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8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없다는 가정 아래 나는 100년 안에 경제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어도 해결책이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는 곧 만약 우리가 미래를 본다면, 경제 문제가 인간의 영구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금부터 80여년 전인 1930년 경제학자 케인스가 100년 뒤(2030년)인 손자세대의 경제를 예측하면서 던진 화두다. 산술적으로는 아직 20년쯤 남았지만 그가 예상한 시점에 거의 근접했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가정해 보자. 케인스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경제 문제가 거의 해결되기 위한 근거로, 100년 동안 경제규모가 4~8배 정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80여년 동안 실제로 4배 가까이 커졌으니 비슷하게 예측한 셈이다. 


이 정도로 경제규모가 커지게 될 때면 사람들이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일해도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 필요를 모두 충족시키게 될 것이라고 케인스는 예언했다. 


“인간은 세상에 창조된 이후로 처음으로 진정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경제적 걱정에서 풀려난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과학과 복리가 안겨 줄 여가시간을 어떻게 채우면서 인생을 알차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케인스는 ‘여가’를 어떻게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100년 뒤의 인류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떠한가. 순전히 먹고사는 일에는 하루 세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경제 문제가 풀려 가고 있고, 이제 나머지 여가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진정한 문제’에 우리는 봉착해 있는가. 케인스가 예언한 상황들이 우리 주위에 조짐이라도 나타나고 있는가.


잠시 우리의 시야를 최첨단 정보통신 산업으로 돌려 보자. 생산성을 비약시키고 사람들의 단순하고 힘든 노동을 줄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혁신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 정보통신 혁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우리 눈앞에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엄청난 과로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인 것이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주당 노동시간은 55.1시간으로 세계 최고다. 프랑스(40.3시간)와 미국(42.4시간)은 물론이고 세계 평균인 44.6시간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을 다시 끌어올리는 사람들이 바로 정보통신업계에서 일하는 시스템 엔지니어·프로그래머·시스템 운영자·웹 디자이너들이다. 


장하나 의원에 따르면 그들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57.3시간으로 나타났다. 주 5일 기준으로 하면 하루 10시간 이상이다. 60시간 이상도 무려 35%나 됐다. 심지어 4.8%는 100시간 이상 일한다고 대답했다. 일주일에 100시간이면 일요일도 없이 매일 14시간 이상씩 일해야 한다. 1800년대 초반 영국의 산업노동자들을 묘사할 때 책에서만 봐 왔던 수치 아닌가.


일반적으로 생산직 노동자들은 초과근무를 하게 될 경우 수당을 받기라도 하지만 정보통신업계 노동자들은 사실상 무상 초과노동을 한다. 초과근로시간에 대해 직장에서 정확하게 집계를 하고 있는지 묻었더니 무려 75.5%가 집계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엄청난 초과노동을 ‘무상’으로 하면서 얻는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건강 악화다. 정보통신 노동자들은 일반 사무직에 비해 치료가 필요한 근골격계 질환이 2~3배, 임상적으로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이 2배나 많았다.


다시 케인스의 예언으로 돌아가 보자. 물론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1930년 당시 케인스가 예측한 것은 선진국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당시 식민지 국가였던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단지 4배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던 53년부터 계산하면 60년 동안 무려 50배 가까운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명목가격으로 봐도 53년 우리나라 국내총산은 고작 470억원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1천275조원이다. 하루 세 시간으로 필요를 충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당초에 케인스가 터무니없는 예측을 한 것인가. 경제규모가 4~8배 이상 커진다 하더라도 힘든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를 즐기는 삶은 오지 않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성장의 결실이 제대로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재화를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지위경쟁을 끊임없이 부추겼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예언대로 인류는 이미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생산력에 도달했음에도 하루 세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10시간 이상의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런 관행을 숙명으로 여기고 참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 갇혀 있다. 너무 오래 있다 보니 악취가 악취인 것도 모르고 있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악취를 맡더라도 얼마나 고약한지 표현하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에 놓여 있다.”(김영선, <과로사회>) 한 사회학자가 던진 문제 제기를 새삼스럽게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본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