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8.27 11:49

최근 유가의 무서운 상승세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큰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유가는 ‘석유경제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되고 경기침체의 근원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가는 얼마나 오른 것일까? 본론에 앞서 그 추세를 짚어보기로 하자.

1, 2차 석유파동이 끝나고 세계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도 소강상태에 접어든 1980년대 중반 이후 2003년까지 유가는 안정적으로 관리되어 왔다. 20여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감안해서 현재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배럴당 25달러 미만이었다. 최근 14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던 점을 상기해 본다면 불과 5년 전까지 유가가 현재 가격의 1/5이 채 되지 못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최근 5년 동안 5배로 뛴 유가

2003년 9월이 넘어서면서 유가는 서서히 치솟기 시작한다. 2004년에 곧바로 배럴당 40달러와 50달러를 갈아 치웠고, 2005년 8월 11일 60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 중반에는 75달러를 넘어섰다가 2007년 초에는 60달러 수준으로 다시 내려앉은 바 있으나 10월에 이르러 92달러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언론에서는 처음에 ‘심리적 마지노선’이 50달러니, 60달러니 호들갑을 떨곤했으나 그 때마다 마지노선은 무너졌고 몇 개월이 채 되지않아 새로운 마지노선이 생기곤 했다. 그래도 ‘설마’ 100달러야 되겠냐던 사람들도 2007년 11월이 되자 자신의 믿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유가의 전망을 나타낸다고 하는 선물가격이 99.29달러(12월 인도분)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숨가쁘게 달리고 맞이하게 된 2008년. 상반기에 주기적으로 최고가를 갱신하던 유가는 1월 29일 드디어 100달러를 넘어서 배럴당 103.05달러에 도달했고 3월 12일까지 110.20달러로 오른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도 동반 상승해서 3월 14일에 100달러를 돌파했다. 6월 27일, 8월 인도분이 141.71달러를 쳤던 유가는 리비아의 감산 위협과 OPEC 의장의 170달러 예상 발표에 따라 이틀 후인 6월 29일 143.67달러에까지 도달했다.

이쯤 되면 ‘제3차 석유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번 비교해 보자. 2008년 이전까지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유가의 최고치는 2차 석유위기가 닥쳤던 1980 ~ 81년에 있었고 2007년 달러화 기준으로 95 ~ 105달러 수준(당시 시장가격으로는 약 배럴당 41달러)이다. 그렇다면 2008년의 유가는 1분기에 이미 역사상 최고수준을 경신한 셈이다. 단순히 유가만 비교했을 경우 3차 석유위기가 도래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1980년대에 동반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198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투기’를 둘러싼 현재와 미래 권력의 대립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가가 오른 것일까? 그 이유를 최근 미국 의회와 월가에서의 논쟁에서 엿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의회를 중심으로 선물시장에서의 투기거래를 제한하는 법안에 대해 논의가 한참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의견을 달리하는 크게 두 세력이 맞부딪히고 있는데, 투기적 요인이 제한적이라는 입장, 곧 투기거래 제한법에 미온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세력과 그 반대편에 투기거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는 세력으로 나뉜다. 두 입장을 자세히 따져보기에 앞서 일단 최근 석유가격의 상승요인으로 투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줄곧 있어왔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양 세력을 대표하는 집단은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다. 부시 행정부는 투자은행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과 함께 과도한 규제는 효율적인 가격설정 기능을 저해하고 자본이 역외로 이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세력은 현재 유가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충분하지 못한 원유공급 때문이고, 이는 ‘Oil Hippo(석유 하마)’로 불리는 중국을 비롯해 신흥시장들의 폭발적인 수요증가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한편, 자국민들,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오바마와 매케인 두 대선 후보들은 연일 석유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투기거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에너지 및 식품류 가격의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두 대선 후보들 이외에도 국제통화기금(IMF),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이런 인식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는 지난 7월 30일 에너지 및 곡물 상품시장에서 투기적 거래를 제한하기 위한 법률을 하원에서 부결시켰다. 일단 ‘수급 불안’을 주장해 온 측에서 1승을 한 셈이다. 법안 통과에 필요한 2/3 득표에 실패한 데에는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가 있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미국 연안에서의 추가적인 원유 탐사를 허용함으로써 공급능력을 확대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직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다. 7월 8일 기준으로 상원에만 무려 15개의 법안이 올라 와 있고 적어도 대선까지는 투기거래를 제한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유가의 상승에는 수급불안의 요소가 있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다소의 과장이 섞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세계 최대 정유회사 가운데 하나인 BP(구, British Petroleum)에 따르면, 2006년도의 원유 공급부족량은 하루 100만 배럴에 달하고 있다. 생산능력의 증가 속도가 수요의 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지리아, 이란 등 주요 생산국들에 대한 군사적 불안정도 완전히 제거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던 날 발발한 러시아-그루지아 전쟁도 불안요소 대열에 새롭게 동참했다.

하지만, 최근의 유가 상승은 생산능력이나 이른바 ‘지정학적 불안’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가파르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수급불안과 투기거래가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라 수급불안을 기화로 투기거래가 가격상승을 가속화시킨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 CFTC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현재 가격상승의 약 70%가 투기와 관련있다고 조사되었다. 이 수치는 가(假)수요의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선물시장의 비상업적 매수 포지션이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규모를 주요 데이터로 해 계산되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 압둘라 알 바드리는 2008년 6월, 투기거래가 얼마나 과격하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를 하나 제시하였다.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량은 8,700만 배럴인데 시장에서 거래되는 양은 무려 13억 6,000만 배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 수요의 15배가 넘는 양이 거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수요와 거래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세계 최대의 석유시장인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의 원유거래가 현물(spot)보다는 선물(future)에 의해 주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NYMEX에서는 선물, 옵션을 비롯한 수없이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수가 지난 5년 동안 급증해왔다. 파생상품의 거래에서는 실제 계약금액의 일부분을 예치해두는 것만으로도 원유를 구매할 수가 있고, 헤지를 위해 다양한 파생상품을 동시에 구매하기 때문에 거래량은 실제 인도되는 양보다 훨씬 많게 된다. 거래금액은 보통 예치금의 7~8배 규모로 알려져있으며, 헤지펀드 등은 레버리지와 증권화를 거치면서 투자금액을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한다.

선물거래는 말 그대로 미래에 인도할 것으로 약정하고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 파는 거래를 말한다. 석유선물시장은 미국에서 최초로 열린 공식 선물시장으로서 제2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1980년대 이후 20년 동안 가격이 안정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의 회피, 유동성 확대, 미래의 가격정보 제공 등의 기능이 가격 안정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파생상품의 거래를 활성화시키면서도 석유에 대한 투기거래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정책을 펼쳐왔다. 또한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를 안보상의 전략물자로 정해두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거래되는 것 자체를 금지해왔다. 석유 선물거래는 1982년 이후 NYMEX 등의 제한된 장소에서 CFTC의 규제 하에서 선물과 옵션의 거래량이 엄격히 허용되어 왔던 것이다. 거래에 참여하는 자는 누가, 언제, 얼마나 많은 양을 사는지를 반드시 보고하도록 하고 만약 제한량을 넘는 거래를 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그 사유를 CFTC 등에 제출하도록 해왔다.

“경찰도 없고 속도제한도 없는 ‘투기’ 고속도로”

그러나 지난 2000년 이른바 ‘상품선물현대화법(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이 통과되면서 투기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크나 큰 구멍이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 이 법은 부시와 고어 두 후보가 대통령선거인단 투표의 재검표를 놓고 일대 혼란에 빠져있을 때 통과되었다. 당시 세계 7위의 거대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사는 CFTC와 의회에 은밀한 로비를 벌여 당연히 법적으로 치뤄야 하는 공청회마저 변변히 개최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구멍은 어떤 것인가? 미국 의회가 스스로 밝힌 세 가지 구멍을 들여다 보자.

첫 번째 구멍은 이른바 “엔론 루프홀(Enron loophole)”이라 불리는 것이다. 엔론 루프홀은 장외거래(OTC, Over-the-counter)에서의 선물거래에 대한 계약의 범위에 관계된 것이다. 상품선물현대화법은 ‘신뢰할 만한(!)’ 대규모 투자자들이 비농업, 비금융 부문의 파생상품에 대해 전자거래와 상호 쌍무거래를 할 때에는 규제를 면제해주는 조항을 신설했다. 상당히 모호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비농업, 비금융이라는 기준을 들이대기만 한다면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들은 규제의 눈을 피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이 조항이 생기게 된 이후 골드만 삭스와 모건 스탠리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들은 에너지 가격연계 파생상품에 대한 장외거래에서의 투자 규모를 급격히 확대해왔다. 올해에만 벌써 40 차례 가까이 개최된 상원 청문회의 증언에 따르면, 대규모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이 엔론 루프홀을 이용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엔론 루프홀을 “경찰도 없고 속도제한도 없는 고속도로”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구멍은 “런던 루프홀(London loophole)”이라 불린다. 뉴욕의 NYMEX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선물시장인 런던의 ICE는 당연하게도 미국의 정부기관에 의해 규제를 받지 않고 영국의 정부기관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문제는 두 시장 사이의 규제정책의 차이, 정보 전달의 불충분 때문에 나타난다. 투기자들이 이런 허점을 노려 해외에서 규제를 회피하는 통로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경우를 상정해 보자. 영국 거래소는 자국의 에너지 가격 안정화 등을 위해 미국에서 WTI를 구매해왔다. 미국은 정부기관인 영국거래소가 구매를 요청할 때는 규제를 면제한다(No-action letter 규정). 영국거래소는 구매 포지션을 정할 때 보통 자국의 기준 원유인 브렌트유의 가격과 거래량을 참고하게 될 것이다. 투기자들은 이 점을 노린다. 영국 ICE의 파생상품 포지션에 변동을 야기함으로써 규제를 받지 않고 미국 NYMEX의 원유 가격을 상승시키는 통로를 확보한 셈이다.

세 번째 구멍은 “스왑 루프홀(Swaps loophole)”이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후반 이른바 ‘닷컴 버블’의 붕괴를 경험한 바 있다. IT 기업의 주식 가격이 실제 가치를 월등히 뛰어 넘어 비이성적(!)일 정도로 폭등한 뒤 찾아 온 뼈아픈 경험이었다. 약 10년 후인 2000년대 초반에 벌어진 상황은 오히려 그와 반대다. 주식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현물시장이 과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의 재정지출이 확대되어 가던 2003년 이후,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는 ‘약달러 현상’이 점점 가시화되자 자금은 자본시장에서 현물시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달러표시 채권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를 낳게되므로 미국 주식시장의 매력은 한층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펀드 매니저가 보기에 보다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투자처는 상품시장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원유거래에 적극 나서는 투자자들은 주로 거대한 유동자금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다. 연금, 보험, 각종 헤지펀드들은 필요한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주식보다는 현물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이들 기관투자자들은 원유에 대한 실수요를 갖고 있지 않으며 단지 투자의 수단으로써 가수요를 갖고 있을 뿐이다.

석유 대신 현금을 채굴하는 정유회사들

세계 3대 석유시장인 NYMEX와 ICE 그리고 DME(두바이상품거래소)에서 원유 가격이 연일 치솟자, 지금까지 파생상품 거래에서 중요한 플레이어의 역할을 해온 자들이 가장 먼저 수혜집단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언급해 왔던 투자은행, 헤지펀드, 연금, 보험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그들이며 여기에 최근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산유국의 국부펀드들도 동참의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불투명한 거래에 자금을 집중하거나 생소한 이름의 자회사를 앞세워 유가상승에 기름을 부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수혜자로써 대규모 정유회사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대의 정유회사인 엑슨모빌(ExxonMobile)은 지난 2분기 수익 - 매출이 아니다 - 이 117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에 달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세계 2위 석유회사인 쉘(Shell)도 2분기에 78~116억 달러(회계 기준에 따라 다름)의 수익을 올렸다. 엑슨모빌과 쉘은 최근 자본수익률을 각각 32%와 24.5%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것도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준금리의 약 12~1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수익률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이 있다. 이들 정유회사들이 엄청난 이익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는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거대 석유다국적 회사들은 추가투자를 사실상 동결했으며, 실제로 올해 2분기 엑슨모빌의 석유제품 생산량은 실적호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감소하였다. 부족한 수급상황이 유가를 상승시키는 데 기여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엑슨모빌과 쉘 등 거대 정유회사들이 생산시설에 투자를 하지않는 이유는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불확실한 장기투자보다는 더 확실하고 단기에 수익이 보장되는 투자 쪽으로 중심을 서서히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탐사, 채굴, 정제 그리고 배급하는 데는 엄청난 자금과 정보,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석유공급의 전 과정을 장악해왔던 이른바 ‘일곱 자매’들은 이런 어렵고도 힘든 일을 ‘새로운(新) 일곱자매’에 맡겨 두고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일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막대한 이익을 자사주 매입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엑슨모빌의 예를 들자면, 2006년에 290억 달러, 2007년에 280억 달러 어치의 자기 주식을 사들였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160억 달러를 사용했다. 자사주 매입은 주가를 상승시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간 검은 황금(석유)을 둘러 싼 갖가지 어두움의 카르텔로 비난받아 오면서도, 저가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세계에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는 자부심을 표출하곤 했다. 아마도 이제는 이런 자부심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류에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주주와 임원들의 주가를 높이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 소비자단체인 Oil Watchdog의 J. Morgan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가볍게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높이는 데에만 돈을 쓰고 있는 엑슨모빌을 가리켜 “석유가 아니라 현금을 끌어 올리고 있다(pumping)”며 비난하기도 했다.

유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간략하게 유가 상승의 추이와 원인 등을 살펴보고, 투기적 거래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발생하며 투기거래로 인한 수혜자는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정확히 얘기를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투자’와 가치를 새롭게 창출하지 못하는 ‘투기’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통념에 따르면, 투기란 단기간에 대폭적인 가격변동을 예견해서 우월한 자금동원력이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물건을 매점매석(買占賣惜)하는 행위이지만, 어디까지가 단기이며, 의도된 행위인지, 독점력은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그리고 매점매석이라는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등등이 모두 불분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투기행위는 법률적 규제를 위반하거나 회피하였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의 고유가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거래의 활성화와 거대 자본의 이익을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갈 곳 없던 막대한 유동자금들이 현물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일어난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자 예전에는 ‘투기 행위’였던 장외거래와 무기명 거래가 지금은 ‘투자 행위’로 둔갑해 버렸다. 미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금융자본을 자유롭게 해주자, 금융자본이라는 꼬리가 미국이라는 몸통을 흔들어버리는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서 발생한 위기가 한국경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1/4을 소비하고 있고 영국의 브렌트유, 중동의 두바이유 등의 가격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래소를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실물경제 - 수출, 환율 등 - 는 미국경제와 지나치게 동조화되어 있어 위험을 바로 흡수하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들어 한국이 세계의 주요국가들 가운데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특출난 취약성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 일곱 자매(Seven sisters)는 세계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해 왔던 미국 출신의 걸프(Gulf)와 스탠다드오일의 후신 회사들인 엑슨(Exxon), 모빌(Mobile), 텍사코(Texaco), 쉐브론(Chevron), 영국 출신의 BP(British Petroleum), 네덜란드 출신의 쉘(Shell) 등 거대 다국적 정유회사를 지칭한다.

** 새로운 일곱자매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급성장하고 있는 자원보유국의 국영 석유회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아시아의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이란, 말레이시아, 남미의 브라질, 베네수엘라 그리고 러시아 등 이상 7개 국가의 국영 석유회사들은 전 세계 석유, 가스 매장량의 1/3 이상을 보유, 지배하면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이상동/새사연 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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