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7.09 18:43

2008년 6월 평양 안팎은 기대에 들떠 있었다

2008년 6월 24일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평양행 고려항공 JS152편의 출국 수속장에는 각양각색의 외국인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영변 냉각탑 폭파를 취재하기 위해 방북 수속을 하고 있는 일본 교토 통신사 관계자들부터 투자 상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자 하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국제기구 관계자들까지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마주친 대북경제협력 사업에 밝은 지인은 북미관계 변화의 조짐이 보이자 서방 기업들과 화교 자본들의 준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실제 베이징에서 만난 북한 경제부문 일꾼은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유럽 국가들과의 투자 상담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안면이 있던 교토통신 관계자는 이번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의 의미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show’와 ‘good signal’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간결하게 답했다.

지난 11월 방문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찾은 평양 순안 공항의 모습은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비행기에서 입국장까지 승객들을 실어 나르던 낡은 버스는 금강경제개발총회사(KKG)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저층형 공항 전용버스로 교체되었고, 입국 수속장의 어두운 칸막이도 철거된 후 유리벽으로 교체돼있었다.

평양의 거리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금성거리, 천리마거리 등 평양 중심부의 주요 도로에 아스팔트 포장이 이뤄지고 있었고, 1990년대 초 공사가 중단돼 북한 경제 침체의 상징처럼 돼 있던 105층 류경호텔 꼭대기에는 다시 북한의 공화국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건물 중간의 외벽에 유리창이 시범적으로 걸려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풍경이었다. 고려호텔 앞 창광거리의 음식점 건물들은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었고, 지난해 여름 수해로 물에 잠겼던 옥류관과 청류관은 개축 공사가 마무리되어 한 층 멋스러워보였다.

위에서 언급했던 금강경제개발총회사(KKG)는 홍콩 자본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설립한 회사로서 대동강 주변 약 1km를 상업지구로 바꾸기 위해 50층짜리 트윈 빌딩을 비롯한 복합상가들을 건축하기 위한 준비사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평양 도시 전체를 현대화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만난 북한 관계자들은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된 6월 27일 평양에서 만난 대남사업 관계자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의 의미에 대해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조선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라고 설명하며, “조선은 행동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자기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향후 조미관계 개선의 속도가 미국의 대선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가 유리한 상황에서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이기도 했다.

9개월만에 극적으로 다시 시작되는 6자회담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듯 작년 10월 이후 중단되었던 6자회담이 오는 7월 10일부터 다시 열린다. 작년 10.3합의 이후 ‘행동대 행동’ 원칙을 표방하며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왔던 북한과 미국은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라는 비핵화 2단계 작업과 테러지원국 해제,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라는 진전된 조치를 맞교환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동력을 확보한 상황이다.
2007년 12월이라는 시간표를 지키지 못하였지만, 적대관계가 시작된 이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6자회담의 성공을 반대하는 미국의 강경파와 일본의 경직된 태도로 인해 2005년 9.19공동성명 이후 3년간 쌓아왔던 성과가 일시에 허물어 질 수 있었다. 고농축우라늄에 대한 새로운 의혹, 시리아와 북한의 핵 협력설 등은 회담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금도 상존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김계관-크리스토퍼 힐은 베를린, 싱가포르, 베이징을 오가며 물밑 협상을 진행하였고, 성 김 미 국무부 한국 과장이 주도했던 북한의 핵 불능화 작업은 80%에 가까운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1만 8,000여 쪽에 달하는 핵관련 자료를 성 김 과장의 손에 들려 판문점을 통과하게 하였고,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며 전 세계에 비핵화와 관계정상화를 통한 국제사회의 정상적 진입 의지를 과시하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한편 6자회담 진전을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도 착실히 진행되었다. 2008년 2월 뉴욕 필하모닉 교양 악단의 평양 공연에서 울려 퍼진 양국 국가는 같은 하늘 아래서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던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인정하는 메시지를 담아 연주한 국교 정상화의 서곡이었다. 또한 작년 수해 피해로 식량난이 닥친 북한을 돕기 위해 미국 정부는 50만 톤을 지원하겠다며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6자회담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의장국 중국 역시 자국 내 지진피해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시진핑 차세대 중국 공산당 리더이자 국가 부주석을 평양에 파견하여 대규모 식량 원조와 북중 경제협력 구상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설명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일본과 러시아도 각각 북일 대화 재개 및 철도 협력 등으로 관계 진전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들어갔다.

북미간 입장차 여전한 가운데 치열한 기 싸움 예상

그렇다면 9개월 만에 재개되는 6자회담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진전될 것인가? 우선 이번 6자회담 또한 그 동안의 회담 못지않게 치열한 기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북한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7월 4일 발표한 ‘담화’에서 “모든 참가국들의 의무 이행이 정확히 완결돼야 10.3합의 이행이 마무리될 수 있고, 그래야 다음 단계 문제 토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행동 대 행동’ 원칙의 기본요구이고 우리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핵시설의 무력화(불능화)는 현재 80%이상 진척됐고 우리는 정확하고 완전한 핵신고서를 제출할 데 대한 합의사항도 이행”한 반면 “(북한을 제외한) 5자의 경제보상 의무는 현재 40%밖에 이행되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은 10.3합의에 따르는 정치적 보상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중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는 절차상 요인으로 아직 발효되지 않았고, 발효됐다고 하는 ‘적성국무역법’ 적용 종식 조치도 내용적으로 보면 완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말 그대로 합의된 사항에 대한 관련국들의 철저한 이행 없이는 핵 포기 단계인 3단계로의 진입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분위기는 어떤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3일 일본 G8 정상회담 참석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신고와 관련해 냉각탑 폭파를 환영하면서도 “아직은 회의적이다. ‘증명해 보여 달라’는 게 우리 입장”이라며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대해 “45일 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심각한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4일 블룸버그 TV 프로그램에 출연, “우리(미국)는 북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서를 철저히 검증해 플루토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확인한 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북한은 동시 행동에 따른 관계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지난 20년간의 북핵 공방의 주요한 입장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4개의 주요 논의과제 전망,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이번 6자회담의 주요 논의 과제는 크게 네 가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핵 신고 내용 평가와 검증 및 모니터링 체계 구축, 둘째 2단계에서 이뤄졌어야 할 참가국들의 의무 이행에 대한 평가 및 실행 계획, 셋째 3단계 핵 포기 프로세스 및 참가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동시행동 과제에 대한 의사 교환 및 입장 확인, 넷째 6자 외무장관 회담의 개최 시기와 의제 협의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결론에 도달하기 힘든 과제들이다. 특히 핵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 및 모니터링 문제와 3단계 핵 포기 과정에서 핵무기 포함 여부는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의장국인 중국에 신고한 북한의 핵프로그램 내용과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은 검증 방안에 신고된 시설과 핵 프로그램에 대해 사전통보 없는 접근, 핵 물질과 장비에 대한 시료 채취, 핵 관계자 인터뷰 등이 빠짐없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더해 시리아 등과의 핵 협력 문제와 고농축우라늄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검증 단계에 상응하는 참가국들의 의무를 세분화하고 철저히 행동대 행동의 원칙을 적용하여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3단계 핵포기 단계의 협상은 좀 더 고차원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핵물질에 대한 포기 및 핵시설 해체를 요구할 것이며, 북한은 보유한 핵무기 포기를 위해서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라는 9.19 공동성명의 정신을 강조하며 미국의 핵우산 정책에 대한 완전한 폐기와 동시 검증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지난 7월 4일 담화에서 “원래 9.19공동성명에 따르는 전 조선반도 비핵화는 검증을 전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들의 의무이행은 예외 없이 검증을 받게 되어있다”고 밝힌 것은 북한만의 검증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6자회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참가국들의 관계 정상화가 동시에 이뤄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북미-북일 수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와도 연동되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핵무기를 포기했을 때 북한이 당연히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적 핵 이용 권리에 대한 문제, 즉 경수로 건설 문제도 어떻게 풀어 나갈지 주목할 부분이다. 이렇듯 이번 6자회담은 참가국들이 자신의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는 총성 없는 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시간 싸움... 고위급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

그렇다면 이번 6자회담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논의해야 할 의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행동 대 행동’이라는 6자회담의 작동원리대로 시간표를 정교하고 세밀하게 짜야한다. 물론 미국 내 강경파의 반격, 회담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 일본의 소극적 태도, 상대방의 선 행동을 요구하는 각국의 외교 전략 충돌 등은 부정적 변수들이다. 더욱이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9월 이후 미국은 대선이라는 국내 정치 문제로 인해 외교 문제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현재 대선 레이스에서 앞서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할지라도, 취임 초기 미국 외교 정책에서 북한 문제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또 다시 6자회담은 공전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3단계를 좀 더 세분화해 부시 행정부 내에서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여 북미간 고위급 정치적 타협으로 6자회담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부시 행정부 내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를 합의하는 과정은 양국 최고 지도자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호 신뢰 증진과 합의된 목표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격상된 고위급 대화가 필요하다.
북한과 미국은 이미 2000년 미 국무장관과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교차 방문을 통해 고위급 대화를 진행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언론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설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주목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정권 수립 60돌을 맞아 9월에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는 북한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만약 북미 양국 사이의 고위급 정치회담이 이뤄진다면 서로의 관심사항에 대한 긍정적 대답들이 오갈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 재확인, 적대 관계 종식을 위한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 및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협상 개시 선언,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 등 경제협력, 그리고 양국의 신뢰 증진을 위한 다양한 문화, 체육 교류 등이 그 내용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고위급 정치회담은 6자회담에 탄력을 줄 것이며, 6자회담은 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 진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 돌발 변수와 참가국들의 국내 정치적 문제로 인해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6자회담이 좌초되거나 논의가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진행된 성과를 평가하고 불가역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가국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신뢰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강성대국 건설을 천명한 북한과 각각 5년, 4년의 임기를 교체하는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정치 변화기인 2012년에 6자회담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동북아 평화안보협력체로서 새롭게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지훈/현대사연구소 상임연구원, 새사연 운영위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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