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경기가 언제쯤 회복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생활고를 감내해야 하는지, 기업의 처지에서도 경기 숨통이 언제 트일지가 향후 명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를 포함한 상당수 기관과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에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이고, 하반기부터 서서히 세계 경제 회복 추세에 따라 우리 경제가 반전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이른바 '상저하고(上低下高)', 즉 하반기부터는 증시가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다.

한마디로 미국 오바마 새 행정부를 포함해 각국 정부가 연초부터 적극 나서서 유동성을 공급해 부실자산을 인수하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금융위기는 진정될 것이고 경기 부양 효과도 먹혀 들어 실물경제 역시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지난 연말 "정부가 유동성 공급, 감세, 재정지출 확대 등 과감한 위기극복 노력을 계속하면 조기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2010년부터는 정상적인 성장 궤도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심지어 '외환위기 걱정은 없어졌다'거나 금리가 안정화 추세로 접어들었다고 장담하기조차 한다. 연초에 주가가 1200선을 회복하고 환율도 달러당 1200원선으로 내려앉으면서 이런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궁금한 것은 그런 주장을 하면서도, 한편에서 '비상경제정부' 체제로 가겠다며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까지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반기부터 회복된다고? 꿈 깨는 것이 좋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쉽게 낙관을 해도 되는 걸까. 이 시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의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하강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30년간 구축되어온 신자유주의, 신종 금융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시스템의 위기이며, 길게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세를 이어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로부터 발생한 위기다. 이런 상황이 정부의 유동성 공급정책이나 재정확대정책으로 극복되리라 보는 것 자체가 대단히 안이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는 주장들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2006년에 미국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고 12단계 위기 시나리오까지 내놓았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비관적으로 세계 경제를 전망하고 있다.

"2009년에는 영국,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도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전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가 예상된다. 전 세계 경제는 경착륙할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오바마 신 행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조기에 충분히 실시하지 않으면, 1929년에 이은 두 번째 대공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실정이다.

사실 현재 세계경제가 장기불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거의 유일한 근거는, 과거 1929년 대공황이나 1990년대의 일본의 경우와 달리,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기를 수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정도로 '작은 정부'라는 구호 아래 시장에서 발을 빼왔던 정부들이, 통화나 재정수단만 가지고 다시 경제에 개입한다고 그 효과가 즉시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는 과학적인 분석이기 보다는 단순한 기대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앞으로 어떤 추가적인 돌발변수 없이 현재의 경기침체 흐름이 완만하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조차 아직은 이르다. 여전히 신용카드 부실이나 상업은행 부실 등 제2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도 아니고, 덩치 큰 대기업들 파산 위험도 상존하고 있음에도 이런 점들이 조기 경기회복론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검토해 볼 때,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해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 확실하다. 그런 측면에서 연내 경기회복보다는 글로벌 장기 불황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특히 경제회복의 근원적 동력이어야 할 각국 국민의 소비여력과 구매력이 확대되기보다는 반대로 부채상환에 급급한 실정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소비보다는 점점 저축을 늘리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경기회복을 쉽게 낙관하지 못하는 강한 근거가 된다. 민간 소비 축소는 기업들의 투자위축과 함께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장기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 분명하다.

미국 국민이 저축을 늘리면 장기불황이 온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퍼센트를 미국 국민의 소비가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경제뿐만이 아니다. 미국 수출에 의존해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포함해 세계의 상당수 나라들이 미국 국민의 소비에 기대고 있다. 때문에 세계 경제 불황의 장기화 여부 가운데 상당 부분은 미국 민간의 소비가 언제 살아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경제의 성장이 미국 국민의 실질적인 소득이 늘어서 소비가 증대된 것은 아니었다. 평균적인 미국 국민의 소득은 사실상 정체되었다. 증가된 실질소득으로 소비를 팽창시킨 것이 아니라 빚을 얻어서 씀씀이를 키워온 것이다. 실제 미국 가계 부채는 미국 GDP 13조 9,000만 달러와 맞먹는다. 1980년에 비해 미국 국민의 빚은 두 배나 늘었다. 이 가운데 모기지 대출이 11조 달러였고, 이는 서브프라임 부실을 초래하게 되었다. 

부채로 떠받쳐 온 미국 국민의 소비지출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갑작스럽게 신용이 얼어붙고 부동산과 금융 자산이 축소되자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미국 국민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더해져, 아예 소비하던 돈마저 저축으로 돌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80년만 해도 미국 국민들은 수입의 9퍼센트를 저축할 만큼 저축률이 낮지 않았다. 그러나 10년 후인 1990년에는 5퍼센트 수준으로,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 정점이었던 2005년 이후에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저축률을 보였다. 저축을 하지 않으면서 그 돈을 모두 소비했을 뿐 아니라, 추가로 신용에 의한 부채를 끌어들여 대규모로 소비한 셈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정점을 달리던 2008년 하반기부터는 저축률이 2.5퍼센트 수준으로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만약 올해에 저축률이 5퍼센트까지 높아지게 된다면 미국 국민의 소비자 지출은 연간 약 5000억 달러가 감소한다고 한다. 5000억 달러면 현재 오바마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준비하고 있는 7000억 달러 가운데 감세 금액 300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고, 중국경제의 1/8에 해당하는 규모다.

0퍼센트의 저축률을 유지하던 미국 국민이 과연 단기간에 5퍼센트까지 저축을 늘리면서 지갑을 닫을 것인가.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2009년 저축률이 3~5퍼센트, 또는 그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심지어 골드만삭스는 6~10퍼센트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률이다. 미국 국민들이 지갑을 닫으면 중국의 장난감 제조업체부터 카리브해의 의류 봉제공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기업들이 고통 받을 것이라는 주장은 빈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세금 환급조치가 한창이던 2008년 5월에 일시적으로 저축률이 5퍼센트까지 올라간 경우에 비추어볼 때, 오바마 정부가 3000억 달러 감세조치를 실행하더라도 이것이 소비를 촉진시켜 경기부양으로 가기보다는 저축으로 전환될 가능성마저 높다.

미국 국민이 착실히 저축하고 절약하는 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이 아니라, 반대로 장기불황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경기가 상승하면 저축을 늘려서 과열을 조정하고, 경기가 후퇴하면 소비를 늘려서 경기회복을 도모한 것이 맞지만, 사실상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여왔다. 2000년대 모기지 담보대출로 주택시장이 과열되었을 때 미국 국민은 저축을 거의 제로 수준까지 떨어뜨려 오히려 소비를 확대해 거품을 부추겼다. 이제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자 저축을 늘려 소비위축을 극도로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민간소비 회복을 절대 낙관할 수 없는 이유

그렇다면 한국은 다를 것인가. 물론 한국은 미국과 달리 민간소비로 지탱되는 경제가 아니라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더 심해져 민간소비는 언제나 경제 성장률을 밑도는 3~4퍼센트 수준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2008년 3분기에는 1.1퍼센트로 추락했고, 4분기는 마이너스 0.8퍼센트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9년에는 어떤가. 한국은행은 올해 상반기 민간소비가 -0.5퍼센트로 내려간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에 -15퍼센트로 추락했고, 2003년 카드 대란 시기에도 -2퍼센트까지 민간소비가 떨어진 바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경제위기가 외환위기에 준하는 정도로 심각한데도 한국은행의 전망치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한국은행 전망치를 넘는 민간 소비 추락과 그에 따른 성장률 하락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비 위축과 반대로 저축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카드 대란이 마무리되고 저금리 기조아래 주택담보 대출이 풀려나가기 시작한 2004년과 2005년에는 저축률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우리 국민들도 상당히 오랜 기간 저축을 기피해 왔다. 은행들이 저축보다는 수수료 수익을 좇아 펀드 판매에 열중한 것도 여기에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2008년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도 저축 증가율이 5퍼센트를 넘기 시작했고, 금융위기가 정점을 지나던 작년 10월에는 전년 대비 무려 17퍼센트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국도 예외 없이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지갑을 닫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들의 지갑은 공권력을 동원한다고 해서 열 수 있는 게 아니다. 민간소비는 기업의 투자와 함께 내수기반 회복의 핵심적인 동력이다. 세계적인 소비위축으로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는 마당에 내수회복도 쉽지 않게 되었다.

부채에 의해 소비를 팽창시켜온 경제는 분명히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 그런 뜻에서 각국 국민들이 저축으로 되돌아오는 움직임을 보이고, 이에 따라 불황이 장기화되는 것은 어쩌면 정상 구조로 되돌아가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국민의 소득을 안정화시켜 미래 불안감을 없앨 수 있도록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나아가 민간소비지출을 보완할 정부의 공공지출을 확대하여 장기불황 국면에서 국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하벙커 깊숙이 비상경제 상황실을 만들 것이 아니라 정부는 국민들의 생활현장으로 나와야 한다.

바야흐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고, 1990년대 사회주의를 붕괴시키면서 번영해왔던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가 30년 역사의 막을 내리고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 길고 긴 위기의 터널을 통과해갈 우리 경제가 어떤 변화된 모습으로 세계경제 무대에 복귀할지는 오직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 무엇보다도 올해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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