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6.09 15:26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민주당의 반성

한때 존재감마저 상실했던 제1 야당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추월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일각에서는 ‘우향우’ 조짐을 보이던 민주당이 ‘좌향좌’로 방향을 선회할 것이라는 성급한 진단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국민의 요구를 거스르다 거센 저항에 부딪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고 눈앞에 닥친 정치-경제-남북관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국에서 민주당의 방향전환은 바람직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지 여부는 지난 5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뉴 민주당 선언(초안)’의 향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10월 ‘뉴민주당비전위원회’를 꾸리며 야심차게 준비된 ‘뉴 민주당 선언’은 발표되자마자 각계의 혹독한 비판을 받은 것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 조차 심각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은 ‘초안’ 수준인 뉴 민주당 선언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보다 진보적으로 수정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정세균 대표는 6월 4일 열린 의원워크숍에서 "개혁이라고 해도 좋고, 진보로 표현해도 좋고, 어쨌든 당의 진보적 색깔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적절한 우리의 포지셔닝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연합뉴스>, 2009.6.5).

새사연은 ‘뉴 민주당 선언 초안’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추모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여 민주당의 획기적인 방향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번 초안이 앞으로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수정 혹은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경제정책 측면에서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민주당의 잘못된 시대인식

기실 뉴 민주당 선언(이하 선언)이 ‘보수와 진보의 낡은 이분법’, ‘현대화’, ‘포용적 성장’이라는 수식어를 동원해 다수 언론의 지적대로 오히려 참여정부에 비해 보수적 색채를 강화한 것은 분명하다(뉴 민주당 선언(초안) 기자회견 자료 참조). 이런 결과는 잘못된 시대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선언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체성의 기초가 될 시대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선언에 집약된 시대인식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세계화와 지식정보화가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결과 경쟁력과 가치의 원천이 물적 자본에서 ‘사람’으로 이동하였고 따라서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한때 영국에서 유행한 사회투자 국가론을 참조한 듯 하다).

이어 선언은 세계화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도 바로 양극화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 국내적 요인으로는 일자리를 확충하지 못한 ‘정치실패’를 꼽고 있다.

선언에는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반성도 담겨 있다. “동반성장과 양극화 극복, 지역 균형발전 등 참여정부와 민주화세력이 표방한 기본 가치와 정책 방향은 옳았지만 정책수단이 유효하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드러나듯 주요한 실패의 원인을 정책방향이 아닌 정책수단 선택의 오류에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을 토대로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맞게 내놓은 기본 방향이 바로 ‘현대화’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이러한 시대인식이 과연 2009년 현재 시점의 시대인식으로서 타당한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만큼 ‘뉴 민주당 선언’에 오늘의 시대 상황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정책의 근간이 될 시대인식이 이럴진대 하물며 정책방향이나 정책수단들이 시대와 동떨어진 미사여구에 그칠 것이란 점은 더 이상 살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상식 수준에서 봐도 오늘의 시대를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이자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30년 신자유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한 시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선언에는 2007년부터 시작돼 전 세계 경제의 지각변동을 초래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아예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방향전환을 위한 대한민국 제1 야당의 선언문이라고 믿기지 않는 이유다.

민주당은 아직도 2007년 이전의 참여정부 시대를 살고 있기라도 한 걸까. 참여정부의 집권기는 최근 2년 동안의 역사적 대격변 이전, 즉 신자유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한창 위세를 떨치던 시기였으니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역사적 한계를 지녔다고 치자. 그러나 2009년 시점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21세기에 70년대식 개발주의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나, 마치 지금이 신자유주의 전성기나 되는 듯 90년대의 틀 속에 갇혀있는 민주당이나 모두 전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2009년의 시대를 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30년 신자유주의가 사망선고를 받은 시대

그렇다면 2년 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을 도화선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화된 경제의 사슬구조를 따라 전 세계 경제를 마이너스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인류에게 전후 최대의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번 위기는 지난 30년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세계 경제 시스템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안에 곪아있던 문제들이 터지면서 발생했다. 금융을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하고 첨단 금융공학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자본의 투기적 수익을 추구해왔던 경제시스템의 위기인 것이다. 또한 구조적 양극화를 전제로 성장한 신자유주의가 항상적 고용불안과 소득정체를 낳고, 이를 부채를 동원한 가수요로 대체해왔던 경제시스템이 결국 부채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세계적인 소비위축을 구조화시키고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시장은 선이고 국가는 악’이라는 신념에 기초해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를 추진해왔던 신자유주의는 극단적 금융버블과 항상적 고용불안을 내재시켰고, 신자유주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즉, 이번 위기는 일부의 정책적 오류나 감시 소홀의 수준을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 자체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위기인 것이다.

이제 글로벌 경제는 결코 위기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부실화된 금융시스템은 다시 복원될 수 없을 것이며 부채를 끌어들여 소비를 촉진했던 성장모델도 회복되기는 불가능하다. 막대한 빚을 짊어진 미국 국민들마저 부채를 통한 소비는 고사하고 줄어든 소득조차 급격히 저축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해왔던 거대 금융자본도, 양극화의 그늘에서 고생해왔던 노동자들도 더는 신자유주의로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세계경제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면서 대전환의 격변기에 접어들었다. 60년 이상 미국의 경제적 패권을 지탱해온 달러 기축통화체제는 최대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국제무역에서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성장세를 주도했던 금융자본의 위력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으며 자동차 산업을 축으로 한 글로벌 산업구조 개편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각 국가가 막대한 재정지출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지만 심화되고 있는 소비위축은 경기회복을 어렵게 하며 장기불황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세계경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판단이 민주당의 선언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은, 현 경제위기가 1, 2년 안에 수습되어 이전의 시대로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시대적 판단도 이와 같지 않을까. 다시 말해 선언에 담긴 민주당의 시대인식은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에서도 임시방편적 경기부양책을 쓰고 단기 일자리를 만들면서 의연히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시장화라는 낡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부여잡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시대 인식과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선언이 제기하는 ‘세계화’나 ‘지식 정보화’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특징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첨단화(금융 첨단화)’로 읽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와는 무관한 시대적 특징으로 여기는 순간, 그 역사성은 사라진 채 그저 추상적이고 기술적인 의미만이 담긴 앙상한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양극화 때문인가

격동하는 경제 흐름에 대한 인식이 출발부터 어긋나 있었기에 한국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도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선언은 “한국사회 최대 문제는 양극화 심화이다. 양극화 해소는 시대정신이 되었다”며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양극화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양극화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의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핵심은 양극화가 어디로부터 유래되었고 어떤 문제로 증폭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다. 대다수 식자들은 양극화가 단순히 세계화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경제시스템에 내재된 필연적 결과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신흥국가와 개발도상국에도 자유화, 개방화를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요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질서에 편입시켜 왔다. 특히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개방이 급속히 진행되어 금융 세계화의 영향권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고, 동시에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을 강화하여 내수 대신 해외 소비시장의 의존도를 높여왔다.

그 결과 글로벌 경제위기가 선진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은 과도한 금융 자유화와 개방으로 인해 외부 충격에도 쉽게 외환시장, 주식시장, 대출시장 등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이는 곧 실물경제에도 타격을 입혔다. 최소한의 내수기반도 미흡한 수출지향형 발전전략마저 세계 소비수요가 위축된 환경에서 모두 한계에 직면하면서 한국형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역사적 대전환의 추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신자유주의의 정책 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시장화 정책을 금과옥조로 삼아 밀어붙이고 있다. ‘금융기관을 금융회사로 바꾸자’며 오히려 금융 민영화, 시장화 논리를 강화하고 있으며, ‘노동유연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을 확대하려 한다. 근거 없는 경기 조기 회복론을 꺼내들며 6개월짜리 일자리, 10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로 당면의 경제위기에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되짚어보아야 할 한국경제의 구조적 과제는, 1)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금융 개방경제’이며, 2) 내수기반 없는 ‘수출 의존형 무역시스템’이며, 3) 내수 기반을 무너뜨리면서 양극화 확대를 초래한 ‘노동 유연화 정책’이다.

특히 양극화 확대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직접적으로 촉발되고 있는 것이지 ‘일자리 위기’ 때문이라거나 복지제도를 경원시한 ‘정치실패’ 때문이 아니다. 일자리를 조금 더 만든다고 양극화의 가장 큰 문제인 비정규직이 줄어들 리가 없다.

결국 지금 민주당이 내놓은 ‘선언’을 가지고는 당면한 한국경제의 다층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없다. ‘쌍용차 위기’의 해법도 ‘선언’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고용대란의 해법도 선언에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국민의 정부시절 ‘생산적 복지’를 편바가 있고, 참여정부 역시 시종 ‘동반 성장전략’을 강조하면서 양극화 해소를 주요 과제로 끌어안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양극화가 오히려 확대되었는지를 민주당은 심각히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언에서 주장한 ‘포용적 성장 전략’ 역시 앞선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유희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차라리 ‘포용적 성장’이라는 개념보다는 ‘동반성장’이 개념 그 자체만으로는 더 낫지 않을까.

우리 헌법의 119조 정신에서 다시 출발하자

우리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지금은 선언의 표현대로 “21세기 세계화, 지식정보 시대에서는 과거의 좌파와 우파는 낡은 개념이 되었다”며 한가한 고담준론을 나눌 때가 아니다.

사실 과거식 우파와 좌파는 낡은 개념이 되었는지 몰라도, 21세기에도 엄연히 좌와 우는 존재한다. 지금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지목하여 ’부자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살려내려고 하는 것은 왜인가. 특정 계급과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순간 좌와 우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부질없는 짓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사회 양극화 사회에서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쓸모없는 정책이거나 실상은 가진 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절실한 것은, 그 동안 경제의 유일한 가치로 떠받들던 ‘시장 지상주의’와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실패한 이념을 버리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확정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최소한 우리 헌법이 기초하고 있는 헌법의 경제 정신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면 될 것이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경제 민주화의 정신을 출발선으로 삼아 이를 발전적으로 살려나간다면 한국 경제 대전환의 시작은 가능할 수 있다.

급박한 경제위기 현실에서 굳이 좌와 우의 불필요한 이념논쟁을 피하고 싶다면, 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헌법의 경제조항 정신에서 다시 국민적 합의의 기초를 세우고, 동시에 6월 항쟁의 한계를 뛰어넘어 21세기적인 가치를 함께 찾아나가면 된다. 새삼스럽게 ‘현대화’니 ‘포용적 성장’이니 ‘기회, 정의, 공동체’니 하는 추상적 개념을 끌어다 쓸 필요가 없다.

공공성 회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선언’에서 성장을 주장한다고 터부시할 생각이 없다. 진보가 성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보수가 분배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기 때문이다. ‘선언’이 시장과 정부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강조하는 것 역시 부정할 생각이 없다. 이미 경기 부양책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국가의 시장개입은 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얘기가 아니다. 성장을 주장하면서 ‘금융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추켜세우고 금융개방을 가속화시키는 한, 기업의 수익성 확대를 위해 ‘노동 유연화’를 고집하는 한 그런 유형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소득 양극화 해소와 양립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금융시장에서의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계속되는 한,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국가가 고용보호를 위한 어떤 적극적 정책도 고려하지 않는 한, 국가의 적절한 역할이란 그야말로 수식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최소한 현재 경제 질서의 대혼란을 초래한 금융 산업에 대한 명시적인 정책전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의 수익성 경쟁은 필연적으로 투기화와 부실화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반드시 금융산업을 수익산업이 아니라 인프라 산업으로 전환시켜 경제 안정화와 지속성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정책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금융을 인프라 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금융이 수익성 중심이 아니라 공공성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하며, 대외적으로는 무분별한 금융 자유화와 개방화를 피하고 대외 충격을 통제할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한국경제의 내수 취약성도, 체질 약화도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고용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구조적인 고용불안과 양극화 현상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에서 시작되었다. 국가의 시장개입이 가장 필요한 경제영역이 바로 고용이다. 국가는 국민 고용을 전반적으로 책임지는 위치에 서야하며 완전고용을 최고 목표로 추구해야 한다. 부채에 의한 가수요가 아닌 노동소득에 기초한 건전한 소비로 내수를 살리고 국민생활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세기적인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가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이익이 날 때에는 사적으로 독점하다가 손실이 나면 이를 사회화’시키고 있는 경제시스템을 구조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추구해야 할 가장 큰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기회, 정의, 공동체’라는 공허한 개념들이 아니라 ‘사회 공공성 회복’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역사의 쓰레기 더미에 팽개친 ‘공공성의 가치’를 회복하는 길에 양극화 해소의 길도 있으며 민주주의를 경제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길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왜 우리 국민이 ‘서민 대통령’을 잃은 슬픔으로 이해하려 하는지를 민주당이 제대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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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의 직장내성희롱 살인사건 범행지도 아니고
    피의자 주소지도 아닌 곳에서 은폐조작하여 수사한 것을
    피해자 가족이 살인사건 위증한 거 밝혀 내고 대한송유관공사 법무팀과 노사협력팀의
    사자 명예훼손한 거 밝혀 내야 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살인자 옹호하는 집단인가?
    경찰,검찰,판사들은 직업이 브로커인가?
    대기업한테 잘 보여 떡고물 챙기려고 한 짓인가? 그 것이 궁금하다.
    전직 대통령도 죽음으로 몰고가는 미친 사법부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
    살인자는 보호하고 선량한 국민을 전과자 만드는 나라.
    내 딸 살려 내라! 이 에미는 오늘도 통곡한다.
    범죄피해,언론피해,사법피해까지 당한 대한민국의 대표엄마입니다.

    2009.06.10 01:06 [ ADDR : EDIT/ DEL : REPLY ]
  2. 글 잘 읽었습니다. 정답은 단순한 이념논쟁보다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버리고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자유시장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새사연도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계신건 아니겠지만요.. 글 추천해 드렸습니다. ^^;

    맞어 제가 예전에 쓴 글에도 나와 있지만 자유시장경제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신자유주의의 장점을 취하면서도 관료들의 부패를 막고 시장 주체(가계/기업/정부)들간의 충돌을 최대한 막는 것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이 심각하게 착취당하면 정부가 그걸 적절히 통제해 부조리를 해소해 주어야 그게 진짜 멋진 자유시장경제 체제라 할 수 있겠죠.

    2009.06.16 15:26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