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5정태인/새사연 원장

 

'천재들'의 개과천선?

안녕하세요? 경제 기사를 읽어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제가 대학원 다니던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사회 구성체 논쟁이 한창이었죠. 그때 저는 구체적 현상분석과 정책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로버트 라이시의 글을 읽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떠오르는 3대 천재로 일컬어지던 사람들이 래리 서머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물망에 올랐던 그 사람입니다), 제프리 삭스, 폴 크루그먼이었습니다. 스티글리츠나 라이시는 이들보다 한 세대 위의 학자죠.

이 중 가장 시장 근본주의자에 가까웠던 서머스가 11월 8일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연구자총회에서 한 연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크루그먼은 16일 "저주받을 서머스"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격찬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18일에는 삭스가 이 둘을 비판하는 글을 <허핑턴포스트>에 실었죠. 3대 천재가 다 등장한 셈입니다.

(☞ 래리 서머스 : IMF Annual Research Conference)
(☞ 폴 크루그먼 : Secular Stagnation, Coalmines, Bubbles, and Larry Summers) 
(☞ 제프리 삭스 : Why We Need a New Macroeconomics)

서머스와 크루그먼의 기본 논지는, 일단 인구 감소(또는 노동 공급의 감소)라는 장기적 경향이 '자연이자율'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는 겁니다. 서머스의 외삼촌인 폴 새뮤얼슨의 주장, '자연 이자율'은 인구 증가율로 수렴한다는 얘기를 끄집어낸 겁니다. 즉, 앞으로도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가 계속될 것이고 이것이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양적 완화 정책에 의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또다시 거품이 일어난다고 해도 무서워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이 지면에서 소개한 대로, 연준 이사장을 놓고 자넷 옐렌과 경쟁할 때 서머스는 양적 완화 축소를 주장했던 매파였는데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한 셈인가요?

양적 완화 축소를 반대하고 10년 전부터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크루그먼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합니다. 그는 현재 상황을 케인스의 '유동성 함정'으로 설명합니다. 즉, 돈을 풀어도 기업은 투자하지 않고 개인은 소비를 하지 않은 채 돈을 움켜쥐고 있는 상황, '돈이 밑 빠진 독(함정)'으로 흡수되는 상황이라는 거죠.

이에 대해 삭스는 현재 상황에서 소비 촉진보다는 장기 투자가 더 유효하다는 얘기를 한 정도입니다. 특히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력망)를 건설한다든가,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개발하고 교육과 의료에 대한 장기 계획과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국가가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가 처방전입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간단한데, 저축과 투자의 균형 방정식 S(저축)=I(투자)가 깨져서 S>I 상황이라면 소비 증가에 의해서 S를 줄여도 되지만 I를 늘려도 되니까요. 즉, 삭스는 과장하자면 '계획 경제'를 주장하는 것이고 경제학계에서 금기어나 다름없는 '산업 정책'을 주장하고 나선 겁니다. 1980년대 말 러시아에서 쇼크 요법을 사용하도록 부추겨서 대혼란을 일으킨 사람이 정말 개과천선한 셈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경제 기사를 읽어온 분들이라면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 떤다"라고 할 수준의 얘깁니다. 어쨌든 여전히 미국의 경제학계를(그러므로 한국의 경제학계도) 지배하고 있는 시카고학파 유의 시장 만능론자들은 일제히 반대하겠지만, 이들의 얘기는 '장기 침체기에 국가가 나서서 재정 정책을 써야 한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죠.

ⓒ연합뉴스


뜨뜻미지근한 중국의 '3중전회'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지난주에 간단하게 소개한 중국 공산당의 3중전회 발표문을 좀 더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이 발표문 자체는 중국 내의 좌파와 우파, 또 해외 투자자들 어느 쪽도 환성을 올릴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뜨뜻미지근하다고나 할까요? 예컨대 국유 기업 개혁 분야에서는 '비(非)국유 자본', 즉 민간 자본의 참여를 허용하고 2020년까지 국유 기업의 수익 중 30%를 '사회적 배당(정부 재정 귀속분으로 과거에는 15%였다)'으로 돌린다는 정도죠.

물과 에너지·교통 등 과거에 필수적 사회 서비스 부문이라고 분류했던 국유 부문의 독점을 완화하고, 금융의 대외 개방·위안화 시장의 형성·금리 자유화·민간 자본의 중소 은행 설립 자유화를 명시한 것은 시장과 경쟁의 강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중전회 이전에 상하이를 자유무역지대로 선포한 것도 개방과 규제 완화의 가속화라고 평할 수 있겠죠. 또한 집체 토지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농민의 재산권을 강화해서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정책입니다. 이른바 "비공유 경제의 활력과 창조력을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거죠. 물론 국유 경제의 통제력과 영향력을 강화시켜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얘기는 거듭 반복했습니다.

사회 분야에서는 33년 만에 두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했고, 호적(후커우) 제도를 개혁하며 사형 기준의 엄격화, 노동교화소의 폐지 등 사법 제도의 중앙 집권화를 통한 인권 및 노동권의 개선도 약속했습니다.

이 두 기사를 연결해 사고하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곧 연준 의장이 될 옐렌은 서머스나 크루그먼의 주장대로 양적 완화 정책의 축소를 단행하지 않을 겁니다. 아직도 중국 제품이 싸기 때문에 인플레이션보다는 버블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미국의 주가는 2009년 이전보다 훨씬 더 올랐고 주택 경기도 꿈틀거리고 있죠. 그러니 빈부격차는 더 심해질 겁니다. 이 부분이 서머스와 크루그먼이 빠뜨리고 있는 얘깁니다.

미국이야말로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나라입니다. '장기 침체'의 상황에서 경제학자들과 공화당은 재정 긴축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중국 역시 이번 3중전회를 보면 정치적 한계에 부딪혀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넓고 아직도 1인당 GDP가 6000달러인 나라죠. 크루그먼이나 서머스의 논지를 따르자면, 중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5~6%의 경제 성장을 할 것이고, 현재의 예측보다 더 일찍 중국과 미국의 GDP는 역전될 겁니다.

어느 나라가 더 빨리 증세를 통해서 장기 투자와 서민의 소비를 늘리느냐가 관건입니다. 즉 어느 나라의 정치가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느냐, 또 가난한 많은 사람들의 표를 얻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는 셈입니다. 삭스의 주장대로, 미국이 투자 주도형으로 그리고 중국이 소비 주도형으로 갈 때 어느 정도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될 될 것입니다.

"협동조합은 건재할 것이다"

세계가 침체에 빠지면 언제나 사회적 경제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자조적(self-help) 대응이죠. 하지만 지난주에 알려 드린 대로 세계의 칭송을 받던 몬드라곤집단의 '파고르전자'가 파산 보호를 신청했습니다. 다음의 링크는 10월 30일에 발표된 몬드라곤 조합원 총회의 발표문입니다.

(☞ MONDRAGON's General Council reaches unanimous agreement on the future of Fagor Electrodom?sticos

파고르전자의 전신인 '울고'는 몬드라곤 최초의 기업입니다. 당시에 난로를 생산했던 울고는 냉장고 등 백색가전을 주로 생산하는 전자기업 집단으로 발전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파고르전자는 2006년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부동산 거품 붕괴, 미국의 금융 위기, 그리고 곧 이은 유럽연합(EU)의 재정 위기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5년간 몬드라곤 내의 협동조합들은 약 4억 달러 규모의 '협동조합 간의 협동(ICA 제6원칙)'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발표문에서 보듯이 "밑 빠진 독의 물붓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만장일치로 내린 모양입니다. 파고르 사례의 철저한 분석은 협동조합의 취약성이 어디에 있는지, 네트워크화와 기금, 그리고 노동금고나 보험과 같은 협동조합 금융으로도 막을 수 없는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여 줄 겁니다.

한국의 지니계수

장기적이고 큰 얘기를 하다 보니 너무 긴 얘기가 되어 버렸네요. 한국 상황은 일지로 대체하고 최근에 발표된 통계 얘기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한국은 '공평한 성장(equitable growth)'을 이룬 나라로 칭송받았습니다. 실제로 1080년대 말~1990년대 초에는 분배 상태가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소득 분배는 악화되고 경쟁은 더욱 심해져서 사는 게 팍팍해졌다는 걸 우리는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니계수로 보면, 여전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더 나은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19일 통계청에서 새로운 지니계수를 선보였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지니계수가 0.311로 알려졌습니다만 부자들의 소득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결과 0.357이 된 거죠. 지니계수는 완전한 평등이 0으로, 그리고 완전한 불평등(한 사람이 우리나라 부를 전부 가지고 있는 경우)이 1로 표현되는 지수입니다.

ⓒILO 이상헌 박사 페이스북.


위 그림에서 보듯이 0.311이면 뉴질랜드나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입니다만 0.357이면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됩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들에 속하게 되는 거죠.

결국 한국에 대한 처방전도 같습니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하느냐가 경제 성장률도 좌우하게 될 겁니다. 즉,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요구한 경제 민주화와 보편 복지가 답입니다. 지금처럼 온갖 수단을 다해서 상위 몇몇 재벌의 세금을 깎아 준다고 경제가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본 글은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칼럼지인 <프레시안 뷰>에 기고되었습니다.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시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