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 2011/[칼럼] 손석춘의 길'에 해당되는 글 38건

  1. 2010.07.05 조선일보 주필의 참 이상한 고민
  2. 2010.06.28 오바마 미 대통령에 띄우는 편지
  3. 2008.08.15 [손석춘 칼럼] 과신과 불신 넘어 있는 그대로 사랑을
대한민국,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조선일보> 강천석 주필의 칼럼 제목이다(2010년 7월2일). 미리 밝혀두거니와 나는 강 주필의 우국충정에 공감한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을 것이 분명한 나 같은 세대는 요즘 나라의 장래와 관련한 상서롭지 못한 예감에 몸을 뒤척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는 강 주필의 토로에선 진정성을, “역사를 돌아봐도, 신문을 펼쳐도 이 어둠침침한 그림자가 뒤에 따라붙는 듯하다”는 대목에선 절박성을 느낀다.

강 주필은 전쟁 시기의 영국과 일본을 비교한다. “50세 이하 영국 귀족의 20%가 1차 대전에서 전사”했고 “귀족과 명문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노동자·농민보다 몇 배 높았다”고 쓴다. 반면에 “(2차 대전 당시) 일본 귀족과 제국대학 출신의 전사자 비율은 1·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귀족과 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 전사자 비율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낮았다”고 분석한다. 종전 후 이 같은 통계숫자를 확인한 일본 역사가들은 2차 대전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고 일본은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고 실토했다는 대목에선 사뭇 비장함마저 묻어난다.

강천석 주필의 비장하고 절절한 우국충정

“하류 가 먼저 썩어 오염이 상류로 번져간 사례는 역사에 없다”며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다시 세우려면 이 나라의 ‘위’와 ‘아래’ 어느 쪽부터 손을 대야 할지는 너무도 자명하다”는 칼럼의 결말은 통렬하다.

그런데 생게망게한 일이다. 그의 칼끝은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를 비롯해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 ‘군 면제’인 현실을 겨누지 않는다. 엉뚱한 곳을 겨눈다. 그는 “천안함 폭침 이후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준 미달의 논란”을 개탄한다.
물 론, 칼럼은 “여·야 국회의원들의 군 면제자 비율”이나 “대학교수, 최고경영자, 정상급 연예인”의 비율도 짧게 거론하긴 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 핵심부와 언론사 사주들 집안의 군 면제자 무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여 야를 함께 뭉뚱그려 비난한 뒤 “민주 투사까지 제 몸에 일부러 상처를 내 병역 의무를 피해갔다”고 강조한다. “민주투사”가운데 과연 얼마나 “일부러 상처를 내” 병역을 기피했을까. 지극히 예외적인 극소수임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민주투사’들을 싸잡아 매도하려는 불순한 깜냥일까.

그래서다. 나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을 것이 분명한” 강 주필에게, “나라의 장래와 관련한 상서롭지 못한 예감에 몸을 뒤척이는 일이 부쩍 잦아”고민하는 <조선일보> 주필에게 진정으로 권하고 싶다.

대한민국을 위해 강 주필이 손대야 할 곳

다름 아닌 <조선일보>부터 개혁하라. 보라. 강 주필이 그런 글을 쓴 바로 같은 날 <조선일보>는 “학생인권조례로 ‘촛불홍위병’ 키워 보겠다는 건가” 제하의 사설을 내보낸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일러 ‘촛불 홍위병’으로 키우려는 의도라고 살천스레 몰아치는 사설, 바로 그 사설을 책임지는 인물이 주필 강천석 아닌가?

강 주필은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다시 세우려면 이 나라의 ‘위’와 ‘아래’ 어느 쪽부터 손을 대야 할지는 너무도 자명하다”고 결말을 맺었다. 과연 그러한가. 무엇이 자명한가. 아래로부터 손을 대려고 애면글면 헌신해온 사람들에게 언제나 붉은 색깔을 덧칠해온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 아니던가.

그렇다. 강 주필이 비장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결코 아니다. ‘우국지사’ 강천석이 지금 대한민국을 위해 할 일이야말로 자명하고 절박하다. 자신이 주필로 앉아있는 <조선일보>부터, 논설위원실부터 손대라.

손석춘 2020gil@hanmail.net
*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 귀하.

한미정상회담 소식을 듣고 밤새 뒤척이다가 오늘 아침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공개적으로 편지를 띄우는 이유는 당신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모쪼록 이 편지를 ‘감각’이 뛰어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가 당신께 보고하기를 기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대통령’이기에 번거로운 인사는 줄이고 간명하게 쓰겠습니다.

먼저 축하합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과 캐나다에서 만나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2015년까지 연장하는 데 합의했더군요. 더구나 그 ‘조건’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한국의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당신의 노련한 협상력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축하하는 까닭입니다.

작전권 더 갖고 FTA양보 받은 능력 축하

다만, 당신이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시민들은 당신이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기뻤습니다. ‘오바마 혁명’이라고 당선 의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당신은 목표였던 ‘건강보험 혁명’을 이뤘습니다.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굽힘없이 당신의 뜻을 미국 국내정치에 구현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께 오늘 짙은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한반도 정책은 실패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가볍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당선을 환호하던 이 땅의 민주시민들 사이에서 어느새 ‘검은 부시, 하얀 라이사’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들어보았는지요. 처음이라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책임자가 임무를 게을리 한 게지요.

‘검은 부시’라는 당신에게 모욕적일 말이 떠도는 이유는 당신의 한반도 정책이 조지 부시와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후보시절 당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언제든 만나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란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만 집중한 탓인지 대북정책에선 부시가 실패한 길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 전시작전통제권을 연장 보유하고 더구나 그 ‘조건’으로 한미FTA에서 실리까지 챙기는 풍경을 보며 앞으로 이 땅에선 당신을 두고 “부시보다 더 부시답다”는 말이 퍼져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부시보다 더 부시다운 검은 부시 오바마?

물론,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앞장서서 작전통제권을 더 보유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요청을 받아들이자 이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이 수락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사의를 표했다는 대목에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수치와 분노를 느낍니다. 밤새 잠을 설친 이유입니다.

명토박아 전합니다. 국가의 작전통제권을 스스로 다른 나라에 더 가져달라고 ‘애걸’하며 고마움을 표하는 대통령을 보고 당신이 대한민국 국민을 우습게 여긴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게다가 한미FTA에서 더 양보를 얻어내 회심의 미소를 당신이 짓는다면, 그것은 단견입니다.

당장은 당신이 이른 눈부신 성과에 만족할 터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검은 부시’가 진정 아니라면,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할 때입니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우리 국민 사이에서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똑같다는, 만족할 줄 모른다는 비판 여론이 벅벅이 퍼져갈 전망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손잡고 웃는 버락 오바마의 얼굴이 조지 부시처럼 다가오는 한국인이 무장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잊지 말기 바랍니다.
당신의 건강을 기원하며 총총 줄입니다.

2010년 6월28일 서울에서

손석춘 2020gil@hanmail.net
해당 게시판으로 바로가기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님.

님께 첫

편지를 띄우는 오늘은 8월15일입니다. 대한민국 60년을 두고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건국절’로 화려하게 축제를 열자는 부르대기가, 4월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이승만을 ‘국부’로 삼자는 주장도 거침없이 쏟아집니다.

보십시오. 촛불이 100일 넘도록 타올랐음에도, 우리 역사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어둠은 외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촛불을 든 민주시민들은 시나브로 지쳐가고 있습니다. 터놓고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 좌절과 절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외람되지만 님께 편지를 쓰는 까닭입니다.

님의 좌절과 절망,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경쟁 중심’을 내건 후보의 당선도, ‘공영방송’의 노골적 장악도, 엄연한 현실이니까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불탄 남대문까지 넘실대던 촛불바다의 추억이 강렬해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냉철할 때입니다. 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이겼을 때였지요. 적잖은 사람들이 국민을 비웃었습니다. 여기서 ‘적잖은 사람들’은 수구세력이 결코 아닙니다. 스스로 ‘개혁’과 ‘진보’를 자처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국민의 ‘낮은 정치의식’을 들먹이는 조소가 서슴지 않고 나왔지요. 2008년 4월 총선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갖자 다시 국민의식을 탓했습니다.

그 불신의 캄캄한 어둠을 촛불이 단숨에 밝혀주었지요. 님이 지켜보셨듯이 촛불은 5월2일 청소년의 몸에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촛불의 노래가 서울 도심은 물론, 골골샅샅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갔습니다. 촛불이 흐르는 도심의 붉은 강에서 저 또한 님처럼 눈을 슴벅였습니다. 폭우 속에서도 촛불을 끄지 않는 모습은, 촛불과 촛불이 서로 도닥여주는 풍경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었지요.

하지만 촛불바다 앞에서 과도하게 국민을 예찬하는 사람들이 저는 미덥지 않습니다. 4월말까지만 해도 선거 결과를 두고 국민을 조롱하거나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단언하던 사람들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위대한 국민’을 들먹이거나 한국 민주주의에 찬가를 읊어대었습니다. 마침내 ‘촛불혁명’과 ‘국민 승리’까지 선언하는 현실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저는 그 놀라운 돌변 앞에서 님을 걱정했습니다. 님께서 마음이 허허롭지 않았을까 우려했습니다.

무릇 사람에 대한 지나친 예찬은 불신 못지않게 옳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있는 그대로 님을 사랑하는 성숙한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선-총선 직후의 국민 불신과 촛불바다에서 국민 찬가는 얼핏 정반대의 현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깊숙한 곳에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국민과 더불어 문제를 지며리 풀어가려는 자세의 결여입니다.

대선 결과를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의 눈으로 차분히 톺아보시기 바랍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이른바 ‘민주정권 10년’동안 부익부빈익빈이 커져갔고,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입니다. 자살만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이 대낮에 ‘민주정권’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정권을 심판하고 싶은 의지에 더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실낱희망으로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많았지요. 그 선택을 일러 “정치의식이 없다”며 우리 돌 던질 수 있을까요?

이명박이 ‘지푸라기’임은 일찌감치 탄로 났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부자신문’ 못지않게 철저한 ‘부자정권’임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친미사대주의마저 부자신문을 빼어 닮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굴욕적 전면 수입을 청소년들이 앞장서서 비판하고 기성세대가 대거 참여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촛불을 든 민주시민 가운데 적잖은 분들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는 찬성하고 있습니다. 감동에 겨워 눈시울 적시는 일 못지않게, 있는 그대로 민중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것은 결코 어둠과 타협하는 길이 아닙니다. 정반대이지요. 민중이 처한 삶의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과 더불어 어둠을 물리치는 길입니다. 그 길은 다름 아닌 자신이 민중의 한 구성원이라는 진실을 확연히 각성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8월15일, 님께 첫 편지를 띄우며 머리 숙여 제안 드립니다. 우리 개개인이 바로 민중임을 잊지 말기를, 우리 자신에 대한 과도한 절망과 과도한 희망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 하지 말기를. 촛불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훈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TAG 8.15, 촛불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