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9.23 09:29

어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가 105만 원으로 상향 조정됐다는 소식이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 17일 사상 처음으로 장중 82만 원을 기록하는 등 최근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한 IBK투자증권은 삼성전자가 오는 2010년에 순이익 12조 7000억 원, 연결 영업이익 13조 4000억 원으로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세계 경제의 불황 속에서 삼성전자가 보여주고 있는 눈부신 실적을 보면 이러한 전망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비단 삼성전자뿐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역시 여전히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지난 8월에 전년대비 47퍼센트의 판매량 증가를 기록하며 사상최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던 도요타자동차가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현대자동차는 대단한 실적을 올린 것이다.

이처럼 경제성장률을 비롯해 최근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여러 국내 경제지표들과 함께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선전이 추석을 앞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국내외 언론의 호들갑처럼 대한민국 경제는 ‘수확의 계절’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성장률과 코스피지수가 주는 착시효과에 눈이 멀어 앞으로 닥칠 추운 겨울을 대비할 기회마저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한국 경제의 ‘가을걷이’에 앞서 최근 국내 초(超) 대기업들이 보여준 눈부신 실적의 배경과 그 지속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세계 100대 기업에 이름 올린 국내 초 대기업들의 힘

지난 7월 포츈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는 국내 대기업 네 곳이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40위), LG(69위), SK홀딩스(72위) 그리고 현대자동차(87위) 등이었다. 이들은 더 이상 저임금 노동력으로 싸구려 모조품이나 만들던 별 볼일 없는 회사들이 아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퍼센트, 세계 휴대폰 시장의 30퍼센트를 장악하는 등 반도체, LCD, 자동차, 휴대폰 등 고가의 첨단 소비재 시장을 자체 기술력으로 장악해가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삼성전자는 2009년 3월 LED TV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이미 100만 대 이상을 팔아치웠고, LG화학은 GM에 하이브리드 카의 핵심 부품인 2차 전지 납품업체로 선정됐다. 그런가 하면 현대자동차는 미국 소비자 조사기관인 JD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일반 브랜드 부분 1위로 선정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초 대기업들은 80년대의 3저 호황과 90년대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생존과 변신을 거듭하며 어느덧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들어섰다.

이들 기업이 국내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엄청나게 커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97년 외환위기라는 지각변동 속에서 살아남은 10대 그룹은 과거 30대 그룹을 능가할 정도로 성장하며 국내 기업들의 순이익 대부분을 독차지하게 됐다. 실제로 이들 10대 기업의 순이익은 국내 상장기업 전체 순이익의 70퍼센트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 전체 상장기업 순이익의 17퍼센트에 달하는 3조 원을 벌어들였다.

그렇다면 씨티와 GM이라는 금융과 제조업의 상징적 기업들마저 무너져 내리는 위기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이처럼 놀라운 실적들을 내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한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를 꼽을 수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전체 상장기업들의 연구개발비는 14조 5000억 원으로 매출액의 2.3퍼센트에 그쳤으나 상위 10개 기업은 전체 연구개발비의 60퍼센트에 달하는 8조 70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매출액의 10퍼센트에 달하는 5조 5000억 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이는 전체 상장기업 연구개발비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현대자동차도 매출액의 3.83퍼센트인 1조 원을, 엘지전자도 4.23퍼센트인 9800억 원 등을 각각 연구개발비로 썼다. 이쯤 되면 이들의 성공 뒤에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환율효과와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이라는 외부 요인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환율효과는 특히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우리 주력 제품의 최대 경쟁국인 일본 엔화 환율과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2009년 1~4월 기준 원화가치는 지난해에 비해 약 43퍼센트가 평가절하된 반면, 엔화 환율은 같은 기간 8.3퍼센트나 평가절상되었다. 그만큼 국제 시장에서 우리 수출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확보되었다는 뜻이다.

각국 정부가 내놓은 경기부양책도 영향을 미쳤다. 우선 한국 정부의 세제감면이 5, 6월 자동차의 내수판매 급증을 가져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2009 한국경제, 정말 ‘풍년’을 기대해도 좋을까>, 2009.9.22).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가 한 달 동안에만 30억 달러를 쏟아 부은 신차 보조금 정책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소비능력이 떨어진 미국인들은 저렴하고 연비가 좋은 국내 소형차로 몰리게 되었고, 그 결과 현대와 기아차의 지난달 미국시장 판매량은 전년대비 각각 47퍼센트와 60.4퍼센트가 상승했다.

놓쳐서는 안 될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발 맞춰 GM과 같은 전통 제조업체들이 수익 창출의 무게중심을 금융 부문으로 옮긴 것과 달리 국내 제조업체들은 그러한 추세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 채 여전히 제조업에 몰두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국내 기업들의 선견지명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금융화가 그만큼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금융위기 이후 2009년 2월 자통법을 시행하는 등 오히려 금융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명박정부를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다).

이상의 여러 요인들 덕에 한국의 몇몇 초대기업들은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시장장악력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8.5퍼센트, 중국 시장 점유율은 2.4퍼센트가 확대되었다.

국내 초 대기업들의 선전은 계속될 수 있을까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들게 된다. 그렇다면 국내 초 대기업들은 앞으로도 순항할 수 있을까, 또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수익 덕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우선, 환율 효과나 경기부양책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오래도록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22일 국제 금융컨설팅업체 글로벌 인사이트는 우리나라의 빠른 경기 회복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내년에 1054원으로 내려가는 데 이어 2011년에는 980원대까지 내려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더구나 세제 혜택과 같은 경기부양책은 정책 시행이 만료되는 순간 당연히 그 혜택도 모두 사라진다. 따라서 더 이상 환율과 경기부양책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탱해온 이른바 ‘차입 경제’가 막을 내림에 따라 그 동안 금융회사들의 무리한 대출을 기반으로 창출된 과잉 소비시장도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동차 시장을 비롯해 이미 초과잉 상태에 놓인 생산체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자동차산업의 한해 생산 규모는 약 9400만 대로 실제 소비 여력인 6000만 대를 50퍼센트 이상 뛰어 넘는다. 이미 극심한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 5위의 독일 키몬다가 올해 1월 자금압박으로 힘없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에 뛰어든 국내 초 대기업들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삼성과 현대의 화려한 비상... 그러나 추락하는 우리의 삶

이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국내 초 대기업들의 화려한 비상이 우리네 삶에 보탬을 주고 있을까.
물론 우리의 토종 기업들이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다. 선진국의 밤거리를 밝히는 국내 기업들의 광고판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지 않는가(물론 이들은 한국 기업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우리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그런 정도의 감상적 위안뿐이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굳이 최근 떠오르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거창한 개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이들이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들은 존재한다. 법인세 납부, 고용 창출, 투자 확대 등이 그것이다.

우선,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불황을 이유로 신규 고용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벌써 꽤나 오래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2009년 2월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에 합의한 적이 있다. 임금조정으로 자금을 조성해 신규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퍼센트까지 삭감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이들의 올 상반기 신규 고용은 3만 500명에 그쳐 지난해에 비해 32.6퍼센트나 줄었다. 2009년 하반기에도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역시 30대 그룹이 같은 기간에 집행한 투자금액은 32조 6000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5.7퍼센트가 줄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 직접투자가 2.1퍼센트 늘어난 것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이런 결과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자임한 이명박정부가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법인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며 최고세율을 3퍼센트나 낮추기 시작한 뒤여서 정부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하반기가 시작된 7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기업이 투자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직설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바로 다음 날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위한 투자촉진 방안’을 발표한 것도 재정 여력이 다해 조급해진 정부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대기업들은 감세와 세제 감면(자동차 산업)이라는 특혜를 등에 업고 거기에 임금 삭감까지 단행한 결과 기대 이상의 실적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를 고용과 설비투자 확대로는 이어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이 납부한 법인세 규모도 우리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각종 감면 혜택의 결과다.  2008년 기준 삼성전자가 납부한 법인세는 최고세율 25퍼센트에 한참 못 미치는 6.5퍼센트에 그쳤고, 현대자동차는 19.3퍼센트, SK텔레콤은 15.2퍼센트 등이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수익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 경영 행태가 들어선 이후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이들 대기업 수익의 상당 부분은 주주들에게로 돌아갔다. 적게는 수익의 15퍼센트에서 많게는 수익 전부를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 것이다. 상당 부분이 외국인에게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전체 배당의 무려 43퍼센트를, 현대자동차는 26퍼센트를 외국인 배당으로 지급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에게 지급한 배당 규모와 법인세의 규모가 거의 같은 수준이었고 SK텔레콤은 외국인 배당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나마 지난해는 월가의 유동성 부족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비중이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올해는 다시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고 있어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

삼성과 현대, 우리는 과연 이들과 같은 방에 살고 있을까

한국 1위 기업 삼성전자의 2008년 말 기준 매출액은 73조 원, 당기 순이익은 5조 5000억 원, 이익잉여금 누적액은 55조 원이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초 대기업들이 이처럼 국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를 하는 사이 대다수의 국민들은 실업과 임금 삭감 등의 여파 속에서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1.4퍼센트의 임금 인상률을 받아들여야 했고, 올해 들어 다시 자산시장이 들썩이자 조급한 마음에 다시 부채를 끌어와 주식ㆍ부동산시장을 기웃거려야 했다. 가계부채 700조 원, 주택담보대출 340조 원이라는 지표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다.

기억하겠지만 97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대기업들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대기업들의 무리한 빚잔치도 한국 경제 파산의 주요한 원인이었지만 국민들은 그들에게 막대한 세금이 지원되는 것을 묵묵히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곧 윗목도 따뜻해 질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을 신뢰해서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십여년 간 점점 깊어져만 간 사회 양극화는 ‘한번 윗목은 영원한 윗목’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다시 2009년 오늘의 상황은 여기에 더해 ‘4대 그룹을 위한 따뜻한 안방과 4000만을 위한 싸늘한 곁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 연일 국내외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국내 초 대기업들의 빛나는 성적표를 보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다시 마지막 질문이다.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국내 초 대기업들의 화려한 비상이 ‘당신의 삶에’ 보탬을 주고 있을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