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 2012/[칼럼] 정태인의 착한 경제'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2.02.29 사슴사냥게임이 해법이다
  2. 2012.02.29 죄수의 딜레마에 갇힌 우리
  3. 2012.02.17 개인과 전체의 충돌, 사회적 딜레마 (2)
  4. 2012.02.15 시장은 언제나 효율적인가? (1)
  5. 2012.02.13 시장이 전부가 아닌 경제 그리고 상호적 인간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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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2 : 사슴사냥 게임

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이 게임은 확신게임(Assurance Game), 신뢰게임(Trust Dilemma)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A Discourse on Inequality)>에서 나온 우화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은 이렇다.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사냥꾼이 힘을 합쳐 자신이 맡은 길목을 지켜야 한다. 토끼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냥꾼만으로도 충분하다. 토끼를 사냥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사슴을 사냥할 때 얻는 이익이 더 크다. 사냥꾼 A와 B가 함께 사슴을 사냥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맡은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 때 토끼를 잡으러 쫓아가야 할까? 아니면 사슴을 잡기 위해 기다려야 할까?

여기서 사냥꾼 A와 B의 전략은 '사슴을 잡는다'와 '토끼를 잡는다' 두 가지가 된다. 사슴을 잡기로 했다면 서로 협력(cooperation)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C로 표시하고, 토끼를 잡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배반(defect)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므로 D로 표시한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사슴을 잡았을 경우는 (4,4),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토끼를 잡았을 경우는 (2,2), A는 사슴을 기다렸으나 B가 토끼를 쫓아가버린 경우는 (1,3), A가 토끼를 쫓아가버리고 B는 사슴을 기다린 경우는 (3,1)이 된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4를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3을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도 협력한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는 협력하면 1을 얻는다. 반면 A도 배반하면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 A도 배반한다. 즉,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상대방이 사슴을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킨다면 나도 그래야 하고,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나도 그래야 한다.

(4,4)와 (2,2) 둘 다 내쉬균형이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인 경우의 게임을 조정게임(Coordinatioin Gam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4,4)가 (2,2)보다 훨씬 이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슴을 기다릴 경우 얻을 이득은 4 또는 1이다. 상대방도 사슴을 기다린다면 4를 얻지만 만약 상대방이 토끼를 쫓아가버리면 1밖에 못 얻는다. 반면 토끼를 쫓아갈 경우 얻을 이득 3 또는 2이다. 운이 나빠도 2는 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토끼를 쫓아가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슴사냥게임이 갖는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U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사슴사냥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U자를 그린다.

파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슴사냥게임을 하나 더 살펴보자. 집단행동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것이다. 사장 한 명과 직원 두 명이 있는 직장이 있다. 사장은 권위주의적이어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어느 날 두 명의 직원은 휴가를 제 때에 보장받기 위해서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파업이 성공하면 사장은 휴가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두 명의 직원 중 한 명이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 보장의 요구는 묵살되고, 이를 주장한 직원은 불이익을 받는다. 물론 두 직원 모두 파업에서 빠지면 휴가는 보장되지 않는다.

두 직원을 A와 B라고 하자.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파업에 참여한다'와 '파업에 불참한다' 두 가지가 된다. 파업에 참여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것이고, 파업에 불참한다면 서로  배반하는 것이다. 보수는 A와 B가 서로 협력하여 파업에 성공하고 휴가를 보장받았을 경우는 (1,1), A와 B가 서로 배반하여 파업에 불참하고 휴가를 보장받지 못했을 경우는 (0,0), A는 파업에 참여했으나 B는 불참하여 A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1,0), A는 파업에 불참했으나 B는 참여하여 B가 불이익을 당한 경우는 (0,-1)이 된다.

B가 파업에 참여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도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참여하는 게 이득이다. B가 파업에 불참할 경우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A는 파업에 참여하면 -1을 얻지만, 불참하면 0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파업에 불참하는 게 이득이다. (1,1)과 (0,0) 둘 다 내쉬균형이 된다. 즉, 상대방이 파업에 참여하면 나도 참여해서 휴가를 따내는 것이 이득이고 상대방이 파업에 불참하면 나도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이득이다.

탐욕이 사라진 게임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을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반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협력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반하는 것과 상대방이 배반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도 배반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전자가 탐욕(greed)이라면, 후자는 공포(fear)다. 사슴사냥게임에서는 적어도 탐욕으로 인한 배반은 사라진다.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죄수의 딜레마보다 사슴사냥게임이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남을 배신하는 경우는 남이 나를 배신할까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죄수의 딜레마에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바꿀 수만 있다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다. 적어도 탐욕에 의해서 나만 잘 살겠다는 선택과 그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는 결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앞서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했을 때는 남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일단 우리 아이는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남들이 사교육 안 시킨다면 나도 안 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 사교육 비용이 늘어나고, 아이들은 고생하고 그런데 성적은 안 오르는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부모들이 많아진 것이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교육은 이제 사슴사냥게임으로 변한다. 남이 사교육을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시키지만, 즉 남이 배반하면 나도 배반하지만 남이 사교육을 안 시키면 나도 안 시키겠다, 즉 남이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2,2)라는 해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4,4)와 (2,2)이라는 두 가지 대안이 생겼다.

물론 이 두 가지 대안 중 서로 협력하는 (4,4)를 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어야 한다. 나는 사교육을 안 시키고 싶은데 남들도 안 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키는 (2,2)의 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모두가 사교육을 안 시킬 것이라고, 모두가 협력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방법을 들자면 사교육을 금지시키면 된다. 적절한 제도와 규범을 도입한다면, 죄수의 딜레마는 사슴사냥게임으로 바뀔 수 있고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해를 택할 수 있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3 : 치킨게임

세 번째는 치킨게임이다. 치킨은 겁쟁이를 뜻하는데,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이 출연한 <이유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나오는 한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에서 두 건달이 여주인공을 놓고 게임을 한다. 절벽 위에서 자동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다가 둘 중 먼저 차를 세운 사람이 지는 것이다. 누가 겁쟁이인지 보자는 무식한 게임이다.

또는 서로를 향해 차를 몰다가 누가 먼저 핸들을 돌리는가, 기찻길 위에 누워 있다가 누가 먼저 도망가는가를 겨루는 것들도 모두 치킨게임이다. 치킨게임은 매-비둘기 게임(Hawk-Dove Game)으로도 불린다. 매는 돌진하는 미친놈이고, 비둘기는 도망가는 겁쟁이다. 매와 비둘기가 만나면 언제나 매가 이긴다. 하지만 매와 매가 만나면 서로 멸망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여기 치킨게임에 참가한 무식한 사람 A와 B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선택한 게임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아 달려오는 것이다. 전략은 '핸들을 돌린다'와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가 있다. 핸들을 돌리는 것이 협력(C)이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것이 배반(D)이다. 보수는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지 않고 달리는 경우, 결국 둘 다 죽는 경우가 (1,1)이다. A와 B 모두 핸들을 돌리는 경우는 둘 다 목숨은 건졌지만 겁쟁이가 되었으므로 (3,3)이다. A가 핸들을 돌리고, B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2,4), B가 핸들을 돌리고 A는 핸들을 돌리지 않는 경우는 (4,2)이다. 핸들을 돌린 사람은 겁쟁이가 되었으니 2의 보수를 얻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게임에서 이겨 용감한 남자로 인정받았으니 4의 보수를 얻는 것이다.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보자. B가 협력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3을 얻고, 배반하면 4를 얻는다. 따라서 A는 배반하고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B가 배반하면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2를 얻고, 배반하면 1을 얻는다. 따라서 A는 협력하고 핸들을 돌린다. 남이 협력하면 나는 배반하고, 남이 배반하면 나는 협력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B가 핸들을 돌릴 것 같으면 A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직진해서 용감한 자가 되는 것이 낫다. 하지만 B가 너무 무식한 놈이어서 절대 핸들을 돌릴 것 같지 않다면 A는 핸들을 돌려서 목숨이라도 건지는 것이 낫다.

이처럼 상대방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균형이 되는 게임을 반조정게임(Anti-Coordination Game)이라고 한다. 앞서 본 사슴사냥게임과 정반대이다. 사슴사냥게임에 해당하는 경우는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한다고 해서 내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남과 내가 같은 것을 선택할수록 나눠 갖는 몫이 커진다. 혼자서 토끼를 잡는 것보다 둘이서 사슴을 잡았을 때의 이익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즉, 재화의 비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반면 치킨게임은 남이 어떤 것을 선택하면 내 몫은 줄어든다. 서로 같은 것을 선택해서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즉, 재화의 경합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내쉬균형은 (4,2)와 (2,4)에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던지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고정된 전략이 없으므로 우월전략균형은 아니다. 둘 중 어떤 균형으로 귀결될지는 둘 중 어떤 놈이 더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하는 무식한 인간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치킨게임에서는 미친놈이 이긴다고 말한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로를 향해 차를 모는 경우라면 나는 핸들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핸들을 망가뜨려 버리거나 자신의 손을 묶어서, 나는 절대 핸들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를 놓아야 한다.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치킨게임의 보수 구조의 특징은 가로축 행위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수의 크기 순서가 ∩의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배반하고 상대방은 협력할 때의 보수(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의 보수(C,D)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으면 치킨게임이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1'로 ∩의 모양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핵무기 경쟁을 할 당시 미국의 닉슨(Ric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내 전략은 미친놈으로 보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핵무기가 가져올 엄청난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리는 것은 치킨게임과 같다. 그리고 닉슨은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미친놈으로 인식하면, 다시 말해 나를 언제라도 핵무기를 터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 바보와 미친놈의 게임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도 치킨게임이다. 여기서 미친놈은 북한이다. 남한 정부도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실제 남북 간에 전쟁이 나면 남한이 이길 것이다. GDP의 차이가 20배 이상 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은 가진 게 많은 만큼 잃을 것도 많아서 쉽게 미친놈이 될 수 없다. 남한 정부는 미친놈보다는 바보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간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협력할 것이고, 이 때 너희도 협력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상대방이 협력할 때 나도 협력하는 것이 이득을 주는 게임은 사슴사냥게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의 이득을 제시하여 협력할 때 북한이 얻는 이득이 더 커지도록 만들었다. 혹은 적어도 협력할 때 이득이 많아진다고 북한이 믿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상호주의 전략은 이를 다시 치킨게임으로 되돌려 놓았다. 상호주의의 핵심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남이 잘하면 나도 잘하고, 남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협력과 응징이다. 문제는 협력보다는 응징에 방점이 찍혀서 북한이 잘못하면 나도 잘못한다는 전략만 실행되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잘못하니 나도 응징을 하겠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방도 다시 나를 응징한다. 응징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협력할 때보다 배반할 때 이득이 더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치킨게임이 되는 것이다. 미친놈을 상대하면서 게임을 이렇게 바꿔놓은 사람이 바보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다시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 가장 나은 상황이 사슴사냥게임이다.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딜레마는 개인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협력하는 경우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제도를 만든다면 해결될 수 있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6)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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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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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게임이론을 이용한 사회적 딜레마 게임

사회적 딜레마의 구조를 이해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학자들이 게임이론을 빌려서 고안한 것이 사회적 딜레마 게임이다.

게임이론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 시켜 주로 두 사람 간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전략적 상호작용이란 어떤 상황의 결과가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음을 뜻한다. 여기서 행위자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존재로 가정한다.

게임 이론은 행위자 혹은 경기자, 전략, 보수로 구성이 된다. 행위자는 게임에 임하는 주체를 말한다. 전략은 행위자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행동을 말한다. 보수는 각 행위자들이 선택한 전략의 결과로 얻는 이득을 수치화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딜레마 게임은 3가지가 있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사슴사냥게임(Stag Hunt Game),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지만 사회적 딜레마의 상황을 담고 있는 게임은 이 세 가지뿐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게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이 사회적 딜레마인지를 판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사회적 딜레마 게임 1 : 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부터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두 명의 범인이 잡혀왔는데 물증이 없다. 범인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6개월 형을 산다. 검사는 자백을 받기 위해 두 범인을 분리시켜놓고 자백하는 사람은 풀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대신에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10년 형을 산다. 만약 두 범인이 모두 자백하면 각각 5년 형을 산다.

이를 게임이론의 요소인 행위자, 전략, 보수로 표현하면 이렇다. 행위자는 두 명의 범인 A와 B이다. 전략은 협력(cooperation)과 배판(defect) 두 가지가 있고 각각 C와 D로 표시한다. 여기서 협력은 자백하지 않는 것이고, 배반은 자백하는 것이다. 가로축이 A의 전략이며, 세로축이 B의 전략이다. A와 B가 각각 협력 또는 배반이라는 두 가지 전략을 택할 수 있으므로 총 네 가지 결과가 나온다. A와 B 모두 협력하는 경우는 (C,C), A와 B 모두 배반하는 경우는 (D,D), A는 협력하고 B는 배반하는 경우는 (C,D), A는 배반하고 B는 협력하는 경우는 (D,C) 이다.

보수는 석방될 경우를 4, 6개월 형을 살 경우를 3, 5년 형을 살 경우를 2, 10년 형을 살 경우를 1이라 하자. 숫자가 클수록 얻는 이익이 큰 것이다. 앞서 살펴본 네 가지 결과의 보수를 다음과 같이 표기한다. A와 B 모두 협력하는 경우는 (3,3), A와 B 모두 배반하는 경우는 (2,2), A는 협력하고 B는 배반하는 경우는 (1,4), A는 배반하고 B는 협력하는 경우는 (4,1) 이다. 먼저 쓴 것이 A의 몫이고, 나중 쓴 것이 B의 몫이다.

이제 A와 B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먼저 B가 협력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도 협력하면 (3,3)의 결과가 되어 A는 3을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4,1)의 결과가 되어 A는 4를 얻는다. 따라서 B가 협력할 경우 A는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음으로 B가 배반할 경우 A의 선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A가 협력하면 (1,4)의 결과가 되어 A는 1을 얻는다. 반면 A가 배반하면 (2,2)의 결과가 되어 A는 2를 얻는다. 따라서 B가 배반할 경우에도 A는 배반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A는 언제나 배반하는 것이 이익이다. 이러한 선택 과정은 B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B 역시 언제나 배반하는 것이 이익이다. 결국 A와 B는 서로 배반하고 (2,2)를 얻게 된다.

경제학 200년의 역사를 뒤집은 내쉬균형

서로를 배반하여 (2,2)를 얻는 상황은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이다. 내쉬균형이란 상대방의 전략에 대해서 자신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상태이다. 내쉬균형은 상대방이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다른 전략을 선택할 유인이 없는 상태이다. 지금의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상태로 매우 강력한 균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좋은 상태는 아니다. 위의 그림에서도 (2,2)의 내쉬균형보다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더 좋은 결과인 (3,3)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A와 B 모두 2보다 큰 3을 얻을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4(=2+2)보다 큰 6(=3+3)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두 범인이 사전에 미리 만나서 자백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고, 서로를 굳게 신뢰한다면 (3,3)이라는 더 좋은 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쉬균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가 22살의 나이에 발표한 박사학위논문에서 나왔다. 영화를 보면 대학원생이던 내쉬가 박사학위논문을 가지고 교수를 찾아가자, 교수가 “자네는 경제학 200년의 역사를 뒤집었네.” 라고 말한다.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장면이겠지만 내쉬균형이 가져온 파장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시작된 주류경제학은 인간이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쉬균형은 개인이 이기적인 선택을 했을 때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2,2)의 결과는 우월전략균형(Dominant Strategy Equilibrium)이기도 하다. 우월전략이란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택하느냐에 관계없이 자신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이다. 우월전략균형은 서로가 우월전략을 선택한 상황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상대방이 협력하든 배반하든 상관없이 배반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므로 이는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우월전략균형은 내쉬균형이 된다.

어떤 상황이 죄수의 딜레마인지 쉽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수의 크기 순서를 확인하면 된다. 가로축 행위자의 보수를 기준으로 해서, '내가 배반하고 상대방이 협력할 때(D,C)의 보수 > 서로 협력할 때(C,C)의 보수 > 서로 배반할 때(D,D)의 보수 > 나는 협력하고 상대방은 배반할 때(C,D)의 보수' 의 순서와 같아서 N의 형태가 되면 죄수의 딜레마이다. 이 크기 순서만 지켜진다면 어떤 숫자를 넣어도 상관없다. 앞의 표에서도 A의 이익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수의 크기를 따라가보면 '4 > 3 > 2 > 1'로 N자를 그린다.

광고 경쟁과 공유지의 비극

몇 가지 게임을 더 살펴보자. A와 B라는 커피 전문점 두 곳이 있다. 두 업체는 TV광고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A와 B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광고를 한다'와 '광고를 하지 않는다'이다.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이 두 업체 사이의 협력이고, 광고를 하는 것이 배반이 된다. 두 업체가 모두 광고를 하지 않을 경우 각각 5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한 업체는 광고를 하는데 다른 업체는 광고를 하지 않을 경우, 광고를 한 업체의 이익은 80억 원으로 늘어나지만 광고비로 10억 원을 지출하여 7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광고를 하지 않은 업체는 매출이 줄어서 2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두 업체 모두 광고를 할 경우 매출의 변화는 없지만 광고비가 지출되어 40억 원의 이익을 얻는다. 이를 게임이론의 전개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B업체가 광고를 하지 않을 때, A업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업체는 광고를 하지 않으면 50의 이익을 얻지만, 광고를 하면 80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광고를 하는 선택을 한다. B업체가 광고를 할 때, A업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업체는 광고를 하지 않으면 20의 이익을 얻지만, 광고를 하면 40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역시 광고를 하는 선택을 한다. 결국 B업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A업체는 광고를 하는 것이 이득이다. B업체도 A업체와 똑같이 생각할 것이고, 두 업체 모두 광고를 하는 것이 내쉬균형이자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결과는 어떠한가? 두 업체가 광고를 하지 않았다면 각각 50억 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업체 모두 광고를 하면서 광고비 10억 원만 낭비하고, 이익은 4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쟁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던 공유지의 비극 역시 죄수의 딜레마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한 어촌 마을이 있고, 인근 해역은 이 마을 모든 사람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공유지라고 하자.(최정규, 2010, <이타적 인간의 출현> 중)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물고기를 남획하면 인근 해역의 물고기는 곧 고갈된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협조해서 어획량을 규제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어획량 규제를 지킨다면 나는 마음껏 고기를 잡아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어획량 규제에 협조할 경우 각각 10의 이익을 얻는다. 어획량 규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등장할 경우, 그 사람은 15의 이익을 얻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를 입어서 3의 이익을 얻는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어획량 규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각각 5의 이익을 얻는다. 이를 마을 사람 A와 B의 관계로 단순화시켜 게임이론의 전개표로 그려보자.

B가 어획량 규제를 준수할 때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는 어획량 규제를 준수하면 10의 이익을 얻고, 물고기를 남획하면 15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잡는 것이 이득이다. B가 물고기를 남획할 때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A는 어획량 규제를 준수하면 3의 이익을 얻고, 물고기를 남획하면 5의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잡는 것이 이득이다. 결국 B가 약속을 지키든 안 지키든 상관없이 A는 어획량 규제를 지키지 않고 물고기를 남획하는 것이 이득이다. B 역시 똑같이 생각할 것이므로, 모두가 물고기를 마구잡이하는 (5,5)가 내쉬균형이자 우월전략균형이 된다. 환경과 미래세대, 공동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파괴적 결론이다.

우리 생활 속 죄수의 딜레마

이처럼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매우 많다. 좀 더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사례로 우버먼(Huberman)과 글랜스(Glance)가 제기한 저녁 값의 딜레마(Dinder's Dilemma)가 있다. 친구들 여럿이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키되 계산은 총액을 사람 머릿수로 나누어서 똑같이 내기로 했다고 하자. 단순화를 위해 메뉴로는 2000원짜리 김밥과 6000원짜리 스파게티가 있다고 하자. 친구들이 김밥을 시키면 나는 비싼 스파게티를 시켜서 친구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게 이익이다. 친구들이 스파게티를 시키면 내가 굳이 김밥을 먹으면서 스파게티 값까지 부담할 이유가 없다. 즉, 다른 사람이 어떤 메뉴를 시키든지 상관없이 나는 비싼 스파게티를 먹는 것이 이익이다.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여 비싼 스파게티를 시키게 된다. 이 역시 죄수의 딜레마이다.

한국의 부모와 아이들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사교육 역시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다. 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사교육을 시킨다'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이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시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만 사교육을 안 시키면 뒤처질 수 있으니 나도 사교육을 시킨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안 시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만 사교육을 시켜서 성적을 올리고 싶으니 나는 사교육을 시킨다. 결국 상대방이 사교육을 시키든 안 시키든 나는 사교육을 시킨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다 이렇게 생각한다.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걸려 있다.

한미 FTA도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하여 체결되었다.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했던 설명은 다음의 두 가지였다. 첫째, "다른 국가가 미국과 FTA를 맺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맺어야 한다. 그래야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둘째, "다른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맺고 있는데 우리만 안할 수는 없다. 우리만 뒤처지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국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든 안하든 우리는 FTA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이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면 해결하기 어렵다. 강력한 균형상태인 내쉬균형이기 때문에 서로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다. 사교육도 한미 FTA도 그렇다. 만약 전국의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세계 각국이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문제는 해결된다. (물론 FTA 자체가 가져오는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겠지만, 여기서 게임이론의 구조만을 고려하여 해법을 찾자면 그렇다.) 서로 배반하지 않겠다는 약속, 서로 협력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3,3)이라는 더 좋은 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니 (2,2)라는 해밖에 선택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2,2)에서 (3,3)으로 갈 수 있을까? 이 답은 두 번째 사회적 딜레마 게임인 사슴사냥게임을 통해서 찾아보자.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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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02 / 17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3)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딜레마 속에 살고 있다

시장경제는 인간은 이기적이고, 그 이기심을 따르면 시장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맞지 않는 시장실패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장실패는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효율적 자원배분을 왜곡시켜서 발생한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국한되었던 시장실패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시킨 것이 사회적 딜레마이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적 딜레마의 일부분이 시장실패이다.

사회적 딜레마란 개인의 합리성에 기초한 행동이 전체의 합리성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다. 즉, 개인이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가 바로 사회적 딜레마라고 한다. 그런데 개인과 사회가 충돌하는 일은 인류 역사상 계속해서 발생했던 문제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사회적 딜레마이다. 오히려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일치되는 것이 드문 경우이다.

요즘은 사회적 딜레마가 대학 논술문제에도 많이 나온다. 실제 대입 논술에 출제되었던 것으로 중국 고전 ‘여씨춘추’에 나오는 석저의 이야기가 있다. 석저는 형나라 소왕 때 치안관이었다. 어느 날 길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중 범인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체포하는 것은 아들로서 할 일이 못되고, 그렇다고 범인을 놓아준다면 치안관의 역할을 못하고 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결국 갈등하던 석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 일상적이고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학교나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팀 작업을 생각하면 된다. 팀 단위로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보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팀 내에 일을 하지 않고 뺀질거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그 사람은 거저 이익을 얻는 셈이다. 그 사람이 밉다고 모두 똑같이 일을 안 하면 그 팀은 망한다. 이 역시 사회적 딜레마이다.

사회적 딜레마의 사례 1 : 죄수의 딜레마

사회적 딜레마는 경제학뿐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흥미로운 주제로 연구되었다. 사회적 딜레마의 대표적 사례로 죄수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 공공재 게임, 집단행동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가장 유명한 사례이다. 두 명의 범인이 잡혀왔는데 물증이 없다. 범인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6개월 형을 산다. 검사는 자백을 받기 위해 두 범인을 분리시켜놓고 자백하는 사람은 풀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대신에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10년 형을 산다. 만약 두 범인이 모두 자백하면 각각 5년 형을 산다.

이 경우 A와 B의 형량을 합한 것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둘 다 자백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득이다. 하지만 A와 B는 둘 다 자백하는 가장 나쁜 결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자백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자백하는 쪽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게임이론을 이용하여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사회적 딜레마의 사례 2 : 공유지의 비극

두 번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1986년 미국의 생물학자 가렛 하딘(Garret Hardin)이 1968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한 짧은 논문 때문에 유명해졌다. 누구나 자유롭게 양에게 풀을 먹일 수 있는 공유지가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최대한 많은 양을 풀어서 풀을 먹여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행동한다면 공유지는 금세 황폐화되고 양들은 굶어 죽는다. 즉, 공동체 모두가 사용하는 공유자원은 소유권이 없어서 과잉소비되고 고갈된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 중 현재 우리 앞에 닥친 가장 큰 규모의 비극이 기후변화이다. 인간이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면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환경이라는 공유지는 없어지고 인류는 절멸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 공유지의 비극이 실현되었다면 지구는 오래전에 망했어야 한다. 인류는 이미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를 해서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 오스트롬(Elinor Ostrom)이다. 오스트롬은 정치학자인데 시장이나 정부의 개입만이 해결책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자치적 규율을 통해서 공유지가 효율적으로 관리되어 왔음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딜레마의 사례 3 : 공공재 게임

세 번째, 공공재 게임(Public Good Game)은 스위스 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Ernst Fehr)가 1990년대 실시한 재미있는 실험이다. 5명에게 5만원씩 나눠주고 공공계정에 기부하도록 한다. 공공계정에 기부한 돈은 3배로 커져서 다시 5명에게 고르게 분배된다.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알려주지 공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공계정에 10만 원이 모였다면 30만원으로 커져서 1인당 6만원씩 돌려받게 된다.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5명 모두 5만 원씩 내서 그 3배에 해당하는 15만 원을 돌려받는 것이다.

이 때 나만 돈을 기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4명이 공공계정에 5만 원씩 기부하면 총 20만 원, 이 돈은 60만 원이 되고 5명에게 각각 12만 원씩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나는 원래 갖고 있던 5만 원을 기부하지 않고 들고 있었으므로 총 17만 원을 얻게 된다. 내 이익을 생각한다면 기부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다들 자기 돈 5만 원만 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 무임승차의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만약 누가 얼마를 냈는지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돈을 적게 낸 사람을 응징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응징이라는 제도를 도입하자 기부액이 늘어났다. 반대로 돈을 많이 낸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는 제도를 도입했을 때도 기부액은 늘어났다.

사회적 딜레마의 사례 4 : 집단행동의 문제

네 번째, 집단행동의 문제는 경제학자 1965년 올손(Mancur Olson)의 <집단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에서 정립되었다. 올손은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무임승차의 유인이 증대한다고 보았다. 즉,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을수록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 드는 사례로 고장 난 공중전화는 굉장히 오랫동안 방치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공중전화를 고치기 위해서는 관리기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나의 수고와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공중전화가 고쳐진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크지 않다. 누가 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중전화는 방치된다.

또 하나의 예로 투표장에서의 사표심리를 들 수 있다. 선거에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면 투표를 하러 가지 않는다. 투표장에 가려면 비용이 들지만 내가 찍은 후보는 당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봐야 안 될 것이라는 심리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해버리면 그 후보는 진짜로 당선되지 못한다. 그래서 여론조사가 무서운 거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그리고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사회적 딜레마가 존재하고 있다. 과거 중세시대에는 종교 혹은 절대왕정이 지시와 명령을 통해서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회정치적 철학과 이념은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이 변화하는 것이기도 했다.이후 근대에 등장한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 부른 국가를 통해서, 흄(David Hume)과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을 통해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우리는 시장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자본주의 이후를 꿈꿨던 맑스(Karl Marx)는 계급,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통해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야 할까?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 (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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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하나의 예로 투표장에서의 사표심리를 들 수 있다. 선거에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면 투표를 하러 가지 않는다.

    2012.02.21 11:21 [ ADDR : EDIT/ DEL : REPLY ]
  2. 보스코프스키

    그 죄수의 딜레마를 깨는 것도 오로지 운동입니다. 하긴 선거든 시험이든 이미 결과는 너무도 뻔하게 정해놓은 승부를 정당화하는 절차에 불과하지요.

    2012.02.24 16:54 [ ADDR : EDIT/ DEL : REPLY ]

2012 / 02 / 14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2)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내는 시장의 효율성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시장경제의 명제가 틀렸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어떨까?

시장경제는 단 하나의 그림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바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그림이다. 수요곡선은 각각의 가격에서 수요자, 즉 소비자들이 얼마만큼 재화를 구매하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공급곡선은 각각의 가격에서 공급자, 즉 생산자들이 얼마만큼 재화를 판매하고자 하는지를 나타낸다. 수요곡선은 우하향하고, 공급곡선은 우상향한다. 왜 그러한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값이 비싸지면 소비자는 덜 사려고 하므로 수요곡선은 우하향하고, 반대로 생산자는 더 팔려고 하므로 공급곡선은 우상향한다.

예를 들어 사과 시장이 있다고 하자. 사과 가격이 매우 비쌀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과 하나에 1만 원일 경우 사과를 팔려는 사람은 많지만 사려고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면 사과가 남아돌게 되고 사과의 가격은 떨어진다. 반대로 사과 가격이 매우 쌀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과 하나에 100원일 경우 사과를 사려는 사람은 많지만 팔려고 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러면 사과는 부족하게 되고 사과의 가격은 오른다. 이런 식으로 가격에 의해 수요량과 공급량이 변화하면서 수요량과 공급량이 딱 맞아떨어지는 균형점을 찾아가게 된다.

두 곡선이 만나는 곳, 즉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는 곳을 (시장)균형이라 한다. 이 때의 가격을 균형 가격이라 한다. 그리고 모든 재화가 시장에서 이와 같이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을 일반균형이라고 한다. 수요곡선은 소비자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점을 모아놓은 것이며, 공급곡선은 생산자의 이윤이 극대화되는 점을 모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이 만나는 점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모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점이 된다. 물론 이는 이기적 인간을 상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누가 나서서 수요량과 공급량을 조정하지 않아도 저마다 자신의 효용과 이익을 추구하면, 가격 변동에 의해서 적정량이 정해지고, 그 점에서 사회 전체의 효용이 극대화된다는 것. 이것이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그리고 이를 표현한 말이 바로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이들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이들이 행동할 때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에 항상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그가 공공의 이익을 의식적으로 추구했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의 이익 증진에 기여하게 된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중


시장실패 사례 1 : 공공재

그런데 경제학자들도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이 시장실패이다. 시장실패는 공공재, 외부성, 독점, 정보 불완전성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 공공재는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다. 공공재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고 있는 재화이다. 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성질을 말한다. 따라서 비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사용해도 다른 사람의 몫이 줄어들지 않음을 뜻한다. 배제성이란 특정 사람의 접근이나 사용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배제성이란 특정 사람을 배제시킬 수 없으므로 결국 모두가 이용가능함을 뜻한다.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은 같은 이야기인데 단지 비경합성이 수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면, 비배제성은 공급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이나 국방은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공중파 방송은 내가 시청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시청할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비경합적이다.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만 시청을 못하도록 막을 수 없으므로 비배제적이다. 국방도 그렇다. 내가 국방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누리는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므로 비경합적이다. 또한 국민 중 일부만을 배제하고 국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비배제적이다.

문제는 이 경우 시장에서는 공공재가 공급되지 못한다. 공급자 입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낸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을 차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공재는 비배제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돈을 안 낸다고 해서 공중파 방송을 못 보게 하거나 국방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돈을 낸 사람과 내지 않은 사람이 차이가 없다면 수요자 입장에서는 돈을 낼 이유가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마을에서 가로등을 세우려고 한다. 이 때 총 비용이 1000원이고, 이 마을에 10명이 산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10명이 각각 100원씩 내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가로등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데 가로등은 공공재이고,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아무도 비용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가로등이 세워지기만 하면, 내가 가로등 불빛을 이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용을 안냈다고 해서 내가 가로등 불빛을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재의 경우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준다는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공공재의 경우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공공재 중에도 국가가 가져다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공공재다. 내가 민주주의를 누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비경합적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누릴수록 내가 누릴 수 있는 몫도 커진다. 과거 독재를 휘둘렀던 사람은 빼놓고 민주주의를 적용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비배제적이다. 자본주의, 주류경제학자 또는 시장경제주의자들은 말한다. 인류가 누리고 있는 엄청난 발전은 시장의 힘, 이기적 인간의 힘, 경쟁의 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었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장실패 사례 2 : 외부성

두 번째, 외부성이 발생한다. 여기서 외부란 시장의 바깥을 말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외부성에 해당한다. 시장을 벗어난 행위는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므로 균형에 이를 수 없다. 외부성의 이러한 결과를 두고 사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이 불일치한다고 표현한다.

외부성은 외부선과 외부악으로 나눌 수 있다. 다른 말로 각각 외부경제와 외부불경제라고도 불린다. 외부선은 타인에게 이득을 주는 방향으로 외부성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과꽃향기를 좋아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사과꽃향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 옆에서는 사과꽃향기가 나고,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로 인해 기분이 좋아진다. 사과꽃향기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지만 그렇다고 과수원 주인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는 않는다. 사과꽃향기는 많을수록 좋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적게 생산된다. 즉, 사적 비용이 사회적 비용보다 크다.

외부악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외부성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공해물질을 배출하는 볼펜 공장을 예로 들 수 있다. 공해물질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만 그 비용이 볼펜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공해물질이 미치는 해악을 볼펜 가격에 반영한다면 볼펜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볼펜 생산량은 줄어들 것이다. 공해물질은 적을수록 좋지만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양보다 많이 생산된다. 즉, 사회적 비용이 사적 비용보다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피구(Arthur Cecil Pigou)이다. 피구는 외부악에 대해서 세금을 물리고, 외부선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부악에 세금을 물리면 생산비용이 늘어나니 생산량이 줄어든다. 이를 피구세(Pigou Tax)라 한다. 외부선에 보조금을 주면 생산비용이 줄어드니 생산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세금과 보조금을 주어야 적정한지 측정할 길이 없다.

한편 코즈(Ronald H. Coase)는 개인 간의 거래비용이 없다면 정부가 세금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개입하지 않아도 외부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외부악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과 외부악을 발생시키는 사람이 서로의 권리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악을 발생시킬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환경오염이라는 외부악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탄소배출권이 바로 이 원리에 기반한 것이다. 이를 코즈의 정리(Caose Theorem)이라 하며, 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 덕분에 노벨경제학상을 탄 코즈는 "적절한 제도가 없이는 어떤 시장경제도 불가능하다" 며 코즈의 정리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시장실패 사례 3 : 독점

세 번째, 독점이 있다. 독점은 공급자가 혼자인 경우이다. 이 경우 공급자는 균형 생산량보다 더 적게 생산하고, 균형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 효율적인 균형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이 효율적인 이유는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어서 그 누구도 가격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전제 하에서, 모든 정보가 가격을 통해 반영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점이 되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실제 우리 생활에 사용되는 재화의 대부분은 독점까지는 아니어도 과점 체제 아래서 생산되고 있다. TV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 자동차, 휴대폰 등 서너 군데 기업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실패 사례 4 : 정보 불완전성

네 번째, 정보의 불완전성이다. 이에 대해 다룬 학문이 정보경제학인데 애커로프(George Akerlof)와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가 대표적 학자이다. 먼저 역선택은 애커로프가 발표한 '레몬시장(Market for Lemons)'이라는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중고차를 거래하는 시장이 있다. 자신이 타던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은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보다 그 차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한다. 이 상황에서 중고차 시장에서 가격이 400만 원으로 형성되었다고 가정하자. 400만 원보다 더 높은 품질을 가진 중고차를 보유한 사람들은 차를 판매하지 않고 시장을 떠난다. 그러면 전체 중고차의 품질은 낮아지고, 가격은 400만 원보다 낮아진다. 다시 좀 더 나은 품질을 가진 중고차 보유자들이 시장을 떠나고 자동차의 품질과 가격은 낮아지는 일이 반복된다. 이처럼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사전에 비정상적인 선택이 일어나는 것을 역선택이라 한다.

정보 불완전성의 다음 문제는 도덕적 해이다. 이는 원래 보험시장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보험가입자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보험을 믿고 운전을 거칠게 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만약 이 사람이 운전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보험회사가 알고 있었다면 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생긴다.


시장이 효율적이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지금까지 시장이 언제나 효율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확인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지점은 시장이 가진 근원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요곡선에는 돈 없는 사람들의 수요는 반영되지 않는다. 사과시장의 수요공급곡선을 생각해보자. 사과값이 아무리 높아도 수요는 존재한다. 이 사람들은 사과를 굉장히 좋아하거나 혹은 돈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다. 반대로 사과를 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과를 싫어하거나 혹은 돈이 없어서 사과를 사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시장이 아무리 효율적으로 작동되어도 높은 가격에서 균형이 이루어지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사과를 공급받을 수 없다.

만약 이것이 사과가 아니라 식량이라면, 의약품이라면 어떤가? 지금 세계에서 식량이 가장 필요한 국가 중 한 곳이 북한이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식량은 공급되지 않는다. 에이즈 약이 가장 필요한 곳은 아프리카이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따라서 이들에게 에이즈 약은 공급되지 않는다. 시장은 돈이 없는 사람들의 존재를 아예 무시한다.

시장의 근원적 한계는 또 있다. 시장은 가격이 변동하면서, 즉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하지만 극심한 가격 변동은 위기와 혼란을 가져온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가 그러한 예이다. 특히 가격 변동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한다면 큰 문제이다. 쉽게 생각해서 전쟁을 시장에 맡겨놓는 사회가 어디 있는가? 생명이 걸린 일들을 시장에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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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00만 원보다 더 높은 품질을 가진 중고차를 보유한 사람들은 차를 판매하지 않고 시장을 떠난다.

    2012.02.22 12:22 [ ADDR : EDIT/ DEL : REPLY ]

2012 / 02 / 08 정태인/새사연 원장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1)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위 제목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새사연의 정태인 원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진행한 ‘정태인의 경제학 과외 2부 : 사회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시장에 모여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 바로 시장경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지금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전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생각해보자. 저마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환경 파괴 따위는 모르는 척하는 게 합리적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지구가 망할 것 같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환경 파괴에 따른 비용을 책정하여 시장에서 환경 파괴권을 판매할 수도 있다. 그러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은 조금 더 마음 편하게 환경 파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를 생각해보자. 소득도 재산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대출을 권했던 모기지 업체, 파산 위험이 있는 대출을 담보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이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인 사교육과 부동산은 어떠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는 사교육 비용과 부동산 가격은 계속해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 놓는게 옳을까? 그렇다면 무상급식 이후 불었던 복지국가 건설의 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모두가 이기적이라서 제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누가 무상급식을 위한 세금을 내려고 할까? 시장에만 맡긴다면 사회복지 서비스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을까?

시장경제를 적용했을 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면, 이제는 그와 다른 원리로서 접근해야 한다. 경제는 시장이 아니다. 경제학에는 시장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다른 원리를 가진 경제들이 있다. 이 강연을 통해 우리는 다른 경제에 대해 배울 것이다.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 생태경제의 네박자

경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 국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경제, 그리고 그 외에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공동체에 의한 사회경제가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를 구성할 때 필요한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서 시대를 뛰어넘어 세대 간의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방식이 생태경제이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이란 구체적인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판매와 구매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것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서의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가장 효율적인 점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공공경제는 주로 시장 실패 부분을 국가가 어떻게 보완하느냐를 다룬다. 국가는 개인들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다. 세금을 거두고, 법을 만들어 강제하고, 때로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런 권한을 이용해서 국가는 시장에서 분배가 되지 않는 재화를 세금을 통해 재분배한다. 개인들이 조금 더 비슷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 사회분쟁을 줄이고자 한다. 공공경제의 원리는 재분배를 통해서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회경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영역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어왔다. 원시 부족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식량공유의 습관이 바로 사회경제이다. 현대에서는 수익성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대표적인 사회경제이다. 사회경제의 원리는 상호성을 통해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이다.

시장, 국가, 공동체로 나누어 각각 효율, 평등, 연대를 추구하는 영역의 조합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헝가리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 역시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 재분배, 선물이라는 세 가지 교환양식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시장경제는 사회조직의 일부에 불과한데, 사회의 모든 영역을 시장경제의 원리로 일원화한 결과 대공황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프랑스 혁명의 가치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점도 시장경제, 공공경제, 사회경제의 구분과 닮아있다.

생태경제는 기존의 환경경제학과 다르다. 환경경제학은 시장실패로 일어나는 환경 문제를 시장원리에 따라 조정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생태경제는 인간이 아닌 자연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경제를 에너지와 물질이 흐르는 생태계의 하부 구조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생태경제의 원리는 생태계의 법칙과 세대 간 정의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앞의 세 경제를 포괄하는 범주이며,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사회는 이처럼 다양한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굴러간다.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우리는 이 다양한 경제 원리들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각 원리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시장경제의 기본전제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점이다. 시장경제에서의 인간은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로 불린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둔다. 또한 뛰어난 정보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정말 그럴까?

만약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시장경제가 사회를 운영하는 유일한 원리가 되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상정한 인간의 정의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 인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름하여 최후통첩게임(Ultimatum Game)이다. 두 사람이 있다. 편의를 위해 A와 B로 칭하자. 이제 A에게 1만 원을 주고, B와 나눠가지도록 한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든 상관없다.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주고 싶은 만큼 금액을 제시할 수 있다. B는 A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은 각각의 금액을 나눠가지고, B가 A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두 사람 모두 돈을 받지 못한다.

당신이 A라면 얼마를 제시하겠는가? 당신이 B라면 A가 얼마를 제시했을 때 제안을 수용하겠는가? 만약 시장경제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 A는 최소한의 금액 1원을 제시할 것이고, B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B의 입장에서는 1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안을 거부하여 1원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A는 1원보다 많은 금액을 제시할 이유가 없다.

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들이 동일한 실험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대체적인 결과를 종합해보면 A는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한다. 물론 B는 이 제안을 수용한다. 그리고 A가 2000원 이하의 금액을 제시할 경우 B는 이를 거절하고 한 푼도 받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시장경제의 예측에서는 한참 벗어난 결과이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인간의 두 가지 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남을 생각한다.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내 돈이 아닌 1만원이 생겼을 때, 옆의 사람에게 얼마를 주는 것이 좋을지 배려한다. 그래서 전체 금액의 40% 이상을 나눠주고 있다. 둘째, 인간은 불공평한 행위에 대해서 응징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너무 낮은 금액을 제시할 경우,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상대방을 응징하는 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불공평한 행위를 응징하는 인간의 속성을 상호성이라고 한다. 상호성의 핵심은 남이 해주는 대로 나도 행동한다는 것이다. 남이 나한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남이 나한테 잘못하면 나도 잘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상호적 인간, 호모 리시프로칸(Homo-reciprocan)이라 한다.

이런 결과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반박을 했다. 경제학자들은 A가 4000원이나 5000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까닭은 혹시 B가 그 제안을 거절해서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A의 결정은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또 하나의 실험이 진행된다. 독재자게임(Dictator Game)이다. 앞서 진행한 최후통첩게임과 똑같이 진행하되 다만 B가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했다. 즉, A는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B에게 제시하고 B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A기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험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 역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A는 2000원에서 3000원으로 B에게 나눠주었다. 앞의 최후통첩게임의 결과와 비교해보면 나눠주는 금액이 2000원 정도 줄어들었다. 줄어든 2000원은 경제학자들의 반박처럼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2000원에서 3000원의 금액을 결정권이 없는 사람에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남을 생각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상호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이기적인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대체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의 300년 역사 동안 절대적 가치로 이어진 '인간은 이기적이다' 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명제를 기반으로 하여 세워진 시장경제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앞으로 우리가 배울 다른 경제학에서는 이기적 인간이 아닌 상호적 인간을 기본으로 할 것이다. 남이 하는 만큼 나도 베푼다는 가장 상식적이고도 현실적인 인간. 생각해보면 이미 인류의 오랜 고전인 성경과 논어에서도 이를 황금률이라 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만고의 진리를 묻어두고 어째서 이기적 인간이라는 오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성경 마태복음 7장 12절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마라." - 논어 12편

 
* 정리 :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 정태인의 '네박자로 가는 사회적 경제론'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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