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10.28 07:00

“개인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사회 발전의 척도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이명박 대통령, 제3차 ‘OECD 경제포럼’ 개막식 축사)

우리나라의 3분기 경제성장률(GDP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무려 2.9퍼센트나 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단 하루만에 GDP 지표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진앙지는 바로 어제(27일) 막을 연 ‘OECD 세계포럼’이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이날 개막식에 앞서 마련된 간담회에서 “이 지표(GDP)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좀더 포괄적이면서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보여주는 지표를 논의하자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침반이 GPS로 바뀐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GDP와 현실과의 괴리는 과연 어느정도일까. 이번 행사를 앞두고 통계청이 발간한 <OECD 세계포럼의 이해>라는 책자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명목GDP는 9,291억 달러로 세계 15위이지만 삶의 질을 나타내는 환경지속성지수(ESI)는 2001~2005년까지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29위를 기록했고 행복지수(HPI)는 그보다 더 낮은 68위에 머물렀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상위 20퍼센트의 소득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하위 20퍼센트의 소득은 감소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 OECD국가 중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엊그제 발표된 GDP에 그 어떤 것도 반영돼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번에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살펴보자. 경제학에서는 ‘7퍼센트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매년 7퍼센트씩 경제성장을 계속하면 10년 뒤에는 꼭 두 배만큼 성장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80년대에 연평균 7.7퍼센트, 90년대는 6.3퍼센트 그리고 2000년대는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연평균 5.1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였다. 따라서 ‘7퍼센트’ 규칙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80년대에는 두 배 이상 성장을 했고, 90년대에도 거의 두 배 만큼 실질적으로 성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성장률이 5.1퍼센트로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매년 5퍼센트 만큼만 성장해도 10년이면 약 63퍼센트 성장률이 되기 때문에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즉,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고 GDP가 소득과 삶의 질을 제대로 평가하는 지표라면 현재 우리는 1995년보다 두 배 정도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10년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소득은 별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현상을 측정하는 객관적 통계지표와 구성원이 체감하는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GDP는 실질소득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1930년대 GDP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부터 과연 이것이 사회 진보나 경제의 번영을 측정하는 올바른 지표인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최근 양극화로 대변되는 소득 분배의 변화는 더 큰 회의를 낳고 있다. 불평등이 증가하면 평균소득은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증가하더라도 오히려 내 삶은 더욱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소득을 측정하는 세 가지 상이한 지표들의 성장률을 추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경제성장률보다 가계소득이 체계적으로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인 2004년 1분기~2008년 3분기에 GDP는 평균 4.7퍼센트 증가했지만, GNI는 3.2퍼센트, 가계소득은 2.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소득’을 제대로 반영하는 지표로 그나마 GNI가 GDP보다 우수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GDP와 가계소득 사이에 발생한 2.5퍼센트의 차이는 대체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GDP란 한 나라에서 특정 기간(1년 또는 분기)에 생산되는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을 측정하는 지표다. 간단한 도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GDP=민간소비+투자+정부소비+(수출-수입)

그러나 세계화가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한 국가에서 생산하는 것과 국민이 최종적으로 벌어들인 실질소득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입가격이 수출가격보다 상대적으로 증가하면 수출품 1단위와 교환되는 수입품의 양이 감소하므로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더라도 실질구매력은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GDP에서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 손실의 차감을 반영해야 하고 이러한 지표가 바로 국내총소득(GDI)이다.
여기에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간 소득은 차감하고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더하여 산출한 것이 국민총소득(GNI)이다. 우리나라의 GDP가 GNI보다 체계적으로 작은 것은 주로 교역조건의 악화가 반영된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GDP와 가계소득 증가율 사이에 나타난 2퍼센트 이상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아래 그림은 지난 10년 동안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가계소득-세금을 비롯한 비소비지출)과 실질 GDP 증가율의 평균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12개 비교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은 1퍼센트 남짓 증가하는데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선 명목GDP와 가계소득을 실질지수로 변환할 때 사용하는 디플레이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계의 실질소득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지표는 소비자물가지수로서 1996~2006년에 연평균 3.8퍼센트 증가한 데 반해, GDP 디플레이터는 연평균 2.76퍼센트로 증가해 약 1퍼센트 정도 차이가 난다. 여기에 앞서 말했듯이 GDP와 GNI의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며 GNI에 포함되지만 가계의 실질소득과 관련이 없는 자본재의 감가상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소득의 부문 간 이전에서 오는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계는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정부에 납부한다. 이에 대한 대가로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정부로부터 이전소득을 받는다. 또한 가계는 기업으로부터 배당의 형태로 재산소득을 받으며 차입금에 대한 대가로 은행에 이자를 지불한다.
이러한 부문 간 이전을 최종적으로 고려한 것이 가처분소득이다. 따라서 97년부터 도입된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료와 은행에 지불하는 이자지출이 늘어난 것도 주요한 설명변수가 될 수 있다.

GDP와 가계소득의 차이를 낳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바로 ‘양극화’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소득은 매월 9,000여 일반가구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를 토대로 작성되는데 일반적으로 부유층은 표본조사에 응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따라서 양극화가 극심할수록 GDP와 가계소득의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티글리치 보고서>에 담긴 ‘행복GDP’를 살펴보면

2008년 2월 프랑스정부는 GDP 통계가 경제적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와 센 교수를 주축으로 ‘경제성과와 사회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회는 1년이 넘는 연구와 논의 끝에 지난 9월 첫 번째 보고서인 일명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발표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번 OECD 세계포럼에서 ‘행복(well-being) GDP’ 도입의 필요성을 직접 밝힐 예정이다.

300여 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보고서의 핵심 내용 및 권고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에서 질로의 전환 혹은 보완이다. GDP란 시장에서 거래되는 ‘생산량’의 총합을 나타낸다. 따라서 상품의 품질 증가에 따른 실질 소득 또는 소비의 증가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상품의 품질 개선에 따라 가격이 증가했다고 가정하자. 이 때 통계 처리 과정에서 가격 변화를 조정하게 되는데, 물가상승을 과대평가하면 품질개선(과 실질소득 증가)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또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만 포괄하므로 정부나 가계에서 수행하는 비시장 영역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예를 들어, 가계에서 수행하는 부모의 가사 및 육아는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이라 하더라도 가사 및 아이 도우미 서비스를 활용하면 GDP가 증가한다. 따라서 가계 및 정부의 경제 활동이 시장 거래로 전환한 미국과 같은 나라는 체계적으로 GDP가 과대평가되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생산’보다는 인간의 ‘행복’으로 강조점의 전환이다. GDP는 시장의 생산량을 화폐 단위로 측정하기 때문에 경제 구성원이 체감하는 물질적 ‘복지’를 제대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GDP보다 ‘가계’의 소득과 소비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GDP에서 교역조건과 국가 간 소득 이전을 차감한 GNI, 더 나아가 자본재의 감가상각과 부문 간 이전을 고려한 NNDI(net national disposable income) 지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GDP와 가계소득이 체계적으로 차이가 나는 점을 중시한다. 따라서 물질적 복지의 관점에서는 가계의 ‘실질가처분소득’에서 의료와 교육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현물이전을 고려한 지표 개발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셋째, 분배를 통한 평균 지표의 보완이다. 평균소득이 증가하더라도 계층 간 소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면, 일부 계층에서는 오히려 물질적 후생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평균 개념의 소득, 소비보다는 중간(median) 지표에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또한 재산의 변화, 계층별 소득 분배를 포괄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의 필요성도 밝히고 있다.

넷째, 행복은 물질적 생활수준의 일차원적 지표가 아님을 강조한다. 즉 새로운 대안지표는 보건, 교육, 정치 환경, 사회적 관계, 환경 그리고 사회경제적 안정 등을 모두 포괄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삶의 질’은 GDP라는 객관적 지표에서는 포괄하지 못하는 인간의 ‘역량(capability)’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UNDP에서 매년 발표하는 HDI(인간개발지수)는 이번 위원회에 자문으로 참여하는 아마티아 센 교수의 ‘역량’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역량’이란 행위자의 목적ㆍ지향ㆍ가치 등을 실제로 수행 또는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개발’이란 객관적 물질 조건을 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 ‘능력’을 형성하고 수행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확장한다.
이는 철학적으로도 약간의 차이를 반영한다. ‘GDP’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효용의 극대화로 보는 데 비해 ‘역량’ 관점은 자신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수행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 그리고 역량을 강조하는 차이점을 지닌다.
따라서 보고서는 보건, 교육, 환경 등 여러 상이한 영역의 측정을 모두 포괄하는 HDI와 같은 복합지수의 개발뿐만 아니라 실제 체감하는 행복 정도를 반영하기 위해 설문조사 등을 활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지속가능성과 환경에 대한 강조다. GDP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 자원을 더욱 더 많이 소모할수록, 그리고 환경을 더 심각하게 파괴할수록 늘어나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미래세대, 아니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자원과 환경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현재의 물질적 복지가 미래에도 유지 가능한지를 측정하며 규범적 선택의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단일한 지수로 환원할 수는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차를 운전할 때 현재의 속도와 남아있는 휘발유의 양을 동일 계기판에 하나의 숫자로 표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환경 문제로 인한 온난화와 수자원 고갈 등을 포괄할 수 있는 환경위험지수의 개발도 고려하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새로운 지표” 개발하겠다는 약속 지킬까

스티글리츠 교수가 세계은행 부총재로 재직할 당시 세계화와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논쟁을 촉발한 것처럼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대안 지표를 둘러싼 세계적 논의의 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의 맨 처음에 소개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개막식 축사를 통해 “새로운 지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수십 조 원을 쏟아 붓는 4대강 사업에는 엄청난 건설 장비와 자재, 노동력이 소요되므로 GDP 상승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으로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다른 대안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미 파탄 난 747 공약인가, 아니면 국민의 행복인가, 어느 것을 선택할 지는 물론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정치란 국민의 ‘행복’ 증진이고, 통계란 그에 대한 적절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OECD 세계포럼(OECD World Forum)
OECD 세계포럼은 GDP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 사회, 환경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발전 개념을 정립하고, 발전 측정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및 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OECD 최대규모 국제회의이다.
공식명칭은 ‘통계, 지식, 정책’의 OECD 세계포럼(OECD World Forum on Statistics, Knowledge and Policy)으로 OECD 통계국 주관 하에 OECD 회원국 중 한 곳을 선정하여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유엔(UN), 세계은행(World Bank), 유엔개발계획(UNDP), 유럽 연합(EU, European Union),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등이 후원단체로 참여한다.
2004년 이탈리아 팔레르모, 2007년 터키 이스탄불 회의에 이어 2009년에는 10월 27일부터 10월 30일까지 대한민국 부산에서 제 3차 회의가 개최된다.
- 출처 : 위키피디아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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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잘읽었습니다

    2009.11.14 22:2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