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6.11 17:13
적정 외환보유고 논쟁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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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충격이 주는 막대한 영향

금융위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환율이 1,200원 수준에서 안정되어 급격한 불안정성이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 1월초 기준으로 2,012억 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수개월 동안 이어진 무역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세에 힘입어 2009년 5월말 기준 2,267억 달러 이상으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에 다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확보해 두자는 것이다.

지난 5월 28일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장이 "경상수입액과 유동외채, 외국인 주식자금 유입액 등을 감안해 볼 때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 정도 돼야 위기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외환보유액을 1,000억 달러 이상 늘리자는 주장과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에 정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관망하고 있다.

사실 주식시장, 대출시장, 채권시장과 달리 외환시장은 주로 은행들이나 해외 금융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금융시장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은 기억이 뚜렷한 우리 국민들에게 외환시장의 불안정성과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주요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걱정이 괜한 기우가 아님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09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급격히 확산되자 한국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외환시장이었다. 1,100원대를 오가던 환율이 순식간에 1,500원 선을 넘었는가 하면, 외환보유고는 2008년 9월 2,400억 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3개월 만에 2,000억 달러에 턱걸이를 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300억 달러 한미 통화스왑이 없었다면 2,000억 달러마저 무너졌을 것은 분명하다.

외환위기는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의 외환지불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졌고, 외신들은 잇달아 국내 시중은행발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으며 시중은행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내려가면서 위기는 증폭되었다. 1997년 이후 엄청난 기회비용을 감수하며 축적해왔던 세계 5위 규모의 막대한 외환보유고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단지 외환지불능력 문제만 터져나왔던 것은 아니다. 환율 폭등으로 글로벌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의 수입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외환관련 파생상품 손실이나 외환헤지손실은 곳곳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었던 KIKO와 환변동보험 상품에 의한 기업손실이 총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자본시장연구원, “세계 외환시장의 최근 흐름과 국내 외환시장 안정에 대한 시사점”, 2009.5).

GM대우는 2008년 자동차 판매 영업이익으로 2,300억 원을 남겼음에도, 외환 손실이 1조 원을 넘겨 큰 손해를 봤다는 회계결과도 발표한 바 있다. 2009년 들어 무역수지는 큰 폭의 흑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이후 자본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본 것도 외환 파생상품 손실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결과이기도 하다.

외환보유고는 얼마나 쌓아야 안심할 수 있을까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 통화가 고작 0.5퍼센트 수준의 중요도 밖에 안되는 실정에서 우리 정부는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대처하면서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외환시장과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해야 한다고 여겨왔다. 그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은 외환보유고를 쌓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이 문제를 거의 사활을 건 과제처럼 다뤄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때 100억 달러도 안 되었던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001년 9월 기준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05년 2월에는 다시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때 환율이 떨어지면서 수출업체에게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었다. 한때 외환보유고가 너무 많다며 외환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해외투자를 촉진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던 적도 있었다. 당시 환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끌어올리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는 실제적인 시장개입을 하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2008년 3월 외환보유고는 2,642억 달러로 최고 수준에 도달해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에 이어 5위에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환율은 올라갔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직후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2,400억 달러를 넘겼지만, 급격한 외환시장의 불안과 환율 폭등은 막지 못했다. 결국 “최후 지불수단이 2,400억 달러나 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외환 보유고) 수준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최근 몇 달 동안의 경험이었다.”는 평가가 나올만 했던 것이다(금융연구원, “외환보유액과 원화의 위상”, 2009.3.)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3개월 수입물량 지급대금 정도의 외환보유고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3개월분 수입결재 대금 외에, 1년 안에 돌아오는 외채를 상환할 수 있는 금액이 더해져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추가로 외국인들이 투자한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를 대량 회수할 것까지 감안한 외환보유고가 쌓여야 한다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신흥국들의 자본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환율제도와 외환거래가 자유화된 것과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주식투자나 채권 투자, 파생상품 투자 등)가 급증하고 그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금융위기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개방화되고 자유화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환투기 세력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그 정도가 심화되었다.

현재 외환보유고 확대 논란도 사실상 그 연장선에 있다. 2009년 3월말 기준으로 단순 계산을 해보자. 현재 3개월치 수입 금액은 712억 달러이다. 그리고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뜻하는 ‘유동외채’는 1,857억 달러이다(한국은행, “2009년 3월말 국제투자대조표 분석”, 2009.5)

여기에 외국인이 보유한 포트폴리오 투자(주식투자 +채권투자) 금액은 2,436억 달러이니, 이 가운데 1/3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최악의 가정을 해보면 812억 달러 정도가 나온다. 이를 모두 합하면 산술적으로는 3,381억 달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5월말 현재 외환보유고가 2,267억 달러이므로 추가로 1,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쌓아야 안심이 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런데 이정도 규모면 외환시장 안정과 환율 안정을 이룰 수 있겠는가? 문제는 누구도 이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것은 2008년 10월 금융위기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과연 그 정도의 외환보유고를 확보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한 걸까. 2조 달러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는 세계 1위 외환보유국 중국이 과연 외환보유고 때문에 환율이 안정되어 있을까, 아니면 관리변동 환율제 때문일까.

세계 2위 외환보유국으로 약 1조 달러 가까운 외환을 보유한 일본의 단기외채가 1조 3,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은 또 무엇을 말해 주는가. 외환보유액이 1,500억 달러인 홍콩의 단기외채는 5,000억 달러를 넘는다. 이런 사실은 무얼 의미하는 건가. 외환보유고가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은 되겠으나, 근원적인 안정화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상당히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끝까지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면 답이 없다

외환 변동성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2008년 9월부터 최근의 외환보유고 확대 논쟁까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종합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외환시장 변동성이 매우 커지면서, 외환시장의 불안이 금융시장은 물론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는데 공감하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한다.

▶ 단기적으로는 유동외채를 감당하는 것은 물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것을 감안해서 외환보유고를 확대하자. 외환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기에 들어가고 환율이 하향 안정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이 좋다. 아울러 통화 스왑을 확대해 안정적인 외화 조달 통로를 확대하자. 그러나 외환보유고 확대를 위한 달러 매입으로 원화 통화가 지나치게 풀리고 달러 매입을 위한 외평채 발행 부담이 생기는 문제를 고려하자. 외국 특히 미국에서 ‘환율 조작국’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유의하자.

▶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경제규모 세계 14위인데 비해 외환시장 규모가 18위로 아직 작기 때문에 외환시장 규모를 키워서 외화 유출입으로 인한 변동성을 최소화하자(한국금융센터 창립 심포지엄 발표에서 <프레시안> 2009.5.15). 이 정도가 거의 대책의 전부인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가정이 있다. 외환시장 불안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고, ‘개방된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을 다시 뒤로 돌리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는 가정을 미리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많은 대책이 나와도 한결같이 시장적 접근 방식의 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준비해서 필요한 때에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거나 사들이는 식으로 외환시장을 안정화시키자는 주장도 그렇고, 외환 시장 규모를 키워서 불안정성을 최소화 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제가 필요한 금융부문은 바로 외환시장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파생상품이 문제가 되고 있으므로, 미국처럼 주택금융시장이 아니라 바로 외환파생상품시장을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금융규제를 이야기 한다면 반드시 외환시장 규제를 말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0여년간 외환시장에서 정부가 취한 규제완화, 자유화 조치들을 엄밀하게 재검토하고 현재 시점에서 재규제를 하거나 새롭게 규제할 영역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지난 신자유주의 30년간 완화되거나 폐지되면서 지금의 금융위기를 일으킨 각종 규제를 재도입하기 위해 다양한 검토를 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이 “이미 개방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보유고가 불어나고 환율이 떨어지자 해외투자 등을 독려하면서 외화의 해외유출관련 규제를 폐지했던 2005년의 자본거래 허가제 폐지를 복원시키는 문제는 심각히 검토할 만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당시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거래 허가제는 “유사시 안전장치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보완장치의 하나로, 환투기 조장 등을 통해 국내 외환 및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자본 거래에 대해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를 얻도록 한 제도”였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한국 주식시장에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인투자 비중을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최근 환율변동성은 외국인 주식 매매 동향에 의해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외환위기설이 모두 국가채무 문제라기보다는 시중은행들의 과도한 단기차입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은행의 단기차입 비중을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은행 단기차입 폭등의 이유가 주로 국내의 해외투자나 선박수주에 대한 선물환헤지 때문이라고는 하나, 단기차입이 커져서 환율이 크게 요동친다면 본래 헤지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고 오히려 환헤지로 인한 손실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관전에서도, 외환시장 규모를 키워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것은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시장 규모가 세계 18위로 경제규모보다 작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순위 문제가 아니라 규모의 격차 문제다. 세계 외환시장 일일 거래량은 2007년 기준으로 3조 2,000억 달러이고 외환파생상품을 포함하면 4조 달러에 이른다(새사연, 한국 경제의 큰 구멍, 외환시장, 2009.4)

그런데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일일 거래량은 고작 300억 ~ 500억 달러 수준이다. 세계 외환시장 규모의 1/100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규모를 조금 키운다고 해봐야 한 번에 수십억 달러씩 움직이는 환투기 세력과 ‘시장 안에서’ 경쟁하여 외환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규모 금융개방경제’에서 규모로 승부를 본다는 것은 자기모순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최근 달러 기축통화체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면서 아시아 통화 바스켓 등 글로벌하게, 그리고 지역별로 새로운 통화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향후 추세를 반영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아시아 통화체제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함께 연동시켜 우리의 환율제도 개혁을 검토하는 것이 먼저지, 외환시장 규모를 키우자는 것이 앞으로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외환시장에 대한 시장지상주의를 극복하고 규제와 제도개혁을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 때가 되었다. 이것이 외환보유고 확대 논쟁보다 중요한 이슈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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