛대로 해 국가적 수준의 사회구조와 제도를 전면적으로, 또는 단계적으로 변화시켜나가는 방식으로만 추진됐다. 진보세력이 사회변혁을 선호했던 것도 중앙권력에 의한 제도적 변화만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지향이나 생활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은,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이루기 어렵게 되었다.

 

21세기는 사람들의 일상 곁에서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이를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것이 위로부터의 변혁이나 개혁과 결합되어야 한다. “생활 저변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고 사회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며 과거와 다른 해법으로 풀어내려는 실험과 시도”를 바로 ‘사회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기술 창안으로 이끄는 기술혁신이나, 경영과 관리 방법을 바꿔 기업의 능률과 생산성을 비약시켜내는 기업혁신과 비견된다. 다만 동기와 목표 추진 주체가 다를 뿐이다. 예컨대 영국의 유명한 사회혁신가 제프 멀건(Jeoff Mulgan)은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동기로 유발되고, 1차 목표가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런 조직들이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혁신적인 행동과 서비스”를 사회혁신으로 정의하고 있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실험됐던 참여예산제, 서민에 대한 소액 금융의 모델을 성공시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그라민은행 등이 대표적인 사회혁신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공정무역운동이나 오픈소스 운동 등도 사회혁신에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혁신학교’ 확대 정책이 단연 사회혁신의 최고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공유 도시’ 개념도 사회혁신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모든 혁신이 그런 것처럼 혁신 양상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혁신은 특히 ‘시장의 경쟁’을 대신해 ‘공동체’에 밀착되고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혁신이다. 특히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혁신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 열기가 정점을 향해 달리던 지난해 10월에 박원순 시장이 던졌던 화두다. 기술혁신이나 경영혁신 등이 아니라 사회혁신을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혁신정책을 계승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하며 다산선생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민생을 돌보며 대안적 사회의 미래를 개척해 가겠다.” 지금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만이 미래의 전망을 열어줄 시점임은 확실하다. 문제는 어떤 혁신인가 하는 점이다. 기술혁신인가 사회혁신인가?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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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0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걸면서 해외모델로 꼽은 나라가 이스라엘과 핀란드였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추정일 뿐이다. 이번 정부는 정책이든 인사든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근거가 애매한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오직 대통령의 수첩 속에 인사와 정책의 근거가 숨어 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여하튼 이전에는 금융허브를 일군다면서 아일랜드를 모델로 내세우기도 했고 사막 위의 기적이라고 하던 두바이가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국이 롤모델로 치켜세웠던 두 나라 모두 경제위기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주저앉은 것도 아이러니다.

 

인구 500만명의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와 인구 750만명의 중동 전쟁국가 이스라엘을 꼽은 것은 IT기술 중심의 벤처창업 활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를 만든 벤처기업 로비오(Rovio)가 있는 나라가 핀란드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간편하고 안정적인 연료 충전과 값싼 전기자동차 공급"이라는 모토로 세계 1위 전기자동차 네크워크 제공업체가 된 베터 플레이스(Better Place)는 이스라엘 벤처기업이다. 특히 두 나라 모두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IT 벤처의 성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두 나라는 우리와 또 다른 측면에서 유사하다. 재벌 또는 거대 기업의 경제력 집중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참여정부 말까지만 해도 국내총생산 대비 국내 5대 그룹 매출액 비중이 43%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재벌의 성장은 경제성장 속도를 훨씬 추월해 지금은 매출액 비중이 63%까지 팽창했다. 그 절반은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가져간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괜히 나온 주제가 아니다.

 

그런데 재벌의 독식이라면 이스라엘도 우리나라 못지않다. 최대 통신재벌인 IDB그룹과 에너지재벌인 델렉(Delek)그룹을 주축으로 상위 6대 재벌그룹의 매출액이 2010년 기준 이스라엘 전체 GDP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재벌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경제력 집중이다. 때문에 아랍의 봄이 휘몰아쳤던 2011년 여름,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수십만 명이 시위에 나서면서 재벌개혁을 요구했고 결국 지난해 이스라엘 정부는 강도 높은 재벌개혁안을 확정했다. 말만 요란하고 집권 후 경제민주화를 슬그머니 후퇴시키려는 박근혜 정부가 배워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재벌은 중소 IT 벤처사업 영역에 뛰어들어 벤처시장을 교란시키는 역할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IT시장, 이스라엘 국방산업, 이스라엘 7개 대학 등과 연계해 별도의 생태계를 형성하면서 IT 벤처창업과 기술판매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작은 미국’ 이스라엘은 인텔과 구글 등 미국 IT산업과 매우 밀접하게 결합돼 있고 미국 자본시장과도 연계 정도가 높다. 이는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이 참조하기 어려운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막론하고 IT 관련 시장은 주요 재벌기업들에 의해 장악돼 있고, 이와 분리된 벤처시장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핀란드는 어떨까. 한때 전체 법인세의 20%를 감당하며 핀란드 경제의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던 기업이 세계적 통신기업 노키아다. 그런 노키아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자 세계는 "노키아의 고통이 핀란드의 고통"이라며 우려했고 핀란드 경제의 추락을 예상했다. 그러나 핀란드 경제는 지금도 건재하다. 어떤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우선 노키아는 매출 하락이 현실화되고 대량해고가 불가피해져 가는 2011년 봄부터 브리지 프로그램(bridge program)이라는 것을 가동한다. 일종의 퇴직자 창업지원 프로그램이다. 퇴직자 1인당 3천만원 정도의 별도 창업지원을 하는 등 노키아에서 습득한 기술을 가지고 벤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노키아 자신이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핀란드 기술혁신투자청(TEKES)도 퇴직직원의 창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이노베이션 밀'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인위적인 경제력 분산을 할 필요 없이, 시장에서 노키아가 몰락하는 위기를 중소 벤처 생태계 육성기회로 반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노키아의 고통이 핀란드의 이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제 1~2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핀란드의 이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뒤에 내팽개쳐진 2천명 이상의 쌍용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지금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벤처 영역을 잠식해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대기업이 위기에 닥치면 무책임하게 정리해고를 일삼으면서 퇴직 직원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기업행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모델이든, 핀란드 모델이든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경제민주화를 해야 창조경제 여건도 만들어지고 창업국가도 흉내를 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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