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12.12 14:35

2009년 예산안을 둘러싸고 공방이 치열하다. 민주당은 대운하 의심사업으로 분류되는 예산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 관련 예산 삭감을 공언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제1야당답지 않게 12일까지 합의처리해 주겠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자유선진당, 친박 연대와 공조해서 감세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모두 포함된 예산안 통과를 강행할 태세다. 소수 정당인 민주노동당만이 “감세 법안이 미치는 영향과 내년도 예산에 주는 피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급하게 처리하면 안 된다”며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을 뿐이다.

마이너스 경제시대에 국가예산 함부로 처리하는 국회

예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국회의 예산처리과정을 보면 아직 정치인들이 경제의 심각성에 대해 말과는 달리 전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지금 고용, 소비, 수출, 경제 성장률이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커질 정도로 경제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

향후 한국경제가 마이너스 시대가 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구축된 경제시스템이 다시 한 번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시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 예정되어 있는 와중에 시장 메커니즘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상태다. 이미 외환시장에 시장은 없으며 자본시장과 채권시장도 사실상 멈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때문에 현재 실패한 시장을 대신해서 다시 국가가 경제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1970년대처럼 국가가 수출주도형 경제를 창출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 세계적인 소비위축으로 수출시장 자체 규모가 절대적으로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는 내수를 회복시키기 위해 모든 가용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불황으로부터 가장 빠르게 탈출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수출 못지않게 우리의 내수기반 역시 구조적으로 대단히 취약해져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내수를 살려야 할 절박성이 역사상 가장 크게 대두되는 시점이며 국민적 동의를 가장 폭넓게 얻을 수 있는 시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내수기반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구조전환의 기회일 수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는데 감세라니? 무모함의 극치

현재는 전 세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부채와 자산 축소과정이 진행되고 있고, 유동성 부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의존해서 경기회복을 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는 11월 수정예산안에서 2009년 예산을 283조 8,000억 원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동시에 감세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세금을 줄이면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빚을 내는 것이다. 당연히 정부는 2009년에 17조 6,000억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외환위기 시기의 발행된 적자국채 10조 원을 훨씬 넘는 금액이다.

그런데 여기 중대한 문제가 있다. 2009년 경제성장이 제로 성장에 접근할수록 감세를 하지 않아도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경제성장률을 5퍼센트로 가정하여 세금 수입을 179조 6,000억 원을 잡았다가 11월 3일 수정예산안에서 성장률을 4퍼센트로 하향 조정한 뒤 세금 수입을 177조 7,000억 원으로 변경했다(국회예산정책처, “2009년 수정예산안의 경제적 효과 분석”, 2008. 11).

단순한 산술 계산으로만 보면 성장률이 1퍼센트가 떨어지면 약 2조 원 정도 세수가 줄어드는 셈이다. 만약 경제 성장이 2퍼센트로 떨어지면 당초 세수보다 6조 원 이상이 줄어든다는 얘기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큰 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의 우려대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빠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거기다가 감세마저 추진해서 세율을 낮춰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명박 정권은 물론 국가라고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 뻔하다.

더욱이 그동안 수차례 지적된 것처럼, 내수를 진작시키는 데에는 감세보다 재정지출이 효과적이다. 재정지출 1조 원 확대는 1만 3,000명의 고용유발, 0.11퍼센트의 성장률을 가져오지만, 1조 원 법인세 감세는 2,322명의 고용유발과 0.013퍼센트의 성장률 상승을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각 국가에서 감세를 보류하고 굳이 감세를 한다면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를 내려서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영국정부는 2008년 11월 24일 공개한 ‘사전예산보고서(Pre-Budget Report)’에서 부가세(VAT)를 현행 17.5퍼센트를 15퍼센트로 내리겠다고 발표했고, 아울러 집권 노동당이 차기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연소득 15만 파운드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40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법인세나 재산세 감세를 고집하면서 재정지출 확대를 추구한다면 민주당 이용섭 의원의 주장처럼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이명박 정부 임기 말에는 심각한 재정위기가 올 수 있다는 예상이 현실화될 가능성마저 높아진다. 이처럼 법인세나 종부세 등 현재의 감세정책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가 단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국민경제를 살리는데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에도 원칙이 있다

감세 중단을 전제로 한다면 국가의 대대적인 재정지출은 누구에게 어디로 향해져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외환위기로 인해 파산상태에 빠진 은행들과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과거에 약 16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이들을 구제해준 경험이 있다. 국민들은 금모으기까지 해서 ‘대마불사’의 신화를 거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100조 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국민경제가 살 수 있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살려놓은 대기업과 은행들이 회생한 이후 고용을 다시 원상 복귀시키는 것은 아니다. 1996년에서 2006년 10년 동안 300인 미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220만 명이 늘어난 반면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78만 명이 줄어들었다. 11년 전 환란으로 대기업이 인력을 대폭 줄인 후에 지금까지 거의 고용을 늘리지 않았음을 통계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해야 한다. 1) 은행이나 대기업을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다수 국민에게 혜택이 올 수 있도록 직접 지출되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2) 불가피하게 은행과 대기업에 지출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주주의 책임과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3) 재정지출과 공적자금 투입의 제 1원칙은 고용 창출력이 높은 곳에 투입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볼 때, 현재 정부지출이 집중되어야 할 지점은 ‘토목 건설 분야’가 아니라 ‘사회서비스 분야’다. 세계 각국이 이른바 뉴딜정책을 벤치마킹 하고 있는데, 굳이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면 1930년대 미국이나 1970년대 한국의 토목건설 뉴딜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투자에 집중하는 21세기 방식의 뉴딜이 필요하다.

토목건설이 맞지 않는 것은 ▲ 최근 10~20년간 상당히 투자되어 있어 추가 투자를 해도 투입대비 효용이 높지 않다는 것이고, ▲ 과거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서비스 인프라 투자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투자’는 ▲ 향후 장기 불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육아,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효과적인 지원책이 될 수 있으며, ▲ 고용창출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날 수 있고, ▲ 선진국에 비해 절반 수준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 분야의 기반 확충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를 위한 공공지출을 늘리는 게 해법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은 전체 서비스 가운데 20.2퍼센트에 불과한데, 스웨덴의 43.9퍼센트나 미국의 32.4퍼센트에 비해 턱 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산업연구원, “서비스업 고용변화 요인과 시사점”, 2006. 10). 더욱이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 지출 비중은 선진국의 1/4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필요성 자체가 내재한다고 봐야 한다. 또한 도소매 위주의 서비스업과 자영업 초과잉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한 방법도 바로 사회서비스를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덧붙여 둘 것은 이들 사회서비스 확대와 이를 위한 공공지출 확대가 이 분야의 민간기업화 촉진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회서비스 분야의 공공기관 창출과 사회적 기업 등 자치 사회단체의 자율적 운영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와 병진해서 민간 부문 활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고용창출 없는 내수회복이란 존재할 수 없다. ‘고용창출 → 소득확대 → 소비촉진 → 구매력 창출 → 내수 확대 → 고용확대’의 순환구조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정부재정 지출이 필수적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 직업훈련 대대적 지원, ▲ 실업급여기간 연장, ▲ 사회서비스 공공지출 확대, ▲ 대기업 고통분담론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이는 노동자의 생존요구가 될 뿐 아니라 내수 기반확대와 경기회복을 위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이미 독일 정부는 이미 실업보험 수령기간을 현행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하기로 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기업도 2009년부터 불황의 늪을 피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가장 여력이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우량 대기업들이 몰려있는 유가증권시장의 12월 결산법인 경우 2008년 9월말 현재, 내부 유보율이 696퍼센트로서 2007년 말에 비해 37.94퍼센트나 증가했다(증권선물거래소, “12월 결산법인 2008년 3분기 유보율”, 2008. 11). 삼성 그룹은 유보율이 무려 1,488퍼센트를 넘고 현대 중공업도 1,398퍼센트를 넘는다. 11년 전 노동자의 고통분담을 현재 대기업이 되갚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2009년, ‘Again 1997’이 될 것인가?

2009년부터 장기불황과 고용대란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갈등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번에는 대기업과 거대금융이 아니라 다수 국민이 조속히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최우선하도록 되어야 한다. 즉, ‘Again 1997’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한국 국민은 이들 되풀이하지 않도록 지난 11년간 학습한 경험이 있다.

경제위기의 해법이 시장에서 국가로 넘어온 시점에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면 될수록, 그리고 국가의 경제 통제 강화가 필요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국가에 대한 국민통제 강화 필요성이 커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제적 요구가 정부에 대한 요구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올 겨울부터 고용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서 대기업 정규직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부터라도 살고 보자’가 불가능한 시점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연대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넓게는 케인주의까지 연대와 협력의 외연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 구조전환의 기회가 지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살아나야 구조전환의 기회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