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11.20 20:47
 

9월 13일 같은 날, 같은 주제를 가지고 두 개의 토론회가 열렸다. 하나는 한국경제TV와 IEC그룹이 주최한 ‘한국 금융빅뱅: 비전과 전략’이라는 토론회였고, 다른 하나는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이 주최한 ‘자본시장통합법 시대 금융환경변화와 진보운동’이라는 심포지엄이었다.


토론회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모두 2009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자본시장통합법이 우리 자본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조망해 보는 자리였다. 그러나 조망의 각도는 달랐다. 전자에서는 주로 ‘글로벌 투자은행 출현’에 희망 섞인 기대를 점쳤고, 후자에서는 자본시장 구조개편이 금융노동자와 국민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우려했다.


핸드폰, 자동차만큼이나 흔한 금융상품


어느새 국민에게 금융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자동차, 핸드폰처럼 사양과 디자인, 품질과 가격을 따져가며 고르는 상품이 된 것이다. 갈수록 종류도 많아지고 은행상품, 증권상품, 보험상품의 벽을 넘기 시작해서 융합상품, 복합상품들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각종 금융공학기법을 이용해서 계속 신상품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금융회사들은 금융상품 생산 공장이자 금융상품 백화점으로 변해가고 있다.


보험상품 약정이 8,000여만 건에 달한다고 하니 이쯤이면 우리국민이 보험상품에 가입한 사례가 핸드폰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에 필적할 만하다. 불과 수년 만에 펀드상품 판매(계좌수 기준) 1,700만개를 넘었다고 한다. 자동차라는 상품을 구입한 것에 비교할 수 있다. 금융상품 시장이 핸드폰이나 자동차 상품시장 부럽지 않게 커지고 있다.


이쯤 되니, 정부 경제관련 부처에서는 금융산업을 미래의 ‘첨단산업’이자 ‘핵심성장동력’으로 해야 한다는 말도 할만하다. 일찍이 금융산업을 키워온 영국, 미국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금융산업을 미래의 핵심육성 산업’으로 하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금융상품을 소비하라, 그러면 금융계의 삼성이 나온다

이른바 ‘자본시장 통합법’이라는 어려운 용어도 따지고 보면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그동안 증권, 선물, 투자신탁, 자산운용으로 나누어졌던 자본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각종 상품을 통합하여 자유롭게 개발하고, 운용하고,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확 터주자는 것이다.

최첨단의 금융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하여 금융회사들에게는 수익 다변화를, 금융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원스톱으로 금융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편리성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수한 금융상품이 출시되고, 금융상품 소비가 확장되어 자본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미국의 골드만삭스와 같은 금융판 삼성이 만들어질 수 있고, 활발한 내수 금융상품시장을 기반으로 해외로 금융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핸드폰이 내수시장의 소비와 검증을 기반으로 세계로 확장된 사례를 금융에서 재현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금융 빅뱅’이요, ‘금융첨단화’라는 이름으로 정부에서 기대하는 장밋빛 미래이다.


은행구조조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매출 160조 원에 이르는 삼성의 글로벌 기업화가 삼성의 경이로운 순익증가와 함께 과연 우리 국민경제의 이익, 나아가 우리 국민의 소득수준과 생활향상을 가져왔는지 따져보는 문제는 미루어두자. 이미 우리는 사실상 한차례의 금융 빅뱅을 경험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혹독한 구조조정이 있었다. 구태의연한 관치금융을 없애고, 자기자본비율(BIS)로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글로벌은행으로 국제경쟁력을 키우자고 은행은 대형화와 겸업화로 덩치를 키웠다. 국민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은행 구조조정 10년, 은행의 고객인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일까. 수백만 ‘금융 소외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은행의 고객이 아니다. 은행은 VIP영업에 매달리는 대신 서민은 ‘비용만 많이 들고 돈 안 되는 고객’으로 천시되고 있다. 국내시중은행들은 2006년 13조 원이라는 거액의 순익을 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금에 목마른 중소기업들에게 낮은 이자율의 신용대출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무수한 은행직원들이 해고되고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은행에 이어 증권과 자본시장에서 똑같은 일이 재현될 것 같은 우려가 기우만은 아닌 듯 보인다.


금융상품은 핸드폰과 같은 제조업 상품이 아니다.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자마자 자신이 그 상품을 이용해서 사용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더 많은 자산증식을 기대하며 투자하는 점에서 다르다. 거기에는 위험도(원금 손실위험)이라는 단서가 꼭 붙는다. 때문에 온 국민이 어렵게 번 돈을 쏟아져 나오는 금융신상품에 붓는다고 금융시장이 활성화되고 경제가 성장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