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포가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며 편지를 보내왔다. 소설 <아름다운 집>의 일본어 출판기념회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70대다. 그는 지금 남과 북에 모두 <거리>를 두며 살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단순히 공을 차는 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위신을 걸고 온 세계가 주목하는 일대 이벤트로 각광을 받고 있다.우리나라 남북에서도 나란히 이 대회에 참가했으나 아쉽게도 이북은 3패로 이남은 또한 한걸음 모자라 16강의 자리를 앞두고 물러나고 말았다.나는 이 글에서 경기자체를 회고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북의 선수로 나간 재일동포 3세인 정대세 선수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나름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정대세 선수는 알려진 바와 같이 재일동포3세이면서 국적은 한국이다.그런 그가 이북의 선수로 출전한 것은 이북의 사상에 공감해서인지 혹은 이북의 국가 위신을 높이자는 사명감에서인지 나로서는 그의 깊은 속마음은 가늠할 수 없지만 그가 흘린 눈물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몇 갈래의 감회가 오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물론 단순히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무대에 선 것을 기쁘고 감격스러워서라고도 할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같은 재일동포(물론 세대는 다르지만)로서 살아온 역사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데서 오는 공통된 심리가 밑바닥에 깔리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재일동포로서 살아온 수난사가 담긴 눈물
 
일반적으로 재일동포라고 하면 일본 사회의 독특한 분위기 그것도 뿌리 깊은 배타의식과 차별이 뒤따르는 속에서 살아왔다.재일동포들은 예외 없이 살길을 찾아 혹은 각종 명목의 강제연행에 의하여 일본에 끌려온 사람들이며 그  후손들이다.물론 그 속에는 배움을 위하여 스스로 바다를 건너 온 사람도 있다.그러나 예외 없이 민족적인 차별과 박해 속에서 살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소위 <부락>이라고 불리우는 특수 지역이 있었고 지금도 법률 상은 없다고 되고 있지만 현실 생할에서는 아직까지 엄연히 남아있다.<부락>을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백정마을>을 뜻한다.재일작가 김달수가 쓴 소설 <부사산이 보이는 마을에서>(富士の見える村で )나오는 장면이다.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허구도 들어 있겠지만 그것은 거의 사실에다가 약간의 문학적 표현을 빌려 밝힌 것이다.
소설의 일본인 주인공은<부락>민 출신이면서 이름 없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그의 처는 <부락>과 인연이 없는 평범한 가정의 출신이다.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부락>민 출신이라는데 대하여 언제나 자기 처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히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그런 그가 자신의 열등감을 지워보자고 당시 이름이 팔리고 있던 작가(김달수 외)를 자기 집에 초대하면서 우리 집에서는 조선말을 안 써주면 좋겠다고 하였다.결론적으로 그 집에서 하루 밤을 묵고 떠나려고 하는데 그 집 딸이 싸인을 해주면 기념으로 오래 간직하겠다고 하였다.그리하여 초대받은 3명이 싸인을 하는데 그것이 조선 이름었는데 대해 그 집 부인이 자기 남편을 더욱 경멸했다는 내용이다.조선 사람은 일본의<부락>민보다 하층에 속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그 집 부인의 행동거지를 통하여 적나라하게 밝혔다.
 
일본의 ‘천민’보다 더 차별받았던 재일동포

재일동포들은 일본 국민들의 가슴 속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민족차별과 배타의식이 농후하게 남아있는 사회풍조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나 자신도 쓰라린 경험을 했다.어느 날 어느 회사의 사장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를 위해서는 주변의 일본 사람 2명의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나는 거의 30년을 지금 사는 곳에서 살아왔다.물론 주변의 일본 사람들과도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건네며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빠짐없이 참가해 왔다.그렇기 때문에 보증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안하고 있었다.그런데 언제나 친하게 지내고 있던 가까운 사람을 찾아가 부탁하니 얼굴조차 옳게 보지 않으면서 거부하는 것이었다.그 때의 충격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일본의 사회 밑바닥에는 배타의식과 차별의식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내려오고 있다. 일본의 한 르포작가는 일본의 “전후사회는 평등을 지향하면서 소수자를 철저히 차별해왔다. 평등성과 차별성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진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도 변화의 맹아가 움터나고 있다. 1995년에 일어난 한신 대지진 때는 우리 동포들과 일본 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피해 처리에 나섰다는 사실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이것은 한 예에 지나지 않고 가는 길은 아직 멀다고 여겨진다.
 
동포들 수난 받았을 때 남과 북의 대조적 태도

마지막으로 재일동포들에 대한 본국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던가.한마디로 말하여 이승만 정권을시작으로 역대 정권 특히 군사정권 시기까지 기민정책을 써왔으며 지금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에 반하여 조총련에 속하는 동포들이 이북정권을 지지하고 따르는 근원이 이북이<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는 등 손을 뻗어주었기 때문이었다.물론 그들의 속심이 어느 쯤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무쪼록 남북의 위정자들이 나라의 통일을 지향하여 대화와 협상으로 나가며 해외에서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포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돌려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