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9.03.19 11:29

2009년 들어 1,250원대로 시작한 달러 대비 환율은 꾸준히 상승하여 2월 16일에는 1,400원대를 돌파했다. 그 시점에 미국 상업은행과 동유럽 은행에서 시작된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외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외채 상환능력을 우려하는 기사가 이어지자 보름도 안 돼 1,600원 선에 근접하더니 최근에는 다시 1,400원대로 추락하는 등 널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림1] 2009년 원/미 달러 일일 변동 추이(한국은행)


한 달 사이에 무려 200포인트가 오갔던 것이다. 이처럼 환율이 널뛰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금융관계자는 “원화 값이 달러당 1,400원대로 접어들면서 역외세력이 투기적 매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면서 외부 환투기 세력을 지목했다(<매일경제> 2009.3.17).

실제 최근 대외 금융충격에 약하고 은행 단기차입과 외환보유고 축소 등 환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국내 외환시장의 약점을 틈타 역외 환투기 세력이 집중적으로 달러를 매수해 비이상적인 환율 폭등을 조장한 뒤 고점에서 다시 달러를 대량으로 팔아서 환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환투기 세력은 서울외환시장에서 현물환 거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역외 선물환 시장(NDF)에서 주로 투기행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외국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들인데, 조세회피 지역에 거점을 두고 홍콩, 싱가포르, 뉴욕과 같은 역외 선물환 시장(NDF)에서 집중적으로 달러를 매수해 환율을 올려놓고 다시 팔아서 차익 실현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환율이 폭등하고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달러 환산 한국 채권가격이 내려가자 이번에는 대규모 환차익을 거둔 투기세력이 환차익 자금을 채권에 투자하여 채권 수익을 올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을 자유로이 오가면서 시장을 교란시키고 대신 본인들은 환차익과 채권 수익을 거두어가고 있었다.

한국 물가만 떨어지지 않는 이유

가뜩이나 취약한 외환시장에서 환투기 세력마저 제한 없이 활동하면서 환율폭등을 초래한 결과, 국민들은 물가상승 부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 7월까지만 해도 국제 석유가격이 145달러까지 오르는 등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고생하던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어지는 자산 가치 축소로 빠르게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결과 2008년 7월, 5퍼센트에 육박하던 OECD국가들의 소비자 물가는 2009년 들어 1.3퍼센트까지 추락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0퍼센트까지 떨어졌다(OECD, ‘OECD Consumer Price Index’, 2009.3.3).

2008년 초까지만 해도 다른 선진국과 비슷하게 3퍼센트 수준을 맴돌던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2008년 7월 5.9퍼센트를 정점으로 다소 내려앉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범위인 2.5~3.5퍼센트를 훨씬 웃돌고 있다. 환율이 폭등했던 지난 2월에는 그나마 꺾이던 물가가 다시 올라서 4.1퍼센트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OECD 국가의 3배, G7 국가의 7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림2] OECD와 한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 추이 비교(전년동월대비)

어째서 한국 국민들만 유독 소득감소와 자산 가치 축소에 이어 고물가 고통에서조차 헤어나고 있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타국에 비해 월등이 높은 환율 상승 때문이다. 국제원유가격 하락 등으로 계약통화(주로 달러화) 기준으로 한 수입 물가는 이미 2008년 11월 이후 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환율이 폭등한 결과, 원화로 표시되는 수입 물가는 그보다 훨씬 더디게 떨어졌고, 환율 폭등이 극심했던 2008년 9월과 10월, 그리고 2009년 2월에는 오히려 오르기까지 했다. 2007년 11월까지만 해도 오히려 원화표시 수입물가가 달러 표시 물가보다 더 저렴했지만, 2008년 10월부터는 환율상승으로 인해 무려 40퍼센트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원화표시 수입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그림3] 환율변화에 따른 수입물가 변동추이

환투기 세력에 대책 없는 정부

그렇다면 구조적으로 신흥국에 투자된 자금이 선진국으로 역류하는 흐름이 지속되는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본질적으로 자국 통화를 국제결재 통화로 쓸 수 없는 신흥국들이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무작정 외환보유고를 더 늘리고 한미 통화스왑 규모를 확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지난해 9, 10월과 올해 2월에 그랬던 것처럼,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어서 환율을 안정시킬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림4] 글로벌 금융위기가 환율 상승에 주는 영향 전달 경로

인터넷 논객들이나 일각의 논의처럼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서 달러가 한국의 고금리를 보고 유입되게 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인가. 그러나 지금과 같이 국내적인 자금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의 채무이자 상환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금리를 올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국내 자금압박을 감수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선진국 유동성 부족 상황에서 한국의 고금리를 보고 금리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선진국 자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극히 회의적일뿐 아니라, 현재는 이와 같은 시장주의적 대처가 실효성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가장 긴급한 것은 주식시장에서의 공매도 금지와 같이, 외환시장에서의 투기적 거래를 금지시킬 수 있는 정책적 방안이다. 국제결재은행(BIS)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세계 외환거래 규모는 연간 802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2006년 세계 상품 수출액은 12조 달러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면 외환거래 가운데 1.5퍼센트만이 실물거래와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98.5퍼센트는 순수하게 금융부문 내에서 투자(투기) 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자금인 셈이다(신장섭,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2008, 193쪽).

실물거래와 관계없는 외환거래가 절대적인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고, 오히려 실물 무역거래가 금융적 외환거래에 의해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는 “지난 1999년 이후 외환거래 실수요 증빙 규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나 가수요를 바탕으로 외환을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다” 면서도 “환투기 세력에 대한 직접 조사나 규제강화는 거래위축 등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매일경제> 2009.3.17).

결국 2008년 9, 10월에도, 그리고 2009년 2월에도 외환 당국은 “투기성 매개가 짙은 것으로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대책을 취하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서울경제> 2009.2.20).

언제까지 외환시장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외환시장에서 헤지펀드와 같은 외국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한 동시에, 원천적으로는 환투기가 활동할 여지를 없애고, 나아가 외부 금융충격에 의해 외환시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절실하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2008년 9, 10월, 2009년 2월의 환율 급변동 상황은 여러 차례 재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자유변동환율제에 대해 확립된 사실이 하나 있다면, 환투기하려는 세력들에게 가장 편리한 제도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외환시장을 오직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도록 방치하는 자유변동환율제는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도 아니고, 더욱이 금융시장 규모가 작은 신흥국에서 유리한 제도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1998년 IMF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외환시장을 개방했던 것이지 자연스런 경제흐름을 탔던 것도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장의 실패가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으며 특히 금융시장의 실패는 전 세계를 불황의 늪으로 빠뜨릴 만큼 심각한 국면을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특히 외환시장의 실패가 두드러지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돈을 빼내 가게하고, 빼내 가더라도 일부만 갖고 가게하고, 환투기도 지금보다 훨씬 어렵게 만드는 긴급 자본통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신장섭, 앞의 책, 201쪽).

그러나 최근까지 정부 당국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기대를 하기가 쉽지 않다. 런던을 방문했던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경기침체로 압박받으면서 원화가치가 하락하고 있지만 자본통제 조치는 도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한국이 지금까지 외국 투자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자유 시장에서 자본통제는 생각도 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이 알려졌다(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 <매일경제> 2009.3.13).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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