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5.13 10:45
'스트레스 테스트'와 세계 경제위기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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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던 미국 금융기관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자산 건전성 평가) 결과가 나오자 미국 내에서조차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하나마나한 검사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워낙 완화된 기준에서 평가가 실시된 데다가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탓에 금융기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테스트

생물학에서 ‘스트레스’란 외부의 자극에 대한 유기체의 ‘자동적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유기체가 다른 개체로부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하거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생명체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생존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심지어 아주 미미한 스트레스가 주어졌을 때 생명체는 오히려 저항의 정도를 감소시키고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부 자극이 얼마나 크냐는 것 못지않게 생명체의 자기 조절 반응이 어떻게 전개되느냐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란 용어가 처음 물리학에서 사용되었을 때는 단순히 물체에 가해진 ‘외부 힘의 크기’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생물학에서는 호르몬의 변화와 같이 ‘내부의 역량’이 훨씬 중요하게 취급된다.

금융부문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외부의 충격을 시나리오 형태로 가정해 손실을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충격이 가해졌을 때 이것이 개별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연속된 사건으로 결합되는 것을 다루기 위해 시나리오를 사용한다. 테스트에서 핵심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자산이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는지, 유동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를 따져 충격에 대한 조직의 내성(robustness)를 평가하는 데 있다. 지난 5월 7일 미국 정부가 자국의 19개 대형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외부 충격’과 ‘내부 반응’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검증이 결여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트레스 테스트가 사기인 이유

현재의 경제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월가가 안고 있는 막대한 부실 자산이 해소되지 않는한 본질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가 부실 자산의 정리와 금융기관의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원했던 세계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애초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제시한 기본 가정 자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연준이 테스트를 시작하면서 2월에 제시한 기본 시나리오에 따르면, 2009년 미국 경제의 실업률은 8.4퍼센트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미 이 수치는 지난 3월에 돌파해 실업률은 8.5퍼센트가 되었고, 최근 발표된 4월 실업률은 8.9퍼센트에까지 치솟았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지적대로 실제 경제지표들이 이미 테스트가 상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에 이미 테스트의 의미는 상실된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가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한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회계기준을 완화해 수익성이 높게 나오도록 해준 것, 자본 확충 여부 결정의 기준을 유형 보통주(TCE) 자본비율 3퍼센트로 잡아 19개 은행 평균 4.39퍼센트보다 지나치게 낮게 잡아 준 것, 그리고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자본의 규모를 의미하는 무수익여신(NPL)이나 자본 잠식의 규모를 알 수 있는 대손율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것 등 무수히 많다.

미국 정부가 이런 하나마나한 심사를 실시한 이유는 애초부터 이번 심사의 목적이 금융기관의 부실 정도를 파악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취임 청문회에서부터 호기롭게 스트레스 테스트를 강조했으나 정작 그 동안의 진행 과정을 보면 오히려 금융시장의 요구에 충실히 따르고자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4월 말에서 5월 4일, 다시 5월 7일로 발표 시점을 연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미국 정부는 주식시장을 예의주시하면서 주가가 불안한 기미를 보일 때마다 발표 시점을 연기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추가 자본의 규모를 축소시킨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국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은행들의 부실을 모두 덮어주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 혹은 모의였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결과는 예상 또는 사전에 흘러나온 내용 그대로였다. 막판에는 유형보통주(TCE) 비율 3퍼센트에서 자기자본비율(Tier-1) 4퍼센트로 금융기관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준을 바꾸면서 손실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앞으로 2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손실로 인해 19개 대형 금융기관들이 충당해야 할 자본의 규모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340억 달러를 비롯해 총 750억 달러 규모로 나타난 것이다.

4월 21일 IMF가 ‘국제금융안정화보고서’에서 이미 발생한 부실자산 상각 규모가 2조 7,000억 달러이고, 당장 추가 투입해야 할 자금이 2,750억 달러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KBW라는 투자은행은 자체적으로 시행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미국계 은행이 조달해야 할 자금은 모두 1조 달러에 이른다는 결과를 지난 4월 22일에 발표한 바 있다. 결국 미국 정부의 발표는 부실 규모를 최대 10분의 1까지 축소한 셈이다.

월가에 볼모로 잡힌 자본주의

지난 2월 말 스트레스 테스트가 처음 시작되고 발표되기 전까지 금융기관들의 ‘살생부’ 운운하며 주식시장이 잔뜩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테스트 결과가 더욱 급격한 국유화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해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의 사태를 경험하고 난 뒤, 금융기관의 파산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인해왔다. 파산을 용인하지 않는다면, 부실 금융기관은 국유화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미국 정부는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에 각각 450억 달러를 지원하는 등 19개 대형 금융기관들에 수천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있다. 이미 정부가 최대 주주이므로 국유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급격한 국유화’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정부가 경영권에 개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입된 공적자금이 ‘의결권 없는 우선주’에서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전환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과 대주주들의 경영권 상실이 동반되는 것이다.

완전 자유 시장의 원리에서 보자면,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금융기관은 파산 절차를 밟거나 최소한 손실의 책임을 기존 주주들과 경영진에게 돌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이럴 경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주식시장의 경색을 정부가 두려워한다는 데 있다. 해당 금융기관들의 주가 폭락은 파생상품의 연결 고리를 타고 다른 금융기관의 부실로 전이될 것이고, 연이어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 말이다.

결국 돌이켜 보면, 이번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는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더 이상의 진전된 국유화도 없고 금융자본의 퇴출도 없다면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위기를 덮어두는 것 뿐이다. “예상보다 호전될 것이다(better than expected)” 이 한 마디가 금융기관의 부실을 덮고 경기바닥론을 전파하기에는 궁색해 보일 뿐이다.

금융위기 2라운드 국면 돌입

이번 테스트에서 기준으로 삼은 자기자본비율(Tier-1) 4퍼센트는 1998년 IMF 환란 당시 한국에서 사용한 8퍼센트에 비해 지극히 관대한 기준이다. 당시 IMF가 강요한 기준이 지나치게 혹독하며 실물경제와 고용의 피해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기준 미달된 금융기관들을 강제로 구조 조정했다. 미국은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었으나 예전에 개발도상국들에 강요했던 기준은 쳐다볼 의사조차 없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완화된 기준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746억 달러 전체를 충당하지 못할 것이고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당국은 우선주 형태의 기존 구제 자금을 보통주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제시해 왔다. 엄밀히 말해서 이 방안은 은행들의 실제 보유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회계 상의 트릭(trick, 눈속임)인 셈이다. 은행들은 이 외에도 또 다른 형태의 트릭을 향후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자산과 관련된 속임수였다면 아마도 앞으로는 영업매출에 집중되지 않을까 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요란한 쇼는 일단락되고 금융위기의 2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 1라운드와 같은 강력한 충격이 재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금융기관들의 불안한 움직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금융기관들은 정부가 제시한 이행 시한인 6개월 이내에 자본 확충에 성공해야 한다. 국유화를 피하기 위해 신주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와 같이 주식시장이 신뢰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방법이 실패한다면 자산 처분이나 구제 자금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국유화의 논란도 계속될 것이다.

이상동/새사연 경제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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