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 동안 현재 국내 은행들의 높은 예대율과 낮은 BIS비율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외환위기 이후 본연의 자금중개 기능과 건전한 성장을 외면하고, 무리한 대출을 통한 수익추구와 몸집불리기에 집중해왔던 은행들은 미국발 경제위기라는 외부충격을 계기로 심각한 자금난에 처하게 되었다. 시중은행 전체에 필요한 자본금은 10조 원을 훨씬 넘어선다고 한다.

기업과 가계를 볼모로 생존하는 은행

문제는 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바쁜 은행들이 무리하게 기업과 가계에 제공했던 대출을 거둬들이면서, 경제 전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기업과 가계의 위기는 부실채권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은행에게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은행의 자금회수 → 기업 도산과 구조조정 → 은행의 부실채권 증가 → 은행 도산’의 연쇄적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올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면, 내년에는 국내은행에서 촉발된 한국발 금융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난 7일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3단계 방안이 담긴 ‘금융/기업 구조조정안’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1단계는 대주주 유상증자, 후순위채 발행, 부실 기업 정리 등의 방안을 통해 은행 스스로 자본을 늘리도록 하고, 2단계는 국책은행과 연기금을 중심으로 정부가 은행주(후순위채, 상환우선주 등)를 매입하며, 3단계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아직 각 단계들의 구체적인 실행시기와 조건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은행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설 것임을 밝히고 있다. 최근 정부가 은행들에게 내년까지 BIS비율 9퍼센트 확보를 요구한 것 역시, 은행 입장에서는 어려운 요구일 수 있으나 은행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대책 중 하나이다.

은행 살리기에 나선 정부

정부가 중소기업이나 서민들 살리기에는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은행 살리기에는 총력을 기울이는 것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일단 넘어가자. 지금 은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정부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이 무너질 때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생각하더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의 세금을 들여가면서 은행을 살려야만 한다면, 응당 그에 대한 은행의 책임을 요구할 뿐 아니라 기업과 가계 대출이 원활해지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은행만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도로서 은행을 살리기 위한 공적자금 투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르고 적절한 방안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조건으로 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다. 즉 은행의 부족한 자금을 정부가 지원하는 대신에, 정부가 은행의 경영에 개입하여 기업과 가계 대출 방도를 터야 한다. 물론 은행들이 경영개입을 찬성할 리는 없다. 하지만 어려울 때 국민들을 외면하고, 한국발 금융위기를 우려하게 만들 정도의 문제아가 되어버린 은행들이 국민들의 세금을 갖다 쓰고 싶다면 이 정도는 감수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지 않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한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다. 이들은 공적자금에 대한 대가로 은행들에게 많은 요구조건을 걸었다. 영국의 경우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은행들은 2008년 은행 임원에 대한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고, 임원 보수체계를 재점검하며, 중소기업 및 주택구입자 대출을 앞으로 3년 간 2007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미국의 경우 고위경영진에 대한 성과보상금을 정부가 통제하며, 재무부 허가 없이는 우선주 상환과 보통주 배당금 증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은행 임원들의 월급 및 임명, 대출규모와 대상, 주식처리 문제 등 경영상의 모든 것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유는 하나, 그들은 국민들의 세금을 지원받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정부의 은행 경영 개입을 두고 ‘은행 국유화’라고 우려를 표한다. 국유화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며 반감을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은행을 위해 국민의 세금을 퍼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은행 국유화가 더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용어설명

<최근 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제기되고 있는 방안들>


▶ 주주 배당 유보 및 축소

은행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빠져나가는 자본을 축소하거나 동결시켜서 은행자본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현재 주주들의 반발이 우려되지만, 정부의 경영권 간섭을 꺼려하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놓고 있는 방안이다. 우리금융지주가 주주 배당을 유보해 자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전해진다.

▶ 후순위채 매입
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를 정부 혹은 한국은행이 매입하여 은행자본을 늘리는 방안이다. 후순위채는 BIS비율 산정에서 부채가 아닌 자기자본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후순위채를 발행하면 BIS비율을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이를 매입하여도 은행의 지배구조나 경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은 은행이 갚아야 할 빚으로 남게 되어, 재정적 부담이 있다.

▶ 대출 채권 매입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소기업대출을 채권으로 만든 뒤 주택금융공사 등 국책금융기관에서 매입하여 은행자본을 늘리는 방안이다. 은행의 위험자산을 정부가 사주는 것으로 BIS비율을 올릴 수 있으나, 대신 부실채권에 대한 부담을 정부가 지게 된다.

▶ 상환우선주 매입
상환우선주는 이익배당에서 보통주보다 우선권을 갖지만 일정기간 후 기업에 다시 팔아야 하는 주식을 말하는데, 은행이 상환우선주를 발행하고 예금 보험공사 등 국책금융기관이 매입하는 방안이다. 정부가 은행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지만, 의결권이 없는 주식이기 때문에 은행의 지배구조나 경영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부는 은행 수익을 배당받아 재정으로 활용할 수 있다.

▶ 보통주 유상 증자(공적자금 투입)
흔히 말하는 공적자금 투입은 기존 은행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유상 증자를 실시하고, 정부가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신주를 사들여 은행의 주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주주의 구성과 비중이 바뀌는 것으로 은행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변화를 가져온다. 유상증자액이 클 경우 정부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