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 5. 20. 13:20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금융이 정부 소유였을 때 금융기관이지, 금융기관이라는 말이 적합한 용어냐"고 반문하고, "금융기관이라는 용어는 관치금융시대의 느낌이 난다"며 "금융회사로 용어를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조만간 정부의 공식문서에서 ‘금융기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금융계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관치금융의 폐해 아래 왜곡되어온 사실을 국민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터에 대통령이 직접 용어까지 바꾸라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핵심은 거기에 있는 것 같지 않다. 금융에서 ‘공적인 기관’의 이미지를 이름에서조차 완전히 지우고 확실히 수익성 추구를 제일 목적으로 하는 ‘사적 기업’으로 전환하자는데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이익이 날 때는 사적으로 독식하다가 손실이 나니 사회에 떠넘긴다”며 전 세계가 현대 금융자본의 탐욕적 이익추구를 지탄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대통령은 오히려 금융의 사익추구를 더 부추기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우리의 중요한 과제”라며 신자유주의식 노동 유연성을 강조한데 이어 이튿날 나온 금융기관 용어 변경 발언은 우리 경제정책의 시계바늘이 확실히 거꾸로 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 은행들은 이미 ‘금융회사’

전 세계를 불황의 늪으로 빠뜨린 지금의 금융위기가 규제를 받지 않고 위험수위를 넘어서 무리한 수익경쟁을 추구해온 금융회사들의 행태 때문이라는 사실은 일단 접어두자. 한국 경제와 금융이 적어도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과연 관치금융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는지 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관치금융 논란의 핵심에 있었고, 이 대통령이 ‘금융회사’로 명칭을 바꾸라고 지목한 우리나라 시중은행들을 돌이켜보자.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산업과 기업 영역에서 신자유주로의 대대적인 변화가 일었지만, 그 중에서도 은행의 변신은 가히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국내 시중은행들의 수익은 모두 합해봐야 1조 원도 안 되었다. 하지만, 기업대출을 주로 해왔던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된다. 우선 은행주식의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이 풀리고 은행 민영화 방침이 천명되면서 부실화된 은행들에 대해 외국 금융자본이 공격적으로 지분을 매입한다. 그 결과 미처 민영화 수순을 밟지 못한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은행들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50퍼센트를 훌쩍 넘게 되고 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은 아예 외국계 은행이 되었다. 이는 이후 ‘선진 금융기법 도입’이라는 이름 아래 시중은행의 경영양상을 뒤바꾸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영화되면서 외국인 지분이 다수를 차지한 은행들은 전통적인 자금중개 기능을 포기하고, 수차례의 은행간 인수합병을 통해 공격적으로 규모경쟁과 수익경쟁에 뛰어든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의 자산규모는 이미 200조 원대를 돌파했고, 나머지 은행들도 100조 원대를 넘는 규모로 자산팽창을 해온 것이다.

금융위기 직전에 시중은행들의 당기 순이익은 이미 16조 원을 돌파했으며, 선두 은행들은 각각 2조 원 이상의 수익을 남겨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현대자동차나 SK텔레콤의 수익률에 견줄만한 수준으로 확대된다. 이 대통령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지난 10여년을 지나오면서 ‘금융기관’의 흔적을 없애고, ‘금융회사’로 사실상 탈바꿈되었다.

관치금융이 아니라 ‘주주자본주의 금융’이 문제

은행들이 금융회사로 변신하면서 규모와 수익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온 과정은 우리 국민경제에 치명적인 상처를 낸 연속이었다. 수익경쟁이 본격화된 2001년과 2002년에 신용카드를 대대적으로 남발하면서 신용대출과 수수료 수익을 추구한 결과, 우리 경제는 400만 신용불량자만 양산하는 초유의 카드 대란으로 귀결되었다.

저금리 환경에서 2004년부터 가속화된 주택담보 대출과 PF대출 경쟁은 2006년을 정점으로 엄청난 부동산 거품을 조장했으며, 그 거품이 여전히 꺼지지 않으면서 지금 경제위기의 뇌관으로 잠복되어 있다. 정부규제로 막혔던 주택담보대출이 2007년부터 은행의 펀드 판매로 급팽창하면서, 결국 2008년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은 펀드자산 반토막이라는 상처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소외자 800만 명도 이 과정에서 양산되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소용돌이에 가장 먼저 휘말리게 된 금융조직이 은행이었다. 현재 은행은 예금수신을 뛰어넘는 과도한 대출로 건전성이 심각하게 약화되어 정부의 은행자본확충펀드로 수혈을 받고 있는 중이고, 가계와 기업의 대출연체를 누적시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금융기관’이 ‘금융회사’로 탈바꿈되면서 우리 국민 전체가 지불했던 대가이다.

또한 은행이 가계와 기업의 자금순환을 지원하는 자금중개 기능을 버리고 스스로 수익을 추구하면 국민경제 전체에 어떤 후과를 가져올지 똑똑히 보여준 과정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얼마 전 대표 제조업인 GM대우가 지난해 자동차 판매로 2,300억 원의 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1조 원 이상의 외환파생상품 손실을 보았다고 발표해 세상을 경악시켰는데, 공교롭게도 올해 1분기 은행권에서 최고의 순이익을 기록한 SC제일은행의 경우 전체 이익의 93퍼센트를 외환파생상품으로 벌어들였다고 한다(<이데일리> 2009.5.19). 은행의 수익이 기업의 수익이 아니라 손실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둘 것은, 이 과정이 결코 관치금융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회사로의 변신을 이끈 주역은 관치금융이 아니라 ‘주주자본주의 금융’이라 할 수 있다. 카드대란의 여파로 LG카드가 파산 국면으로 치닫던 2004년, 주채권은행의 하나였던 당시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이 정부의 LG지원 요구를 묵살하고 “나는 주주이외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고 선언한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수익률 경쟁과 규모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은행원들은 계속되는 경영진의 수익률 재고 압력에, 경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규직 고용마저 축소해 엄청난 노동 강도와 수익률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은행 노동자들이 지난 10여년 간 시달렸던 것 역시 관치 때문이 아니라 주주의 압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관치 냄새’를 거론하며 수익성 추구를 제일 목적으로 하는 ‘금융회사’로 명칭을 바꾸자고 한다.

재벌경제연구소마저 금융의 자금중개 기능 복원을 전망하는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대통령이 ‘금융회사’ 발언을 한 같은 날, 삼성경제연구소가 ‘금융패러다임의 변화, 과거 10년과 미래 10년’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향후에 금융이 수익성 추구보다는 전통적 업무인 ‘자금중개기능’으로 복원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그동안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실물경제와의 관련성을 경시하고 금융 산업 독자적으로 수익성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득세”한 결과 현재의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에는 과도한 레버리지 규제와 파생상품 규제 등으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수익추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면서, “금융이 가계로부터 자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하는 중개 기능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 각국 정부와 정책당국자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즉 금융이 예금자 수신을 받아 기업에게 대출해주면서 이자마진을 얻는 쪽에 무게를 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다시금 무게가 실리게 된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성격을 강화하는 쪽으로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전환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재벌정권, 부자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재벌들과도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경제정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재벌연구소가 오버하는 것인가.

하긴 얼마 전까지 시가총액 1위로 금융회사의 모범으로 추앙받던 씨티그룹의 전회장 찰스 프린스마저 지난 5월 19일, "세계 경제사에서 지금처럼 폭넓게 빠른 속도로 파괴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며 "30여년 간 일해왔던 월스트리트는 파괴돼 사라졌다"고 수익추구 중심의 은행시스템 파산을 고백하고 있으니 어찌 삼성인들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연합뉴스> 2009.5.19)

은행을 ‘수익 산업’에서 ‘인프라 산업’으로 대전환해야

결론적으로 현재 필요한 핵심적인 금융정책은 바로 사실상 ‘금융회사’로 탈바꿈한 은행들을 ‘금융기관’으로 돌려놓는 것이지, 정부 문서에서 아예 금융기관 용어를 없애버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여전히 관치금융의 부활을 경계해야겠지만, 현재 금융의 핵심문제는 관치금융이 아니라 끝없이 수익성 추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주주자본주의식 금융인 것이다. 마치 과거 한국 언론이 금융 못지않게 권력의 간섭에 신음하다가, 이후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언론자본의 간섭으로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침해받는 상황이 연상된다. 외환위기 이후 관치의 그늘을 벗어나기 시작한 금융이 실상 관치보다 더 지독한 외국금융 대주주의 혹심한 수익추구 압박으로 금융의 순기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기관 용어를 지워버릴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금융산업을 사적인 ‘수익 산업’이 아니라 공적인 ‘인프라 산업’으로 대전환하는 산업구조 전환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자유화/개방화, 민영화/시장화의 피해가 가장 큰 분야가 바로 금융산업임을 직시하고 시급히 금융산업, 특히 은행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은행을 사적인 ‘수익 산업’으로 전환시킨 주체인 금융대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이 관치로부터의 은행독립 못지않게 어쩌면 더 시급한 문제임을 인지하고 은행자본확충을 위해 투입하고 있는 공적자금을 은행의 ‘소유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지렛대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나마 공공은행으로 남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민영화 정책을 백지화하는 것이 그 출발이 될 것이다.

김병권/새사연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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