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 06 / 24![]() |
[목차]
1.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2. 양적완화와 FRB의 자산-부채 증가 3. 양적완화와 인플레이션 4. 양적완화와 실물경제 5. 양적완화와 금융시장
1.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중앙은행이 총수요를 자극하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명목금리가 0% 수준으로 내려가면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장롱 속에 현금을 보관하는 편이 낫지, 금리를 주면서까지 돈을 빌려주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 이 시점에서 명목금리는 제로하한(zero bound)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물론 유사 이래 한국경제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이러한 상황에 부딪혔고, 1999년 초반 일본경제도 제로하한에 도달하였다.
우선,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안정 또는 상승하도록 중앙은행이 제로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번 달(6/22) 미국의 통화정책을 반영하는 FOMC 성명서에도, “이례적으로 낮은 금리를 확장된 기간 동안 유지”하겠다는 문구가 이어졌다. 이는 경기회복이 가시화 될 때 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금융시장에 시그널을 보임으로써, 기대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를 지닌다. 만약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제로금리 정책으로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통상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차감한 것으로 정의되므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실질금리는 하락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리먼 사태 이후 기대인플레이션은 -1%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금융시장에서 디플레이션까지도 예상한 것이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그리고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대인플레이션은 2%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경제 하강에 대한 우려로 다시 떨어지고 있다. 양적완화가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성과라 평가할 수도 있다.
“오늘 1온스의 금이 300달러 정도에 팔린다. 이제 현대의 연금술사가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새로운 금을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오랜 난제를 해결했다고 가정해보자. 또한 그의 발견은 대중에게 공표되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으며, 몇 일내로 금을 대량 생산할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발표한다. 금 가격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짐작컨대 저렴한 금을 무한대로 공급하면 금의 시장가격은 폭락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금 시장이 상당한 정도로 효율적이면, 연금술사가 금을 생산해서 1온스의 황금을 시장에 내놓기도 전에 발명했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즉시 폭락할 것이다.”
이 말은 2001년 일본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로 양적완화가 실시되고 미국 내 학계에서도 디플레이션 논의가 있을 때, FRB 의장인 버냉키가 디플레이션 해법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즉 상품화폐인 금처럼, “유통 중인 미 달러의 양을 늘림으로써 미국 정부는 재화와 서비스로 표시한 달러의 가치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변함이 없다고 할 때, 그것의 가치를 표현하는 화폐의 공급을 늘려 화폐가치를 줄여서 디플레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디플레이션 방지의 핵심은 통화 단위인 ‘달러’ 가치의 하락이며, 실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정책도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측정하기도 통제하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통화정책 도구로 논란이 많은 변수다. 또한 이미 제로하한에 도달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에 계속 유지하겠다는 시그널만으로 시장의 기대를 상승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기대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률 등 실물경제를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통상 개별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금공급, 이에 따른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상의 자산구성의 변화를 초래하는 프로그램을 신용완화(credit easing)라 부른다. 즉 신용완화 정책이란 민간 금융회사에 예외적인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민간의 금융자산을 중앙은행이 인수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에 비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이란 중앙은행의 장기국채 인수, 이에 따른 대차대조표의 규모 확대를 초래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2. 양적완화와 FRB 자산-부채 증가
위의 그림은 FRB의 신용 및 양적 완화 프로그램에 따른 대차대조표의 자산 상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금융위기 이전 FRB의 총자산 규모는 대략 9000억 달러에 달했다.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산규모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자산의 구성 상 단기국채(treasury bills)가 감소하고 신용완화에 따른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대한 단기대출이 증가하였다.
아주 간단한 예를 통해 FRB의 신용완화에 따른 민간은행의 대차대조표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두 종류의 은행을 상정하고 법정지급준비금은 예금의 10%라고 상정하자. 두 은행 모두 동일한 자본금과 예금으로 영업활동을 한다. 다만 B은행이 위치한 지역의 경기가 활성화되어 A은행보다 대출 기회가 더 많은 환경을 가정하고 있다. 단기 은행 간 신용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위의 예처럼 B은행은 A은행에서 차입하여 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당연히 지급준비금을 최소화하려는 은행의 행위에 따라 초과지급준비금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신용경색이 발생하게 되면, A은행은 B은행에 차입금 상환을 요구할 것이다. B은행이 다른 은행에서 차입하거나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할 수 없다면, A은행에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대출을 줄여야 한다. 따라서 가계를 비롯한 차입자는 대출을 상환해야 하고 이는 예금 인출을 초래한다. 결국 대출을 상환함에 따라 경제 전체의 통화량과 경제활동은 줄어들게 된다. 이른바 연속적인 대출회수와 부채축소의 악순환, 디레버리징이 발생하는 것이다.
통상 중앙은행이 신용경색에 대응하는 방법은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차입비용이 줄어들고 따라서 전에는 수익을 맞출 수 없었던 대출 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은행의 대출감소를 상쇄할 만큼 A은행에서 대출을 늘리면 경제활동 규모는 줄어들지 않는다. 신용완화란 기준금리를 낮출 수 없는 환경에서, 디레버리징을 최소화하기 위해 A은행이 했던 자금중개 기능을 중앙은행이 직접 대신하는 것이다. 즉 중앙은행이 직접 A은행에 자금을 입금시키면 된다. 특별 유동성 확대 프로그램이란 이런 원리에 따라 작동하였다.
중앙은행에 예치된 B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좌에 중앙은행이 40을 입금시키면, B은행은 이 자금으로 A은행에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 즉 B은행 입장에서 중앙은행 대출은 은행 간 시장을 대체한 것이고, 결국에는 A은행의 지급준비금 확대로 귀결된다. 증가한 지급준비금을 회수하기 위해 공개시장조작 정책을 통해 단기국채를 매각하였다. 그 기간 단기국채는 2770억 달러에서 184억 달러로 감소하였다.[위 그림의 연두색] 그러나 2008년 9월 신용완화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FRB가 보유하고 있던 단기국채가 소진되자 공개시장조작을 통한 단기국채 매각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FRB는 재무부와 공조하여 재무부가 단기채권을 발행하고, 채권 매각대금을 중앙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프로그램(SFP)을 도입하여 지급준비금을 흡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SFP 프로그램의 규모보다 2008년 11월 이후 도입된 1~2차 양적완화 규모가 훨씬 컸다. 양적완화가 시행될수록 지급준비금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금융위기 이전 평균 400억 달러에 달하는 지급준비금 규모는 현재 1.65조 달러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의 대부분은 법정지급준비금을 초과한 초과지급준비금이다.
3. 양적완화와 인플레이션
경제학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아주 유명한 방정식이 존재한다. (M: 통화량, m: 통화승수, H: 본원통화)
“은행에 1달러의 자본금을 투입하면 실제로 가계와 기업에 8~10달러의 대출을 초래할 수 있는 통화승수 효과는 궁극적으로 더 빠른 경제성장의 속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09년 4월, “구제금융에 사용된 돈이 어디로 갔는가?” 라며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 즈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타운 대학에서 실시한 연설 내용 중 일부다. 금융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은 신용창조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식도 경제학 교과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경제 전체의 통화량과 유통속도의 곱은 명목소득과 같다는 항등식인데, 이를 통해 통화량 증가는 물가상승률을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중앙은행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의 두 가지 유명한 경제적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양적완화가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고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중앙은행이 국채매입을 통해 지급준비금이 증가해야 한다. 둘째, 지급준비금 증가는 통화량 증가를 초래해야 한다. 셋째, 통화량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해야 한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은행의 신용 및 양적완화 정책은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지급준비금 증가가 반드시 통화량 증가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통화량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초과지급준비금이 가계와 기업 대출 증가에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FRB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에 0.25%의 금리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불확실성과 부채축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안한 기대수익률이 0.25%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게 된다. 무엇보다 가계의 기존 대출금 상환 규모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규모보다 크면 오히려 통화량은 줄어들 수도 있다.
지난 1사분기 기준, 미국의 가계부채는 11.5조 달러로 2008년 3분기보다 1.03조 달러(8.2%) 감소하였다. 즉 지급준비금이 1.6조 달러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가계의 부채축소 또한 진행되어 통화량(M1 또는 M2)의 증가규모는 지급준비금에 미치지 못하였다. 즉 유통속도가 하락하여 M1으로 측정한 통화승수는 금융위기 이전 1.6~1.7에서 0.84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통화량이 증가하더라도 유통속도가 하락하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즉 증가한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정도는 경제활동의 수준에 의존한다.
천문학적인 양적완화 정책은 미국경제에 무엇을 남겼을까? 각종 실물 및 금융시장 지표를 통해 양적완화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는 2차 양적완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10년 10월, 1.2%에서 5월에는 3.4%로 상승하였다. FRB가 중시하는 근원물가 또한 0.6%에서 1.5%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과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초래한 것이다. 즉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FRB가 공식적으로 의도한 소비와 투자 증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양적완화의 부정적 효과가 초래한 간접적인 결과이다.
5. 양적완화와 미국의 금융시장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하여 실물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그러나 1~2차 양적완화 기간 동안 실제 장기금리는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통상 중앙은행이 장기국채를 매입하면 국채의 시장가격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수익률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히려 양적완화가 시행되기 전에 수익률이 하락하고 실제 시행될 때 수익률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는 양적완화가 시작되기 전, 시장에 이미 양적완화에 대한 ‘투기적 기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금융회사는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막대한 시가차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실제 양적완화가 시행되기 전후에 국채를 내다팔고 증권이나 원자재 등 투기적 시장으로 자금을 이전하였다. 최근 장기금리는 2월 3.77%까지 오른 후 최근 다시 3%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또 다시 양적완화가 시행될 것이라는 투기적 수요, 안전자산인 국채에 대한 수요, 그리고 실물경제 침체 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달러가치 하락은 원유를 비롯한 상품시장의 버블도 추동하였다. 금융위기 직후 40달러 이하로 떨어진 원유가격은 최근 100달러를 넘어서기도 하였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원유가격 상승은 달러가치 하락과 거의 추세를 같이 한다.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은 ‘달러’로 거래된다. 따라서 동일한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달러가치 하락은 상품의 가격상승을 초래한다. 또한 주식과 회사채 시장과 마찬가지로, 상품시장 또한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상승 기대로 투기적 수요가 증가한 것도 적지 않은 요인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양적완화는 실업률을 비롯한 실물경제 침체를 극복하는데 거의 기여를 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해 주식과 회사채, 그리고 상품시장에서 투기적 자산가격 버블을 초래하였다. 한 마디로 양적완화 정책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지 않은 집단에게 가장 많은 수혜를 안겨다 주었다. 반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적은 수혜와 가장 많은 손실을 보게 만들었다.
사실 그린스펀을 계승한 버냉키는 월가를 비롯한 금융회사와 부유층의 버블 수혜가 실물경제를 부양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자산가격 상승은 재산효과(wealth effect)와 부채차입 증가가 민간소비를 통해 실물경제를 회복하고, 추가적 자산수요가 금융시장의 활황을 기대한 것이다. 이른바 자산버블 트리클다운 효과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실업률과 주택시장 침체에서 보듯 양적완화는 실물경제 회복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였다. 높은 실업률과 가계부채의 부담이 투기적 금융자산 버블이 중하위 계층으로 ‘대출’과 ‘투기’가 확산되는 것을 자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소득 및 자산 양극화, 높은 가계부채 비율, 취약한 미국 제조업 경쟁력 등 미국경제의 근본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통화정책으로는 실물경제의 근본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통화정책이 새로운 ‘버블’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부채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부채를 늘려 부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은 월가의 금융회사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부채와 리스크를 다른 집단으로 이전시킬 수 있다. 이에 비해 소득양극화와 고용창출, 그리고 제조업 경쟁력이 회복되어야 미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19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그랬던 것처럼 장기 제로금리와 실물경제 침체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
'주제별 이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0) | 2011.06.30 |
---|---|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 보호에 나서야 (0) | 2011.06.29 |
[그래픽 이슈] 최저임금은 90만 원, 실제 생계비는 131만 원 (0) | 2011.06.24 |
[그래픽 이슈] 2011년 재벌 대기업 이익 증가 64.4% (0) | 2011.06.17 |
비정규직 노동자 831만명, 최저임금 미만 임금근로자 204만명 (0) | 2011.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