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참여(새사연 보건복지분과)
박유원 | 간호사, 새사연 회원
이은경 | 한의사, 청년한의사회 정책국장, 새사연 비상임연구원
정달현 | 예본치과 원장, 새사연 운영위원
정수창 | 새사연 회원
조남선 | 의사, 새사연 운영위원
황지원 | 소화아동병원 간호사,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정책위원장, 새사연 운영위원
윤찬영(진행 및 정리) | 새사연 미디어센터장

사회 : 전 세계적으로 신종플루의 확산 속도가 다소 늦춰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에도 우리 국민들의 위기감은 오히려 커져만 가고 있다. 세 살짜리 아이가 단 삼일 만에 숨진 사건이 알려진 데다 수능을 앞두고 있어 어린 자녀와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근심이 큰 상황이다. 신종플루가 이미 대유행 단계에 들어선 지금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어떤지 얘기해 달라.

박유원 : 병원의 분위기는 바깥의 분위기와 또 다르다. 이렇게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는 정말 처음이다. 누가 외래진료소에서 대기하다가 재채기라도 하면 저쪽 가서 하라는 호통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그만큼 불안해하고 있다.

조남선 : 신문이나 방송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지다 보니 의사의 말도 믿지 않는다. 증상이 경미해 타미플루를 처방해주지 않으면 나갔다가도 다시 들어온다. 주변 이야기를 듣고 왜 나만 처방해주지 않느냐며 하소연한다.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다.

이은경 : 병원이 오히려 병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거점병원의 경우는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의료진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감염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의료진들도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조남선 : 당국이 지침을 계속 완화하는 바람에 혼란만 커졌다. 처음에는 엄격한 처방 기준을 내려보냈다가 타미플루가 부족하다는 보도로 국민들이 불안해하자 의사의 판단 아래 처방을 할 수 있게 한발 물러났다. 결국 지금은 마구잡이로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은경 : 언론이 지나치게 이슈화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효율적인 사회적 대응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것이 쉽지 않다. 몇 달 뒤 신종플루가 잦아든 뒤에라도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정부와 언론이 오히려 병을 키우고 있다

사회 : 그렇다고 해도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정달현 : 새로운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인간-돼지-조류의 독감바이러스가 섞여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출현한 사례다. 다행히 유전자정보가 조기에 파악되고 기존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효과를 발휘해 대처가 가능하긴 했지만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무척 강해서 더 문제가 되고 있다. 치사율은 낮지만 전염성이 강한 데다 증상의 전변도 무척 빠르다. 가령, 한 교실에 환자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확산될 뿐 아니라 증상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더 큰 불안감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정수창 : 언론보도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망자 위주의 선정적 보도는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또 한 번 드러냈다. 이런 식의 보도행태를 보인 나라는 없었을 것이다.

박유원 : 가족들과 함께 3주 간 미국에 다녀왔는데 실제로 미국에서는 신종플루 관련 보도가 그다지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정수창 : 매일 사망자 위주의 보도를 선정적으로 해대고 있는데, 사망자 수를 감추라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다뤘어야 할 여러 문제들을 놓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령, 매년 계절독감으로도 우리나라에서만 수천 명이 사망한다는 사실은 왜 알리지 않는가. 위험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도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200~4000명이 계절독감으로 사망

사회 : 계절플루와 사망률을 비교하면 어떤가.

이은경 : 미국의 경우 매년 3만 6000명 정도가 계절플루(독감)로 사망하는데 현재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1000명을 넘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매년 약 2000~4000명이 계절플루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52명이다.

사회 : 물론 죽음의 무게를 상대적으로 따질 수는 없겠지만, 위험성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그 위험성이 다소 과장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아마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 않는 젊은층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또 독감과 달리 백신이 미리 준비돼있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은경 : 맞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한계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한다. 계절플루라고 해서 노인과 아이들만 사망하지는 않는다. 안타깝지만 한계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단언하건데 지금과 같은 혼란이 사망자 수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고 환기를 자주 시키며 손을 자주 씻고 코와 입을 만지지 않는 등 개인위생에 신경을 쓰면서 냉정을 되찾았으면 한다. 만약에 있을지 모를 감염에 대비해 평소보다 일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남선 : 신종플루에 걸리면 반드시 타미플루를 복용해야 한다는 것도 잘못 알고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다.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정도의 병이다. 물론 전염력이 강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경미한 감기 기운이 나타나면 곧바로 병원을 찾기보다는 마스크를 쓰거나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고, 고열과 인후통(목통증) 등 조금 더 증상이 심할 경우는 병원을 찾아 타미플루를 처방 받으면 된다. 콧물이 좀 난다든가 하는 이유로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특별한 증상 없이 병원을 찾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는 점을 꼭 당부 드리고 싶다.

이은경 :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와 노인은 공공장소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건강한 성인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필요는 없다.

사회 : 백신과 타미플루의 부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은경 : 논란이 많은 문제긴 하지만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크게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또 백신을 모든 국민이 맞아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고위험군부터 접종을 하게 되면 집단 전체의 면역 수준이 올라가기 때문에 전염력도 한풀 꺾일 것이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재기를 하거나 자비를 들여서라도 접종을 하려들면 오히려 혼란만 커질 수 있다.

조남선 : 간혹 검사 없이 타미플루만 처방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증상이 나타날 경우는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항체가 생성되었다면 더 이상 신종플루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거점병원을 없애고 중증환자를 위한 치료병동 마련해야

사회 : 개인 차원의 대응 방안을 살펴봤는데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은경 : 당장 거점병원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거점병원으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거점병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넘쳐나는 환자들로 제때 제대로 된 진료조차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전염을 확산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보건소와 동네 의원을 비롯한 모든 병의원에서 신종플루 관련 진단과 처방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서, 입원 조치가 필요한 중점치료환자를 위해 치료중심병원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점병원이 아니라 위험 환자들만을 위한 치료중심병원이다. 정부에서 방침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적극 알려나가야 한다. 더 이상 컨테이너 박스 밖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달현 : 특히 앞으로 영유아 환자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는데 이들을 격리 치료할 병상이 극히 부족한 상황이다. 한두 개 병동을 비워서라도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박유원 :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아픈 경우 병가를 계속 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학교나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황지원 : 그런 부분은 특히 계층 간 차이도 크게 나타난다. 부모가 좋은 직장에 다니면 자녀의 진단서만으로도 휴가를 쓸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근무 여건이 열악한 경우는 자기 몸이 아파도 함부로 쉬지 못한다. 사회적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에서는 병가를 최대한 인정해줘야 하며 지역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사회 : 어떤 기사를 보니 앞으로 2~3년 안에 이보다 독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남선 :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고 그래서 선진국들은 몇 년 전부터 독감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을 준비해 왔다. 타미플루와 백신 비축량의 차이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웃나라 중국도 치사율이 60퍼센트에 달하는 사스(신종플루는 0.02퍼센트) 를 겪은 뒤로 사회 전체의 전염병 대응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었다고 해서 저절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예산 확보 문제 등이 특히 그렇다. 국가적 차원의 전염병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것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정달현 : 앞서도 잠깐 언급됐지만 초기에 거점병원 중심으로 치료체계를 세운 것도 문제다.

이은경 : 거점병원은 격리와 집중 치료를 위한 곳이어야 했는데, 거점병원을 지정하면서 보건소를 비롯한 많은 병의원들이 신종플루 진료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거점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면서 거점병원은 병원대로 또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사회 : 전염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었나.

이은경 : 대책이 발표되던 당시는 이미 신종플루의 전염력과 치사율에 대한 분석이 나왔을 때다. 감염성이 높고 치사율이 낮다는 특성에 따라 대규모 감염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세웠다면 모든 병의원들이 진료를 담당하면서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환자들만을 거점병원으로 보냈어야 했다. 이런 식이라면 거점병원이 500개나 필요하지도 않았다. 지역별로 필요한 만큼의 격리 병상을 마련하고 몇몇 병원에 대해서만 지원을 집중했어야 옳았다고 본다.

정달현 : 격리병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일 이번보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돌게 되면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전염이 확산돼 사망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진료시설을 갖춘 버스, 즉 이동식 병원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격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진단을 하거나 거점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이은경 :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부를 탓하기는 쉽지만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불안감을 키우는 식의 대응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혼란이 커짐으로써 오히려 대응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수준에서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면서 앞으로 근본적인 전염병 관리체계와 의료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수창 : 옳은 지적이다. 정부의 책임은 확실하게 묻되 현재의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해 불필요한 예산이 쓰이거나 국민의 불안감이 가중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사회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짚어보기로 하자. 2~3년 뒤를 내다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정달현 : 무엇보다도 열악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체계가 얼마나 허약한 수준인가가 분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민간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수준의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치료제 및 백신의 확보, 격리치료를 위한 있는 병상 마련, 전염병 관련 전문 인력의 확보 등은 공적 의료체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남선 : 공공의료체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작업과 동시에 민간의료기관도 위급한 상황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달현선생님 말처럼 우리나라는 이미 민간 중심의 의료체계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치의제도, 일정 비율 이상의 전염병 치료병상의 확보, 전문 인력의 의무 배치 등 현재의 민간의료기관들이 국가 차원의 전염병 치료체계 안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황지원 : 바이러스 변이에 의해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0.02퍼센트의 치사율로도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는데 만일 치사율이 0.1퍼센트만 되도 국가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박유원 : 설마 하는 생각을 버리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세워 대비해야 한다. 당장의 효용만을 따지는 얄팍한 경제 논리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이은경 :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전문가 집단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의료인들은 단 한 번도 책임있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거점병원에서 빼달라는 요구가 가장 먼저였고 치료비 보장과 원내 투약, 거점병원 지원 등 경제적 이해가 얽혀있는 부분만을 요구했을 뿐이다. 전문가 입장에서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가 아쉬웠다.
민간의료기관 위주의 우리 의료시스템에서 의료인과 개별 의료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더 위험한 바이러스가 유행할 경우 우리나라 의료인들과 의료기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스스로의 자성과 함께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가 모색되길 바란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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