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 12. 20. 13:06
 

17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전체 유권자 3,765만 명 가운데 1,396만 명(37퍼센트)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1,149만 명(30.5퍼센트)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투표를 했다. 고작 617만 명(16퍼센트)만이 여당 후보인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중소기업 부흥과 비정규직 해소를 들고 정치 무대에 뛰어든 문국현 후보는 137만 표(유효 투표의 5.8퍼센트)를 얻는데 그쳤다. 전통적인 진보세력으로 자임해온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 당시의 97만 표(3.9퍼센트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71만 표(3.0퍼센트 득표율)에 머물렀다. 26만 표만큼의 절대적 수가 줄어든 것이다.


결국 37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유효 투표수 가운데 63.8퍼센트(이명박 + 이회창)가 보수 세력에게 투표를 하였으며, 34.9퍼센트(정동영 + 문국현 + 권영길)만이 범개혁진보세력에게 지지를 표시한 것이 이번 대통령선거의 최종 결과다.


현상적인 측면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국민의 2/3가 보수화되었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노망든게 아닌가”하는 식으로 국민을 의심하는 것은 자족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털끝 만큼의 이익도 없다. 정작 국민은 개혁 진보세력을 불신하고 의심하고 있는데, 반대로 그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불신하고 의심하고서는 어떤 민주주의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국민은 이번 대선 투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을까.


반독재 민주주의 시대는 종결되었다


사실 이번 선거결과는 우리 국민에게 이변이 아니다. 2004년 총선 이후 이어지는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1위였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이후, 같은 당 박근혜 후보와의 당내 경선이 실시되던 몇 달을 제외하면 지지율이 40퍼센트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여권은, 선거 국면이 가까워 오면 ‘반한나라당 세력’이 결집할 것이고 박빙의 승부가 재연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와 희망만을 키워왔다. 그러나 반한나라당 전선은 형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노무현정권 전선’만이 완고하게 굳어져 갔을 뿐이다. 우리 국민은 “한나라당 집권으로 그나마 이룬 민주화의 결실을 잃어버리겠는가”하는 과거 민주화세력의 협박성(?) 호소를 철저히 외면하고, “신자유주의 10년으로 사회 양극화와 경제생활의 어려움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고 하는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를 ‘노무현 정권 심판’으로 표현했다. 잃어버릴지 모르는 작은 민주화 성과보다 이미 잃어버린 경제적 어려움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컸던 것이다.


특히 그 욕구는 20대 젊은 층에서 컸다. 젊은 세대는 진보 개혁세력에게 지지를 몰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도대체 한나라당 통치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오직 자칭 민주개혁세력이 집권한 정부 아래에서 힘겨운 대학생활과 취업난과 어려운 경제생활을 혹독하게 경험한 젊은 세대들에게 반한나라당 전선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떤 실감이 나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젊은 층의 보수화’라고 하는 비아냥뿐이었다.


결국,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관통해 온 강력한 추진력이었던 반독재(반수구) 민주주의라는 동력은 17대 대통령 선거를 분기점으로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종결되었다. 더 이상 민주 대 독재, 민주 대 수구라는 구도는 한국정치에서 다수의 단결을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민주화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자


반독재 민주주의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욕구를 수렴하는 정치구도를 창출한 것은 불행하게도 진보개혁세력이 아니었다. 국민의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그들이 사분오열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 국민은 가혹한 심판과 외면을 통하여 새로운 상황을 강제하였다.


이제 과거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는 낡은 밑천을 내보이며 국민에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는 압도적 다수 국민의 염원을 수렴하여 반신자유주의 민주화를 향한 새로운 변화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과거 민주화 세력 자신들이 주도하여 조성한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경제의 자주화와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의제를 새로이 창출하고 이를 지향하고 실현할 수 있는 신진세력이 필요로 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의 계승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단절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사라져 가는 반수구 민주화의 전선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민주화 전선을 새로이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한국에 펼쳐진 신자유주의 시대야 말로 보수의 시대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진보의 시대다. 지금 남미에서 펼쳐지고 있는 진보정권의 득세가 그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기세등등하던 신자유주의가 종주국인 미국을 필두로 금융 불안 국면에 휩싸이고 경기 침체에 들어서는 등 그 어느 때 보다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이제 우리는 위장된 신자유주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진짜 신자유주의 정권을 보게 될 것이다. 진짜 신자유주의 정권 시대는 진짜 보수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진짜 진보의 시대로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신자유주의 정부시대에서는 더 이상 유약하고 절충적인 중간 세력이 설 자리는 없다. 그 만큼 국민의 생활은 절박하다. 사회의 양극화와 고용불안, 생계불안을 걱정하는 국민에게 온건한 대응은 ‘합리적 대응’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유약한 대응’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1970년대 이철승류의 유약한 야당이 유신독재의 엄혹한 상황에서 몰락하고 김대중, 김영삼 식의 강력한 야당이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받았음을 상기해 보자. 특검에 행운을 기대하거나 시간의 촉박함을 이유로 다가올 총선에서 절충적인 대응을 한다면 오히려 더욱 엄중한 국민의 심판을 자초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천막 당사로 재기를 시작한 한나라당 수준의 힘겨운 가두정치를 다시 할 자세가 되지 않는다면 대통합 민주신당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질 것이다.


국민은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제문제의 해결을 이명박 정권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이를 더욱 확대된 신자유주의 해법으로 풀겠다고 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공약한 각종 규제완화는 사회 양극화와 경제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 투표를 통해 표현된 국민의 의지는 다가올 이명박 정권에게 희망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새로이 거듭날 진보는 이 가운데에서 진정 우리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 수 있는 대안적 해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민의 삶의 현장과 생활로부터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사회 변화의 주체를 형성해 내고 신진 주체가 신자유주의 대안을 실현할 중심으로 새로이 부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 국민 스스로가 경제 생활적 문제를 누구와 함께 풀어야 할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장된 신자유주의 세력을 대신하여 진정한 진보가 한국사회에서 새로이 탄생하게 될 것이며, 17대 대선이 국민의 패배가 아니라 진정한 국민 승리를 위한 토대가 될 여지가 여기서 만들어질 것이다. 희망의 씨앗은 의연히 국민 속에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은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한국 경제의 구조변화에 주목하고 신자유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찾고자 설립된 연구원이다. 새사연은 진짜 신자유주의 정권에 맞서 반신자유주의 민주화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이명박식의 ‘개발주의 경제’가 결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진정으로 국민이 염원하는 신자유주의 대안을 찾아갈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반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연구원으로 오히려 뿌리를 탄탄히 내려가고자 한다.


김병권 / 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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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의 내용에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정동영 + 문국현 + 권영길을 묶어 범개혁진보세력이라고 지칭하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글의 내용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범자유주의세력(통합신당진영이나 문국현진영)을 진보개혁세력이라 지칭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제가 새사연의 문제의식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에 실려 있는 손석춘의 발간사 뿐일 것 같습니다.

    2007.12.20 18:0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