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11.20 20:42
 

회삿돈 900억 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2,1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끼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2심에서 결국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3년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재벌 총수인 그가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법부는 시민들의 ’예상’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회사 자금 286억원을 횡령하고 2,838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집행 유예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다시 확인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에 시민단체는 물론, 사법부 안에서조차 의문과 형평성 상실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절한 사법부의 배려


이재홍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종종 국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초상식의 세계를 선보여오곤 한 사법부답게, 4,800만 국민의 나라가 재벌 회장 한 사람의 실형 여부에 따라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기막힌 발상까지 선보인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강연과 신문 기고라는, 평범한 시민이라면 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일을 사회봉사랍시고 주문하면서 실형을 모면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이 제시한 8,400억 원의 사회공헌 약속에 대해 ‘아무리 정 회장이라도 작은 돈이 아니지만 보람 있는 일에 쓰니 아까워 마시라’는 자상한 조언까지 잊지 않고 덧붙였다. ‘친절한 금자씨’ 위에는 ‘훨씬 더 친절한 재홍씨’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어이없어하는 재판 결과를 잠시 뒤로 하고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8,400억원에 대해 살펴보자. 이 ‘작지 않은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론 사재로 출연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현대차그룹은 ’대국민 사과 및 사회공헌 방안’을 발표하면서 정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보유한 글로비스 주식 2,250만주를 포함해 1조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었다. 초점을 다시 글로비스로 옮겨보자.


글로비스는 정 회장 부자가 2001년에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한 회사다. 자동차 탁송 등 현대차그룹의 물류를 독점하면서 고속 성장했고, 2005년 12월 말 증시에 상장돼 불과 4년만에 정 회장 부자에게 투자금의 100배 가까운 기록적인 주식 평가이익을 내주었다.

공정거래를 위반한 그룹내 거래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우고 증시에 상장해 거액의 투자수익을 올리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현대가 3세인 정의선 사장에게 수천억의 재산을 물려주는 신종 변칙 증여가 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거대 주주들이 증시를 이용해 증여세를 회피하고 경영권을 승계시키는 데 있어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은 너무도 매력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사정을 두고 검찰에서조차 현대차가 약속한 사회환원 1조 원의 실상은 30억(정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지분 60%)원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쪽은 마른 수건 짜고 내부에서는 돈 잔치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같은 날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 내부거래 혐의로 현대.기아차 그룹에 631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5개 계열사가 현대카드와 로템 등 다른 계열사들을 부당하게 지원한 데 대한 과징금이다. 적발된 부당거래의 방법도 다양하다. 서로 일감 몰아주기, 부품을 시세보다 비싸게 사주기 등으로 3조 원 가까운 지원성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일부 재벌 대기업이 수출 호조로 콧노래를 부르는 이면에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피말리는 원가 부담 전가가 존재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청업체에 대해서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짤 것을 강요해 대기업의 수익을 올리면서 그렇게 만든 수익으로 그룹내 부당 거래를 통해 특정 회사를 키우고 그 회사를 증시에 상장해 다시 수천억 원대 차익을 남기는 구조. 이것이 재벌과 주주자본주의가 공존 결합한 최악의 한국 경제구조의 표상이다.


‘8,400억 아까워 말고 내라’는 친절한 조언은 피고인의 쓰라린 심정을 다독거리는 말일까. 이런 경제 현실이 있으니 걱정할 것 없지 않느냐는 이심전심에서 나온 말일까?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