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없다는 가정 아래 나는 100년 안에 경제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어도 해결책이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는 곧 만약 우리가 미래를 본다면, 경제 문제가 인간의 영구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부터 80여년 전인 1930년 경제학자 케인스가 100년 뒤(2030년)인 손자세대의 경제를 예측하면서 던진 화두다. 산술적으로는 아직 20년쯤 남았지만 그가 예상한 시점에 거의 근접했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가정해 보자. 케인스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경제 문제가 거의 해결되기 위한 근거로, 100년 동안 경제규모가 4~8배 정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80여년 동안 실제로 4배 가까이 커졌으니 비슷하게 예측한 셈이다. 


이 정도로 경제규모가 커지게 될 때면 사람들이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일해도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 필요를 모두 충족시키게 될 것이라고 케인스는 예언했다. 


“인간은 세상에 창조된 이후로 처음으로 진정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 걱정에서 풀려난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과학과 복리가 안겨 줄 여가시간을 어떻게 채우면서 인생을 알차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케인스는 ‘여가’를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100년 뒤의 인류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떠한가. 순전히 먹고사는 일에는 하루 세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경제 문제가 풀려 가고 있고, 이제 나머지 여가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진정한 문제’에 우리는 봉착해 있는가. 케인스가 예언한 상황들이 우리 주위에 조짐이라도 나타나고 있는가.


잠시 우리의 시야를 최첨단 정보통신 산업으로 돌려 보자. 생산성을 비약시키고 사람들의 단순하고 힘든 노동을 줄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혁신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 정보통신 혁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우리 눈앞에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엄청난 과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인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주당 노동시간은 55.1시간으로 세계 최고다. 프랑스(40.3시간)와 미국(42.4시간)은 물론이고 세계 평균인 44.6시간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을 다시 끌어올리는 사람들이 바로 정보통신업계에서 일하는 시스템 엔지니어·프로그래머·시스템 운영자·웹 디자이너들이다. 


장하나 의원에 따르면 그들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57.3시간으로 나타났다. 주 5일 기준으로 하면 하루 10시간 이상이다. 60시간 이상도 무려 35%나 됐다. 심지어 4.8%는 100시간 이상 일한다고 대답했다. 일주일에 100시간이면 일요일도 없이 매일 14시간 이상씩 일해야 한다. 1800년대 초반 영국의 산업노동자들을 묘사할 때 책에서만 봐 왔던 수치 아닌가.


일반적으로 생산직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를 하게 될 경우 수당을 받기라도 하지만 정보통신업계 노동자들은 사실상 무상 초과노동을 한다. 초과근로시간에 대해 직장에서 정확하게 집계를 하고 있는지 묻었더니 무려 75.5%가 집계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엄청난 초과노동을 ‘무상’으로 하면서 얻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건강 악화다. 정보통신 노동자들은 일반 사무직에 비해 치료가 필요한 근골격계 질환이 2~3배, 임상적으로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이 2배나 많았다.


다시 케인스의 예언으로 돌아가 보자. 물론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1930년 당시 케인스가 예측한 것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당시 식민지 국가였던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단지 4배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던 53년부터 계산하면 60년 동안 무려 50배 가까운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명목가격으로 봐도 53년 우리나라 국내총산은 고작 470억원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1천275조원이다. 하루 세 시간으로 필요를 충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당초에 케인스가 터무니없는 예측을 한 것인가. 경제규모가 4~8배 이상 커진다 하더라도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를 즐기는 삶은 오지 않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성장의 결실이 제대로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재화를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지위경쟁을 끊임없이 부추겼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예언대로 인류는 이미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생산력에 도달했음에도 하루 세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10시간 이상의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런 관행을 숙명으로 여기고 참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 갇혀 있다.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악취가 악취인 것도 모르고 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악취를 맡더라도 얼마나 고약한지 표현하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에 놓여 있다.”(김영선, <과로사회>) 한 사회학자가 던진 문제 제기를 새삼스럽게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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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요즘은 상장기업 실적이 분기마다 발표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분기 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에서는 꽤 된 얘기지만 우리는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분기 영업 이익이 연속 10조 원을 넘어가면서, 분기마다 삼성전자 실적을 예고하고 실제 결과와 맞춰보는 것이 경제 신문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을 정도다.

 

그런데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의 월급이 분기마다 조정되는 것도 아닌데 왜 분기 실적발표를 그리도 중시할까?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 때문이 아니라 주주들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이 좋게 나와야 주가가 오르고 그래야 주주들의 자산가치가 올라서 만족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주주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젠 상식이 되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 기업이 분기단위를 실적을 챙기고 숫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데 있다.

 

물론 기업들이 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것을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클린턴 정부시절의 재무장관을 했던 로버트 루빈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기업은 한 가지 중요한 조직화 원리에 따라 움직이다. 그것은 이윤이다.” 어쩌면 사적 기업들에게 당연한 소리일 수 있다. 이들에게 사회적 기여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다른 차원 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익 추구가 점점 더 단기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다.

 

요즘처럼 경제 환경이 급변하고 기술변화도 빠른데 누구도 미래 예측이 쉬울 리 없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는 위험도 따르고 장기적 전략도 세워야 하는 것이 상식이건만, 일단 ‘분기 자본주의’ 바퀴가 돌기 시작하면 무조건 분기마다 주주를 실망시키지 않을 실적이 만들어져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임금을 적게 올린다. 처음부터 적게 줘도 되는 비정규직을 더 많이 채용한다. 아예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싼 가격에 외주를 주거나 사내하청으로 운영한다. 더 싼 임금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긴다. 지금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업경영 행태들이다.

 

그런데 정말 기업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인건비용을 줄이는 것 말고는 없는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임금 비용 축소 이외에도,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거나 혁신적인 기술의 도입으로 노동생산성(노동시간당 부가가치 생산)이 올라가면 기업의 이윤은 올라간다. 같은 시기 같은 노동자가 생산한 부가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생산에 투입된 원료와 부품의 가격이 내려가거나 절약될 수 있다면 당연히 이윤은 올라간다. 또한 기업의 가동률이 올라가도 이윤은 올라간다.

 

이처럼 기업의 수익을 올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또한 인건비 절약이 제일 쉬운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단기적인 효과 밖에 없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노동생산성 향상이나 자원 절약형 기술혁신 등은 도입되면 지속성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임금억제는 직원들의 충성도를 떨어트려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고 불량률을 높일 개연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이윤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도 있다. 효율임금 이론이 이런 측면을 설명해준다.

 

심지어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꼭 이윤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 꼭 이윤을 줄이는 것도 아니라는 경제학 이론도 있다. 즉 노동자와 자본가가 어떤 정해진 크기에서 임금과 이윤을 나눠 갖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동차 생산과정을 예를 들어 보자. 자동차 브레이크를 납품하는 회사에서 노동자 임금을 올려주는 순간 이 기업 자체는 이윤이 적어질 수 있다. 자동차 에어컨 납품회사의 노동자 임금을 올려도 마찬가지다. 임금이 오르면 이윤이 적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딱 여기까지만 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납품업체 노동자 임금인상으로 이들이 자동차를 더 많이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면 어떨까. 브레이크 업체와 에어컨 업체가 납품하는 완성차 회사의 매출은 늘 것이고 이윤도 늘어난다. 그러면 완성차 회사는 납품업체에 대한 납품 주문을 늘릴 것이고 뒤이어 납품업체 이윤도 늘어날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타당한 시나리오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벌써 여섯 번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수년째 실질 임금은 거의 오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저임금의 불안한 일자리들이다. 장기 침체 속에서 일자리가 없거나 불안하거나 임금이 낮아서 많은 노동자들이 힘든 겨울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변해야 한다. 분기 실적에 연연해서 인건비 줄이는 경영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동원했던 비정규직 사용 남발, 사내하청, 외주 등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소득 개선이 늦으면 늦을수록 전체 국민경제의 회복 속도도 늦춰질 것이 때문이다.

 

개별 기업들의 경우 전체 경제의 회복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갇히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건비 절약 방식의 단기주의 경영들이 해당 기업은 물론 국민경제 전체의 잠재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 사실 인건비 절감을 위한 적지 않은 기업의 행태는 노동권 보호의 입장에서 볼 때 불법적이거나 탈법적인 것이 많다. 현대 자동차 불법 사내하청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노동권을 유린하면서까지 인건비 절감에 집착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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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직장인들에게 내년 경제전망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경제성장률이 2%인지 3%인지, 아니면 4%가 될 것인지 도대체 관심이나 있을까. 사실 냉정하게 보면 대부분 직장인들은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실적전망’에 좀 더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영업사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올해 실적 챙기기로 분주할 것이고 곧이어 내년 계획과 할당을 짜면서 내년 영업환경을 들여다보려 할 것이다.

일반적인 직원들의 경우에는 내년에 연봉인상을 기대할 만큼 경제환경이 좋아질지 관심이 있을 수 있겠다. 또는 아직 다니는 회사가 없거나 임시직인 경우에는 일자리 사정에 대한 전망이 아무래도 궁금할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부가 예측한 내년 성장률 3.9%, 한국은행이 예측한 3.8%는 직장인들에게 그리 비관적인 수치만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잠재 성장률에 근접한 수준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보다는 2%, 올해보다는 1% 가량 올라간 수치이니 액면대로 실현된다면 올해보다 직장인들에게 꽤 체감되는 개선이 있어야 한다. 

정말 그럴 것인지 우선 일자리 사정을 살펴보자. 그런데 최근 수년 동안 일자리 증가와 성장률이 거의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구체적으로 보자. 2011년에는 경제성장률이 3.7%였고 일자리는 42만개 늘었다. 그런데 성장률이 반토막 나서 2.0%로 떨어졌던 지난해에는 일자리가 오히려 늘어서 44만개가 됐다. 그러더니 성장률이 다소 올라 2.8%가 예상되는 올해는 일자리 증가세가 꺾여 33만개가 예상된다. 

성장률 변동과 일자리 개수 증가가 마치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내년 전망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한국은행은 내년에 일자리가 38만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보다 조금 개선된 것이지만 지난해나 2011년에는 미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주요한 이유는 최근 일자리 증가가 생산 확대로 인한 고용수요 증가 때문이 아니라 복지수요 증가로 인해 보육이나 간병 등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변동이 일반 생활인들에게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 이유다. 

하나 덧붙이면, 현재 추세로 볼 때 고용률 70%라는 정부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원래 정부 계획대로라면 2017년까지 매년 47만6천개씩 238만개를 만들어야 목표가 달성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 전망대로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올해 14만6천명 미달하고 내년에는 10만명 모자란다. 남은 3년 동안 이를 보충하기도 매우 어렵다. 다만 정부가 실적 달성에 매달려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 같이 나쁜 일자리를 무리하게 늘리는 목표에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70% 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한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직장인들의 소득개선 전망은 어떨까. 사실 경제성장률이 2~3%를 맴돌면서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업종에서 매년 연봉인상이 지극히 빡빡해진 것이 벌써 수년이다. 내년에도 경기부진을 이유로 대부분 기업들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임시직 채용, 외주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임금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경영전략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이면 내년 3.9% 성장률이 달성된다 해도 소득개선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가 않다.

기업가들은 여기에 일종의 ‘절약의 역설’과 같은 구성의 오류가 있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약의 역설이란 개인은 근검절약해 부유하게 될지 모르지만 모든 국민이 절약에 매달리면 소비가 안 돼 기업들은 물건을 팔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생산을 줄이고 직원을 해고하게 돼 결국은 개인들은 절약할 소득 자체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상황에 빠진다는 논리다.

비슷하게 개별 기업들이 임금비용 상승을 억제해 경쟁력을 올릴 수는 있지만 모든 기업들이 똑같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그 나라 국민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제품은 판매되지 않을 것이고, 임금삭감으로 얻은 비용절감 효과와 경쟁력은 쓸모없어진다. 개혁적인 경제학자 칼레츠키가 "이제 자본주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단일의 기업가에게 유리한 것이 반드시 한 계급으로서의 모든 기업가에게도 유리한 것은 아니다“고 적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선 성장 후 분배’라는 명분으로 성장의 과실을 일반 생활인들이 누리지 못했다. 지금은 ‘불황 시기에 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임금비용 절감’이라는 미명으로 노동자들의 소득개선이 억제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꿀 시점이다. ‘노동자들의 소득개선을 통한 내수경제의 성장’이라는 개념을 수용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직장인들의 내년 전망은 좀 더 밝아질 것이다. 그에 따라 국민경제 전망 자체도 좀 더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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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내년 경제전망을 두고 성장률 논쟁이 분분하다. 정부는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내년 경제전망을 3.9%로 추산했다. 이어 한국은행은 7월보다 경제전망을 0.2%포인트 낮춰서 3.8%로 수정했다. 그 직전에 국제통화기금도 한국경제 전망을 종전보다 낮은 3.7%로 발표했다. 이렇듯 요즘은 국제기구나 국내기관을 막론하고 3개월 단위로 당초 전망을 바꾸는 것이 예사여서 사실 전망치에 무게를 실어 줄 것도 없어 보인다. 더구나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최근 5년간 2.3%포인트 빗나간 것을 생각해 볼 때 전망 자체가 의미 없는 행위였다고 봐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어쨌거나 2014년 경제전망을 3.9%라고 하면 대체로 2011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2011년에는 3.7%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나 올해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된 수치이고 잠재성장률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는 도대체 국민들이 체감경기 개선을 실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부 예상대로 성장률을 예상한다고 해도 국민에게 경기회복 체감도를 말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속성이다. 2014년 경제가 3.9%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향후 최소 4% 전후의 성장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킬 것을 보장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2011년 상황과 지금 상황이 다르고 새로운 장애물이 앞날에 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부가 내년 전망을 하면서 특별히 명시하지 않은 문제와 장애물을 검토해 보자.

우선 2011년에 비해 엔저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수출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새로운 변수다. 형태상으로만 놓고 보면 엔저는 수출 가격 경쟁력에 불리하고 일본산 부품 수입에 유리하다. 대체로 해외생산기지 비중이 높고 환헤지 능력이 우수한 대기업들의 타격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수출 중견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입을 타격은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산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기업의 45%가 엔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고 이 가운데 12%는 ‘심각한 영향’, 33%는 ‘약간 영향’으로 평가했다. 과거보다 영향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엔저로 인해 경제환경에 불리한 상황이 조성됐음은 사실이다.

두 번째로 엔저보다 더 중요한 외부변수로서 중국경제의 성장률이 앞으로 8% 미만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 경제도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중국경제는 단 한 번도 9% 미만의 성장률을 보여 준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지속했다. 그리고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하고 있는 우리 경제는 여기에 맞춰져 성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7% 수준으로 성장률이 하향 안정화되기 시작한 중국경제는 이 기조를 지속시키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 앞으로 중국경제가 9%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경제의 성장률 하락이 우리 경제 성장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고 있는지 정량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경제 역시 일정한 하향 안정화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직접적인 최대 무역 상대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제2의 무역 상대국인 아세안(ASEAN) 경제권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움직임 등으로 불안정해지면서 무역환경을 추가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설사 미국경제와 유럽경제가 과거보다 나아진다 하더라도 중국의 경제성장률 하락과 아세안경제의 불안이 이를 상쇄시킬 개연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처럼 대외여건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요인들이 여전히 우세하다고 볼 수 있다. 엔저현상 지속과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이외에도 양적완화 축소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혼란 역시 대외여건을 어둡게 하는 요인에 당연히 포함된다. 미국 정부가 양적완화 축소를 실제로 할 수 있을지 여부 자체가 여전히 불투명하고, 실제로 집행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양적완화를 시행한 기간만큼의 상당 기간이 필요하며, 그 기간 동안의 혼란과 불안정성이 어느 정도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적완화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면 이를 축소하는 과정도 극히 이례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짚어 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바로 우리 가계의 소비여력 문제다. 최근 금융연구원은 우리나라 민간소비 부진이 기본적으로 취약한 소득에 기인한다는 새삼스런 지적을 한 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가계의 명목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이 위기 이전의 3분의 1 수준인 5.6%로 급락했고, 그에 따라 경상 민간소비도 위기 이전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그나마 2000년대 전반기에는 가계부채를 동원해 부족한 소비를 보충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늘어난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인해 부족한 소비가 더 부족하게 되고 있는 중이다. 가계부채가 일시적으로나마 민간소비 증가효과를 냈지만 이제는 반대로 민간소비 억제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 또한 과거와 다른 우리 경제의 내적여건 변화다. 이래저래 우리 경제가 단순하게 위기 이전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렵게 됐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책전환이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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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9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창조경제가 창조한 것은 ‘창조경제'라는 용어뿐.

 

새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나 오랜 준비 끝에(?) 지난 6월 5일, 드디어 정부가 ‘창조경제 청사진'을 공식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10여 년 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벤처 활성화 정책과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는 비판만 되돌아왔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중소 벤처 육성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추진한 신지식인 운동과 문구, 단어까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도, “지난 10년 전 정부와 현 창조경제의 차이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렇다. 오랜 공을 들여 정부가 정식화시킨 창조경제의 3대 목표-6대전략-24개 추진과제를 들여다 보면, IT중심의 벤처창업정책 말고는 기존에 있는 여러 가지 산업정책과 기술지원 정책을 짜깁기 한 것일 뿐이다. 과거의 추격형 전략에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지만, 이는 대기업 단위에서 이미 오래전에 실행하고 있는 구호를 뒤늦게 정부가 반복하고 있는 것일 뿐 큰 의미도 없다.

 

좋은 개념이니 내용을 채워 주자고? 버리는 편이 낫다.

 

일부에서는 창조경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존 홉킨스 교수의 2001년 저작『The Creative Economy』에서 근거를 찾으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이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 일부는 구체적 실체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의 ‘창업국가' 모델이나, 최근 핀란드에서 노키아 쇠퇴를 대체하는 벤처붐을 들여다보지만, 정부가 뚜렷이 이들 국가를 롤 모델로 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론적 근거도 구체적 사례도 없는 추상적 개념들만 계속 동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민간에서 ‘창조경제 연구회'까지 만들고 있지만, 이 역시 비현실적인 끼워 맞추기식 해석을 할 개연성이 높다. 결국 잘 평가해 본들, 창조경제 정책은 ‘창조경제'라는 용어만 창조한 채 사라질 운명이다.

 

그런데 개인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좋은 개념이니, 개념은 살리고 내용을 전진적으로 채워주자는 ‘선의(?)'의 주장도 있다. 그러다 보니 ‘창조 경제는 이런 것'이라는 개념정의가 말하는 사람들만큼 많아지게 되고, 결국 창조경제라는 개념으로는 전혀 국민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팍팍한 상황에서, 국민 전체의 지혜를 모아도 모자랄 판에 ‘창조경제'가 국민의 의사소통과 지혜의 수렴을 가로막고 있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지 않나? 이론적 근거도 없고, 설득력 있는 유사 사례도 없으며, 지금 경제 환경에도 맞지 않는 국적 불명의 창조경제는 폐기하는 것이 맞다.

 

‘세계 경쟁력'에 집착하기보다 ‘협동경제'로 내부를 다져야.

 

지금 우리 앞의 경제 환경은 글로벌 기술 경쟁력이 뒤처지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드웨어적 스마트폰 경쟁력은 세계최고이며, 가격대비 자동차 경쟁력도 결코 낮지 않다. 그런데도 경제성장률은 2% 밑을 기고 있지 않나? 우리뿐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 역시 IT분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 중반대의 실업률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다른데 있다는 것이다. 고장난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 극단적으로 악화된 불평등 구조 등이 쉽게 치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나친 수출의존도를 줄이면서 국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여 내수기반을 키워야 한다. 승자 독식의 경쟁시스템을 완충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확장하는 한편, 공공부문의 역할을 회복하고, 특히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부분을 키워 신뢰하고 협동하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를 맞아 에너지 집중형 산업에서 에너지 저소비형으로의 산업 전환도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고 일자리도 필요하다. 특히 경제위기에서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사회가 함께 살기위해 필요하다. 이런 것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협동 경제라고 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창조경제가 아니라 협동경제라는 말이다.

 

기술혁신과 함께 사회혁신이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와 혁신이 긴요한 것 아닌가? 긴요하다. 물론 IT분야에서 필요하고 이미 민간에서 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정부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사회혁신'이다. 가난한 서민에게 과감하게 신용대출을 해주었던 그라민 은행과 같은 발상의 혁신, 느리더라도 시민들이 지자체 예산 결정에 참여하는 참여 예산제의 실험, 그리고 무한 경쟁교육에서 협동하는 교육으로의 전범을 이룬 혁신학교 등이 그런 사례다. 아직도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고착시킨 정글 자본주의의 폐해를 하나씩 전복해야 한다. 엄청난 창의적 상상력과 국민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경쟁을 위한 창의적 상상력이 아니라 협동을 위한 창의력, 상상력,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북돋워야 할 대목도 여기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