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실린 박정호 기자님의 글입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해 켜졌던 촛불이 장맛비에도 꺼지지 않고 있다. 되레 불씨는 곳곳에 닿았다. 촛불문화제에서 거리행진으로, 쇠고기 문제에서 언론 문제, 대운하 문제로 그리고 정권 퇴진 운동으로 불꽃이 옮겨 붙는 양상이다.

그냥 촛불이 아니라 삼단 같은 불길이다. 촛불문화제에서 들리는 시민들의 구호와 시민들의 피켓은 분노 그 자체다. "이명박 물러가라!"는 말은 점잖은 축에 속할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 답답하다. 힘이 빠진다. 수많은 밤을 촛불과 함께 지새웠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 재협상은 아직도 요원하고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한자릿수로 떨어진 지지율에도 요지부동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길의 실마리를 <주권혁명>(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지음, 시대의 창 펴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좀 과격한가. 그만큼 현재 세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손석춘 원장은 "21세기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수탈과 야만적인 제국주의를 넘기 위해서는 민중이 직접 정치하고 직접 경영하는 즐거운 혁명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손 원장은 우선 프랑스 단두대에서 시작된 핏빛 혁명부터 시작해 근대 민주주의 탄생까지 톺아본다. 민중의 나라 건설을 부르짖었던 소련과 동유럽 실존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실존사회주의의 공백을 인정머리 없는 신자유주의가 메웠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세력의 정의 그대로 '자본이 누리는 절대적 자유'다. 더 간추리면 '자본독재'다. … 신자유주의의 중심에는 민주주의 탄생기의 시민도, 성숙기의 노동자도 없다.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시민과 노동자를 대체한 중심에는 사람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 자본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혁명이다. 국민이 아닌 자본에 봉사하는 국가를 이대로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손 원장은 "경제주권과 정치주권을 비롯해 모든 권력의 주권을 민중이 주체가 되어 행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 주권운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치주권? 지금도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지 않나'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선출로 끝이 아니다. 탄핵하고 감시할 권리까지 필요하다. 민중을 위한 헌법개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 건강권과 관련된 미국 쇠고기 수입이나 한반도 대운하 등 중요 정책도 국민이 직접 결정해야 옳다.

"아래로부터 강력히 통제되는 정치구조를 지닐 때 정치는 비로소 참여의 대상을 넘어 정치 자체가 민중의 창조물이 된다... 신자유주의 자본독재를 넘어서려면 자본의 논리를 통제해야 하며 그 방법은 법과 제도에 근거해야 한다."

손 원장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소통이 가능해진 지금 중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와 대통령,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 그리고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국민발안권을 정치주권 행사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경제주권은 어떨까. 손 원장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포장된 '자본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물론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민영화나 노동 유연성을 최고가치로 받드는 것도 아니다. 대신 시민과 노동자들의 보호자가 되라는 것.

"국민과 국민경제를 보호하고 육성지원하는 기구가 될 때, 국가는 비로소 지배기구라는 낡은 틀을 벗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일,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부를 보호하고 금융을 공공화하여 생산력 발전의 동맥으로 활용하는 일, 노동의 창조성을 최대한 고취할 수 있는 기업 구조를 유도하는 일을 비롯해 민주경제 체제를 건설하는 데 국가의 기능은 실로 크다."

또한 손 원장은 북한과의 경제협력도 주목했다. 그는 "통일민족경제 건설이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남과 북이 빠른 속도로 경제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이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민주 경제 체제 건설에 새로운 활로"라고 밝혔다.

민중을 위한 사회가 그려진다. 이제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 손 원장은 '주권운동 3단계'를 책 말미에 썼다. '국민주권운동 준비위원회 출범'과 주권혁명의 이상을 담은 새로운 헌법 만들기 운동 그리고 선거혁명이다. 즉 민중이 깨어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중 또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꾸려는 열정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시인해야 옳다. 민중의 다수가 역사적 현실에 침묵하거나 외면할 때 역사는 반드시 보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다. 숨 막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민중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것이다. 지긋지긋한 장맛비에도 서슬 퍼런 공권력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주권혁명>을 이룰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많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방문자

    꼭 읽어봐야겠군요. ^^

    2008.06.19 16:05 [ ADDR : EDIT/ DEL : REPLY ]



인상을 찌푸리며 읽었다. 집중해야 하므로. 그러자 도서관에 온 개나리아파트 통장, 하영 엄마가 옆에서 넌지시 말한다.

"힘드시겠어요. 그 책." 

아마도 겉표지를 본 모양이다. ’이명박 시대’라는 선명한 글자를 봐서 그런지 나를 사뭇 안쓰럽게 쳐다보는 듯하다. 나는 얼결에 웃으며 말했다.
 

"안 힘들어요. 이 책."
 

왜냐면 난 이명박 시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난 도대체 뭘 알고 아는 척을 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동네 몇몇 사람들이 "그래도 경제를 살려준다잖아요, 이명박이!"라고 말하는 이를 볼라치면 얼굴에 푸르르 냉기가 돌며 팽하기만 했지, 내가 과연 그들에게 뭘 얘기했는지.

이명박 시대, 난 얼마나 알고 있는가?

2008년 3월에 갓 구워 나온 이 책을, 나는 결이 좋은 따뜻한 식빵을 찢어먹듯 야금야금 먹어보았다. 제목은 다소 찢어먹기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내용은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뀐 5년의 전망,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이 펴낸 이 책은 현상을 넘어서 본질을 꾀하는 진중한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구성은 갖가지 도표와 분석자료, 구체적인 분야별 대안 제시들로 채워져 있다. 새사연 연구원 이외에도 다양한 객원 필자들을 통해 폭넓은 스펙트럼을 짜려고 한 노력이 돋보였다.

책은 우리가 그토록 눈살을 찌푸리는 17대 대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내용은 ’17대 대선- 그 표심으로부터 찾는 진보의 희망’이다. 글을 쓴 새사연 김병권 연구센터장은 우리 사회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세간의 평가에 의문을 던지며 국민의 진보적 지향과 기대를 진보세력이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새사연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을 지지했던 유권자 30%보다, 투표를 하지 않았던 유권자 37%에 주목했다. 500만 표가 넘는 표차로 이명박이 당선되었지만, 그 못지않게 역대 선거 가운데 투표하지 않은 표가 당선자의 표보다 훨씬 많았던 선거임을 잊지 말자는 얘기다. 더불어 17대 대선이 반독재에서 반신자유주의로 정치구도가 전환된 점, 2, 30대가 반신자유주의적 개혁 진보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보냈다는 점 등을 본질적인 변화로 보았다.  

진보의 근원적 성찰, 전환 그리고 실천

책은 17대 대선을 시작으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달러 기축통화 역할 약화,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고유가 시대, 2008년 한국 국민경제 동향과 전망 등을 다룬다. 나라 안팎의 주요 의제를 통해 고용, 통일, 동아시아 주요 이슈까지 아주 알찬 연구 자료들이 가득하다. 다양한 도표 자료와 보론, 주석을 통해 내용은 신뢰성 있고 명료했다.

책의 첫 번째 큰 흐름이 나라 안팎의 주요 의제 전망이었다면, 두 번째 큰 흐름은 분야별 주요 의제 전망이었다. 분야별 주요 의제는 경제, 통일, 금융, 농업, 교육, 보건의료,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자에게 보다 실물적인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달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제 부분의 ’이명박 정부 노선의 특징과 전망’이다. 새사연은 이명박 정부가 그 어떤 요식적인 서민정책 없이 오직 기업이나 부자들만을 위한 경제정책을 펼 것이라는 가정과 이명박 경제가 단순개발주의식 ’시멘트 경제’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며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요체는 이명박 경제가 시장지상주의-신자유주의의 어느 지점을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가속화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전체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새사연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대안적 가치 창출과 그를 위한 실천에 나서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신을 진보라고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김명인 인하대 교수의 지적을 인용하며 따끔한 말을 던졌다. 진보의 근본적인 전환과 성찰을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논지는 사뭇 공감이 간다.

현실성이 부여하는 선동력

책을 통한 새사연의 전망 분석과 대안 제시는 남다르다. 남다르다는 것은 신선해서가 아니라 유독 바른 말이기 때문이다. 선언적인 구호와 외침이 아닌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요목조목 지적하고, 제시하는 것이 희한하게 선동적이다. 한 귀로 흘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들려준다.

책을 덮고 표지를 들여다보자, 묘하게 4일 동안 보이지 않던 이명박의 얼굴 실루엣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표지마저도, 선동적이다. 전의를 불태우게 하니 말이다.  

* 이 글은 춘천시민광장 부설 <꾸러기어린이도서관> 관장으로 일하며 지역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이선미씨가 쓰신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상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 결여된 대표적인 집단이다. 특히 정치적 입장을 자신들의 계층이해에 입각해 표명해본 적이 없는 기이한 집단이다. 오히려 타인들, 특히 권력집단이 자신들에게 기울이는 관심조차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그런 소극성을 하나의 중요한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무엇이 흩어진 상인들을 뭉치게 했나


상인들의 역사적 형성과정이 자본의 발전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진행된 점과 개별적 노력에 의해 성패를 보장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낳은 상대적 독립성이 상인들의 사회적, 집단적 소극성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그렇게 해방 이후 상인들의 운명은 ‘홀로’, ‘알아서’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아무도 이 세력이 집단화되거나, 나아가 정치세력화 할 잠재적 계층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10년 전에 출몰하여 현재 전국의 재래시장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대형마트로 인해 그전까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몰락의 위기로 상인들은 급격히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를 개별 상인 또는 특정지역 상인집단의 정신적 안일에서 찾는 것으로 해명하려는 주류 경제 주체들의 논리에 상인들은 그동안 그저 주눅들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1월 20일 ’대형마트 규제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소속 상인들이 부평 문화의 거리에서 진행한 집회에서 한 나이든 상인이 연설을 듣고 있다. ⓒ 김갑봉 재래시장 상인


그러나 최근 상인들의 일단에서 이런 류의 논리를 주류 지식인들의 혹세무민이라 주장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지만, 상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벼랑으로 내모는 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전 카드재벌들의 부당한 카드수수료체계에 대한 전국적 문제제기를 통해 그들의 부당성을 드러내는 상인들의 실천적 일성은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또한 작년 말부터 인천 부평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전국적 조직화 사업은 상인들의 의식이 사회와의 연관성 찾기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인들의 이런 노력은 아직은 파편적이고, 시간과 지역적 분절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인들의 바둥거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상인들의 의식과 조직 그리고 실천력에 비례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인 세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특히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인 또는 자영업자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며, 과연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한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우리 상인들이 안고 있는 위기적 상황과 몰락의 현실화를 시민사회를 향해 알리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은 예기치 못한 지면을 내 앞에 펼쳐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사회에 새로운 대안과 화두를 던지며 주목을 받아온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2008년 3월에 내놓은 희망 보고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새사연 희망보고서, 중소 자영업인을 보듬다


이 책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인은 누군인가?”를 이러저러한 형태로 설명해냈던 두서없던 개념들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자영업 종사자 특히 600만 명의 도시 자영업 종사자에 대한 세분화된 분류를 접하면서, 이 책은 단지 학자들의 지적 탐구의 영역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서민 대중의 하나로 상인들을 성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은 단지 분석의 영역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공간과 영역에서 주체를 화두로 대안 중심의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충만감을 주었다. 물론 대안이 구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거론된 주체들의 참여도와 숙성이 필요하겠으나, 일단 상인 문제에 관한한 나와 동료 상인들이 현재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방향과 신기할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도시화된 사회로 규정지어, 대안 실현 주체의 압도적 다수를 도시, 도시생활 속에서 세우고자하는 개념은 우리 상인들의 공간적 배경과 그로인한 정치적 입지를 기막히게 포착하고 있다. 모든 논리의 전개와 맥락을 쉽고, 알아먹게 써내려간 것도 이 책의 미덕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 논리의 전개이다.


수많은 분석과 논리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과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주류 유통학자들의 논리에서는 상인들의 의지박약과 불성실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재래시장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형유통재벌의 자본횡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자영업자들의 고단한 삶을 통계를 통해 드러내지만, 그것이 기존의 숫자놀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마치 오래된 벗이 나의 마음을 하나하나 헤아려 그 고통을 나누고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혹시 장사를 하는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발바닥으로 현장을 누빈 흔적이 나타난다. 상인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과 방향성이 신뢰할 만한 것은 한편으로 대형마트, 카드문제 등에서 재벌과의 적대적 성격을 규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상인 내부의 다양한 생존방식의 문제를 균형있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문제는 재래시장과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한 두 개의 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껏 대부분의 분석가들과 투쟁가들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자영업자들의 생존조건을 명확히 하지 못해왔으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분석들과 대비된다. 게다가 재래시장의 존재 자체를 비단 경제적 문제로 바라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향토문화와 공동체 문화의 기반으로 바라보면서, 대형마트의 시장독과점화가 이런 문화를 질식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가치를 파괴한다고 지적한 점은 상인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깊은 인식의 단면이다.


그런데 가장 주목할 점은 조직의 문제이다. 주로 학계에서는 대안주체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데 노력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국민들 속에 존재하는 대안실현 의지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적극적인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대형재벌집단에 대적할 수 있는 전국적 조직의 필요성과 이를 전제로 한 지역상인조직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제기한다. 이미 이 작업을 시작한 나와 일부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벗들의 힘찬 격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재 업종 중심으로 구성된 상인 조직의 한계에 대한 지적 역시 수긍하는 바다.


나아가 상인들의 지역과의 연대, 공적 사회단체와의 연대, 기층 민중 집단과의 연대 등 역시 상인들의 사회적 인식과 행위의 지평을 넓히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을 강조한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상인들의 입지가 결국 공공성의 편에 서야 함은 당위라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해 1월 경기도 광명시 한 대형마트 개점날 인근 광명시장 상인들과 마트측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상인의 운명은?


그러나 이책에서 지적했듯이, 아직도 잔존해있는 과거의 중산층적인 정서와 몰락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 상인의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남아 있다. 이점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증가할수록 그리고 그 피해가 재래시장과 중소 자영업자들의 영역을 뒤덮어 가면서, 다른 한편 이와 맞서는 상인 조직 또는 도시 자영업자 조직이 공고해지면서 극복해 나가야 할 난제이다. 세상에 내딛는 첫발자국은 항상 새롭고, 고통이 따른다.


특히 개별성이 강한 상인 집단의 정치세력화는 그 과정자체가 정신적 소모를 감당해야만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곳에 답이 있다면, 헤집고 들어가 일으켜 세우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며,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상인의 운명이다.


“신자유주의는 국민 내부의 차이를 확대하고, 갈등관계를 조성함으로써 국민을 끝없는 분열로 몰고가는 토대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체제다”라고 이책은 말한다.


“따라서 ‘적대적 대립’ 관계를 한국사회 진보의 핵심전선으로 설정하고, 나머지는 ‘연대’를 위한 조정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결론은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이다. 상인들의 조직화와 연대조직이야말로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조직적 출발점인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상인들이 지역에서 이미 진행중인 사업이다. 상인들의 문제를 지역문제로 환원하여 지역대책위를 만들어 운영중이며, 이곳에 포함된 지역단체의 도움이야말로 현재 우리 상인단체의 갈 길을 단단히 다져주는 커다란 후광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승자 독식 사회로 급발진하고 있다. 모든 것은 상품이고, 따라서 상품화된 숭례문은 불타 사라졌다. 미친듯이 밀어붙이는 ‘효율성’의 논리는 기실 자본가들의 효율성일 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숨가쁜 생존 본능만이 남아 자신을 하염없이 소진시키는 부조화의 논리일뿐이다. 세상은 상품과 소비자만 존재한다고 거짓을 유포하는 신자유주의자들과 세상은 가치와 인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실의 세력이 대한민국에서 격돌할 것이다. 모든 가치가 불타버릴 것 같은 이런 절망스러운 세상이야말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처연하게 빛나는 것이다.


이때 여기 희망을 이야기 하는 한권의 책이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희망의 조건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좋은 벗을 만난 기쁨, 우리 상인들이 가야할 길을 함께 나서줄 든든한 후원자를 대면하는 따뜻함이다. 우리의 이름을 불러준 이 친구에게 우정 어린 마음을 보내며, 연구의 결과가 현실에 녹아 새로운 세상을 여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무기로 작동하길 바란다.



* 이 글은 부평상인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이시며 현재 의류 대리점을 운영하고 계신 '인태연'씨가 쓰신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년 전

진보적 싱크탱크를 자임하며 출범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첫 단행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2006, 시대의창)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분단체제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의 밑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 출간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2008, 시대의창)에서는 그 밑그림의 색을 채울 주체와 실현전략을 모색하였다.


최근 짧은 기간이지만 국내 학계에서 대안정치경제모델연구가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유럽과 남미 등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을 검토하고, 한국형 대안경제모델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구조 안에 형성되는 개인(agent)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진보진영에서도 ‘민중’으로 환원할 뿐 민중 내부의 다양한 빛깔을 도출하는 것에는 소홀했다.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런 가운데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은 실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주체가 되어 살기 좋은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인지를 실증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분석하고, 더불어 실천 가능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본서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한국의 경제구조 변환에 있다. 속칭 87년 체제로 불리는 형식적 민주화의 위기가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치를 받고서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97년 체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침투에 의한 주주자본주의의 실현은 본서의 모든 주체들을 꿰뚫는 주제다. 요컨대 “미국 중심의 거대 금융자본의 주도 아래, 소수화되고 비대해진 재벌기업군, 민영화된 공기업, 금융기업 그룹이 최신의 주주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습”(381쪽)인 것이다. 그리고 혹자의 상상된 50:50의 진보 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구조에서 발생하는 20:80 혹은 10:90의 양극화 구도에서 10을 위해 희생하는 나머지 90의 주체들을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형해화된 민중의 결집이 필요하다. 본서는 민중 안의 노동자, 농민, 대학생, 자영업인들을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주체로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자 했다. 


노동자 분석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존의 제조업 위주 노동자 문제, 비정규직에 대한 분석에서 한층 더 나아가 첨단산업 노동자(가령 IT종사자)와 금융산업 노동자를 끌어안는 적극적인 주체화의 시도였다.


첨단산업과 금융산업 노동자 역시 노동자다


기존의 선입견은 첨단산업 노동자에 대해서 고소득,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화이트 컬러로만 생각하고, ‘노동자’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한국사회의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에서 이들 첨단산업 노동자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결코 노동자 이외의 범주로 두어서는 곤란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약 58시간이며 60시간 노동하는 비율도 43퍼센트나 된다. 심지어 80시간 이상 초장시간 노동하는 비율도 7.6퍼센트에 달했다. IT강국의 첨단 노동자란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동시간이다. 이는 임금 노동자 평균 50시간을 넘어섬은 물론, 자영업인 노동시간 59시간과 맞먹는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는 경우가 8퍼센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204쪽)면서 노동강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노조조직률은 지극히 저조한 상황은 거시적으로 한국의 산업구조가 지식기반경제로 전환과 맞물린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금융산업 노동자의 경우도 주체화의 시도에 대해 사회적 여론이 곱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은행의 비정규직의 증가, 남아있는 정규직의 노동강도 증대 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선두에 97년 체제 이후 금융기업 그룹의 강세를 볼 때 이에 대한 브레이크로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산업에서의 영향력은 금융 주주자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노동자의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사용되어야 할 것”(209쪽)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주체로서 포섭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농민과 대학생, 전방위적 연대로 돌파구를 찾아야


농업의 경우 지속 가능한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국민농업이란 “국민 모두가 이해당사자가 되어 함께 책임지는 농업”(264쪽)을 일컫는다. 농업이 국민과 무관한 산업이 아니라는 것은 최근 언론을 통해서 제기되고 있는 아토피나 GMO식품 등의 문제에서 알 수 있다. 국민농업에서 제기하는 환경친화적 농업으로의 전환, 식량의 안정적 공급, 전국민적 먹거리 공동체 형성, 남북의 상호보완적인 농업 공동체 형성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GN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3퍼센트라고 그 중요성을 폄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운동은 다른 주체들과의 전방위적인 네트워크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농업방식에 대해 대응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학생의 경우 일련의 비운동권의 학생회 구성, 대학생들의 대선에서의 보수정당 후보 지지를 두고 학생운동의 죽음과 대학생 보수화 현상을 논하는 의견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대학생들의 경제적 상황은 치솟는 등록금으로 인하여 과거 80년대 운동권보다 훨씬 악화되었다는 점, 대학 자체의 계층화와 양극화로 인해 대학 졸업 이후 사회진출의 어려움이 심해졌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대의 대학생들은 1980년대 혁명가만큼이나 바쁘다”(313쪽)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전공 선택과 등록금,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대학생들은 더 이상 ‘민중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특권적 주력군이 아니다. 대학생 ‘너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민중’을 위해 복무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 요구에 대한 해명과 해결이 필요하다”(316쪽)며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대학생들의 반대투쟁에서 노동자들과의 연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교육경영에서의 신자유주의의 이식에 대한 등록금 투쟁 등의 시작으로 다른 조직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임금노동자보다 못한 자영업인의 삶


끝으로 자영업인의 분석이다. 앞서 첨단산업, 금융산업 노동자만큼이나 그간 민중의 범주에 넣기가 곤란했던 부분이 자영업인다. 자영업인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만, 직접 노동을 하기 때문에 애매한 중산층으로 분류되어왔다. 그러나 새사연은 600만 명의 자영업자들을 누락시키고서 새로운 사회의 주체를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본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자영업에서 5인 미만의 고용업체가 전체의 88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하며, 월평균 소득이 중산층으로 간주되는 214만원에도 못 미치는 자영업자가 490만 명에 다다른다. 자영업자 내부의 소득불평등은 임금 노동자보다 심각하고, 자영업자가 빈곤층으로 추락할 확률은 임금노동자보다 더 높다. 이런 점에서 “자영업자의 지갑은 투명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결코 두껍다고 할 수 없다”(349쪽)고 보고 있다. 서비스업의 증대는 선진국 사회로의 진입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산자, 사회 서비스의 저조함과 유통, 개인 서비스의 증대는 결코 선진국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새사연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자영업의 증대가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전략에 의해 떠밀려 나온 이들의 ‘비자발적인 선택’임을 지적하면서 자영업 특유의 지역기반을 살려 지역주민들의 연대를 끌어내고 다른 주체들과의 도시연대 구성을 주창한다.


짧은 서평을 통해 400여 페이지의 분량을 압축한다는 자체가 무모할지도 모른다. 과연 독자들이 기존의 선입견을 깨고 첨단산업, 금융산업 노동자를 노동자 계급으로 인식하고 불투명 지갑인 자영업자를 새로운 사회를 만들 민중 주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염려가 된다. 본서는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가 한국사회 전영역에 확산되어 10:90의 양극화 사회로의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할 주체를 어떻게 형성하는 가에 대한 고찰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새사연은 실증적 데이터와 질적인 연대의 고민과 토론을 담아내고자 했다. 만약 이러한 의도를 서평에서 담아내지 못하고, 독자들이 개량주의적인 냉소로 반응하게 되었다면 온전히 필자의 책임이다.


상위 10%만을 위한 시장국가에서 하위 90%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책 뒤표지에는 민주노총 사무금융, 철도노조, 전국여성농민총연합회, 벤처기업인, 서점주인, IT노동자, 대학생들의 한줄 서평이 담겨졌는데 이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본서의 문제의식인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 하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조직과 구성원들이 연대를 해서 10:90의 사회에서 10이 아닌 90을 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다.

                 

“상위 10%만을 위한 시장국가에서 하위 90%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본서의 부제를 가슴에 담고 이 책을 읽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수동적 자세에서 조금 더 능동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다른 곳에 있는 노동자를, 농민을, 대학생을, 그리고 자영업자들을 생각해보았다.


대안정치경제모델의 고민이 숭례문 소실보다 결코 덜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은 제쳐두더라도 합리적인 공중파 방송사에서도 대안정치경제모델을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 적조차 한 번 없다. 2년 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이 발간되었을 때의 문제의식을 언론이 아직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FTA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보도프레임 안에서 주체에 관한 진전된 논의를 하는 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위 90%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관심을 갖는 독자들의 일독과 나아가 주체들의 연대 가능성이 보인다면, 새로운 사회를 열 주체들에 의해서 공론화의 불이 지펴질 것이라 낙관한다.

황진태 / 새사연 객원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