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7.01 13:02

‘설마’ 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80년대식 시위진압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할 때도 그랬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 그 야만의 시절을 필자는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시위대를 잡으러 강의실에 난입한 경찰에게 항의하다 따귀를 맞던 교수님을 기억한다. 시위 중 연행되면 이른바 닭장차에서 가해지던 집단적인 린치를 기억한다. 그리고 탁자를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공안검사의 기자회견에 대한 공포감은 내 세포 깊이 기억돼있다. 그 시절의 공포 정치를 기억하기에, 그 시절 시위진압 방식의 야만성을 기억하기에 어청수가 말해도 ‘설마’ 했다.

그러나 지난 28일로 어청수의 말은 현실로 나타났다. 시위의 불법적 진출을 막는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공권력 행사의 원칙을 넘어섰다. 이른바 공격적인 시위진압과 원천봉쇄식 진압으로의 전환이다. 게다가 이미 폭력 진압이라는 야만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는 결코 시위대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수준의 폭력이 아니다. 상부 명령에 따른 작전의 결과인 것이다. 게다가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범국민대책위를 수색하는 등 공권력의 행태는 탈법ㆍ불법성을 띠기 시작하였다. 경찰의 물리력에 의해 정국을 유지해가는 이른바 ‘공안통치’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야만적 ‘공안통치’의 명백한 징후들

이런

사태가 결코 어청수 청장 개인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조중동의 입을 맞춘 여론 조작용 기사들, 촛불 시위를 근절하겠다는 검찰총장의 발언, 철회되긴 했지만 예비군복을 입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불법화하겠다는 국방부 발언, 유연한 대처를 주장하다 강경진압으로 돌아선 한나라당, 그리고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며 생뚱맞은 발언을 하는 라이스 국무장관까지 잘 짜인 각본에 따라 하나의 명령체계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폭압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오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기대하듯 짓밟으면 촛불이 근절 될 것이라는 것은 단연코 오판이다. 봉쇄되고 밟히는 것은 다만 시청이라는 공간과 문화축제라는 시위의 형식뿐이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봉쇄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분노로 타오르며 기필코 민주주의를 이루겠다는 역사의식으로 충만해 갈 것이다. 이를 통해 오히려 촛불은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 당장에 게릴라 시위로 진화를 시작하지 않았는가? 게릴라 시위가 발전하면 투쟁하는 민초들은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 스스로를 조직하기 시작할 것이다. 축제 참여야 개인 자격이면 충분하지만 80년대식 게릴라 투쟁은 조직적으로 연계될 때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촛불시위는 5년간 멈추지 않을 장기전화 되고 적절한 시점에 전면전으로 전환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는 순수한 촛불을 더욱 조직적이고 강력한 시위대로 만들어내며 현 정부의 불행한 미래를 더욱 짙어지게 할 뿐이다.

이명박 정부에 ‘국민투표’를 요구하자

지금이라도 사태를 해결 할 방법은 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고유권한인 헌법 72조에 충실하는 것이다. 헌법 7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 투표에 붙일 수 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외교상 중요한 문제이며 국가 내부적으로는 정상적 통치행위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국가안위가 위험에 이른 중대 사안이다. 이런 문제를 대통령과 주변인들의 고집으로 풀 수는 없다. 비록 자신의 신념과 달라도 국민의 절대다수가 원한다면 그 뜻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적 통치의 출발이다. 만일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의 신념이 옳다고 믿는다면 헌법 72조에 기초하여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고 민의에 물으면 될 일이다. 이 길만이 번져가는 촛불을 끄고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더불어 촛불을 들었던 시위대 역시 냉철해져야 한다. 50여일이 넘도록 지속되었던 촛불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대의정치의 한계를 국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극복해가는 사례라는 측면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선도적이며 모범적인 사례다. 한국에서 발전하는 시민민주주의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선진적 사례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촛불에 담긴 염원은 결코 꺼져서는 안 되며 목적한 바를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이성을 잃은 공안통치에 맞서 자구적 폭력이 나타나는 현상은 십분 이해된다. 그러나 이는 공안통치자들이 의도하는 바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폭력과 불법을 이슈화하는 것은 촛불의 정치적 의도를 희석시키려는 저급한 통치술이며 촛불을 지지하는 민심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의도다. 그러므로 경찰의 폭력에 자구적 폭력으로 응수하는 것은 청와대의 저급 통치술에 걸려드는 꼴이다. 공안통치의 의도를 파탄내고 촛불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비폭력 시위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한 평화시위의 원칙은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승화되어야한다. 촛불시위 중 등장한 조중동 불매운동,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 등은 불복종 운동의 좋은 사례다. 이는 지난 87년 6월 항쟁 당시 등장했던 KBS시청료 납부 거부운동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광장으로 모여드는 촛불시위와 거리시위만으로는 촛불에 공감하는 대다수 국민의 참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공안통치를 일삼는 현실에서야 게릴라 시위로 번지고 있는 촛불집회에 나가기는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탄압으로 사라진 광장을 물리력으로 되찾으려 하기보다는 전 국민의 생활의 장을 광장으로 전환시키는 불복종운동을 확산시키는 평화시위 원칙을 지켜나가야만 촛불운동에 지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1150만 국민청원운동’은 촛불정국의 유일한 해법

또한 정치공세를 남발하기 보다는 정확하게 쇠고기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 일부에서 터져 나오는 ‘이명박 정부 퇴진’ 구호는 국민 전체의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또한 일부에서 제기되는 이명박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 요구 역시 지난 참여정부 시절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어 현실성 없는 정치공세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앞서 제기한대로 쇠고기 협상 수용과 전면 재협상이라는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길 뿐이다. 이는 촛불시위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해결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1150만 국민청원운동’을 제안한다. 본디 국민소환제나 국민청원 같은 직접민주제 성격의 발의는 전체 유권자의 4~5%정도의 요구로 실행되는 것이 관례다. 이에 비추어 보면 지난 6월 10일 전국적으로 100만 명 이상이 촛불을 든 것은 이미 국민직접청원의 규모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1150만은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얻은 득표수가 1140만을 약간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을 지지한 득표수를 넘어서는 국민청원서를 제출해야만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투표를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 민심은 이 거대한 청원운동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다. 만일 1150만 청원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국민투표를 거부한다면 현 정부는 실질적으로 탄핵된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촛불 민심도 반복되는 충돌을 끝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국민투표는 현행 헌법을 통해서 촛불정국을 풀어낼 유일한 해법이다.

새사연 김문주 부원장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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