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김병권/새사연 부원장

 

스위스는 24일 ‘1대 12 이니셔티브’라는 특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스위스에 등록된 모든 법인에 대해 어떤 임직원도 최저임금자의 12배가 넘는 임금을 지급하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스위스 사회민주당 소장파들이 입법청원을 한 것이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찬성의견이 40%가 안 되므로 통과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의 관심을 받을 만하다.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돌려 보자. 우리나라도 이달 말부터 대기업 임원 연봉을 공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스위스처럼 임원의 연봉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개만 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러면 이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연봉 총액이 얼마인지 알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은 해당 사항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기업 임원 연봉, 특히 상장기업 연봉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생소할 수 있는 데다, 공개되도록 법이 바뀌었는데도 압도적인 국내 1위 재벌인 삼성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의 연봉은 어째서 공개되지 않는지 아리송할 것이다.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원래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정보공개 의무가 있는 상장법인이라 해도 임원 보수에 대해 등재이사 전체의 총액임금만 공개가 됐지 개별 임원의 보수를 공개하는 규정은 없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삼성전자 사업보고서를 보면 사내이사 3명에 대한 보수 지급총액이 150억원, 1인당 평균 52억원으로만 돼 있다. 각각 얼마를 받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부터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대기업 임원들의 보수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올해 상반기에는 자본시장통합법이 개정돼 공개가 의무화됐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본시장통합법 제159조2항의 사업보고서 제출대상 기업들이 보고해야 할 내용 중에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이 새로 추가됐다.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임원보수 공개 대상 기업은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법인으로 상장법인 기준 1천663개와 기타 388개를 합쳐 2천51개 기업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임원 보수가 모두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보수총액이 5억원을 넘는 ‘등기임원’의 경우에 한정된다. 때문에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국내 500대 기업 중 등기이사 평균연봉이 5억원을 넘는 곳은 176개사이고, 공개 대상 임원은 536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일단 대기업들의 상당수 임원들이 보수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에서 대주주로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도 등기임원이 아니면 보수공개 의무가 없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그룹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사위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 삼성가의 주요 실세들은 미등기 임원이다. 따라서 보수 공개의무가 없다. 가관인 것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포함해 담철곤 오리온 회장 등이 속속 등기임원을 사퇴하고 미등기 임원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역시 보수공개 의무에서 벗어난다.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미국은 1992년, 영국은 2002년, 일본은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익숙한 제도다. 더욱이 지금 세계는 한발 더 나아가 임원 보수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검토 중에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3월 스위스가 '살찐 고양이 법'(fat cat·배부른 자본가라는 의미)이라는 별명을 가진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67.9%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주주총회에서 임원의 보수를 통제하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고 6년 연봉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스위스가 주주의 임원 보수총액 통제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절대 총액이 최저임금자의 12배를 넘지 않도록 못 박는 국민투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시도를 하는가.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 때문이다. 미국 경제학자이자 전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는 지난 30년 동안 벌어진 미국의 소득격차를 비판하면서 “경영진들은 평균 노동자 임금의 300배 이상의 연봉을 챙기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그 차이는 40배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 대기업 임원들의 과도한 보수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국제적인 공감대가 커져 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벌 임원들의 보수 제한은 고사하고 보수마저 제대로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추가적인 법 개정 준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미등기 임원을 포함해 모든 임원들의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 ‘5억원 이상 보수’라는 문턱도 높은 것은 아닌지 재검토해야 한다. 기왕에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보수공개 대상을 등기임원에서 '집행임원'이나 '업무 집행 지시자'로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으니 제도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 아닌가.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되었습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