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11.20 20:41
 

신정아 씨 학위 의혹에서 시작된 ‘허위 학력’ 파문이 사회 각계로 번지고 있다. 대선, 2차 남북 정상회담, 아프간 인질 사태 등 굵직한 현안에 묻힐 법도 한데, 이 사안에 대한 언론의 집요한 관심은 잦아들 줄을 모른다. 연예인, 예술가, 학자, 종교인까지 학력 검증 매카시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문제가 도덕성을 재는 주요한 잣대라도 되는 것일까?


학력 없는 이들이 더 잘하고 있었다는 비아냥


학력 논란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학력과 학벌에 목을 맨 비정상적 사회였는지를 극명하게 노출한다. ‘미국 박사 학위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학계의 위선을 까발린 통쾌한 사건’, ‘결국 우리 사회는 그동안 학력 없는 사람들이 더 잘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네요’ 등 학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해온 사회 관행을 조롱하는 네티즌 반응이 적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의 발단이 된 미술계만 하더라도 인재 등용문이라 할 대한민국미술대전이 금품수수로 얼룩져 급기야 올해 2월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아무런 차별 없이 실력에만 기초해 인재를 발탁하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 한 언제고 제2, 제3의 신정아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엄밀한 잣대를 철저히 들이대야 할 곳은 기성 엘리트 집단이 장악해온 주류 무대인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조명은 문제의 본질과 큰 상관이 없는 사생활과 도덕성까지 추적하며 철저히 개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정석 코스 김현종과 변칙 코스 심형래?


이 집요한 학력 파헤치기의 이면에 주류 무대를 노크하는 다수 비주류에 대한 경계나 증오 심리가 읽힌다면 과잉 반응일까? 신자유주의가 전일화되는 가운데 교육은 부와 권력의 세습, 기회 불균형을 조장하는 대표적인 기제로 자리를 잡았다. 예를 들어 강남 엄마들이 조기 유학 성공 사례의 표본으로 삼는다는 한 고위 관료를 보자. 외교관 아들로 태어나 조기 유학, 콜롬비아 대학 졸업,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 귀국해서 정부 관료로 승승장구. 한국사회를 미국식으로 통합하는 한미FTA를 진두지휘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이력이다.


이런 코스가 정석인 소수 엘리트 집단에게 학력도 배경도 없이 어느 날 신데렐라로 떠오른 인물들이 달가울 리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허점이 발견되자 가차없는 검증 작업이 사회 각계를 휩쓴다. 영화 디워의 심형래 감독, 한국 연극계의 큰 별 윤석화, 불교계에 이례적인 25만 신도 포교 신화를 일군 능인선원 지광스님 등 학력이 아니라 실력과 창의성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던 인물들이 졸지에 뭇매를 맞고 자기 고백을 해야 하는 곤경에 빠진다.


창의성 중심 사회 되면 사라질 해프닝


지식기반화가 진전될수록 사람의 창의성이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졸업장의 권위와 충돌하는 일은 다반사가 될 것이다. 권력 상층부는 여전히 고리타분한 반상제에서 이득을 누리지만 기저에서부터 신분 질서는 무너져 가고 양반 문서 따위는 돈으로 사고팔던 조선 말기의 상황보다는 작금의 허위 학력 사태가 훨씬 건전하다. 학력 허위 문제로 거론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력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양반 텃세가 여전한 분위기에서 양반 출신이 아님을 고백할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창의성 있고 열심히 일하는 다수가 사회 주류로 등장하면 사라질 해프닝에 불과하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