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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산업은행 민영화, 국민건강 이어 '국민경제'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4인 가족인 우리 집에는 매월 네 통의 핸드폰 요금 청구서가 날아온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핸드폰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물론 직장 초년 시절까지도 당시 유행하던 삐삐조차 쓰지 않았던 나로서는 아직 어린 애들에게 핸드폰이 뭔 필요냐고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에 둘 다 저녁 귀가 시간마저 일정하지 않아 아이들을 챙겨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핸드폰은 필수라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끝까지 맞설 명분이 궁색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은 일인당 핸드폰 하나씩을 갖춘 가정이 되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처음 집에 TV가 생긴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배트맨, 요괴인간 등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저녁마다 동생과 함께 이웃집으로 달려가던 수고와 그 댁 아주머니의 눈총을 면할 수 있었다. 전화가 놓인 것은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TV보다 후순위였던 것은 분명하다. 둘 중 무엇을 먼저 들여놓아야 할 것인지를 두고 가족이 상당히 심각하게 토론을 했었다. 당시 부모님은 전화가 더 필요하셨던 것 같으나 나와 동생의 애절한 요구에 못 이겨 결국 TV를 택하셨다.

봉이 김선달은 공공재를 팔아먹지 않았다

가정마다

TV 한 대, 전화기 한 대씩이 놓인 지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건만 지금은 이들 가전제품이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가 어렵울 정도가 되었다. 방송과 정보통신은 이미 개별 가정의 선호나 수익자 부담 원칙을 넘어서는 공공재가 돼버린 것이다.

공공재라는 것은 이를 대체할 다른 수단이 없다는 점이 주요한 특징이다. 고기가 부족하면 생선을 먹으면 되지만 직장에 있는 부모가 아이들 소재를 확인할 때 핸드폰 대신 전보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내 개인사를 통해 반추해 보았듯이 공공재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고 시대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집집마다 전화가 한 대씩 놓일 때는 유선 통신망이 공공재가 되고 전 국민이 한 대씩 핸드폰을 보유하고 있는 시대에는 모바일 통신 인프라가 공공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공공재에는 시장 가격을 부여하기도 어렵고 시장 기구에 전적으로 공급을 맡길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만일 이 특성을 거꾸로 적용하여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공공재에 해당하는 영역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영리에 활용할 경우 그(기업)는 무소불위의 독점력과 함께 엄청난 폭리를 거의 무한정 취득할 수 있게 된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을 팔았다지만 그는 사실 강물을 길어다 먹는 백성들로부터 물값을 받아낸 것이 아니라, 돈으로 권세 부리던 한양 허풍선이라는 양반 한 사람을 속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공공재의 사적 영리화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일방적 갈취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봉이 김선달의 행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민영화를 ‘사적 갈취’라고 표현한 것이 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설마 공공재를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개인이나 기업이 치부하도록 놔두기야 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확히 그렇다. 공기업의 선진화니 효율성 증진이니 하는 것은 표면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치권력의 수준이 국민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 재벌의 치부 비결은 공기업 사유화

‘사적 갈취’의 대표적인 사례가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이다. 올해는 순위에서 밀렸지만 그는 지난해 빌게이츠나 워렌 버핏을 제치고 세계 최고 갑부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국제 경제의 변방인 멕시코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던 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모은 비결은 다름 아닌 공공재의 사유화였다.

그는 정권과의 유착을 통해 1990년 멕시코 국영 통신회사를 인수했다. 1,100여개의 공기업을 200개로 줄인 멕시코 신자유주의 정권 살리나스 정부의 민영화를 이용한 것이다. 슬림의 국영 통신회사 인수가는 18억 달러였으나 지난해 그가 보유한 민영 통신회사의 주가 평가액은 자그마치 360억 달러에 달했다.

17년 만에 20배로 불어난 재산이 ‘민영화를 통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덕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민영화 이후 멕시코의 전화요금은 대폭 인상되었다. 한 멕시코 대학교수는 민영화 이후 전화요금이 지역과 사용자에 따라 최고 5,000배까지 인상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갈취’가 아니고 무엇인가.

누구나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공공재인 물, 전기, 전화에 비해 체감이 다소 떨어지는 탓인지 은행 사적 소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과해 보이는 우리 가족의 핸드폰 보유량이 일인당 한 대인 데 비해, 지난해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구당 보유 금융상품(보험, 예적금, 펀드 등)은 평균 8개가 넘는다.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구성원을 3인으로 잡으면 일인당 2.5개 이상인 셈이다.

가구당 8개씩 보유하고 있는 금융상품

한집에 자동차를 두 대 가지고 있는 경우는 있어도 한 사람이 두 대씩 가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어쩌면 금융상품은 개인들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품 중 하나일 수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금융에 노출되었으며, 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 생활에서 금융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혹자는 선진국형 진화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현 변화는 우리 국민들이 금융 강국을 만들겠다는 정부 구호에 혹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민 복지 체제가 제대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노후나 혹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민간 금융상품인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 등으로 대비하는 실정이다. 해마다 치솟는 부동산값에 어떻게든 내집 하나라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 은행 대출을 통해 집을 산다. 그보다 사정이 못한 경우에는 전세자금 대출이라도 받아야 수도권에 몸 하나 뉘일 공간을 마련한다. 월급 받은 돈 은행에 넣어봤자 실질금리가 형편없으니 저축 수단이 되지 않아 펀드에 가입한다.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국민들의 최소 생활과 복지를 마련하지 않는 조건에서 어쩔 수 없이 금융 의존도가 대폭 높아진 것이 외환위기 이후 십여년 간 가속화된 현상이다. 이런 판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민간 은행 소유권은 이미 외국인 손에 넘어가 있다. 소유가 바뀌고 나서 나타난 정책이 각종 수수료 인상, 은행 직원의 대량 해고, 기업 대출 중단과 부동산 거품을 부채질한 주택담보 대출 급증, 담보 없는 서민들의 대부업체 이용 폭증 등이다. 이 결과로 은행을 소유한 외국인 주주들은 막대한 순이익을 거두고 있다.

한해 은행권 전체의 순이익이 10조 원을 상회하고 국민은행 하나가 올리는 수익은 현대자동차의 순이익과 맞먹는 규모다. 그리고 그 이익의 대부분은 해외로 빠져 나간다. 이를 두고 강정원 국민은행장조차도 “자산의 99.9%가 국내에 있고 수익도 99.9%가 국내에서 나오고 지점도 4개를 제외한 모든 점포가 국내에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주주 비율이 80%를 넘는 것은 이상한 소유구조”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전 10년 동안 국내 시중은행들의 수익은 다 합해 7조 원 수준이었다. 한해 평균 7,000억 원이니 지금 국민은행 혼자서 올리는 수익의 1/3도 채 안 되는 규모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 사실상 공기관이었던 은행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벌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국민경제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공급하는 은행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을 뿐 효율과 수익성을 명목으로 국민 개개인에게서 돈을 짜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경제에 필요한 ‘공공기관’을 돈벌이 사업에 투입시켜 놓고 ‘돈을 이만큼 벌었네’ 하고 자랑하는 게 신자유주의자들의 유치한 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 소유하면 대한민국 경제를 갖는다

지나간 공기업 민영화의 과정이 이렇게 명백한데 이명박 정부는 몇 개 남지 않은 국책 금융기관 중 하나인 산업은행 민영화에 몸이 달아있다. 알다시피 산업은행은 일반 시중은행과 성격이 또 다르다. 산업은행법 제1조는 설립 목적을 “중요 산업자금의 공급·관리”로 천명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발전을 가져온 전력ㆍ철강 등 기반산업과 중화학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대표 산업의 설비ㆍ운영 정책자금을 저리로 제공하면서 산업구조 고도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이 산업은행이다. 이제 이것마저 떼어서 팔아넘기겠다는 것이다.

2008년 3월 말 현재 산업은행의 총자산은 145조 원으로 삼성그룹(144조 원), 국민은행(233조 원) 보다는 적지만 수신(예금액)이나 부채를 제외한 실질적인 총자산 측면에서 산업은행은 ‘대한민국 1위’다. 그런 점에서 “산업은행을 집어삼키는 자본이 한국 경제를 움직이게 된다”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만한 규모의 자산을 인수할 자금 여력이 국내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산업은행 주인이 누가 되리라는 것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 자본 또는 몇몇 국내 재벌들의 연합일 것이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국민 건강에 대한 악영향이 10년쯤 후부터 표출된다면, 산업은행 민영화로 인한 국민경제의 위험은 10년 후면 이미 치유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 가정의 10년 후를 위해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정희용 / 새사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