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사고 아껴 쓸 수 있다고 홍보하는 디씨(할인) 신용카드 광고가 한창이다. 이는 수년 전 유명한 여배우가 신용카드 한 장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연출한 광고와 확연히 대비된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짓누르는 지금 상황을 정확히 꿰뚫은 광고 컨셉이다. 역시 자본주의 마케팅은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고
“경기가 정점을 통과해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4월 초까지도 경제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던 정부 경제팀이 고백했다. 지금은 5퍼센트 성장은 물론 4퍼센트 성장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가는 예상보다 높아지고 (정부는 올해 목표를 3.3퍼센트->3.5퍼센트로 상향조정), 일자리 창출은 작년도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작년의 2/3 수준인 20만개로 정부의 계획이 수정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는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 우리의 수출 비중이 각각 14퍼센트, 15퍼센트 - 의 경기침체로 그나마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수출도 하반기부터는 가시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아시아 - 우리의 수출 비중이 각각 22퍼센트, 16.6퍼센트 - 도 미국과 유럽 경기침체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대외경제의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수출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필연적으로 내수기반의 강화로 갈 수밖에 없다.
서비스산업 성장시켜 돌파하겠다고?
심각한 경기하강
국면을 뒤늦게 인정한 정부는 내수부양책의 핵심 사업으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다. 특히 관광, 교육, 의료, 지식기반 서비스를 선진화하여 서비스 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여 전체 경제성장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국인 학교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병원의 광고 허용, 수익사업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해외 골프여행자들의 국내 유치를 위해 골프장 세금부담 완화도 잊지 않았다. 규제 완화, 영리와 수익성 추구, 경쟁력 강화, 대규모화 등 낯익은 신자유주의 용어들이 화려하게 나열된다.
현재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GDP 비중 57.6퍼센트, 고용 비중 66.7퍼센트, 국민 소비지출 비중 65퍼센트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성장으로 인해 서비스업의 GDP 성장기여도는 40.3퍼센트로, 오히려 제조업 성장기여도 44.3퍼센트보다 못하다는 것도 더 이상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내수기반 강화를 위해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서비스산업 선진화’가 교육과 의료를 돈벌이 시장으로 바꾸는 것인가?
서비스 산업은 제조업과 관련이 많은 컨설팅, 회계, 정보통신과 같은 생산자 서비스 분야, 전통적인 도소매와 유통 서비스가 있으며 나아가 교육, 의료와 같은 공익적 성격을 띤 사회서비스로 분류된다. 현재 서비스산업의 문제점은 ① 고급 생산자 서비스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고, ② 개인서비스와 유통서비스가 영세하게 과잉되어 있으며, ③ 사회서비스가 매우 부족하다는 데 있다.(출처: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2008)
이를 해결하는 길은 ① 생산자 서비스 발전을 위해 해당 인적자원 육성에 투자하며 대기업 내부자 거래, 불공정 거래를 엄격히 규율해야 하며 ② 개인 서비스 회생을 위해 대형 할인점과 같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규제해야 하며 ③ 사회 공공서비스 영역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 활성화 얘기만 나오면 교육과 의료분야를 비즈니스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외국인 학교 규제를 완화시켜 비싼 학교에 한국인(30퍼센트 비중)을 입학하게 해 교육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상승시키고, 병원을 사실상 영리법인화 하며, 사보험의 진입을 허용해 의료비를 대폭 인상시키는 것이 서비스산업 선진화인가? 이것이 서비스산업 정책인가? 아니면 교육정책, 의료정책인가?
국책 연구기관도 심지어 규제완화와 영리법인 설립을 주장하며 이를 거든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되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로 인해 모든 의료기관에 단일수가체계가 적용됨으로써, 다양한 의료서비스 개발 유인이 억제되고 의료기관의 질 관리에도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KDI,『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를 위한 정책과제』, 2007)
국민을 위한 복지 줄이면 사영리 사업 범위 넓어지고, 서비스 비용만 높아져
기획재정부는 29일 ‘2009년 예산안 편성지침,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에서 복지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며, 사실상 복지를 축소하겠다는 주장을 했다. 복지를 위한 공공지출을 축소하면 할수록 이 영역은 사적 기업들의 영리활동 대상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교육, 의료 복지의 사적 영리화와 정부의 복지재정 축소는 이런 점에서 아주 잘 어울린다.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물가는 더 오르게 된다. 싸게 사고 아껴 쓸 수 있는 신용카드가 정말로 있다면 사용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 선진화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하고 내수도 성장시키겠다는 정부가 결국은 교육비, 의료비 등 각종 서비스 비용을 인상시켜 국민생활을 더욱 죌 것이라고 하니 도대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김병권 bkkim21kr@cin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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