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초중고교 교육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위험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재선된 공교육감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경쟁을 통해 학교체제를 하나의 거대한 학교시장으로 만들려는 실험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공교육감의 귀족학교, 학력경쟁을 위한 위험한 실험
공교육감의 교육정책 대부분은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위한 경쟁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에게 경쟁 빼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공교육감은 ‘경쟁을 통한 교육경쟁력 강화’를 교육철학의 전부로 삼고 있다. 공교육감은 당선되자마자 국제중학교 설립, 고교선택제 확대, 일제고사 실시, 교육뉴타운 건설과 자립형사립고 신설 등을 서두르고 있다.
국제적 인재양성을 위해서 중학교때부터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거나, 고교선택제를 실시해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하위 2% 학교는 퇴출하겠다는 공교육감은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경제학자에 가깝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교육을 시장에 맡기고 경쟁시키면 된다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공교육감의 교육정책이 더 위험스러운 것은 당선의 주요 지지계층인 일부 강남권 중상류 계층과 특정 종교사학, 학원, 특정 이념세력을 대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학교로 설립되는 국제중학교는 의무교육형태인 초등교육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중 설립이 전국적으로 봇물 터지듯이 번지면서 사교육 시장 증가와 중학교 입시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청심국제중학교는 조기유학을 다녀온 교육자, 사업가, 의사의 자녀가 60%를 차지할 정도로 귀족학교가 되고 있다.
교육뉴타운 건설과 자립형 사립고 확대는 사실상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외국어고 등 특목고의 전철을 밟을 것이 뻔하다. 또한 학교선택제와 일제고사 결과 공개는 학교를 서열화하고, 입시경쟁을 위한 전쟁터로 만들어 교육양극화와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공정택 교육감의 위험한 교육실험들은 한국의 교육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지도 모른다.
공교육감의 지난 4년 평가, 사교육비만 폭등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2/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 가계지출을 보면 입시보습학원비 등 보충교육비가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가구당 교육비로 월평균 24만 원을 지출해 사상 처음으로 20만 원대를 넘어섰다. 지난 7일 발표한 한국은행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최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극심한 경제침체와 물가폭등에도 불구하고 교육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상반기에 마침내 15조 원을 돌파했다. 2003년 10조 원 가량이던 교육비가 5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 가계소비지출 가운데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6.2%로 증가하였다.
이명박정부 출범 후 교육시장화 정책이 최근 사교육 폭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또한 평준화가 ‘학력저하’를 가져왔다며 ‘학력경쟁 강화’를 내세워온 공교육감의 지난 4년간의 책임도 크다. 공교육감은 자사고, 특목고 확대, 일제고사 부활, 전국학력평가 실시, 영어몰입교육, 학원교습시간 연장 등을 추진해 왔다.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며 학교간 경쟁을 위한 전체학교 평가를 실시하고, 10여년 전 폐지되었던 초등학교의 중간 및 기말고사를 부활시켰다. 국제고, 과학고 등 특목고를 확대하고 국제중학교를 설립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사교육비 증가는 ‘학생들이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며 24시간 학원자율화를 요구하는 학원의 요구에 시교육청이 앞장서 온 결과이기도 하다. 0교시, 심야 강제자율학습, 학원의 심야 불법교습 폐지를 요구하는 학생, 교사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보다는 3개월 동안 3번에 걸쳐서 학원의 심야교습 시간 제한을 폐지하려 하였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성적과 경쟁을 강요하는 이러한 학력신장 정책은 결국 학부모와 교사,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고교평준화와 교육양극화해소 서울시민추진본부에 의해 ‘공교육감 퇴진’운동까지 불러왔다. 당시 공교육감의 서울교육학력신장 정책은 2만여 명의 현장교사들에 의해 43.5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국가청렴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4년의 서울교육의 청렴도는 이전 교육감들이 16개 시도교육청 중 중간순위를 유지한 반면 공교육감 기간에는 전국 꼴찌 수준이었다.
공교육감의 학력경쟁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보다는 이미 교육산업으로 성장한 사교육시장을 공교육 안으로 끌어들여 학교를 시장화하고, 학생들을 혹독한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정책이다. 시장경쟁원리에 따른 단편적이고 나열적인 교육정책은 결과적으로 공교육 전체를 위기로 내몰 수 있다.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교육만 만들게 되고, 사교육 시장에서도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비 고통 해결에 나서야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을 살리는 길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경제논리, 종교나 사학자본의 이해에 따라 휘둘려서는 안 된다.
현재 대다수 학부모들은 늘어나는 사교육비로 고통받고 있고,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매몰되어 건강권, 학습권, 인권마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공교육감과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은 원천적으로 사교육의 고통을 해소하기 보다는 사교육 시장에서 교육양극화, 사회양극화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경제를 살리는 인재를 양성하기보다 학력저하, 사회일탈, 저소득층 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뿐이다.
현재의 교육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망 있는 교육학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큰 틀의 교육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강남의 사교육을 분산하기 위해 판교 신도시에 훌륭한 학원단지를 유치하자거나 강남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교선택제를 실시하자거나, 국가경쟁력을 위해 영어공용화를 위한 영어몰입교육이 필요하다거나 참교육을 실천하는 전교조를 몰아내자는 정치인, 경제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상품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교육을 사업이나 상품으로 생각하는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교육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협력과 논의가 필요하다. 사교육비를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단 한명의 학생도 경쟁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상생과 협력의 동반자로 성장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이 최우선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핀란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중심으로 인재양성에 성공한 나라들이 세계에는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영탁/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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