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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에게 ‘중소기업 친화적 경제’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기업 친화적 경제 vs 노동 친화적 경제


이명박 경제의 핵심 기조는 시장 친화적인 경제를 넘어 기업 친화적(business friendly) 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는 지난 2일 경제연구원장 초청 간담회에서 “친기업이라는 말을 꺼리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당당하게 친기업이라는 말을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동안 참여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누차 밝혀왔으므로 참여정부가 기업 친화적 경제정책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 경영자들이 그간 ‘반기업 정서’를 지적하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이 사실이다.


반면 새사연은 ‘일하기 좋은 나라’ 즉, 노동 친화적 경제로 전환해야 하며 인적 자원을 중시하는 지식기반 경제 추세에도 이것이 부합한다고 주장해 왔다. 신자유주의 이식으로 일반화된 노동유연화 정책이 기업에게 당장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노동생산성이나 심지어 중장기적 수익에도 부정적 효과를 초래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고 보았다.


“비정규직 고용확대가 합리적인 유연화 전략이라기보다는 당장의 인건비 절감방안으로 추진되어 온 것일 가능성이 있다”(한국노동연구원, 2007, ‘지속 가능한 고용시스템 구축을 위한 평가와 전망’)


 “고용조정을 통한 수량적 유연성 확보는 노동 비용 절감 등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 및 경쟁력 제고를 도모하려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지만, 동시에 숙련 형성의 단절, 재직자 사기 저하로 인한 생산성 저하, 사회안전망 구축비용 증대 등 고용조정 비용 발생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기도 했다”(한국노동연구원, 2007, ‘제품 수요변동에 대응한 한국기업들의 고용조정’)


일단 이명박 경제가 노동 친화적 경제 보다는 노동과 고용에 대해서는 ‘법질서’를 세우겠다고 공약한 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이명박 경제에서의 기업 친화적 경제는 대기업 친화적일 뿐 아니라 중소기업 친화적이기는 한 것일까. 이명박 당선자에게 기업이라는 범주는 중소기업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것일까.


99-88-33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중소기업 위상


사실 중소기업 보호, 육성 정책은 역대 어떤 정권에게서도 항상 빠지지 않는 경제정책 분야였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소기업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단지 대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경제적 비중, 특히 고용비중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중소기업의 수적인 비중은 계속 늘어나서 2005년 기준으로 99.9퍼센트인 300만개의 중소기업이 한국경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상공인을 제외하여도 약 33만 5천개의 중소기업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대기업은 4천개에 불과하다.(중소기업중앙회, 2007.04, ‘2007년 중소기업 현황’)


중소기업 종사자도 2005년 기준으로 88.1퍼센트인 1,000만 명 이상이다. 소상공인을 뺀 33만 여 중소기업에 500만 이상이 종사하는 반면 대기업 종사자는 1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OECD국가들은 중소기업이 평균 60~70퍼센트의 고용만을 책임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약 10여년 사이 대기업에서는 100만 가까운 인력이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은 정반대로 고용이 팽창된 결과다. 절대 다수 기업이 중소기업이고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한국의 중소기업이 외환위기 이후 고용에 대한 절대적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현재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약 33퍼센트에 불과하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생산성은 대기업의 50퍼센트 수준이었다. 지속적으로 생산성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중소기업을 정책적으로 새로이 재구축하지 않고서는 고용창출도, 생산성 향상도, 경제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중소기업 현실


대기업에서 방출되는 고용을 흡수하면서도 여전히 활로가 없는 자금조달 구조나 하도급 구조아래에 놓여 있다 보니 필연적으로 다수의 중소기업은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 중소기업의 영업 이윤율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근까지 장기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경기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조덕희, 2007.12, ‘제조 중소기업 이윤율 장기 하락의 실태 및 원인 분석’, 산업연구원)


중소기업의 종업원 1인당 이윤은 1991년 대기업의 33.3퍼센트에서 1997년 29.5퍼센트, 2005년 17.8퍼센트까지 추락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분석자는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이윤율 양극화 현상은 매우 분명하고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최근에 와서 더욱 심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07년에 접어들면서 대기업의 수익성은 회복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여전히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 3년간 영업 이익률이 절반 수준으로 하락되었다는 것이다.(배지헌, 2007.12, ‘중소기업 부실위험 높아졌다’, 엘지경제연구원) 이에 따라 채무상환 능력도 급격히 저하되어서, 영업이익으로 겨우 이자비용을 충당하는 정도의 채무상환 능력으로 보이고 있으며, 전체의 절반 가까운 중소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출을 해 준 은행 입장에서도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신용위험을 매우 높게 보고 있으며 중소기업 발 신용경색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


2008년 경제 전망과 중소기업 금융조달


국책,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내놓고 있는 2008년 경제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 전반적인 거시경제가 2008년 상반기를 정점으로 하향세를 보일 것이나 점진적인 내수 회복 등으로 올해와 유사한 정도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다르다. 중소기업 경영환경은 “대내외 수요 둔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고유가, 저환율, 고금리 지속에 따른 채산성 악화와 비용부담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자금난까지 겹칠 것으로 예상되어 비우호적 분위기가 우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중소기업연구원, 2007.12, ‘2008 KOSBI 경제전망’)


특히 금융조달 측면에서 볼 때, “2007년 가계 대출 규제에 따른 반사적 영향으로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중소기업 자금난이 크게 해소되어 왔으나, 2008년에는 고금리 추세 지속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은행권의 수신기반 약화에 따른 대출태도 전환이 예상되어 중소기업 자금사정 환경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신규취급 중소기업 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6.2%(2006) -> 6.7%(2007) -> 6.8%(2008)로 높아질 것이 예상되고 있다.(중소기업연구원, 2007.12, ‘2008 KOSBI 경제전망’)


이명박 당선자와 중소기업 정책의 미래


이런 환경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기업은행 민영화와 산업은행의 단계적 민영화를 공약으로 한 바 있다. 그간 기업은행은 은행권 전체 중소기업 대출의 18퍼센트 이상을 담당하는 등 중소기업 자금 공급에서 중요한 축이 되었다. 기업은행이 민영화되면 중소기업에 대한 의무대출 비율을 법적으로 규정한 조항은 폐지될 것이다. 일반은행들은 한국은행 규정에 따른 권고 비율만이 적용되고 있어 실효성이 거의 없다. 금융권의 대출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제 더 이상 대기업 CEO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는 대기업의 수장이 아니라 4800만 국민의 수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핵심 대기업을 키우면 이 효과가 중소기업을 포함한 내수 부문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적하효과(trickle-down effect)는 한국 경제에서 이미 사라졌다. 대기업과는 별도의 중소기업 친화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11월 세계지속가능발전 협의회는 “대기업 가치 사슬의 현지화를 통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의 중소기업 정책에는 이런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은행 민영화 등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조달 구조를 더욱 어렵게 할 전망이다. 하긴 기업은행 민영화는 참여정부에서부터 추진된 것이니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더욱 철저히 이끌고 가겠다는 것 이상은 아닐 수 있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