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이슈 2008.04.16 14:22



낮은 투표율의 정치적 의미


역대 최저

투표율(46%)을 기록한 18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영국 인민들은 선거 때만 자유롭다”면서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공격했던 루소의 경구가 떠오른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주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총선에서조차 단지 절반만이 적극적 자유를 행사했을 따름이다. 이 정도면 단순히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공화국 자체의 위기이다. 선기 시기의 매우 낮은 투표율은 선거 이후 위임된 주권의 한계를 넘어 자의적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전횡을 국민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적 정신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예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간의 상식과 달리 낮은 투표율로 구성된 18대 국회의 국민에 대한 자율성은 역설적으로 매우 높을 것이다. 총선 이후 몇몇 논자들이 극히 낮은 투표율을 두고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취약한 권력기반을 가진 국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오판이다.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 다수 국민에게 호소할 이유가 없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소수 국민들에게만 의지하면 되는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 기득권 정당들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만을 추구할 강력한 동기를 갖게 마련이다. 낮은 투표율은 자의적인 권한을 행사할지 모르는 권력자를 감시하고자 하는 국민적 민도가 심각하게 후퇴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결과 가장 이득을 보는 세력은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들이다. 국민들의 민도가 높으면 민주적 정당성이 높아지는 대신 자의적 권한의 행사는 그만큼 낮아진다. 반대의 경우 자의적 권한 행사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상식 이하로 낮아진 투표율을 보면서 제일 먼저 착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공화국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말한다면 ‘치자와 피치자의 구분 자체가 없는 것’이 공화국의 기본 얼개이다.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정치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공화국의 운영에 효율성과 안정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타당한 제도적 기제이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는 주류 정치학 이론이 가정하듯이 “정기적으로 공정한 선거를 통해 인민을 대표하는 엘리트를 선출”한다는 원리만으로 정당성을 완결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핵심요건이 바로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다. 선출된 인민의 대표가 선출한 인민들과 이해관계 및 정서를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가가 정당성의 핵심 요건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18대 총선의 낮은 투표율은 유권자 20% 정도의 지지만을 획득한 후보들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됐다는 점에서 공화국의 기본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대의원들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의 여지는 그만큼 넓어진다. 18대 국회는 국민들과 유리된 국회의원들의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국회보다 높아졌다.


범여권 200석의 정치적 의미


이제 살펴봐야 할 것은 자의적인 권력행사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18대 총선의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153석, 통합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무소속 25석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한 많은 논자들은 절대 안정 과반의석을 목표로 한 한나라당이 과반을 간신히 넘긴 것을 두고 오만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의 경고가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선거 평가는 완전히 잘못되었다.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의 철저한 압승으로 87년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집권 여당의 완벽한 승리이다.


당명이 다를 뿐이지 친박연대는 분명 한나라당을 모체로 하고 있는 범여권이며, 무소속 의원의 다수 역시 범여권으로 분류될 수 있다. 더욱이 자유선진당은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이므로, 범여권으로 포함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친박연대와 범여권이 당내 주도권 다툼과 공천 갈등으로 인해 파생된 범여권이라면, 자유선진당은 이념적(특히 남북문제)으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더욱 우경화시킬 것을 자임하는 범여권이다. 현재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굳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이유는 굳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혹 이어질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과반이 무너진다한들 범여권의 절대 안정 다수 의석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산술적으로 특정한 이념과 정책을 강하게 공유하는 세력이 의회 의석의 2/3 이상을 차지했다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최근 3년간 행해진 주요 선거에서 신보수주의 세력은 순차적으로 제도정치권을 장악해 왔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신보수주의 세력의 제도정치권 장악은 이번 총선을 통해 완결되었다. 자유주의 정치원리의 기본인 권력분립과 통제의 원리는 완전히 유명무실해졌고, 절대권력인 리바이어던이 통합권력으로 등장하였다. 지방의회, 행정부, 입법부를 완전히 장악한 신보수주의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틀을 잡아 놓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된 민주적 정당성의 이름으로 보다 노골적으로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였다. 한미FTA 비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정책들이 발 빠르게, 그러나 어떠한 제약도 없이 추진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명박 정권과 범여권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은 통합민주당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통합민주당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초석을 닦아 놓은 신자유주의 정책, 특히 한미FTA와 같은 핵심 정책을 반대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견제 세력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없다. 단적으로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경우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한미FTA에 대한 찬성 입장에 서 있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더욱이 비교적 개혁적인 정치세력들이 총선에서 대거 탈락한 상황은 통합민주당의 유의미한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낮게 한다.


통합민주당이 정략적으로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길은 하나뿐이다. 국민경제에 중차대한 영향을 줄 신자유주의적 패키지에 대해서는 선언적인 수준에서 합리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정면 대응을 피할 것이다. 반면 국민적 반대 여론이 높은 대운하 등에 대한 반대에 당력을 집중하면서, 사립학교법 및 언론관계법 등의 재개정 움직임에 대한 반대 국면을 조성하면서 정치적 지분을 챙길 공산이 크다.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제세력이 신자유주의 우파 혁명의 시대에 역량을 집중할 지점은 통합민주당의 예측되는 행보와 명확히 달라야 한다. 대운하 및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등이 매우 중요한 현안임에는 분명하지만, 진보역량은 한미 FTA를 비롯하여 각종 친재벌 정책들의 문제점과 허구성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제도정치권의 수준만 놓고 본다면 신자유주의 우파 혁명에 대한 유일한 저항 지점은 단 5석의 의석을 가진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의회 정치에서 5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표출하고 집약해야 할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신보수주의 우파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저항의 지점은 다시금 ‘거리’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거나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들을 외형적으로 포용하되,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물리적 폭력과 이데올로기적 선전을 통해 강하게 압박을 가할 것이다. 따라서 ‘거리의 정치’가 민주적 정당성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혁명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오늘날 과거와 같은 수준의 ‘거리의 정치’에 진보세력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는 상당한 회의가 든다. 오히려 제도정치권 수준에서 진보세력의 역량이 축소된 상황에서 시민사회 내의 민중운동세력과 시민운동세력이 당분간 준정당적 역할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제도정치권에서 약화된 진보적 역량을, 시민사회의 진보적 세력이 대안적 정책과 의제를 형성함으로써 보완하는 것을 말한다.


200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강력한 범여권의 등장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명확하다. 중도 우파 정당이 몰락하고 민주노동당이 더욱 미약해진 상황에서 국회 내 의사결정구조는 범여권 내 세력들간의 의견 조율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들이 압도적 다수의 이름으로 제약 없이 도입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헌법적으로 완수하는 일이다. 87년 민주헌법의 해석상 모호한 지점들이 신자유주의적 기획 하에 수정될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찬성하는 세력들과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한 선별적 대응, 즉 찬성하는 세력들에게는 각종의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반대하는 세력들에게는 이데올로기적 공격과 공권력의 탄압이 노골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우파 혁명 시대 200석 이상을 가진 보수세력의 행동철학이다.


가장 시급한 제도적 개혁 과제.... 전면비례대표제 도입 


당면한 정세에서 진보세력은 한미 FTA 비준의 문제점을 여론화시키면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 내야하고, 이명박 정권의 친재벌적 체제 혁신을 막아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제도적 개혁이 있다.


현재 지역구 중심의 소선거구제는 대정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이며, 대량의 사표를 양산하는 비합리적 선거제도이고, 사회적 균열구조를 왜곡시키는 선거제도이자, 지역주의를 온존 강화하는 선거제도이다. 소선거구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국민투표를 도입하는 것보다도,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근본 개혁 과제이다. 서구의 학자들은 선거제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헌정체제를 논할 때 헌법보다도 선거제도를 더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지역 유권자들과 국민의 대표가 밀착된 소선거구제가 타당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한국의 상황에서 본다면 현행의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 효과와 결합하여 보수세력이 200석 이상을 차지하게 만든 근원적인 제도적 기제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자가 지역구에서 당선될 가망이 없는 현재의 소선거구제야말로 정치 불신의 양산 원인이며, 비상식적으로 낮아진 투표율의 근원이다.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투표에 적용한다면 ‘지지율과 의석수’를 가급적 일치시키는 것이 공화국의 안정성을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당내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화를 전제로 한 전면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으나, 선거법 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행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경우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지역구 의석 245석을 그대로 두고, 정당명부비례대표 의석을 245석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국민 정서상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반감을 가질 수 있으나,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은 비교정치적으로 보았을 경우 큰 무리가 없다. 세계 각국의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비교적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1인당 국회의원 수 - 한국 : 16만 명, 노르웨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 3~4만 명, 니카라과, 볼리비아 : 6~7만 명, 이탈리아 : 9만 명, 아르헨티나 : 16만 명).


신자유주의 우파 혁명의 급격한 전개에 직면한 현 상황에서 진보세력은 대안 중심의 정책 의제를 운동의 정치와 연결시키면서 국민적 동의를 확장해 나가야 할 것이며, 동시에 다가올 4년 뒤의 총선을 위해 전면적인 선거법 개혁을 모든 의제와 결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정치적 수준에서 안정된 진보의 진지를 재구축하는 작업이 모든 일에 선행되어야 할 진보운동의 핵심 사안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진단일까?

엄관용/새사연 객원연구원

Posted by 새사연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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