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8.14 11:03
금융자본의 욕심과 전세계의 고통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전 세계 금융위기로 전이되기 시작할 무렵인 2007년 10월, 퀀텀 헤지펀드의 공동 창업자였던 이름 난 금융투자자 짐 로저스는 이런 말을 했다. “경기 침체에도 밥은 먹어야 하기 때문에 곡물투자는 경기침체에도 안정된 수익을 보장할 것”, “농산물에 투자한다면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수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고수익을 위한 투자처를 찾는 그의 탁월한(?) 식견은 적중했다. 그때부터 곡물가격은 유가, 원자재 가격과 함께 끝을 모르게 치솟아 밀, 옥수수, 콩 등의 가격이 2배를 넘게 뛰었다. 이들에 투자한 상품펀드, 원자재펀드, 곡물펀드 역시 그에 비례하여 수익률이 올라갔다. 짐 로저스의 말대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수익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물상품에 대거 자본을 동원하여 실수요가 아닌 이른바 ‘투기적 수요’를 엄청나게 키운 결과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곡물 값이 치솟아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월가 금융자본이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수익을 챙기는 동안, 세계 인구는 뛰는 물가와 식량난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을 지독하게 겪게 된 셈이다.

미국 원유 시장의 투기자본 규제 조짐

지난
7월 11일 147달러까지 올랐던 유가가 최근 하락하고 있다. 8월 12일 기준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110.28달러, 서브텍사스산 중질유 선물가격이 114.01달러,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가격이 111.15달러였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유가가 무려 35달러나 하락한 것이다. 왜일까?

사실 올해 내내 중국을 포함한 산유국과 미국사이에는 고유가 원인에 관한 논쟁이 치열했다. 월가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은 인도, 중국 등 신흥국가들이 에너지 소비를 대폭 늘렸는데도 산유국들이 원유를 증산하지 않아서 발생한 수급 불일치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곡물가 폭등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중국, 인도와 산유국들은 미국의 달러 약세와 투기자본 때문에 유가가 폭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타르 에너지 장관은 지난 6월 “우리는 시장의 공급량이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공급이 부족하다면 수입국 국민이 주유소 밖에서 줄을 길게 서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논거다.

그런데 미국이 주장하는 수급 불일치가 유가 상승의 원인이라면, 최근의 유가 하락 현상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 동안 공급이 대폭 늘거나 수요가 대폭 줄어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석유 공급은 최근 기껏 하루 90만 배럴 정도가 늘었으며, 수요는 미국 경기침체로 약간 줄었을 뿐이다. 이 정도로는 최근 유가 하락을 설명할 수 없다. 대신에 그 사이에 발생한 다른 사건이 유가 하락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진정되지 않는 신용위기와 고유가로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이 대선을 맞이하면서 의회와 대선캠프 중심으로 석유시장에 침투된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법안에 관한 논의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투기자본들이 이에 반응하면서 유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울러 미국에 이어 유럽과 일본경제가 침체를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달러가치가 미약한 강세로 돌아선 것도 이유로 꼽힌다. 결국 “별 어려움 없이” 수익을 내기 위해 원유시장에서 투기적 수요를 만들어낸 금융자본이 더 이상 무리하게 수익을 내기에는 미국경제의 침체 상태가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곡물과 석유에 이은 고수익 투자처, 물 산업

각종 첨단 파생상품을 만들어 대규모로 유통시키고 엄청난 고수익을 남기던 월가의 금융자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을 도화선으로 전 세계에 금융위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일찌감치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탈출하여 곡물, 원자재, 석유라고 하는 실물시장으로 배를 갈아타고 지금까지 생존했다. 그런데 이제 감당할 수 없는 고유가 압력에 미국 정가가 투기자본 규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고, 금융자본은 또 다시 ‘별 어려움 없이 수익을 남길’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섰다.

무디스는 지난 8월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가가 하향세를 보임에 따라 투자자들이 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물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갈수록 부족해져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무디스는 세계 물 소비가 향후 20년 동안 두 배가량 늘어날 것이라며 2025년께 물 수요가 공급을 56% 가량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입증하듯, 상수도회사에 투자하는 자금 지수인 ’아이셰어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워터 50지수’는 최근 20여 일 동안 15%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가는 23% 급락했다. 이미 투기자본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월가는 ‘물 산업’이라고 하는 새로운 고수익 투자대상을 찾아냈다. 새로운 수익처를 찾아 발빠르게 움직이는 월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 인구가 어떤 고통에 빠지게 될지, 각국의 국민경제가 어떤 위험에 빠지게 될지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직 더 높은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더 손쉽고, 더 빠른 방법을 찾아서 이익을 챙기고 빠지면 그뿐인 것이다.

식량은 수십 일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지만, 물은 불과 며칠을 견디지 못한다. 고수익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인간에게 더 절박하게 필요한 소금, 심지어 공기마저도 금융자본에 의해 투기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역사상 이렇게 첨단의 외피를 쓰고 이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반대하는데 더 이상의 이유가 필요할까?

우리도 물 산업을 육성했어야 하나?

신자유주의를 추종해왔던 우리 정부도 ‘물’을 ‘산업’으로 키울 생각을 했고 계획도 세웠다. 참여정부 시절, “2005년 11조 원 정도인 국내 물 산업 규모를 오는 2015년까지 20조 원 이상으로 키우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기업을 2개 이상 육성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2007년 7월 ‘물 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올 1월 이를 시행하기 위해 ‘물산업 지원법’안을 제정하고 5월에 입법예고할 계획이었는데, 촛불시위로 연기된 상태다.

“물에 투자하라”는 월가의 권고를 보면서, 아마 이명박 경제팀은 상반기 중 ‘물 산업 지원법’을 통과시켜 물 민영화를 추진하지 못한 것을 지독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물 민간기업을 육성해 놓았다면 세계 10위권은 못해도, 이른바 세계적인(?) 외국 금융자본의 투자가 줄을 잇지 않았을까? 그래서 정부가 바라는 대로 그 물기업은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지 않았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외국인 투자유치 증대, 외형적인 물 기업 실적 증대, 그리고 국내총생산 증대와 성장률 증대로 귀결되어 정부가 바라는 지표들의 개선도 일어났을 것이다.

대신 그 수익이란 물 값이 오른 대가일 것이고, 수익의 혜택은 우리 국민이 아니라 투자한 월가의 금융자본의 몫으로 돌아가겠지만 말이다.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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