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이슈

경기 본격회복? 낙관하기 이르다... 실물지표는 여전히 악화

최근 경기회복을 확신하는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다수 신문의 8월 10일자 경제면은 IMF가 우리 정부와의 연례협의 결과 보고서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퍼센트로 올렸다는 기사로 장식됐다. 2월에 -4퍼센트로 전망했던 것을 지난달에 이미 한차례 -3퍼센트로 올린 바 있고,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상향 조정했다.

경기회복에 관한 희망 섞인 전망들이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OECD 경기선행지수가 6월에도 상승해 4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고, 최근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도 올해 안에 경제성장 추세가 플러스로 전환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현재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해줄만한 실물지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세계 경제가 경기회복 국면으로 추세적 전환을 했다기보다는 급격한 금융패닉과 그 여파로 인한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케인즈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정치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본가(혹은 투자가)의 심리상태-‘야성적 충동’-이다. 자본가들은 패닉에서 벗어난 징후만으로도 경기회복을 향한 엄청난 진일보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안정화에 뒤이어 실물경제 지표들이 바닥을 확인하고 있다고 해서 경기회복을 낙관할 수는 없다.

세계경제 금융지표는 급호전, 그러나 실물지표는 악화

2009년 3월초부터 지금까지 세계경제의 주요 특징은 각종 금융지표가 급속도로 호전된 반면, 실물지표는 심하게 악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공포지수로 불리는 VIX지수는 2008년 가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AIG의 긴급구제금융 결정 이후 89.5까지 올라갔다가 최근 23 정도로 금융패닉 이전의 수준으로 내려갔다. 비슷한 지표로 사용되는 TED 스프레드 역시 463bp까지 올라갔다가 최근 29bp로 2006년 수준으로 내려갔다.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위의 두 지표가 말해주는 것은 투자가들의 심리상태이다. 투자가들의 리먼 브라더스 이전의 심리적 안정을 찾으면서 부동산을 제외한 여러 자산시장에서 급반등이 일어났다.

                                             [표1] 자산시장의 반등


주가는 다우존스를 기준으로 2009년 초 최저치에 비해 45퍼센트 상승했고, 유가는 무려 112퍼센트, 여러 상품의 종합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상품지수는 82퍼센트 상승했다.

금융시장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안정화 되고 자산시장에서 이 정도의 큰 반등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금융패닉 발생 이후 각국 정부가 취한 신속한 개입정책과 국제공조에 기인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1930년대 대공황 때와는 달리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지배계급은 ‘아이러니’ 하게도 지난 30년 간 자신들이 열심히 반대해온 국가개입 장치 덕분에 위와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각국의 긴급구제금융 투입과 경기부양자금 투입이 금융패닉을 진정시키고 자산시장의 반등장 형성에 기여했지만, 이것이 곧바로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순 없다. 최근 자산시장의 급반등은 그동안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던 실물경기가 바닥을 형성할 것이라는 확신에 기인한 것이다. 즉, 앞으로 실물지표들이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미리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실물지표들이 호전될 때에는 그 속도에 따라 선반영 된 자산시장의 지표들이 크게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회복까지 길고도 험난한 길

경기회복으로 가는 길은 길고도 험난할 것이다. 8월 7일 발표된 7월 미국 실업률의 경우, 전달의 9.5퍼센트에서 9.4퍼센트로 0.1퍼센트 낮아진 것이 세계 주식시장의 상승을 견인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실업률이 연내 10퍼센트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며, 아직 추세가 전환된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런 논평을 내놓았다. 미국의 실업자 수는 1450만 명으로 사상 최대이고, 현재의 실업률은 여전히 대공황 이후 최대를 기록했던 1982년 11월의 10.8퍼센트를 위협하고 있다. 실업률이 0.1퍼센트 줄었다고 하지만, 7월에도 여전히 농업을 제외한 전체 산업부문에서 약 25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생산지수와 설비가동률도 아직 전년동월 대비 13퍼센트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설비가동률의 경우 지난 5월 68.3퍼센트로 체계적인 통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6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렇게 실물지표가 계속해서 침체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패닉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문제점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못했다. 위기의 진원지였던 주택부문의 경우 2006년 5월의 고점에 비해 30퍼센트 정도 하락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실업률 증가와 소득감소로 인해 모기지 상환연체율은 14퍼센트, 주택압류율은 13퍼센트 수준까지 높아져 아직 추세가 반전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부실화된 유가증권의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용평가 기관인 Moody's에 따르면 5월말에 고수익 채권(혹은 정크 본드)의 부도율이 9.2퍼센트까지 올라갔고, 올 연말 13.8퍼센트까지 상승할 것을 예측했다. 이는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도산으로 야기된 위기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의 붕괴로 야기된 위기 때의 수준의 부도율을 능가하는 것이다. 또한 IMF에 따르면 서브프라임 사태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1조 5500억 달러를 손실 처리했는데, 앞으로 1조 달러 이상이 추가로 손실처리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1] 코스피 지수(2007년 1월 2일을 100으로)

한국 경제의 회복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측에 속하고 성장전망도 밝다는 분석이 최근 경제신문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699bp까지 치솟았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현재 130bp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또한 한때 1달러에 1600원까지 올라갔던 원/달러 환율이 지금은 1200원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금융시장의 안정과 더불어 무역수지 흑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불황형 흑자이긴 하지만, 이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결과 2분기 대기업의 영업실적이 무척 양호하게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코스피 지수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는 코스피가 2000까지 올라갔던 2007년 초 수준을 돌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위의 그림 참조).

                                        [그림2] 투자증가율(전년동기대비, 퍼센트)

하지만 이런 낙관적 상황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생산에 투자를 늘리고 있지 않다. 정부의 압력으로 대기업들이 가끔 투자 계획을 신문지상에 발표하곤 하지만, 며칠 지나서 보면 몇 년 간 투자계획을 연기했다는 기사가 나오곤 한다. 위의 그림을 보면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 잘 나타나 있다.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는 건설 분야에서는 투자가 전년동기보다 증가했지만, 여타의 산업분야에서 2009년 2분기 설비투자는 17.2 퍼센트 축소되었다. 1분기 보다는 조금 호전되었지만 조만간 의미 있는 규모의 설비투자 증가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지금까지 경제성장률과 관련해 호전된 상황을 이끌어 낼 수 있던 것은 정부의 대규모 재정투입에 의존한 것이었다. 앞으로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연출한 효과가 끝나면 경기회복에 관련한 낙관론이 다시 고개를 숙일 가능성이 크다. ‘민간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때까지 정부가 계속 부양책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쓰는 돈도 허공에서 쏟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재정투입을 늘릴 수만은 없다. 경제성장에 관한 예측은 그때 가서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경기회복이 시작되려면 새로운 자본축적체제가 제시되고, 그 체제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과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번 위기로 지난 30여 년 주도해온 신자유주의체제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체제’로서의 지위는 잃어버렸다. 다시 그 체제로 돌아가 장기간의 경제성장을 이어갈 수는 없다. 새로운 체제는 사회계급 간 투쟁과 지배계급 내의 투쟁을 통해 그 모양을 갖추어 갈 것이다. 그때까지 세계경제는 진폭이 그리 크지는 않겠지만 낙관과 비관이 뒤섞이며 요동칠 것이다.

박형준/새사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