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5정태인/새사연 원장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흔히 "공산당 선언"으로 번역)은 "유령 하나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2014년 또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분배문제를 다룬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Belknap Press 펴냄)이 그것이다.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지음, Belknap Press 펴냄). ⓒBelknap Press

사실 주류경제학은 분배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보면 일정한 조건(실은 완전경쟁시장과 1차동차 생산함수라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조건)이 만족된다면, 각 생산요소에 돌아가는 분배 몫은 한계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서 보울리는 실제로 이 분배 몫이 일정하다고 주장했고("보울리의 법칙"), 사이먼 쿠즈네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는 분배가 악화되지만 일정 단계가 지나면 개선될 거라고 예언했다("역U자 가설"). 

이에 따라 성장에만 신경 쓰면 그만이고, 섣불리 분배문제를 건드렸다가는 상황만 악화시킬 거라는 주장은 지금도 주류경제학의 신조에 속한다. 이 같은 주장은 케네디 대통령의 "밀물이 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정치적 구호로 표현됐고 지금도 한국의 성장론자들이 신봉하는 교의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프랑스의 43살짜리 경제학자가 이 모든 주장과 구호를 단숨에 엎어버렸다. 그의 무기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장기 통계, 즉 역사적 사실이다. 그가 초점을 맞춘 수치는 "어떤 시점의 한 나라 순자산(피케티의 "자본")을 그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누면 얼마나 될까?"(β=W/Y, W는 민간순자산, Y는 국민소득)이다. 

예컨대 한국의 2014년에 민간이 가지고 있는 부(순자산)를 국민소득으로 표현하면 몇 배나 될까를 표현하는 수치이다. β에 자산수익률을 곱하면 그 해 자산소유자들이 가져간 몫이 될 것이다(α=rβ). 그는 이 회계적 항등식에 "자본주의의 제1 근본법칙"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붙였다. 

<그림1>에서 보듯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β는 19세기 말에 6~7배로 정점을 찍은 뒤 1910년에서 1950년까지 2~3배로 급전직하했다. 두 번의 전쟁과 대공황으로 인한 재분배정책 때문이다. 이 수치는 80년대부터 서서히 상승해서 현재는 4~6배까지 치솟았다. 또한 그는 자산의 수익률(r)은 역사 전 기간에 걸쳐 4~5%라고 계산했다(<그림2>).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으니까 간단해 보이지만 선진국에서도 90년대 들어 발표하기 시작한 "국민대차대조표"(한국은 지난 5월 14일 최초로 잠정적인 대차대조표를 발표했다)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통계를 만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난한 일이다. 더구나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에는 1700년대부터 과거의 문헌을 뒤져서 이 수치를 추적해 냈다. 또한 세금자료를 이용해서 1% 단위로(심지어 0.1% 단위로) 각 계층이 얼마나 자산과 소득을 차지하는가를 추적했으니 당분가 어느 누구도 이 수치 자체에 대해서는 논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 <그림 1> 유럽의 자본/소득 비율(=β) 추이 (출처 : Piketty, 2014, 26쪽)



<그림1>은 글머리에 제시한 주류경제학의 정설들을 뒤엎는 데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기실 1945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30년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황금기",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독일의 "라인의 기적"에 해당한다. "보울리의 법칙"이나 "역U자 가설"은 모두 이 짧은 기간에 해당하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한계생산력설"에 대한 계량 연구도 이 시기의 안정적인 분배를 반영할 뿐이다. 1910년대부터 두 번의 세계전쟁, 대공황 이후 최고 한계세율이 90%가 넘는 재분배정책 등(피케티는 이를 자본주의의 내재적 성향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외부 쇼크"라고 부른다)이 이런 예외적 시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피케티의 이 얘기를 뒤집으면 우리나라의 진보 쪽이 그리는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그만한 "외부 쇼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다음 단계는 도마-솔로우의 "장기 균형성장 조건"(β=s/g,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과 현실의 수치를 비교하는 일이다. 피케티는 이 방정식에 다소 구질구질한 설명을 덧붙여(제5장) "자본주의 제2 근본법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 보기에 자신의 통계와 이 "균형성장조건"을 비교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올바를 것이다. 


▲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 <그림2> 세계수준의 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 추이 (출처 : Piketty, 2014, 354쪽)



만일 <그림2>처럼 경제성장률(g)이 자본의 수익률(r)보다 적다면 자산가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될 것이다.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이 가져가는 소득보다 자산의 수입이 훨씬 많다면, 또 자산가들이 자신의 자산수입 일부를 저축해서 자산을 더 늘린다면 부의 집중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피케티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인구증가율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므로 성장률과 수익률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단, 위 그림에서 보듯이 자산수익률이 전 역사에 걸쳐서 4~5%라면 그렇다는 얘기다.(이 점이 앞으로 경제학계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이제 누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는 재능이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상속에 의존하게 된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가난한 젊은 귀족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될 것인지, 돈 많은 미망인을 유혹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라스티냑의 딜레마"). 21세기는 다시 그런 "세습자본주의"가 될 거라는 얘기다. 

피케티의 또 하나의 업적은 이런 상황을 기초로 해서 소득분위별 소득과 재산의 추이를 추적한 것이다. 국민계정 통계와 세금 자료를 엮어서 장기 통계를 추정했는데 현재 대체로 상위 10%가 순자산의 70%를 소유하고 나아가서 1%가 그 반인 30~40%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림3> 참조). 


▲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 <그림3> 유럽과 미국의 부의 불평등. (출처 : Piketty, 2014, 349쪽)



미국의 경우에는 최상위 노동소득도 부의 불평등을 촉진하고 있다. <그림4>를 보면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상위 10%가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가파르게 증가해서 이미 이전의 최고치였던 1930년대 수준을 넘어서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유럽도 80년대부터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중에서도 최상위 1%가 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피케티는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 보수는 일종의 지대라고 단언한다. 스스로 임금을 책정하거나 비슷비슷한 부류의 인사들이 보수위원회에 모여서 자신들의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상위 10% 내의 소득분포를 분석해서 베커의 인적자본론도 비판하고 있다. 최상위 1%와 나머지 9%는 거의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도 (따라서 한계생산성이 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는데도) 그 내부에서조차 임금의 격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자산과 소득의 상위 집중이 점점 더 커지면 당연히 정치와 사법부까지 부자들이 마음대로 뒤흔드는 유럽의 "벨 에포크", 미국의 "도금시대"(둘 다 대체로 18세기 말에서 1910년경까지)가 부활할 것이다. 피케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상황이다.  

피케티는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자본세와 최고세율 8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를 전 세계가 동시에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책은 스스로도 유토피아적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세계 각국이 동시에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피케티는 EU나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이 선도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 <그림4> 유럽과 미국의 소득불평등(상위 10%의 소득점유율). (출처 : Piketty, 2014, 324쪽)



하지만 이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동아시아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두 배 가량 높고 자산의 불평등은 선진국에 비해 덜 진행됐기 때문에 자본세의 세율이 그리 높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주류경제학의 대대적 반박, 자본수익률이 과연 일정한지에 관한 논쟁, 그리고 정책대안에 관한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 "빨갱이"라는 낙인찍기는 이미 시작됐다. 그들에게 "21세기 자본"은 유령인 것이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 

지난 5월 1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아주 중요한 보고서, "국민대차대조표 공동개발 결과(잠정)"를 펴냈다. 이 두 기관은 국민계정 통계의 최고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국민대차대조표"(세계적으로도 이 표를 만들기 시작한 건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를 만들고 있다. 피케티의 자료 중 기능별 분배(자본 몫과 노동 몫의 분할) 역시 국민계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자료는 바로 피케티 지표들과 비교할 수 있다.  

이번 자료에서 직접 나온 수치는 β값의 근사치이다. 한은과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국부)은 1경 630조.6조원으로 국내총생산(1,377.5조원)의 7.7배로 추계되었다고 밝혔다. 이 수치를 피케티의 비율로 바꾸려면, 1) 분자의 국민순자산에서 정부의 자산을 빼서 민간 순자산을 계산하고 2) 분모의 국내총생산을 실질국민총소득으로 바꾸면 된다. (처음에는 국내 총생산을 국민총소득으로 바꾸는 실수를 했다. 국제비교를 위해 피케티의 정의를 따른다면 감가상각분을 뺀 국민소득을 써야 했다. 노동연구원 이병희박사의 지적으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처음 계산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도 달라졌는데 피케티의 정의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례에 맞춰 새로 계산했다. 이 역시 이병희박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치가 잠정치이고 피케티의 각 수치에 관한 해석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절대적인 수치보다 추세를 확인하기 바란다. -필자 주)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부록과 한은 통계 데이터베이스)로는 2000년에서 2012년까지 추계가 가능하다. 그 결과가 <그림5>이다. 


▲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그림5> 한국의 β(=민간순자산/국민총소득) 추이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하지만 현재 한은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 민간과 정부의 금융순자산의 시계열은 최근 몇 년밖에 찾을 수 없다. 민간의 금융순자산은 현실적으로 0에 가까울 것이고(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제외하면 차입과 대출을 합하면 0일 것이다) 정부는 마이너스겠지만(정부의 채권 발행만큼) 어쩔 수 없이 금융자산은 제외했다.(만일 외환보유액이 정부자산에 포함된다면 이 주장은 철회되어야 할지도 모른다.-필자 주) 그러므로 금융자산까지 포함하면 β값은 <그림5>보다 조금 더 커질 것이다. 



▲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

▲ 세계 각국의 β 값 추이. (출처 : Piketty & Zucman, 2014, 「Capital is Back: Wealth-Income Ratios in Rich Countries 1700~2010」)



<그림5>와, <그림6>의 2000년 이후 각국의 β값 추이를 비교해 보면 국의 수치는 일본과 이탈리아 정도로 높은 수준(5.6 또는 560%)에서 시작해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의 β값은 7.5로 선진국 중 최고치이다.

β는 민간의 순자산(부)을 한 해의 국민소득으로 나눈 수치이다. 당연히 이 수치가 크면 클수록 부의 집적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 자체가 분배 상황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국민 모두 똑같은 양의 부동산과 생산자본,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통계에서 개인별 자산분배를 알 수 있는 통계는 없다.


▲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

▲ 한국의 자산 지니계수. (출처 : 새사연)



그리하여 다른 방법으로 한국의 불평등 정도를 추정했다. 한국 노동패널(가구) 2차~11차 자료를 이용해서 자산 지니계수를 구해 보면(<그림7>) 2000년대에 우리나라의 자산 소유가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물론 피케티는 지니계수에 대해 "불평등에 대한 추상적인 불임의 견해"라서 오히려 현실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β는 19세기 말(유럽의 벨 에포크 시대, 미국의 도금시대)의 극심한 불평등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아이들은 "레미제라블" 상황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또한 <그림8>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최상위 1% 임금이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도 급증하고 있다. 


▲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 <그림 8> 우리나라 노동소득 하위 99%의 소득비중과 상위 1%의 소득 비중. (출처 : 이병희 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2013, 57쪽)



이런 불평등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국민총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은 한은의 계에서 (1-노동소득분배율)에 해당한다. 한은 통계에서 노동 몫은 피용자보수/국민소득으로 계산된다. 여기서 자영업자의 잉여 중에 어느 정도나 피용자 보수에 포함시킬 건지, 국민소득은 어떤 수치로 할 건지가 논란이 된다. 공식 통계인 한은의 노동분배율(노동 몫)은 자영업자의 잉여를 피용자 보수에 넣지 않는다. 2000년 이후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은 대체로 60% 수준(<그림9>)이니까 자본 몫은 40%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피케티의 방식에 따라 자영업자의 소득을 전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율에 따라 나누었다(<그림9>). 

또 피케티는 노동소득분배율을 계산할 때 통상적인 요소소득국민소득이 아니라 국민순소득을 사용하였다(회계적 항등식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분모가 다르기 때문에 한은의 노동소득분배율과 교차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피케티 비율의 국제비교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 <그림9>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 (작성 : 정태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피케티 방식으로 α(=1-노동소득분배율)를 구한 뒤 β로 나누면 민간의 자산수익률 r을 구할 수 있다(r=α/β,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근본법칙'). 그렇다면 한국의 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증가율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적어도 선진국들도, 한국도 인구증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g가 점점 낮아질 거라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구한 r과 g(한은 통계에서 실질국민총소득증가율을 택했는데 어느 수치를 택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불평등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있다. (<그림2>에 비교해서 아래 <그림10>의 g의 모습이 변화가 심한 것은 <그림10>은 극히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 필자 주)


▲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 <그림10> 한국의 자본(자산)수익률과 실질국민소득 증가율.



<그림10>에서 보듯이 한국의 자산수익률은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r과 g는 적어도 몇 십년에 이르는 장기적 추세 속에서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장률 그래프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리고 거의 확실한 우리의 인구증가율에 비춰 보면 r-g가 점점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통계가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196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였을 것이다. 해방 후 농지개혁을 한 데다 한국전쟁으로 지주계급이 거의 소멸했기 때문이다. 지주들에게 돈 대신 준 지가증권이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으로 바뀌었다. 지주계급이 산업자본이나 금융자본까지 모두 장악한 동남아나 중남미와 비교할 때 동아시아가 경제성장이 빨랐던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70~80년대의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자산 불평등은 그렇게 빨리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위의 그림들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피케티가 책 곳곳에서 되풀이한 경구대로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

세월호가 우리를 절망케 했던 것은 뻔히 눈뜨고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피케티 비율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전부, 곧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케티의 주장대로 과감한 자산재분배와 소득재분배가 답일 테다. 그 스스로 "유토피아적" 해법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아이들에 대한 현재의 심정이라면 결코 못 할 일이 아니다. 아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 번, 문제는 정치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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