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민주화 이후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완만하게 진행된 민주주의 공고화가 2008년 이명박 정권 집권 1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후퇴하는 적신호가 어려 방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방식의 절차적 정당성이 문제가 되면서 국민적 저항이 발발하기도 했으나, 2008년 촛불집회로 나타난 민심의 이반 현상만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반면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2008년 촛불정국에서 확인된 한국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는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규모의 국민적 저항으로 분출되었다. 대통령과 의회를 중심으로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국민의 직접행동 민주주의와 다방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민주적 의지가 현재의 대의정치 시스템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후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 보수 혁명으로 귀결되는 듯했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범보수세력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그리고 의회의석 200석을 장악하면서 제도정치적 수준에서 범보수세력의 각종 정책들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민주화 이후 반복된 여소야대 분점정부 상황은 통치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비판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특정 세력의 독주를 막는 안전판이라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제18대 총선 결과 범보수세력에 의한 무소불위의 권력행사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총선 이후 제도정치의 지형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공역방송 장악, 학원 자율화, 노동유연화의 지속적 추진, 공공부문 사유화, 대운하 추진, 의료보험 민영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정책들이 발 빠르게, 그러나 어떠한 제약도 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였다.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을 막아낸 촛불혁명

그러나 제도정치 수준에서 통제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집권 극초반부에 추진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중학교 여학생들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가 단기간에 87년 6월항쟁의 동력을 뛰어 넘는 수준으로 상승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은 어느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2008년은 죽지 못해 사는 절망의 시간이었으나 촛불은 그나마 삶의 빛을 뿌려주는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만약 2008년 5~7월 동안 지속되었던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2008년 연말부터 2009년 연초까지 진행되었던 국회 입법전쟁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절대 다수의 한나라당에 맞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강한 민주적 의식으로 무장한 국민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큼 대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발 빠르게 추진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이 2008년에 보수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한 가장 직접적 원인은 집권세력의 무능함 때문이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주권자가 위임한 권한의 한계까지 벗어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집권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정책 실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혼동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일거에 총체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않고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발휘했더라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외형적으로나마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더라면, 만약 이명박 정권이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 수준의 좀 더 부드러운(?) 신자유주의 정책을 느긋하게 추진했더라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통치 엘리트 집단과 현재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정운영의 기술이나 정치적 기예라는 측면에서 수권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집권 초반기를 허송세월로 보냈다. 이들이 사실 얼마나 무능한 집단인지는 미네르바 현상이 잘 보여주고 있다. 준비 되지 않은 대통령과 무능한 집권여당이 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그 동안 크게 성숙한 국민의 민주적 의식을 전략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것이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의 향후 정국 운영 스타일에 근본적인 수정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한번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풀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경로의존성이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반(反)이명박 연대의 핵심축이 될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선별적 공격, 입법전쟁 이후 동등한 헌법기관인 국회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 발언 등과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2009년이 2008년의 암울한 연장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2009년 정국의 핵으로 등장할 재보권 선거

2009년 정치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다. 수도권을 비롯하여 대략 8곳에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재보궐 선거는 향후 정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독립변수이자, 선행변수에 영향을 받는 종속변수다. 4월 재보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선행변수는 지난 1년 간 이명박 정권의 실정, 연초연말에 진행되었던 1차 입법전쟁과 2월에 재연될 것으로 보이는 2차 입법전쟁, 2008년 촛불집회와 2009년 2월 임시국회 결과에 따라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는 촛불집회 및 시민사회단체의 행보 그리고 경제상황 등이다. 어느 변수 하나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재보궐 선거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역시 소수파로서 어렵게 우위를 지켜온 잠재적인 정국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 이명박 정권의 정국 장악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고, 이어질 2차 촛불집회를 비롯한 국민적 저항운동도 탄력을 받게 된다. 나아가 2009년 후반기 재보궐 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실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야당이 한나라당 후보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가 필수적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고정 지지율은 여전히 3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을 잠식할 경우 민주당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높고,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는 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후보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매우 어렵다. 근래에 반이명박 전선을 주장하는 이들은 단순히 사회운동적 수준의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4월 재보궐 선거, 나아가 2010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러한 주장은 단순다수대표제를 채택하는 선거제도의 특성상 타당한 측면이 있다.

수평적 반이명박 연대가 관건이다

진보세력은 매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진보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그들이 속한 정당을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면서 비판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조건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무능력하며 파시즘적 행태마저 보이는 한나라당과 대적하기 위해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암묵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여기에서 연대는 사회운동적 수준에서의 연대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론’을 연상시키는 당면한 선거 국면에서의 연대를 말한다. 과거 비판적 지지론을 둘러싼 진보세력 내의 첨예한 갈등이 재생산되고 자칫 두 동강 난 진보세력의 역량이 더욱 축소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반이명박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과거의 비판적 지지론은 진보세력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방적인 지지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연대는 동등한 정당 간의 수평적 연대이기 때문이다. 각 지역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가 있고, 그 후보에게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없다면 그가 민주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단일 후보를 출마시켜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주객관적인 조건상 선거 패배가 확실한 한나라당이 선거제도의 약점을 이용하여 부활하는 것을 막아 내야 한다. 이는 무원칙한 선거연합이 아니라 각 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며, 지난 1년 동안 지속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다.

적어도 선거정치를 둘러싼 반이명박 연대는 2010년 지방선거까지 지속될 필요가 있고, 그 연대가 잠정 중단되는 시점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각종 악법과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을 민주적 압력에 밀려 포기할 때다. 나아가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민주당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자신들이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근본적 오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대안적인 사회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반이명박 연대는 반신자유주의 연대로 확장·강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저항에 대해 제도정치가 답해야 할 때

반이명박 연대를 구축하는데 있어 핵심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 적어도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추진한 민주당인 한 그 책임의 깊이는 두말할 나위 없다. 거두절미하고 민주당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지역구를 먼저 양보하고, 적극적인 연대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 민주당이 국회의원 의석 1~2석을 추가로 욕심낼 경우에는 한나라당에게 부활의 기회를 주는 것이 될 것이고, 1~2석을 과감히 포기할 경우에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국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은 단기적이고 편협한 이해관계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이와 같이 2009년의 정치 일정에서 4월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는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만연된 선거정치에 대한 불안감과 냉소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국민들과 시민사회세력의 운동에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탄탄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2008년 제도정치의 암울한 상황을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이 투입되어 구원해 줬으니, 이제 제도정치가 다소 잠잠해진 국민들에게 보답해야 할 때이다. 제도의 정치가 운동의 정치와 선순환 관계를 맺을 때 2009년 한국정치는 2008년의 암울한 연장에 단절선을 그을 수 있다.

엄관용/새사연 객원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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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o

    좋은 내용이네요.

    2009.01.14 13:29 [ ADDR : EDIT/ DEL : REPLY ]
  2. 촛불은 30대중반인 저도 참가했는데 여중생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얘기는 좀 어패가 있네요. 그리고 경제칼럼 중에 신자유주의를 자꾸 언급하며 칼럼을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전 신자유주의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정책을 만드는데 있어, 경제주체들 서로간에 피해를 받지 않고 최대한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을 다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요? 그게 꼭 단순히 신자유주의냐 아니냐로 구분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잖아요.

    2009.01.14 21:4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