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10.22 10:02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미 아이슬란드와 헝가리, 우크라이나가 IMF에 손을 벌렸고, 파키스탄 또한 구제금융 승인을 위해 교섭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과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경험이 있는 터키, 아르헨티나 등도 이미 요주의 관찰 대상에 올랐다.

더군다나 일본과 유럽의 3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이 기정사실화되고, 미국 또한 1퍼센트 미만의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3분기 성장률이 9퍼센트로 추락하여 4사분기 이후 세계경제는 심각한 ‘불황’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또한 최근 치솟는 환율과 주가 폭락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이렇듯 세계경제 침체는 내수가 취약한 ‘수출주도 성장경제’에 IMF시대에 버금가는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신 브레턴우즈 체제 구축 논의 ‘활활’

세계는 지금 심각한 불황을 예고하며 ‘달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태의 주범인 ‘미국’은 달러를 주조할 수 있다는 특권으로 그나마 한가한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통화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브레턴우즈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비록 지금은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부실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분 국유화’ 조치를 취하는 등 위기 대응과 공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점차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기구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제 금융질서를 어지럽힌 핵심 문제는 급격한 자본이동(capital mobility)과 환율 변동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이후 이미 100여 건의 외환위기가 발생했음에도 미국의 강력한 정치, 경제, 군사적 헤게모니로 불안정한 ‘달러 체제’는 유지되고 있다. 2조 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고를 갖추고, GDP의 11퍼센트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중국, GDP의 4%, 6%에 이르는 미국의 재정, 경상수지 적자는 이를 단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주도 성장정책을 통한 막대한 외환보유고 비축은 미래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와 관련이 있다. 이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학습한 위기 예방조치이자, 불안하고 불공평한 국제 금융질서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 금융질서가 새롭게 개편되지 않는다면 달러를 비축하기 위한 주변부 국가들의 수출주도 성장정책과 중심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라는 세계경제 불균형은 언제든지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주요인임을 주목해야 한다.

‘수출주도 성장경제’와 ‘차입-소비형 성장경제’의 빗나간 불균형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수출주도 성장경제는 세계경제의 ‘최종 구매자’로 묘사되는 미국의 소비시장에 재화를 판매하면서 유지될 수 있다. 또한 GDP의 70퍼센트를 초과하는 미국의 소비지출은 실질소득이 정체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가정에서, ‘차입’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구조다. 90년대 미국의 신경제가 IT 혁명과 주식 버블을 통해 유지되었다면, 2000년대는 부동산 버블을 통해서 간신히 버텨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두 번의 자산가치 상승을 통한 차입-소비성장형 버블 속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91년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2006년에는 GDP의 6퍼센트에 이르렀다. 또한 중국 기업과 미국 소비자의 연계는 미국의 글로벌 금융기관이 주도하였고,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국채를 매입(8월 기준 5,400억 달러)함으로써 최종 완결되는 구조였다.

사실상 미국의 차입-소비성장형 버블이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로 소비지출의 위축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불균형의 불안한 균형’의 토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점차 해소되더라도 실물경제의 침체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1년 미국의 경기침체가 재정균형의 U-턴(흑자에서 적자로)과 대규모 금리인하(6.5%→1%)에 따른 소비지출의 확대로 극복되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재정, 통화정책 어느 것 하나 녹록치 않은 상황이라 경기침체의 극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2008년 회계연도(2007 10월~2008년 9월)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지난해(1,615억 달러)의 세 배에 육박하는 4,548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구제금융 7,000억 달러와 추가 경기부양으로 거론되는 1,500억 달러를 포함하면 내년 재정적자는 거의 1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난 8월 5.25퍼센트였던 금리를 1.5퍼센트까지 내렸지만 신뢰가 무너지고 천문학적인 금융부실이 노출되고 있는 지금,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은행의 대출기준 강화 및 자본금 확충을 위한 부의 레버리지 효과,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기업의 투자 위축, 실업률 상승과 실질소득 정체에 따른 가계의 소비 위축 등은 경기침체의 페달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특히 글로벌 불균형이 새로운 균형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를 방어하기 위해 각국의 출혈 수출정책이 가속화된다면, 세계적 디플레이션과 구조조정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은 신뢰 잃어... 새 금융질서는 ‘규제와 감독’ 아래에서

앞으로 새로운 금융질서는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필두로 한 개별 국가의 외환위기, 세계경제의 불균형, 그리고 금융부실의 세계화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중심부 채권국가들의 상환을 보장하기 위해 주변부 국가들의 거시경제정책을 무력화하거나 헐값에 공기업을 매각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지금 중심부의 문제가 낱낱이 드러난 이상 ‘달러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개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급격한 자본이동의 문제가 개별국가가 직면한 외환위기의 본질이라면, 단기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도록 단기 외환거래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동일한 비율의 세금(토빈세)을 부과해야 한다. 또한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의 부정적 행위가 모든 금융기관으로 학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다른 금융기관과 동일한 건전성, 안정성 감독 및 규제를 적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세 피난처를 통한 역외 조세 및 규제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인 감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별국가들은 환율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외환준비금을 매각해야 하는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 개별국가의 달러 비축량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시장은 그 규모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현 체제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레버리지 차입이 용이한 국제적 투기꾼들은 하락하는 통화를 공매도하여 이득을 챙기려는 유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발권력과 태환성으로 통화를 무한대로 매각할 수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에 자유로운 비대칭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달러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방향은 개별국가 통화의 ‘태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국내적으로 최종적인 지불청산이 국내 통화를 통해 중앙은행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을 세계적 범위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대 금융경제에서 채무자는 제3자, 특히 자신보다 ‘지불 피라미드’ 구조에서 상층에 있는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지불증서’를 통해서만 부채를 청산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중앙은행이 있는 구조를 세계적으로 확장시켜 국제청산통화(International Money Clearing Unit)를 도입하여, 각국의 중앙은행만이 보유하는 국제청산통화의 태환성을 세계은행이 보장하는 방식이다.

물론, 초기 국제청산통화와 자국 환율은 고정되어야 하며 국내 물가상승률에 따라 환율은 일정 범위 내에서 협의로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타국에 비해 국내 생산성 증가는 국제청산통화에 대비한 자국 화폐의 실질경쟁력을 높여 생산성 이득이 무역상대국과 공유되지만, 상대적인 시장점유율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움직임과 더불어 국내적으로는 외환거래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역외시장에서 발생하는 외환거래의 비중을 축소하고, 외화 자산을 차입하거나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의 경우 중앙은행에 일정 기간(통상 1년) 동안 자산의 일부를 지준금의 형태로 예치하도록 하는 가변예치의무제도(Variable deposit requirement)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처럼 급격한 자본 유출을 방지하는 예방체계가 미연에 갖추어져 있었다면, 은행의 외화차입에 대해 외환준비금을 동원하여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사태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기 차익거래를 노리는 은행의 무분별한 외화 차입과 만기 불일치 문제가 최근 금융권 유동성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브프라임 사태로 말미암아 ‘시장이 자원과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시장 근본주의는 신화이거나 망령에 불과했다는 사실.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침체되었지만 배워야 할 ’피의 교훈’이다. 지구촌이 지혜롭다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구축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더 강력한 돌연변이가 지구에 창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새로운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미국 부시보다 강력한 이명박정부는 금융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여 미국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품은 뜻이 큰 건지,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여경훈/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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