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 8. 26. 09:48
2008년,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인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생활고를 상징하는 집단은 단연 비정규직이었다.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2008년 들어서 부쩍 자영업, 특히 영세 자영업인들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골목경제가 흔들린다’(쿠키뉴스 2008.8.6), ‘하루 12시간 일해 고작 3만원, 폐업생각 굴뚝’(경향신문 2008.8.4), ‘점포 절반이 자릿세도 못내요’(서울신문 2008.8.6) 등 자영업인들의 채산성 악화를 표현하는 극단적인 용어들이 언론매체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현재의 경기상황에서 유독 자영업이 집중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장단기적인 근원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좀 더 집중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드러나고 있는 자영업의 열악한 실태가 의례적으로 받아 넘기기에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영업인의 생활과 삶의 문제가 국민경제의 가장 큰 화두가 된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긴 호흡을 가지고 역사적 궤적을 추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도의 내수 침체와 물가 폭등이라는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농촌의 자영업인’ 농민과 ‘도시의 농민’ 자영업인

우선 역사성을 따져 보도록 하자.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농업 종사자의 수가 자영업인보다 훨씬 많은 경제구조를 유지했다. 1980년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1/4가량은 농촌에 살면서 농업을 주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선진국 농업인구가 통상 4%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큰 편차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조차도 6,70년대 중화학공업화 산업정책으로 대규모 이농이 빠른 속도로 벌어진 뒤의 규모다. 당시 쌀값 문제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농민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 민주화운동 세력이 노동자와 함께 농민을 우리사회의 첫째가는 주체로 인정했던 것과 80년대까지 한국사회에 봉건의 잔재가 남아있는지를 두고 일각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90년대를 지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림1]에서 보이듯 정부의 농산물 수입개방과 농정포기정책으로 농민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반면 산업화와 함께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업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광범한 자영업인이 탄생한다. 이처럼 자영업인구는 이미 90년대 중반에 크게 증가했는데, 여기에 임계선을 초과하는 추가 증가를 촉발시킨 것이 바로 97년 외환위기였다. 기업에서 실직자로 내몰린 직장인들이 영세한 규모의 서비스업으로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와 반비례하여 시장개방의 확대로 농업인구 감소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80년대 자영업인을 훨씬 넘었던 농업 종사자는 2000년대 들어서 200만 명으로 감소했고, 반대로 자영업인이 그 세 배에 해당하는 600만 명으로 늘어나는 독특한 경제구조가 만들어졌다. 특히 외환위기로 극도로 늘어난 자영업인의 수는 시장 수요를 넘는 공급확대와 내부경쟁으로 소득의 심각한 감소를 초래했고, [그림2]에서 보듯이 직장인과 자영업인의 소득 역전이 일어난다. 한계상황을 넘어가면서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격차로 전환된 것이다.

이로써 80년대까지 남아 있던 농촌과 농업의 전근대적 흔적은 국민경제적 범위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도시의 근대적인 직업구조와 경제생활구조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제 한국경제의 전근대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조건들은 사라졌다.

이제 ’노동자, 농민, 기층민중’에 도시 자영업인을 포함해야

그러나 도시로 유입된 취업자들이 곧바로 현대적인 기업에 취업하여 일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이들이 미처 현대적인 기업구조에 흡수되기도 전에 외환위기가 닥쳤고, 곧이어 도입된 신자유주의 보수적 경영과 노동배제적 경영은 오히려 기존 기업에서 일하던 직장인들마저 자영업으로 배출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전문직 자영업이 아닌 영세한 도소매 서비스 자영업이 전체 취업자의 28%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산업구조, 노동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여러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최소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즉, 경제구조의 전근대적 흔적은 빠르게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진국형의 구조로 정착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대한 경제구조 변화와 국민 생활구조 변화는 사회적으로 무엇을 암시할까? 한마디로 80년대까지 적용되었던 ‘노동자, 농민, 기층 민중’이라는 사회운동이론이 ‘노동자, 농민, 도시 자영업인, 기층민중’이라는 개념으로 변화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7,80년대 1,000만 농민이 부여잡고 있던 전근대적인 하중과 모순의 상당부분이 현대적인 외피를 쓰고 자영업인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세계 사회운동사상 보기 드물게 치열한 사회운동을 전개해온 한국 농민운동의 역할 축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농민운동은 1990년대 이후 농민들의 경제적 위치와 비중에 비해 과도한 부담을 짊어져왔다. 그 결과 한국 농민운동은 지나친 출혈을 감당하며 세계농민운동사에 획을 그을 만큼 치열하게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들인 노력에 비해 실제로 이룬 성과는 적었고, 점차 지쳐가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그동안 폭증해온 자영업인들은 사회적인 결사나 주체화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처지를 개선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생활조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는 대단히 고통스런 기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제는 농민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짐을 덜어내고, 대신에 자영업인들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사회적 힘으로 단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회적 함의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한계에 직면한 자영업

IMF 외환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수가 늘어나면서 또 한편으로 영세화된 자영업을 다시금 심각한 생계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2000년대를 관통하여 진행된 내수부진과 그 연장선에서 발생한 최근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다.

6,70년대 이래 한국경제는 시종일관 수출주도형 경제였으며, 외환위기 이후에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해졌다. 특히 수출이 내수로 전파되지 않고 단절되는 ‘나홀로 수출경제’가 구조화되었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안겨준 또 하나의 경제적 후과다. 경제 성장이 내수의 뒷받침 없이 거의 수출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그림3]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GDP대비 20%에 불과했던 수출규모가 2008년 들어 65.7%까지 팽창했다.

[그림4]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외환위기 이후에도 수출은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수출 2,000억 달러와 3,000억 달러를 경신해 나갔다. 하지만 내수를 대표하는 민간소비는 2003년 카드대란으로 추락한 뒤, 회복되지 않고 4% 전후 수준에서 정체되다가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다시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수출을 중심으로 4~5%의 성장을 보이고 물가가 2~3%로 안정되었을 때만 해도 한국경제는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굴러갈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비정규직의 양산과 그 차별이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대표했다. 그런데 물가가 치솟고 내수경기가 심각히 무너지고 있는 현재 상황은 비정규직에 더해 자영업의 존립기반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자영업인이 양극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붕괴된 농업과 구조조정된 기업에서 자영업인이 대량 배출되었다. 자영업인은 이후 2003년 카드대란으로 일차 구조조정 압박을 받은 후 2006년 이후 다시금 2차 구조조정상태에 돌입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한층 급격한 구조조정이 전개되고 있다. [그림5]를 보면 자영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도소매 음식업 종사자가 2003년 이후 한 차례, 그리고 2006년 이후 다시 한 번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고 최근 그 추세가 빨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2007년과 비교해 자영업인의 수가 또다시 약 10만여 명 감소했다. 이는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자 물가인상, 국내소비 위축의 가장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바로 자영업인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당연한 결과로 자영업인의 소득 역시 계속 추락하고 있는데, [그림6]에서 보이듯이 도시 근로자와의 소득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변동의 역사과정에서 과거 농민의 부담을 떠안으면서 극도의 과잉상태로 늘어난 자영업인은 이제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아 생존의 한계에 직면했다. 다시 말하면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희생양으로 떨어질지, 아니면 사회경제구조 변화에 참여해 새로운 경제주체로 거듭날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자영업인의 자주적 결사를 위한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자영업은 이른바 중산층을 대표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노동자나 농민보다 진보적이지 않다고 간주되었다. 더욱이 하나의 집단으로 결사하여 자기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고 치부되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과정만을 놓고 본다면 자영업인은 중산층을 대표하지도 않으며, 정규직 노동자들 보다 오히려 처지가 못한 형편이다. 적어도 사회경제적 처지만 놓고 보면 보수화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과 총선시기 까지도 보수적 성향을 보인 것은, 하나의 집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영업인들이 집단화를 통한 자기 목소리를 낸 역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7, 80년대 대규모 이농과 산업화로 인해 도시지역에 거대한 도시빈민촌이 형성되던 무렵 도시빈민들의 치열한 철거반대운동이 있었다. 80년대 후반을 넘어가면서 도시 지역 전역에 분포된 노점상들이 연대하여 노점상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운동도 있었으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록 미약하고 단발적인 수준이지만 카드 수수료 인하운동이나 솥단지 시위 사건, 대형할인점 반대운동과 같은 새로운 시도도 이어졌다.

자영업인이 600만이라는 규모에 걸맞게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집단화, 주체화되어 있지 못한 현실은 우리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영업 문제를 풀기 위한 선차적 과제가 자영업인의 결사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영업인의 자주적 결사가 없다면 정부 당국이 적극적인 자영업 정책을 펴야할 외부적 압력요인이 생기지 않는다. 특정 부류나 계층을 위한 모든 정책은 정부당국의 시혜에 의해 입안되거나 실행되지 않는다. 노동자나 농민을 위한 정책을 포함한 모든 정책은 일종의 사회적 역학관계의 산물이다. 정책 수혜 대상자 자신의 요구와 압력이 존재하는 만큼 정책은 개발되고 시행된다는 뜻이다. 자영업인의 결사가 자영업 정책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노동자나 농민에 비해 내부의 차이와 다양성이 훨씬 큰 자영업인의 집합적 요구를 수렴할 기제는 자영업인 자신의 자주적 결사뿐이다.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구를 스스로의 결사과정을 통해 조정하고 정제해내고 이를 근거로 자신들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이는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과제다.

셋째, 정부가 자영업을 위한 훌륭한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시행할 통로와 매개를 발견할 수 없다. 재정지원이나 금융지원을 포함하여 가능한 다양한 자영업 정책들이 어떤 통로를 거쳐 집행되어야 하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특히 중요 정책대상은 면세점 이하의 영세 자영업인이기 때문에 과세 자료를 가지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이 문제의 원천적 해결은 자영업인들 스스로 자주적 결사를 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조직을 이룰 때 해결된다.

아직 이렇다 할 전형적인 자영업인의 자주적 결사 사례가 없는 실정에서,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지향하는 수많은 시민운동이나 지역운동, 사회운동은 자영업인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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