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4.21 11:27

2009년 접어들면서 한국사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처럼 공히 ‘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3중의 복합적 사회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통상 글로벌 경제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극복하기 위해 남북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국민의 민주적 의지를 통합하여 난국을 극복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따로 움직이는 한국경제의 위기 대처와 남북관계 대응

남과 북의 정부 당국자들이 그렇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경제위기 타개책 어디에도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서 당면한 위기를 타개할 실마리를 찾으려는 흔적은 없다. 오히려 남북한의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켜 PSI참여와 같은 군비증액 요인만 확대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도 2012년 경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표방하면서도, 최근 4월 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를 보아도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경제강국 건설의 전망은 내놓고 있지 않다.

진보 쪽에서도 이유는 다르겠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를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쪽에서는 남북관계를 논외로 하고 있다. 반면 북 인공위성 발사 등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루는 전문가들도 글로벌 경제위기와 남북관계의 접목을 소홀히 하고 있다. 마치 두 개가 별개의 사안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이는 일종의 오래된 관성일 뿐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조순 전 총리의 표현대로 ‘경천동지할’ 정도로 세계질서와 경제구조의 대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에 남북관계, 즉 통일의 문제가 글로벌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가올 국제경제질서 변화와 경제체제 변동기를 맞이해서 남쪽 경제의 회복과 북쪽 경제의 회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어쩌면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글로벌 경제위기와 향후 예상되는 구조전환이 어떻게 남북관계, 남북 경제협력 전망의 환경변화와 지형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는지 치밀하게 검토하는 것은 매우 절박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남북 경제협력을 지렛대로 당면한 경제위기 탈출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이 시도되어야 함에 시론 격으로 작성해 본다.

1. 경제체제에 대한 이념적 대립 완화

30년간 전성기를 누려왔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시장 지상주의를 넓게 유포시켰다. 국가의 시장 개입은 극도의 혐오대상이 되었고, 공기업들은 민영화 대열로 들어갔다. 더구나 90년 초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문자 그대로 적수가 사라진 신자유주의는 모든 공적이고 비시장적인 요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이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전 세계에 적용할 것을 강요했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기초한 사회주의 경제는 관속에 들어간 역사의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었고 자본주의 시장을 비판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계획경제 원칙을 버리지 않는 북한 경제와 신자유주의 유입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남한 경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경제공동체 구상은 그야말로 허망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상황은 과거와 다른, 어쩌년 1990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붕괴에 버금가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시적일지 아니면 앞으로 구조적으로 굳어질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국가의 시장개입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이 되고 있다.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시장에 대한 맹신에 근본적인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는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은행들에 대한 국유화가 신자유주의 종주국들에서 서슴없이 실시되고 있을 정도다. 영원할 줄 알았던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의구심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최근 ’자본주의 미래(Future of Capitalism)’이라는 주제를 특집으로 연재할 정도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글로벌 경제위기 앞에 서서히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시장의 실패 가능성’이 사실로 확인된 이 시점에, 극단적인 경제이데올로기가 설 수 있는 입지도 좁아지게 된 것이다. 확실히 이 국면은 남북한 경제가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과 하나의 경제공동체 건설을 모색하기 위해 극단적 경제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청산하고, 서로 전향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일단 북한은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선언한 이후에 일정 영역에서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노동에 대한 인센티브와 기업의 자율성을 제한적이지만 높여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대외무역 규모도 계속 늘려 국제 경제 무대에서의 참여를 넓히고 있다.

우리도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시장 지상주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양한 경제모델에 대해 열린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남북 경제공동체에 대한 이념적인 장애물 하나는 줄어드는 셈이다. 이것이 글로벌 경제위기가 남북 경제협력 가능성에 주는 첫 번째 시사점이다.

2. 남한 경제만의 글로벌 전략 ‘금융허브론, 한미 FTA’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과 일본 경제에 주로 의존해 경제성장을 해왔던 우리는 국제 경제질서의 지형 변화와 2000년대 남북 화해 무드를 타고 일련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한국의 대외경제 관계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다변화되고 있다. 미국과의 교역비중은 12퍼센트 내외, 일본은 6퍼센트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대신 대 중국 교역이 22퍼센트를 넘어서며 확대되었다. 아시아와 유럽, 남미의 비중도 확대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 금융에 대한 대미 의존도는 오히려 더 높아지기는 한다.

남북경제관계 역시 경제체제의 대립을 우회할 수 있는 개성공단이 건설되어 느리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룩해왔다. 2008년 7월 기준으로 가동기업은 72개, 노동자 수는 3만 명, 입주기업 누적 생산실적이 3억 7,000만 달러로 늘어난다(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 보도자료). 초보적이지만 한반도 경제공동체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개성공단의 장래마저도 불투명한 상황이 될 만큼 남북 경제협력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 초창기 ‘아시아 물류허브 구상’ 정책은 더 이상 남한의 경제영역만으로 대외경제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경제권을 전제로 국제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구상의 단초를 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집권 후반기에 ‘금융 허브론’이 주창되고 심지어 한미 FTA를 밀어붙이게 되면서 이런 흐름은 결정적으로 후퇴하게 된다.

금융허브는 굳이 한반도 경제권을 가정하지 않고 남한 경제만으로 가능한 방식이다. 더욱이 실물 무역거래와 달리 대미 의존도가 높은 금융을 기반을 아시아에서 금융허브 위치를 갖겠다는 것은 그 현실성과 무관하게 그동안 대외경제를 다변화해왔던 추세와는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그 결정판이 한미 FTA였고 이들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오히려 더 가소도가 붙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외경제정책에 결정적인 제동이 걸리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었던 금융자본주의 수익모델에 사실상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금융위험도가 극도로 치닫으면서 금융허브에 대한 꿈은 최소 수년 간, 아니면 영구히 접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는 금융허브의 모범이라 칭송받던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의 파산이 현실에서 입증해주고 있다.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미국을 포함한 각 국가가 공식적인 말과는 달리 경쟁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도입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엄호를 받으며 진행된 자유무역도 퇴색하기 시작한다. 미국 자신이 FTA의 시원으로 삼았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수정하려는 판에 한미 FTA를 서둘러 추진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결국 그 동안 남한 경제만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팽창의 흐름 속에 한국경제를 맡기려던 대외경제 정책들은 현재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하거나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시 한반도 경제권 으로 관심을 돌리고 동북아 경제협력 구상으로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조성되었다.

3. 수출 의존형 한국경제, 내수 기반 회복 중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경제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유난히 취약한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타격을 덜 받고 견디는 나라들도 있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차별적으로 받고 있다는 말이다.

가장 심각한 나라들이 바로 금융 자유화와 개방화 정도가 높은 곳이다. 이미 국가부도 상태에 들어간 아이슬란드가 그렇고, 유로화 영향권에서 충격이 덜하지만 아이슬란드 못지않은 아일랜드가 그렇다. 서유럽에 대한 금융의존도가 매우 높은 동유럽 국가들도 금융위기의 잠재적 화약고다.

아시아에서는 금융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한국이 환율변동과 주가변동이 극심한 편에 속한다. 이 때문에 서방 언론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연될 조짐만 보이면 아시아에서는 한국경제의 위험성을 늘 첫 번째로 꼽는 형편이다.

두 번째로는 무역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무역의존도가 높아 수출부진이 심각하다. 한국경제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는 금융보다는 제조업 기반이 강해서 금융위기 충격을 덜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독일과 일본이 수출부진으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대외 무역 의존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 국가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수 부양을 꼽고 있다. 내수기반을 확충함으로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세계적인 금융 불안과 소비위축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내수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는 국가들이 가장 먼저 경제위기를 탈출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수출로 고속성장을 해온 중국마저 내수를 확충하기 위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동원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경제만으로는 내수규모가 크다고 할 수 없지만, 한반도 경제는 7,000만이 넘는 인구를 포함한 내수기반으로 잠재력이 상당히 큰 경제권이 된다. 6,000만을 넘는 프랑스 인구보다도 많고 8,000만 규모의 독일보다 다소 적은 규모다. 한반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내수기반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력 차이가 커서 단일경제권으로 묶는데 장애가 된다고 하지만, 북한 경제는 사회간접시설을 포함한 미개발 영역이 상당히 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그 발전 잠재력이 높아 내수기반 확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가 커 광범위한 농촌지역으로 내수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중국도 현재 대규모 재정을 동원하여 빠르게 농촌 수요를 확대해 가는 것을 보면, 이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시대에 다시금 남북 경제협력에 눈을 돌려야 하는 또다른 이유다.

4. 에너지 자원협력의 중요성 날로 커져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한 2007년 가을부터 글로벌 금융자본이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진 에너지, 자원, 곡물 등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한때 석유, 원자재, 곡물가격이 사상최대 폭으로 급등했다. 각 국가들이 자원 확보 전쟁에 돌입했고 석유 가격 등의 폭등으로 수입물가가 치솟았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식량난으로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주요 식량 수출국들이 식량 수출통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금융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세계적인 소비위축이 급격히 진행된 결과 석유와 원자재, 곡물가격이 내림세를 타고 있지만, 경제 불안 요인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자원 확보에 비상이 걸리고, 수입물가 폭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금융위기는 향후 안정적인 국민경제 운용을 위해 에너지, 자원, 곡물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마그네사이트, 유연탄을 비롯해서 경제적 가치가 높은 금속광물 19종, 비금속 광물 12종, 에너지 자원 3종을 비롯해 북한에 매장된 자원의 가치가 크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종의 광물자원 매장량을 남한의 시장가격으로 환산할 경우 2006년 기준으로 약 2,300조 원이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반면 남한은 주요 자원과 원자재의 90퍼센트를 외국에서 수입할 만큼 수입의존도가 높은 경제이다. 2008년 상반기 석유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수입물가가 치솟고 원가 부담이 급증했던 경험이 이를 입증한다. 예상되는 세계적 장기불황과 원자재 수급 불균형 상황에 대처하여 남과 북이 효율적으로 자원협력 추진 속도를 높인다면, 외적인 상황대처 능력이 높아짐은 물론 남북한 경제 모두가 경제회복을 위한 중요한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현재 시점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다.

두 경제 강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반도의 역할은?

이처럼 2년째 접어들고 있는 세계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불황 국면은 ▲ 경제체제에 대한 이념적 갈등을 완화시키고, ▲ 남한만의 글로벌 전략을 어렵게 하며, ▲ 내수기반 확충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 에너지 자원에 대한 안정적 확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특히나 최근 세계 경제에서 중국경제가 차지하는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이른바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경제체제에 대한 논의마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공공연하게 미국 중심의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최근 폐막된 보아오 포럼에서 원자바오 중국총리가 아시아가 뭉쳐서 세계경제를 주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경제 대국 사이에서 자신의 생존을 모색해왔던 남북한 경제는 이제 각각 미국과 중국에 더욱 의존하면서 미래를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하여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 독립적인 활로를 찾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정상적으로 정책적인 고려를 한다면 글로벌 경제위기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통합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북 경제협력 가능성에 문을 닫아 걸어버리면 그만큼 한국경제가 회복되기 위해 동원할 수단이나 의지할 선택지가 매우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경기불황의 탈출을 위해 중요 지렛대로 남북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악화시켜 우리 국민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 더 얹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경제위기 탈출의 부담을 반으로 줄여야 할 판에 두 배로 늘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김병권/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