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2라운드 중간점검①] 금융시장 불안에서 국가재정 불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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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도>

대공황이 도래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였던 지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최근 경제 심리는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더 이상의 파산 소속이 주춤해지자, 한국에서도 주식과 환율 시장이 안정되고 소비와 투자가 바닥을 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제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보다 인플레이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까지 하다. 그동안 지나치게 공급된 유동성과 초 저금리가 경기 상승기에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이다.

개별 현상이 경기 회복의 선행 신호라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아직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 해 9월 터진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이후 일련의 금융 붕괴 사태는 소강 국면에 들어갔지만, 이번 위기의 본질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의 국면은 붕괴를 막기 위해 예전의 ‘버블 경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즈음에 현 상황을 냉철히 돌아보고자 한다.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를 낳았으나 21세기 현 위기 국면에서는 아직 새로운 질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 질서에서 구축된 세계경제, 최소한 한국경제의 위계구조가 바뀐 것은 없다. 따라서 붕괴를 예견하기에 앞서 새로운 ‘취약성’이 무엇인지 일차 정리가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

이번 연속 기획은 현재의 소강 국면에서 핵심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네 가지 지점을 정리하였다. 처음과 두 번째 글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는 시각을 제공하고, 세 번째와 네 번째 글에서는 한국 경제정책의 핵심 이슈를 점검한다.

첫 글에서는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선진국 경제의 적자재정’ 문제를 다룬다. 선진국들은 위기를 내부화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가까운 시일 안에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은 물론 국민 실질소득의 하락을 초래해 실물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두 번째 글은 다시 일기 시작한 ‘거품의 붐(boom)-버스트(Burst)’ 현상을 이론적으로 해석한다. 이 글은 현재의 위기 극복 과정이 ‘거품의 붕괴를 새로운 거품으로 돌파’하는 경향임을 밝힐 것이다. 1990년대 미국 ‘IT 거품 붕괴’ 이후 시작된 초 저금리 정책,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벤처 거품’과 ‘신용 카드 거품’이 역시 동일한 과정이었다.

세 번째 글은 한국의 고용 악화 문제를 다룬다. 5월 들어 10년 이래 최초로 신규취업자가 20만 명 이상 감소한 것은 여성 취업자의 감소가 결정적이었다. 경제위기 이후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고용 악화가 자영업자의 몰락과 비정규직의 감소에 이어 여성 전반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형국이다. 현재의 고용 진단에서 중요한 점은 자산 시장의 회복과는 별개로 ‘고용 빙하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네 번째 글은 한국 정부의 재정정책을 점검한다. 정부의 정책효과는 상반기 경제침체를 저지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정책효과는 감세정책, 지출 확대 정책 그리고 저금리 정책의 3대 축으로 구성된다. 현재의 정책효과는 통화량과 유동성의 확대, 그리고 건설투자의 확대에 국한되고 있으나 이는 하반기에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책효과가 소득과 소비, 그리고 투자라는 실물 쪽에서 나타날 징조는 현재로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들어가며


전 세계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미국의 대형은행들의 사정이 많이 좋아졌나 보다. 5월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진단하더니, 6월 11일에는 미국 재무부가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TARP)의 지원을 받은 10개 대형은행들의 상환을 허용하기로 했다 한다. 구제기금 7,000억 달러 가운데 AIG를 포함한 금융기관 전체에 제공된 금액은 3,650억 달러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 중 680억 달러 규모의 상환을 승인받은 10개 은행이 차지한 몫은 약 1,970억 달러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 은행들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나왔는데, 이렇게 빠르게 재무건전성을 회복하고 돈을 갚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는 안 된다. 그동안 세계 금융회사들은 약 1조 4,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상각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IMF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발생한 파생상품 관련 손실이 총 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핵심이었던 이 파생상품 관련 손실이 지난 달 발표된 미국 FRB의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는 아예 제외됐다고 한다. 게다가 테스트의 주요 항목이었던 기본자기자본비율의 경우에 단순히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함으로써, 추가적으로 자금을 유입하지 않고서도 형식적인 자산건전성을 높이는 편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형 금융그룹을 위시로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단순한 눈속임으로 금융시장의 통제권을 되찾아오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건전성과 수익성에 자신감을 회복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경제위기와 관련된 뉴스의 초점이 각국 정부의 재정건전성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대규모 재정적자를 통한 자본구제

20세기 저명한 주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인용해 유명해진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즉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2007년 표면화된 서브프라임 사태가 2008년 가을 금융공황으로 폭발하고, 이후 신용경색→ 부채 디플레이션→ 투자/소비심리 위축→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면서 국가가 자본주의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국가는 시장에 간섭하면 안 된다”고 귀가 닳도록 들어 왔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진부한 경구가 되어버렸다. 각국 정부는 최악의 사태를 막고자 대규모로 구제금융기금, 경기부양자금, 자본구조조정자금, 고용안정자금을 퍼부으며 시장에 개입하였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조치들이라고 말한다. 안 그랬으면 전 세계 정치경제 체제가 다 무너져 버렸을 거라고.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투입된 어마어마한 돈이 땅에서 그냥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제공한 돈은 정부의 재정지출이고, 이 돈은 세금을 걷어서 만든 정부예산의 일부이거나, 예산이 부족한 경우에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만들어 낸 돈이다. 결국 각국의 국민들이 갚아야할 빚이다.

그림2는 선진 20개국의 재정수지적자 규모와 정부 총부채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부터 재정수지적자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고, 그 결과 정부의 총부채 규모도 따라서 높아졌다. 올해 이들 국가의 재정수지적자 예상치 평균은 GDP대비 약 10퍼센트에 이르고, 이로 인해 늘어나는 총부채의 규모는 GDP대비 106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몇 년간 재정수지적자 규모는 올해보다 줄어들겠지만, 총부채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4년에는 GDP대비 114퍼센트에 이르고, 이들 선진국의 국민들 1인당 부채가 약 5만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았다(IMF).

재정문제와 돈맥 경화의 모순적 관계

단기적으로 볼 때, 엄청난 규모의 재정투입으로 금융공황을 진정시켰다는 의미에서 각국 정부의 시장개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경제 불황 국면에서 소위 V자 회복을 하지 못한다면 선진국들의 재정문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경제위기를 오히려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림2의 IMF전망은 경기가 점진적으로 회복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은 줄어들고 세수는 증가한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실물 경기침체가 생각보다 오래간다면 국가부채는 예상보다 더 늘어나고 각국의 신용도는 낮아져 국채 발행에 더 높은 값을 치러야 한다. 이는 또한 국민경제를 부정적으로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여러 국가가 한꺼번에 국채를 발행하여 재원을 확충하려 하기 때문에 국채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에서 높은 금리의 국채 판매가 늘어나면, 이에 자본의 수요가 몰리면서 민간투자는 오히려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더디게 하는 모순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미국 재무부 국채발행 이자율의 꾸준한 상승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림3을 보면 지난 3월 18일 2.51퍼센트였던 이자율이 꾸준히 증가하여 6월 10일 현재 3.9퍼센트를 보이고 있다. 3개월이 채 안 되어 50퍼센트가 오른 것이다.

세계 정치경제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은 국채 발행에 큰 문제가 없지만, 여타의 국가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꺼번에 여러 국가가 대규모로 국채를 발행하게 되면 더 높은 이자율을 제공해야 하고 일부 국가는 국채를 제대로 팔지 못해 재정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국채발행에서 생긴 문제가 그 나라의 자금조달 전반에 악영향을 미쳐 외환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영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도 이런 상황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난처한 향후 정책수단

금융기관들의 사정이 한결 나아졌다고는 하나, 세계경제 혹은 국가경제 전체로 볼 때 문제가 해결되었다기 보다는 ‘소관부처’를 옮긴 것이라고 보인다. 각국 정부가 위기를 막고자 늘린 엄청난 규모의 통화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의 과감한 재정정책으로 늘어난 시중자금이 실물경제 쪽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자금들은 여기저기 단기적 투자처를 찾아 옮겨다니며 자산시장의 반등을 이끌었고, 특히 최근의 유가가 급등해 가장 걱정스럽다.

2009년 2월 30달러 가까이 내려갔던 국제 원유 가격이 6월 11일 기준으로 72달러까지 급등했다. 실물경제의 침체가 아직 바닥을 확인하지 못한 시점에서 유가가 다시 70달러를 돌파한 것은 경기회복의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유가 상승은 모든 제품 가격이 오르는 근거가 되는 요소이다. 그 동안 시중에 풀린 돈과 유가의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물가의 전반적인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펼쳐질 때 각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은 애매하다. 물가인상을 걱정하여 이자율을 높이거나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면 신용경색이 심해져 투자가 더욱 축소될 수도 있다. 한편 그냥 있으면 돈이 실제 산업 쪽에 흘러가지 않으면서 물가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즉 생산과 소비 모두가 위축되면서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어려운 경기전망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된 대규모 재정이 가져올 여러 문제 중 가장 큰 잠재적 위험성은 국제통화질서의 붕괴에 있다. 미국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면서 부채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달러의 상당량이 증가하면서 미국의 국가신용 문제가 제기되었고 달러가치 하락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국제 금값과 원유가의 상승은 이런 우려가 상품시장에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즉 국제 기축통화인 미국의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쪽으로 투자자들의 컨센서스가 이뤄지면서 보편적 화폐로 상징되는 금 가격과 가장 보편적인 상품으로 인정되는 원유 가격에 대비해 달러 가치의 절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달러 가치의 하락은 곧바로 미국 채권에 투자한 중국을 위시로 여러 나라의 자산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당장 채권을 팔고 나올 수도 없다. 대규모 매도가 일어나면 그 가치는 폭락해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고 난 다음 마땅히 다른 곳에 투자할 대안이도 없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고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마냥 지켜만 볼 수도 없다.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제통화체계의 교착상태가 이어질 수 있으며, 이 와중에 전 세계경제는 여러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박형준/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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