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12.24 10:04

서브프라임 사태로 일국을 넘어 전 세계로 경기침체를 수출한 월가의 베일이 낱낱이 벗겨지고 있다. 이윤은 사적으로 향유되고 손실과 위험은 사회적으로 부담되는 것을 넘어, 이제 사기와 부도덕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는 넓고 사기 칠 곳은 많았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사기 치기에는 세계가 너무 좁았을까. 수십 년에 걸친 사기 행각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현금’이 필요한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결국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법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와 매도프 폰지 사기사건은 너무도 흡사하게 타락한 월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닌자 대출(Ninja: No income, no job, asset)로 알려진 약탈적 대출을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미끼로 유혹하여 엄청나게 팔아댔고, 이러한 대출들은 금융 연금술이라 알려진 파생상품으로 각색되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수천 개의 MBS(주택저당증권) 중에서 우량 등급을 받지 못한 채권들을 한데 묶어 신용부도스왑과 같은 신용파생상품의 ‘신용보강’ 기법을 통해 각색된 것이 바로 CDO(채권담보증권)다. BBB 등급 채권이 AAA로 바뀌었기 때문에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리지만, 안전한 채권으로 순식간에 둔갑한 것이다.

             [그림1] 시장변동과 상관없는 꾸준한 수익률

이론적으로 채권 등급이란 디폴트의 확률, 즉 안정성을 반영하므로 동일한 채권 등급은 동일한 수익률을 보여야만 한다. AAA 회사채 수익률보다 AAA CDO 수익률이 2~3퍼센트 높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몰렸고 결국 천문학적인 부실을 초래하였다. 기실, 다른 펀드보다 "더 안전하면서도 더 높은 수익률"을 광고하는 펀드들은 대부분 ’사기’이거나, 다른 펀드매니저가 ‘바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도프의 돈줄이 되었던 십여 개의 ‘자(子)펀드’ 중 최대의 금액을 투자했던 센트리 펀드의 경우 왼쪽 그림에서 보듯, 나스닥 붕괴 이후 S&P 500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던 시기에도 10퍼센트에 육박하는 꾸준한 수익률을 올렸다. 심지어 서브프라임 사태로 헤지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수십 퍼센트의 마이너스 손실을 보이던 올해에도 적지 않은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이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친 희대의 사기꾼의 행적을 통해, 최근 온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부동산, 펀드의 광풍 혹은 재테크의 신화에 대해서 되씹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금융사기의 재구성, 무덤에서 폰지를 불러낸 매도프...1920년 찰스 폰지

매도프
사기 사건의 앞에 통상 ‘폰지(Ponzi)’ 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보스턴으로 건너간 찰스 펀지는 1919년 스페인에서 온 국제우편 한 통을 받는다. 답장에 동봉된 국제우편쿠폰(International Reply Coupon)을 바꾸러 우체국에 갔다가 폰지의 머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통화가치가 떨어진 나라에서 쿠폰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통화가치가 오른 나라에서 현금으로 바꾸면 큰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생각한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환차익을 노린 차익거래(arbitrage) 방식이다. 헤지펀드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국제우편쿠폰은 미국을 비롯한 60여 개 나라가 맺은 국제협약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쿠폰을 보낸 사람이 회신우편 요금을 미리 대신 치르게 하였다. 협약 초기에는 쿠폰 가치가 비슷했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통화가치는 폭락하고 미국의 통화가치는 상승했기에 쿠폰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미국에서 달러로 바꿀 수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당시 쿠폰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이 불법이었으며, 수십억 장의 우표를 매집해야 했기 때문에 현실이 될 수 없는 공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폰지는 1919년 12월, 쿠폰 사업을 통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45일간 투자에 50퍼센트 수익 보장”이라는 현란한 광고와 함께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사업 구상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던 사람들도 실제로 높은 수익을 올려주자 그의 사무실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920년 2월 5,290 달러, 4월 14만 달러, 5월에는 44만 달러로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6월에는 급기야 250만 달러로 불어났다. 불과 반년도 지나지 않아 투자금액이 500배 정도 증가하였다. 7월에는 650만 달러로 불어났고 7개월 만에 3만 여명의 사람들이 천만 달러를 투자하기에 이르렀다. 최종 투자금액은 1,5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억 6,000만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폰지는 사실 소득을 창출하는 어떠한 사업도 벌이지 않았다. 단지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을 챙겨주는 것이 그가 한 일의 전부였다. 수익 모델이라고 알려진 쿠폰 거래는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도록 유인하는 미끼투자, 즉 윈도우 드레싱(Window dressing)에 불과했다.

수학적으로 폰지 수법은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는 사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 달 내에 100만 원을 투자하면 두 배의 수익을 안겨준다는 다단계 폰지 사기의 경우, 최초에 두 명의 투자자로부터 200만 원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 달에는 최초의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안겨주기 위해 네 명의 투자자가 필요하며, 그 다음 달에는 여덟 명의 투자자를 모아야만 약속을 이행할 수 있게 된다. 10개월 후에는 1,024명의 투자자가 필요하며, 18개월 후에는 25만 명의 투자자를 모아야만 사기가 지속될 수 있다. 즉 투자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야만 사기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에, 다단계 사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투자자가 원리금을 인출하지 말고 더 높은 수익률을 줄테니 재투자하라고 유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튼, 매도프 사기사건은 지속성, 범위, 강도 등 역대 그 어느 사기사건보다 강력하면서도 고객들이 환매를 요구하기 전까지 발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기에 전 세계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금융기관과 펀드매니저들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금융혁신가가 폰지 사기꾼으로

1960년대에 22살 청년 매도프는 전통적 주식거래 외곽에서 장외 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을 창립했다(<뉴욕타임스> 2008.12.19, “Madoff Scheme Kept Rippling Outward, Across Borders”). 이 조그만 기업이 1989년에는 나스닥 투자의 5퍼센트를 거래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채권 왕 밀켄, 헤지펀드 투자가 조지소로스와 함께 최고 수익을 올린 투자자로 등극되기도 하였다. 창업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배경으로, 1990년에는 나스닥 비상임 회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만 해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전자거래’ 기법을 현실로 옮긴 혁신적 기업가의 마인드를 가졌다.

이러한 마인드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반, 당시 거래하고 있었던 신시내티(Cincinnati) 주식 거래소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여, 최초로 컴퓨터로 증권을 거래하는 방식을 창안하였다. 또한 새로운 전자거래 기술을 도입하여 주식 거래의 비용 절감과 거래 속도 상승으로 거대 증권회사로부터 사업을 따내어 명성을 점차 얻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업 확장을 배경으로 1990년대에 뉴욕 지방의 유태계 자선단체에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며 부유층 시장으로 파고들면서 사기꾼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뉴욕의 유태계 공동체의 고급 골프클럽, 자선단체, 사교클럽을 통해 은밀하게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한 매도프의 명성은 ‘입소문’을 타고 부유층이 모여드는 여러 사교단체에 퍼져 나갔다.

                                    [표1] 매도프에 투자한 주요 금융기관 목록

뉴욕 지방의 유태계 부유층의 한계를 벗어나 매도프의 명성을 더욱 날리게 된 계기는 에즈라 머킨(Merkin)을 만난 이후다. GM의 자회사인 GMAC 회장이기도 한 머킨은 Yeshiva, Tufts 대학, 그리고 카니지 홀을 비롯한 여러 비영리단체의 이사로서 활동한 유명인이었다. 머킨의 명성이라면 투자를 믿고 맡기기에 충분했으며, 그는 Ascot Partners를 통해 매도프에 자금을 공급했을 뿐이다. 통상 자산을 실제로 운용하는 헤지펀드인 모계펀드(master fund)에 투자하므로 이러한 펀드를 子펀드(feeder fund)라고 한다. 국내 운용중인 상당수의 재간접펀드(fund of fund) 또한 실제 운용방식은 이러한 子펀드와 같으며, 대부분 국외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유태계 부유층에서 시작한 사기는 머킨을 낚으면서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한 사기행각이 국제적으로 확대된 결정적 계기는 페어필드(Fairfield)를 운용한 노엘(Noel) 가문을 만나면서 부터다.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는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독보적인 수익률을 올리는 아이콘 펀드를 ‘창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페어필드는 센트리(Sentry) 펀드를 내세웠다. 센트리 펀드는 지난 15년 동안 연평균 11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렸으며 뉴욕에 본사를 두었지만, 외국인 투자자가 자금의 95퍼센트(유럽 68퍼센트, 아시아 6퍼센트, 중동 4퍼센트)를 제공한 글로벌 펀드였다.

세계는 넓고 사기 칠 곳은 많다

페어필드를 운영한 노엘(Noel)은 네 명의 사위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첫째 딸과 결혼한 콜롬비아 사람인 Piedrahita는 스페인과 영국에서, 나머지 사위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매도프를 위해 열심히 펀드를 팔았다. 노엘의 네 명의 사위들이 유럽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결과, 스페인의 산탄테르(Santanter), 오스트라아의 메디치(Medici) 은행을 비롯한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매도프의 사기술에 걸려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Madoff was looking for new money as scandal hit" 2008.12.22)에 따르면, 이들 유럽 은행들은 매도프에 투자한 대가로 연간 2퍼센트 정도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에서 최대 금액인 23억 유로(32억 달러)를 투자한 스페인의 산탄테르 은행의 경우 최대인 2.15퍼센트의 수수료를 챙겼는데, 펀드를 판매하여 연간 5,0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 메디치 은행의 경우, Herald USA 펀드와 Herald Luxemburg 펀드를 설립하여 은행, 보험회사, 연기금에서 자금을 끌어모아, 2004년 이후 21억 달러를 매도프에 투자하여 연 7퍼센트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Herald USA 펀드는 지난 달 독일에서 “혼란스러운 기간에 꾸준한 수익률을 입증”했다는 이유로 올해의 헤지펀드 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정성과 수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까지 100억 달러 이상을 날린 것으로 알려진 유럽 금융기관들 전부가 매도프의 사기에 농락당한 것은 아니다. 매도프는 헤지펀드의 여러 투자기법 중 하나인 ’Split-strike conversion’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우량주 중심으로 구성된 S&P 500 주식을 구입하면서 풋옵션과 콜옵션 전략을 동시에 사용하여 손실을 줄이는 헤징 전략에 불과하다. 따라서 위험과 변동성을 줄일 수 있기에 안정성은 높지만, 수익률은 S&P 500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 헤지펀드들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다른 헤지펀드의 투자기법을 모방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비슷해지는데, 다른 헤지펀드에 비해 꾸준하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헤지펀드는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롱텀캐피털처럼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한 은행은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너럴이었다. 2003년 매도프에 투자한 Zurich Capital 인수를 검토하던 소시에테 제너럴의 회계 팀은 뉴욕을 방문한 후 매도프 기법을 직접 검증하였고, 실제 매도프가 달성한 결과를 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소시에테 제너럴은 운영 중인 펀드들이 매도프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Zurich Capital은 라이벌인 BNP 파리바에 인수되었다(<뉴욕타임스> 2008.12.17, “European Banks Tally losses linked to Madoff”).

또한 HSBC나 BNP 파리바 등은 직접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매도프에 투자한 헤지펀드에 자금을 빌려주어 손실을 입기도 하였다. 자금을 빌려준 대가로 담보를 받긴 했지만, 대부분 헤지펀드의 지분으로 구성되었으므로 헤지펀드가 청산한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다.

2004년부터 매도프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금융사기가 대서양을 건넌 것도 모자라, 아시아에 상륙한 곳이다. 처음 건너간 곳은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수익률 경쟁에 애가 타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싱가포르의 Lion Capital과 합작으로 Lion Fairfield를 설립하여, 한국의 대한생명, 대만의 Cathy 생명, 일본의 스미모토 생명 등 주로 보험회사와 연기금을 통해 자금을 끌어 모았다. 2005년 초에는, 7,000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 아부다비투자청마저 센트리 펀드를 통해 4억 달러를 투자하기도 하였다.

세계적 금융사기의 붕괴와 교훈

매도프와 그에게 자금을 공급한 금융기관들의 명성과 능력에 견주어 볼 때,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20여 년간 지속된 그의 사기행각은 최소 10여 년은 더 지속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기행각이 들통 나게 된 계기는 투자자들이 갑자기 환매, 즉 현금을 요구하면서 부터다. 자신의 원래 사업이었던 주식 중개기업을 물려받은 아들조차 속일 정도로 완벽한 사기행각이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공황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500억 달러를 사기 친 매도프 투자회사(헤지펀드)에는 소규모의 인력과 컴퓨터가 전부였다고 한다.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전달만 하면 되었기에 굳이 많은 인원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최소비용의 최대효과라는 경제적 극대화 이론이, 최소비용의 최대사기라는 사기 극대화 이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펀드 환매 요구에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매도프는 Kallisto라는 새로운 펀드를 설립하여 자금을 모으고자 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고, 아들들에게 “기본적으로, 거대한 폰지 사기”라고 털어 놓고서야 체포되고 말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 증권거래소(SEC)가 그의 폰지 사기에 대한 제보를 9년 동안 묵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전직 투자회사 직원이었던 마르코폴로스가 지난 1999년부터 9년 동안 SEC측에 제보를 했지만, SEC는 이를 묵살해 왔다. SEC가 지난 2006년 자체 조사를 진행하여 일부 법률 위반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지만, 폰지 사기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벌이지 않고 개인적인 보복 행위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매도프가 주가의 등락과 관계없이 매년 12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올리자, 투자회사 사장으로부터 “왜 당신은 매도프처럼 못 하느냐”는 질책을 받은 후 동료와 함께 그의 투자를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금융공학자와 함께 동일한 자료를 넣어 검증해 보았지만 그와 같은 수익률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지난 9년 동안 메일을 통해 제보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월가가 썩을대로 썩은 것이다.

우리는 이번 매도프 사기행각과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번 사건은 앞서 말했듯이 서브프라임 사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즉 고수익을 미끼로 끊임없이 신규 투자자들을 모집했다는 점이다. 단지 전자는 ‘사기’를 유지하기 위함이었고, 후자는 ‘버블’을 지탱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에 차이만 있을 뿐이다. 부동산, 자산 버블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MB 정권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둘째, 금융규제와 감독, 그리고 투자자 보호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또한, 투자은행, 구조화 투자회사, 헤지펀드 등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금융회사들이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들을 농락했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셋째, 금융 이윤의 사유화, 금융 손실의 사회화를 넘어, 이제는 금융사기가 세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기의 마수는 돈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미쳤으며, 고수익을 좇은 부유한 개인투자자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도 사기를 당할 정도로 수법이 진화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세계화가 세계 인민의 정보와 교류, 소득의 창출에 기여하기보다는, 버블과 사기, 손실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면 이 또한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것이다.

넷째, “채권처럼 안정적이지만, 주식처럼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간접투자란 사실상 사기에 가깝다는 점도 철저히 깨닫고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강남 부유층을 상대로 한 ‘다복회’ 사건,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3만 여명의 서민들을 농락한 국내 최대 다단계 사기사건 등 수많은 금융사기 행각이 드러나고 있다.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고 환매 요구가 늘어날수록 이러한 사기 행각들의 베일은 갈수록 노출될 것이다.

초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로 투자자들을 유혹한 후, 초기 투자자들 속에서 퍼진 ‘입소문’으로 사업이 문어발처럼 확대되고, 더 많은 투자자들을 모으기 위해 목표수익률을 높인다던지 재투자를 요구하는 방식 등은 모든 다단계 사기에 공통된 수법이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대박 혹은 재테크 신화의 일그러진 단면을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3억 원 아파트가 불과 몇 년 만에 10억 원이 되고, 작년 두 배가 넘던 중국펀드의 수익률 등은 우리 사회에 재테크 신화를 만들어 놓았다. 가계의 고용과 소득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준거집단 혹은 여론주도층이 재테크의 허상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뒤떨어질세라 뒤늦게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이 자산디플레 상황에서 현재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뉴타운을 대가로 민주주의를 버린 결과, 거대여당의 횡포와 전근대적 통치 방식으로 사회는 짓눌리고,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후퇴하고 경제는 곤두박칠치고 있다.

재테크의 신화가 기업에까지 확대된 것이 바로 중소기업을 농락한 키코 사건이다. 펀드 판매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린 은행들이 외국에서 키코 상품을 수입하여 수수료를 챙긴 대가로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울리고 있다. 부동산과 파생상품이 노동력과 생산설비에 투자한 것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면 생산적 자본조차 투자할 유인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신용을 매개로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여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데 기여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자본이 버블을 매개로 생산자본이나 인적자본보다 고수익을 올린다면 모든 경제 활동과 자원은 거기에 집중되고 기업의 투자나 가계의 소비, 자기계발 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재테크도 생산적 투자나 노동자의 소득 창출에 기초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가계의 소득 증가율이 주택가격 상승률보다 낮은 부동산 버블, 생산적 기업의 수익성 보다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이는 주식버블 등은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

앞과 뒤가 바뀌고 배보다 배꼽이 큰 경제, 그것이 미국경제를 몰락으로 몰고 간 주범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마저 4분기 영업적자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주식에 투자하면 부자가 된다는 무식하고 천박한 대통령이 있는 한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1996년 GDP의 50퍼센트에 달하는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으로 정권이 붕괴되고 급기야 내전으로 치달아 2천 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알바니아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