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1                              이탁연/새사연 청년혁신활동가


올해 5월 새사연의 젊은 연구원들이 새로운 문화의 장(이하 새문장)이라는 문화 연구 세미나를 의욕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약 반 년 만에 세미나의 발랄한 무대는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업무의 상충, 리더의 부재, 흐릿한 목표 등 실패의 주요 이유들이 있지만, 필자는 문화 연구에 대한 연구원들의 학제적 이해가 낮았다는 판단 하에, 이 글에서 문화 연구자체에 대해 논하고, 회원들도 참여하는 새사연의 문화 연구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백선기는 문화 연구란 처음부터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 운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운동이 이론적 논의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으며, 실제의 경험과 실천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하며, 나아가 문화 연구 자체가 맑스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 피스크 역시 문화 연구에서 문화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미학적이거나 인본주의적인 것에 그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점에 강조점이 있다고 말한다. 국내외 대표적인 문화 연구자들은 한 결 같이 사회적 실천성, 문화 연구의 내재적 특성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새사연이 추구하는 사회 변혁의 목표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 연구가 기존의 학문들과 다른 이유는, 주요 이론을 습득하고 그것을 상황에 대입해 결과를 추출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론이 비평을 지배할 때, 문화 연구는 지워진다. 이미 9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론 위주의 연구로 인해 문화 연구가 교육학으로 변질됐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됐다. 역설적으로 문화 연구는, 다른 학문의 이론 틀에 종속돼있지 않은 사람들, 학제화와 학과화의 그늘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더 적합한 연구 분야일 수 있다. 이는 새사연이 추구하는, 생활인과 함께 한다는 연구 성격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문화적 양상은 지배 이데올로기-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에 의해 생산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비꼬고 깨부수는 하위문화의 텍스트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룬다. 이러한 카르마적 패러다임을 인식하고, 통섭과 거부를 아우르는 변증법적 시선을 갖는 것은 문화 연구자의 숙명이다. 담뱃값도 오른 마당에, 당신도 문화 연구라는 건강한 마약을 하고 싶지 않은가?

남성만이 존재하는 조선의 정치사를 다룬 사극이, 가정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관계를 다루는 일일드라마보다 왜 더 있어보일까?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다양하게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주연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본 기억은 없을까? 다문화의 강조가 오히려 개별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을 스치는 의문의 편린을 주워 노트에 심고 물과 볕을 주면, 새로운 문화를 여는 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을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느끼는 새사연도 장롱에 넣어두었던 옷들을 꺼내고 있다. 말끔한 홈페이지, 연구 분야의 확대, 회원사업의 강화, 새로운 얼굴의 참여 등은 역사를 회귀시키려는 권력의 바람에 맞설, 단단한 옷들이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를 궁극적으로 연구 - 시민의 시대로 규정한다. 거창한 명명에는 (미디어 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최근 공사 중인 우리의 홈페이지가, 수십 번 놀라 자빠지길 기대하는 소망이 있다. 고리타분한 학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당신의 발칙한 의상에 의해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