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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이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품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시장과 상품의 시대다. 마르크스는 사람의 노동력조차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 팔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을 자본주의라고 했다. 사람의 노동을 포함해 모든 것을 상품화하여 거래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짚은 것이다. 그러면 상품화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상품은 무엇일까?


전투기보다 비싸고 매력적인 ‘기업’이라는 상품


얼핏 첨단 군수무기를 떠올릴 수 있다. 미국을 먹여 살리는 핵심 산업이 군수산업인 이유도 여기 있으니까. 군수무기 중에도 비싸다고 하는 F15와 같은 전투기가 대당 약 1억 달러 정도라고 한다. 웬만한 중견기업이 1년 내내 상품을 만들고 판매해 달성할 수 있는 매출액 정도의 수준이니 대단히 비싼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지난 3월 14일 파산위기에 몰렸던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를 J.P모건체이스 은행이 헐값(?)에 인수한 가격은 자그마치 34억 달러였다. 기업이라는 상품이 첨단 군수무기보다 훨씬 비싼 셈이다.


기업에서 생산하는 상품이 아니라 ‘기업 자체가 상품’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일까. 성립한다. 기업마저 수시로 시장에서 사고 팔수 있는 상품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신자유주의이고 주주자본주의다.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기업은 ‘사회적 기관이나 장기적인 부의 창조자가 아니라 사고팔아야 할 자산 목록에 포함된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더욱이 그 기업 안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기업이 ‘삶의 터전이자 가치 실현의 공간’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주주자본주의에서는 관심 밖의 일이다.


기업 사고파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


사모펀드(PEF)는 바로 베어스턴스와 같은 투자은행들로부터 차입을 받아(레버리지) 기업을 매수한 뒤 구조조정을 거쳐 되팔아(바이아웃) 차익을 챙기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조직이다. 흔히 LBO(Leveraged Boyout,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기업을 매수한 뒤 되파는 행위)라고 불리는 수법이다. 불법 인수로 법적 소송까지 간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첨단으로 경영하기 위해 인수했을까? 아니다. 론스타는 은행업에 대한 노하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모펀드일 뿐이다. 인수 뒤 구조조정을 통해 차익을 남기고 팔기 위해 외환은행을 인수했을 뿐이다. 한미은행을 인수했던 칼라일도, 제일은행을 인수했던 뉴브리지 캐피탈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세계 금융 위기의 중심부에는 사모펀드들이 있다. 이들 사모펀드들은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들로부터 자신이 조성한 자금의 수십 배에 이르는 자금을 차입하여 기업을 인수한 뒤 되팔아 왔고, 심지어 클라이슬러와 같은 거대 기업을 서슴없이 인수하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자금 유동성이 막히면서 사모펀드 자신의 손실은 물론이고 인수한 기업, 특히 차입을 해 준 금융기관들에게 심각한 손실을 입히고 있는 중이다.


민영화는 자본시장에서 거래할 우량상품을 대주는 행위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부터 민영화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치려 하고 있다. 민영화라는 개념은 사실 국가 관료가 운영하던 것(관영)을 민간에게 넘긴다는 고상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아무리 좋게 봐도 사영화(私營化)이며,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금융 주주자본이 사고 팔 거래대상 목록 리스트에 등재한다는, 즉 국가의 재산을 자본시장에 내다 판다는 뜻이다.


민영화 추진 첫 번째 대상에 오른 산업은행의 민영화 일정이 4월 말~5월 초에 구체화될 예정이다. 애초 매각시한인 4년을 3년으로 앞당겨 민영화를 시행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조기 민영화다. 기업은행, 우리은행 민영화도 그 뒤에 줄 서있다.


정부가 다수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제조업 건설업 분야의 민영화도 속도를 낼 조짐이다. 현현대건설(6조 4,000억 원), 하이닉스반도체(14조 5,000억 원), 대우조선해양(8조 원) 등 알짜기업들이 매물로 나온 상태다. 이들 기업 중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은 그 유명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상품거래 중개인(=매각 주관사)으로 선정됐고, 포스코, GS그룹, 한화 등 굵직한 국내 대기업들이 살 의향이 있다고 나선 상태다. 10대 그룹들이 보유한 막대한 현금성자산(지난해 말 기준 약 33조 5,000억 원)에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규제 완화 정책이 더해져 자본시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기업 매매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대우조선해양은 잠수함 사업 등의 방위산업 분야까지 보유하고 있다. 국가의 핵심이라 할 방위산업까지 보유한 조선기업을 우리나라가 아닌 월가의 투자은행을 중개인으로 앉히고 거래 판을 짜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까. 우리증권, 삼성증권은 명함도 제대로 못 내밀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인수가격이 6~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인수 여하에 따라 재계 순위가 바뀔 정도니 단연 올해 대한민국에서 거래될 최대 히트상품이 될 것이다.


자본시장의 입장에서는 산업은행이나 대우조선해양 등이 거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한발 더 나아가 방송과 의료산업이 자본시장으로 들어온다면 아주 매력적인 상품들이 쏟아지게 되는 꼴이니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자본시장의 입장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다. 그런데 왜 오직 기업의 소유/경영구조만은 천편일률적으로 가는가? 다양한 소유형태의 기업들이 공존하고, 다양한 경영구조가 공존하는 그런 경제시스템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특정 분야에서 공적인 기업이 공익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작동하고, 또 다른 영역에서 사회적 기업들이 운영되며 이들이 사적인 경쟁을 하는 기업들과 병존하는 다양성의 사회야 말로 미래 추세에도 맞고 사회 공동체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형태의 기업을 인정하고, 다양한 방식의 기업 경영을 인정하는 경제 환경을 확대해 가보자. 그런 점에서 보자면 민영화, 즉 사영화는 획일화된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김병권 bkkim21kr@cin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