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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신용-경제’사업 분리, 하려면 제대로 하자

민관이 공동으로 구성한 농협개혁위원회가 지난 3월 31일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이하 ‘신경 분리’라 함)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보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발표한 것이 아니라 건의한 것이다. 비록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자문기구인 농협개혁위원회의 건의안이라는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농수산식품부와의 사전조율을 통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정부차원의 ‘신경 분리 추진(안)’이 처음으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로써 거대 공룡 농협중앙회의 신경 분리 문제는 농협개혁위원회라는 좁은 틀 내의 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공론의 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될 것이다.

농협 신경 분리 문제가 농업계 내부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제기된 주요 개혁과제의 하나였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농협 신경 분리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핵심적인 내용을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신경 분리 논의 과정

농협중앙회의 신경 분리는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농민단체가 농협개혁의 핵심과제로 요구해 왔던 사안이다. YS정부 시절 1994년 농어촌발전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신경 분리 문제가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었고, DJ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도 농협개혁 차원에서 신경 분리 문제를 각각 다룬 바 있다.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강제로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하여 농협중앙회를 만들고 중앙회장을 정부가 임명하여 농협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부려먹기 시작한 것이 현행 농협중앙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농협중앙회는 신용사업(은행/금융사업)과 경제사업(유통/가공사업)을 하나의 조직이 수행하는 형태로 존재해 왔다. 협동조합이 발달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농업금융사업과 경제협동사업을 전담하는 조직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과 달리 유독 한국에서만 이러한 기형적인 형태가 수십년간 존속해 온 것이다.

아울러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으로 인해 농업/농촌/농민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는 경제사업 보다는 신용사업 중심으로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소위 돈 안 되는 경제사업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고, 돈 되는 신용사업만 살찌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농민들의 경제적 실익을 높이기 위해 농산물을 제값 받고 잘 팔아주거나 가공사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농협의 제 일차적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협중앙회는 이러한 경제사업은 등한시하고 돈놀이(신용사업)에만 치중해 왔다. 염불보다 잿밥에만 눈이 멀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농협 본연의 기능인 경제사업(유통/가공사업)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요구가 자연스럽게 분출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요구가 1990년대부터 농협개혁의 핵심과제로 신경 분리를 제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YS-DJ정부로 이어지는 신경 분리 논의과정에서의 쟁점은 신경 분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다. 농민들을 포함하여 농협개혁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가능한 조속히 신경 분리를 하여 농협이 경제사업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실제로 YS정부와 DJ정부에서 각각 개정된 농협법에는 모두 신경 분리를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기득권은 이러한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신경 분리의 시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여 신경 분리 추진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YS정부 및 DJ정부 당시에는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신경 분리가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신경 분리 방식의 대립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서 농협중앙회 신경 분리의 쟁점은 어떤 방식의 신경 분리인가로 모아졌다. YS정부 및 DJ정부의 농협법 개정으로 어쨌든 신경 분리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농협중앙회와 금융관료 등 기득권은 종전의 지연전술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분리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농민들의 개혁요구는 “연합회체제와 경제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로 구체화되었으며, 농협중앙회와 금융관료 등은 “지주회사체제와 신용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선 농민들이 요구하는 “연합회체제와 경제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 방안은 현행 농협중앙회를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경제사업연합회는 경제사업에 관련된 조직으로 구성하고 경제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두며, 신용사업연합회는 신용사업에 관련된 조직으로 구성하고, 일반 은행업무와 금융업무 및 일선 조합의 상호금융 운용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 농협중앙회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우선적으로 경제사업연합회에 이관하도록 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은행의 자기자본으로 출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사업연합회가 농협의 대표성을 갖도록 해 경제사업에 필요한 자기자본을 충분하게 확보하여 농민이 필요로 하는 경제사업에 중점을 둘 수 있도록 하며, 신용사업은 일반 은행과 같은 문어발 확장이 아니라 농업금융조달이라는 특수은행으로서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반해 농협중앙회와 금융관료 등이 주장하는 “지주회사체제와 신용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 방안은 현행 농협중앙회를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로 분리한다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는 일반 은행업무와 금융업무 및 상호금융 운용업무 등을 담당하는 금융자회사를 두고, 경제지주회사는 경제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둔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 농협중앙회의 자산 가운데 대부분을 금융지주회사에 출자하도록 하고, 일부만 경제지주회사에 출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용사업 위주로 신경 분리를 추진하도록 함으로써 농협을 신용사업 중심으로 만들고, 경제사업 분야는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알아서 생존방안을 강구하도록 내몰고 있다.

신경 분리 문제의 쟁점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 신경 분리 문제의 핵심 쟁점은 첫째, 농협의 조직체제를 연합회체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지주회사체제로 할 것인가, 둘째, 경제사업 중심으로 분리할 것인가 아니면 신용사업 중심으로 분리할 것인가 등으로 압축된다.

먼저, 연합회 혹은 지주회사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연합회체제는 협동조합으로서의 성격과 특징을 잘 반영하는 형태이지만 지주회사체제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주식회사의 성격을 갖는 다. 협동조합으로서 연합회체제는 출자금액에 상관없이 ‘1인 1표’ 원칙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만, 주식회사는 주식보유 지분에 따라 ‘1원 1표’ 원칙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연합회체제는 현행 농협중앙회를 농민 조합원의 경제협동체로서 협동조합의 원칙과 성격에 맞게 개혁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며, 지주회사체제는 농협을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로 탈바꿈시키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연합회체제는 농민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여 농협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운영되도록 하자는 것이며, 지주회사체제는 주식보유 권한을 행사하는 농협내부의 기득권층과 정부 금융관료 등의 뜻에 따라 운영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농협의 성격과 운영원칙을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져, 신경 분리를 통해 경제사업을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신용사업 위주로 나갈 것인가의 대립을 낳고 있다. 생산자협동조합으로서 농협의 목적과 기능은 사회경제적 약자인 농민 조합원의 농가수취가격을 높여 경제적 실익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이를 위해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주는 판매사업과 농민의 생산비 부담을 덜어주도록 농업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동구매하는 구매사업과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도록 다양한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가공사업 등과 같은 경제사업이 농협 사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경제사업 중심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용사업은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자금을 조달하는 농업금융의 기능이 일차적인 역할이 되며,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것은 부가적인 기능에 해당한다.

그러나 농업금융을 전담하는 특수은행으로 농협을 바라보지 않고,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은행으로 바라본다면 수익성이 높은 신용사업 중심으로 농협의 사업을 운영해야 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경제사업은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점차 포기해야 하는 사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지주회사체제에서는 공적 자금 투입이나 자체 지분 매각 혹은 다른 금융기관과의 합병 등을 통해 신용사업 내부에서도 수익성이 낮은 농업금융을 퇴출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협개혁위원회 건의안의 특징

이번에 발표된 농협개혁위원회 신경 분리 추진방안은 절충안이라 볼 수 있다. 첫째, 연합회체제와 지주회사체제를 절충하였다. 현행 농협중앙회를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로 분리함과 동시에 경제사업연합회 및 신용사업연합회 산하에 각각 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둔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실제 사업집행을 담당하는 자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 감독 기능은 지주회사가 갖고, 연합회는 보유한 지분만큼 지주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경제사업 및 신용사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 감독 기능이 연합회에 있지 않고 지주회사가 갖게 됨으로써 농민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가 직접 반영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신경 분리 초기에는 연합회가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의 50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겠지만 나중에는 증자, 매각, 합병 등의 상황에 따라 지배주주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 매머드급 금융기관 설립 등을 추구하는 이명박정부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권이 연합회에서 정부, 재벌, 외국자본 등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그동안 농협 주변에서 흘러 다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실화될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인다.

둘째, 현행 농협중앙회의 자산을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에 비슷한 수준으로 나누어 분배한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현행 농협중앙회의 자산을 모두 경제사업연합회로 귀속되도록 하였으나, 경제사업연합회에 귀속된 자산의 약 56.6퍼센트를 다시 금융지주회사의 자기자본으로 출자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분배방안은 경제사업 중심 안과 신용사업 중심 안을 절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농민 조합원의 경제적 실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경제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나, 신용사업의 중심기능인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맞추기 위해서도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

농협개혁위원회의 건의안은 현행 농협중앙회의 자산을 약 12.2조 원으로 평가한 결과를 토대로 약 5.3조 원을 경제사업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약 6.9조 원을 자기자본비율(BIS) 충족에 활용하도록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8퍼센트의 BIS 기준을 충족하는데 필요한 약 12.1조 원 가운데 부족한 약 5.2조 원은 정부출자, 민간투자, 회원조합 출자, 조합원 출자 등의 방식으로 조달하도록 하였다. 추가 출자 여력이 크지 않은 농민조합원 및 일선 회원조합의 상황을 고려할 때 사실상 정부출자 및 민간투자를 통해 부족한 자기자본을 조달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 부분은 증자, 매각, 합병 등의 상황에 따라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권이 정부, 재벌, 외국자본 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 합법적 통로를 열어 놓은 것이다.

신경 분리, 제대로 하자

농협개혁위원회의 신경 분리 추진방안은 기득권이 요구하는 “지주회사체제와 신용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연합회체제와 경제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를 주장하는 개혁요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농협개혁위원회는 “연합회체제와 경제사업 중심의 신경 분리”가 협동조합의 원칙과 성격에 부합하는 방안임을 인정하면서도 8퍼센트 BIS 기준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부족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서 지주회사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농협중앙회의 자산평가액은 약 12.2조원이며, 8퍼센트 BIS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자기자본규모는 약 12.1조원으로 평가되었다. 현행 농협중앙회의 모든 자산을 신용사업 분야로 투입해야만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재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 외부 자본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일정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여 외부자본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은행인 농협에 일반 은행과 똑같은 BIS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BIS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연합회체제로도 충분할 것이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상호금융특별회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상호금융은 일선 회원조합이 조합원으로부터 예치한 예금으로 구성되며, 보통 제2금융권으로 분류된다. 현재 일선 회원조합이 농협중앙회에 위탁하여 운용하고 있는 상호금융특별회계 규모는 약 50조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부를 자기자본으로 전환할 경우 외부자본의 조달 없이도 8퍼센트 BIS 기준을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방안은 혹시라도 농협의 지배권이 정부, 재벌, 외국자본 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약 1,200여개에 달하는 일선 회원조합이 내부 결의를 거쳐 동의를 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절차를 거치는 과정 자체가 농협 운영에 무관심했던 농민 조합원이나 농협중앙회의 눈치만 보던 일선 회원조합이 자기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각성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농협은 기득권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농민 조합원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농민 조합원과 일선 회원조합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 농민 조합원의 경제협동체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개혁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공론의 장을 열자

농협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은 농협개혁위원회의 절충안에도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정부 심의과정과 국회 법개정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더 많이 관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금융관료들은 농협 신경 분리 문제를 가능한 조용하게 처리하려 할 것이다. 사회적인 공론화에는 소극적이면서, 정부 심의과정과 국회 법개정 등과 같은 최소한의 합법적인 절차만 거치려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요구를 더 많이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협 신경 분리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을 가능한 확대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농민 조합원과 농민단체의 몫이며, 다음으로는 관심 있는 국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몫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최대한 넓은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올수록 농협에 대한 개혁적인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저마다 이 문제에 대해 한 마디씩 하도록 해야 한다. 다다익선이 곧 공익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의 농협 신경 분리 문제이다.

장경호/통일농수산사업단 정책실장, 새사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