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7. 11. 20. 20:27
 

세계의 자동차 회사들은 경쟁이 심화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의 예외 없이 모듈화를 추진하고 있고, 한국의 현대-기아 그룹도 여기에 뒤처지지 않고 있다. 모듈이란 부품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단위를 말한다. 이제 자동차 회사들 중 어느 누구도 2만에서 3만에 이르는 부품을 하나의 라인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전면 샤시, 후면 샤시, 운전석 등의 모듈을 각각 서브라인이나 외부에서 제작한 다음 메인라인은 이들 모듈을 조립하는 것으로 단순화되어 가고 있다.


자동차 회사가 모듈화를 추진하는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생산의 외주화를 통해 고용 비용을 감소시키고 품질 관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전략적으로는 자본의 해외 진출을 위해 몸집을 관리하려는 것이다. 설비 과잉과 내수 시장 성장 둔화에 직면한 자동차 산업은 중국과 인도, 남아메리카와 동유럽 등 신흥 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의 자본축적 전략과 모듈화


포디즘 대량생산체제의 총아이자, 노동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는 테일러주의의 대표주자인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자본 축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첫 번째 전략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금융자본에의 진출 혹은 자동차 서비스 시장의 확대이다. 이미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중에 85%는 차량 판매 후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마케팅, A/S 시장과 자동차 할부금융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전략은 앞서 언급한 신흥 시장의 개척이다. 중국과 인도 등의 자동차 시장은 향후 수 십 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자동차 업계는 이후 수 십 년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초기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지막 전략은 노동 배제를 통한 비용 감소이다. 일본을 제외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예외 없이 다국적 자동차 회사의 본국 노동조합은 가장 강력한 산별노조에 속해 있다. 자동차 자본은 자국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타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조직 노동의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노력은 노동을 의사결! 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상 자본의 세 가지 생존 전략에 ‘모듈화’는 깊이 관여되어 있다. 먼저 부품의 모듈화는 필연적으로 A/S 가격을 상승시킴으로써 완성차 판매 후 시장을 확장시킨다. 소비자는 문제가 있는 부품 하나만을 교체할 수 없으며 그 부품이 속해 있는 모듈을 통째로 구입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완성차 제조업체는 차종별로 모듈사를 1,2개로 재편하고 헐값에 모듈을 납품받지만 소비자는 독점화된 모듈사를 통해 고가에 모듈을 구매해야 한다.

다음으로 모듈화는 자본의 해외 진출을 용이하게 만든다. 신흥 시장에서 완성차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품, 소재 산업의 기반을 구축해야만 한다. 완성차 업체는 장기적으로는 ‘현지화’를 추구하겠으나 초기에는 자국의 부품, 모듈사를 동반 진출시킬 수밖에 없다. 동반 진출해야 할 기업의 수가 많을수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성차는 모듈화를 통해 필요한 기업의 수를 줄이고 해외 진출이 가능하도록 해당 기업의 규모를 확장시킨다.

마지막으로 모듈화는 노동의 분할을 가속화시킨다. 한국에서 1차 하청인 모듈 업체의 생산 라인에는 정규직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본급 80여만 원에 불과한 그들에게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는 없다.


노동 배제 전략이 낳을 불안한 미래


모듈화 이후 한국 자동차의 품질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시장 대응력 또한 제고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에서 경쟁이 격화되고 시장 수요가 급변하는 환경을 고려한다면 기술체계를 효율화시키는 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모듈화가 지나치게 노동을 배제하고 불안정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모듈화는 가뜩이나 지루한 자동차 조립 작업을 더욱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원청과 하청 사이에 노동조건의 차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모듈화를 위해 ‘노동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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