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6.05 19:20

굴욕적인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촉발된 촛불 정국이 한 달여 지속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요구는 쇠고기 재협상에서 국민 주권 전반에 대한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가 보여주는 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강단이나 국회, 헌법재판소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촛불 정국에서 입증되듯이 국민의 주권의식과 민주주의 역량은 대개 거리에서 발생하고 성장해간다. 그런데 2008년 5, 6월을 관통하는 촛불 정국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에 대한 국민의 안목을 높이는 계기로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경제 이슈가 빈번히 등장하고 기지가 반짝인 촛불 정국의 경제학을 살펴보자.


18원의 비용과 유쾌, 상쾌한 효용


먼저 재치와

풍자가 넘치는 ‘18원 후원’하기다. 후원 대상은 한나라당의 심재철 의원. ‘광우병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해먹어도 안전하다’는 발언이 네티즌의 공분을 자극했다.


항의 및 조롱의 뜻으로 심재철 의원에게 1원 또는 어감이 좋지 않은 18원을 정치자금으로 보내자는 의견이 나오고 네티즌의 반응은 신속했다. 게시판에는 1원이나 18원을 보낸 송금 내역이 갈무리 사진과 함께 연이어 올라왔다. 그런데 아무리 분노를 표시하는 일이라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18원도 쌓이다 보면 심 의원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한쪽에서 제기되었다. 경제적 효과에 갈등이 생기는 순간이다.


그러자 이 문제에 대한 기상천외한 해법이 역시 네티즌 사이에서 속출했다. 18원을 보내고 정치후원금 영수증 교부를 등기속달로 요구하자는 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영수증 등기속달 발송 비용은 1,750원. 만일 대통령 탄핵에 서명한 130만 명이 모두 18원을 보낸다고 할 때, 의원 통장에 2,340만 원이라는 거액이 쌓이지만 영수증 교부를 위해 심 의원은 22억 7,500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보내는 사람은 18원의 비용으로 유쾌, 상쾌, 통쾌한 편익을 얻고 심 의원측은 수입의 백곱절 비용을 지출하므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의 실현성 여부를 떠나서 18원 후원을 둘러싼 아기자기한 논쟁은 경제학에서 다루는 ‘효용’ 개념을 설명하는 사례로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사용가치’가 객관적 개념인데 비해 ‘효용가치’는 주관적이다. 평균재산이 35억 5,000만 원인 사상 최대의 부자 내각이나 지난 한 해 동안 부동산에서만 13억 원 이상 재산을 불린 자산가 심재철 의원에게 18원의 사용가치는 미미할 따름이다. 그러나 18원으로 후원자들이 누리는 효용은 결코 적지 않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한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18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상당히 탁월한 경제적 선택이다.


수돗물 괴담과 민영화


다음으로 수돗물값 하루 14만 원론이다. 한 네티즌이 우리가 하루 사용하는 물의 양을 약 258리터로 계산했다. 이를 시중에서 파는 생수값 리터당 5백 원으로 환산하면 약 14만 원이다.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그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과장되었다. 그러나 공공재인 수돗물을 이윤 추구가 우선인 사기업에 맡길 경우 벌어질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에 대한 경고라고 읽으면 이걸 괴담이니 뭐니 하면서 호들갑 떨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이를 즉각 괴담으로 몰아붙일 뿐 정작 본질인 물 사업 민영화의 위험성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합리적 설명을 좀처럼 내놓지 않는다.


수도 민영화 후 첫 4년 동안 물값이 매년 50%씩 상승한 영국이나 미국 기업 벡텔사가 물 공급권을 넘겨받은 뒤 수도요금이 최고 200%까지 오른 볼리비아, 민영화 이후 2년 만에 요금이 600% 인상되고 1,000만 명에게 수돗물 공급 중단 사태를 가져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언론에 노출된 해외 사례들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다.


정부가 정책이 아닌 셈법 차원으로 이 문제를 취급한다면, 좋다. 산수를 해보자. 정부의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 계획’에 따르면 “현재 11조 원 정도인 국내 물산업 규모를 오는 2015년까지 20조 원 이상으로 키우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기업을 2개 이상 육성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지금 정부든 민간이든 물 아껴쓰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물을 ‘물 쓰듯’하던 시대는 지났고 일인당 물 소비량은 점차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인당 물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우리나라 인구가 불과 7년 사이에 갑자기 배로 늘어날 것도 아닌 이상 물 산업 규모를 두 배로 키우는 방법이 무엇일까? 지름길은 물값 인상밖에 없지 않은가. 괴담의 근원은 결국 정부가 아닌가?


국민은 경제정책을 논했는데 정부는 산수가 틀렸다며 괴담이라는 말만 한다. 쇠고기 사태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 생명권과 검역주권, 경제주권을 이야기하는데 정부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좋다고 밖에 나갔다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적다’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통계나 읊어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참으로 두루 소통부재의 정부다.


대통령이 궁금해 한 촛불값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다는 대통령의 귀국 일성은 국민들을 여러 가지로 허탈하게 했다. 그토록 촛불을 들어도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닫힌 대통령에 대한 좌절이 가장 먼저다. 부수적으로는 그래도 대기업 CEO를 지내 통이라도 클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라는 실망감도 안겨주었다.


경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또 산수 차원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경제 대통령’이 자꾸 그렇게 만든다. 가게에서 한 개 1,000원 하는 초로 계산을 해보자.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5월 2일부터 대통령이 중국에서 돌아온 5월 31일까지 모두 30번의 집회가 있었다. 집회 참가자 수에 대해 주최측과 경찰의 추산이 매번 다르지만 정부가 산수만큼은 자신있어 하는 것 같으므로 경찰 집계를 기준 삼으면, 집회 참가자는 항상 1만 명 이하다. 그럼 최대 1만 명의 시민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었다고 해도 30회 X 1만 명 X 1,000원 = 3억 원이다. 이 3억 원의 출처가 그렇게도 궁금했을까.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세계 13위 경제대국 아닌가. 평범한 서민들일지라도 자신의 의사 표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지갑에서 1,000원 한 장 꺼내들 용의는 있다. 나도 함께 간 내 딸도 청계광장의 모금함에 촛불값을 냈다. 어떤 거대한 배후로부터 1,000원짜리 초를 받은 게 결코 아니다.


CEO출신 대통령과 장관의 경로 의존성


구태와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고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고 한다. 이미 한번 익숙해진 시스템에 안주하기 때문에 잘못이 드러나도 개선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며 똑같은 과오가 되풀이된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운천 장관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똑같이 “국민 눈높이가 그렇게 높은 줄 미처 몰랐다”는 말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정 책임자가 국민 눈높이를 모른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바로 대통령과 현 정부의 경로 의존성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건설사와 정체가 아리송한 금융회사 사장 출신이고 정 장관은 농업 기업가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CEO 시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치로 환산되는 거래 이익이다. 이를 위한 약간의 편법과 위험 감수는 기업가적 모험심이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시스템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도 경로 의존성에 의해 동일하게 국정에 적용된다는 게 문제다. 광우병은 ‘약간의 위험’일 뿐이고 정 불안하면 안 사먹으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래서 국민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운하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수돗물 민영화도 산업은행 민영화도 다 추진되는 것이다.


앞으로 다른 문제가 또 터지면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국민이 그렇게 눈높이가 높았어?” 경로 의존성이니까.


촛불 정국에서 귀먹은 정부에 국민은 기어코 ‘대통령 하야, 탄핵’ 구호를 꺼내들었다.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이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그토록 가벼이 여긴다면 대한민국의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오는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의 앞날을 이야기하자는데 자꾸 조그만 거래 이익과 셈법에 집착하는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촛불 정국은 그렇게 타오르고 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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