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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 2013/[도서] 협동의 경제학

[서평]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자 - 협동의 경제학을 읽고

* 본 서평은 블로거 카제바람님의 서평입니다. 원문 링크는 http://goo.gl/LrI8a 입니다.

정태인 이수연, 2013

『협동의 경제학 :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시대의 경제학 원론』 레디앙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자

이기적 인간의 실패, 이타적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자크 아탈리의 ‘이타적 사회’라는 문장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시절 도서관에서였다. 디지털 노마드 개념을 창안하고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미래사회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이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며 향후 50년, 이타주의자로 구성된 새로운 엘리트집단이 나타날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었던 시기, 그의 말은 예측이라기보다는 꿈이었다.

현재 신자유주의는 실패의 상징,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 받고 있다.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한 ‘자본주의의 종착지’로서 신자유주의는 세계 곳곳에 양극화와 격차사회를 유발했다. 무한에 가까운 이기적 욕망을 ‘자유’로 환치하는 속임수는 이미 끝을 보였다.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선순환하지 못했고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실험은 실패했다.

 

주류경제학도 민망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파악하며, 책상 머리에 퍼질러 앉아 사회현상을 평면적으로만 살피던 주류경제학의 논리와 정의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은 않으며 시장 또한 결코 효율적이지 않았다. 실상 이기적인 것은 경제학자들뿐이었다. 그들이 만든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어김없이 국가가 나섰다. 새로운 사회 원리와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외눈박이 주류경제학의 한쪽 눈과 양쪽 귀를 열어주는 시·청각의 확장과 개선이 시급하다.

책의 저자인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수연 연구원)은 지금껏 세계를 지배해온 시장경제 유일사상의 극복을 외친다. 주류경제학자들의 ‘이기적 인간론’에 대한 이의제기와 함께 그들의 주장에 대한 불합리함,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주류경제학이 양산한 이기적 인간 혹은 시장만능주의 사상에서 벗어나 이타적 인간과 협력하는 인간을 말한다. 300년간 시장경제의 ‘외눈박이 사상’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왜곡되었으니, ‘사회적 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를 더해 네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4박자 경제학’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협동의 경제학은 ‘반反경제학’이다.

저자는 주류경제학의 문제를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기적 인간’이라는 주류경제학이 ‘돈 놀이’를 하느라 인간사회의 ‘정의’를 외면해버렸다는 것. ‘경제학 제국주의’시대(28p)로서 지난 30년간 다른 학문을 지배한 주류경제학은 합리성이라는 말로 인간의 이기적 선택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택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에는 실업도, 금융위기도 없다는 것이다.

“대학뿐 아니라 고등학교나 중학교 경제 교과서 역시 주류경제학을 기반으로 쓰여 있다 한국에서도 주류경제학이 아니면 경제학을 배우기란 힘들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실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지금 일자리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가 노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임금이 너무 낮아서 차라리 노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 …거품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더라도 알 수 없으며, 알더라도 사전에 통제할 방법은 없다. 이론은 완벽하다. 다만 시장에서 인간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30~34p)

또한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배경이 이기적 인간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왜곡된 교육을 받고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강요된 사회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다. 현재 시장실패는 ‘이기적 인간’의 실패이므로 ‘이타적 인간’으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동물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이 되자’는 말이다.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시장경제와 사회적 딜레마’에서는 시장만능주의가 초래한 시장실패와 주류 경제학의 ‘이기적 인간’론에 대한 반박, 사회적 딜레마를 탈출하기 위해 우리가 참고해야할 여러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늘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어 있으며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타적 선택을 할 경우 궁극적인 합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체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이 300년 역사 동안 절대적인 가정으로 삼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명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 명제를 기반으로 세워진 경제학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상호적이고 따라서 협동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몇 백만 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역사 대부분을 인간은 상호적으로 행동했다. 다만 최근 300년 동안만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이 세상을 지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학문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압도했을 때 세상은 파탄이 났다.” (41~42p.)

저자는 자본주의 위기 해결의 대안으로서의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재벌 기업의 독점, 이윤 극대화를 비판하며 경제민주화의 중요성 또한 언급한다. 본문에서는 게임이론을 이용한 다양한 사회적 딜레마 게임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가 ‘합리적’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이기적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 교훈을 주고 있다. 한편 주류경제학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이기적은 것은 결국 경제학자들뿐이었다’는 몇몇 실험 결과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일련의 유쾌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협동하는 이타적 사회가 더 좋은 사회다.

‘보이지 않는 손’이나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었지만 사실 경제학이 가르치는 것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라. 그게 현명한 행동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가 될 뿐이야!”라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경제학 교육에 분명 문제가 있다. (122p)

2부 ‘협동의 경제학’에서는 본격적으로 ‘이타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한다. 인간은 특정 환경 혹은 조건에 따라 협동하게 되며, ‘응징과 보상의 제도화’를 통해 협동의 중요성을 실질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 협동을 위해 ‘신뢰’가 필요하며 신뢰는 ‘사회적 자본’으로서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경제라는 기존의 시스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 공공경제, 생태경제의 당위성을 역설한다. 여기서도 경제학자, 경제학과 대학생을 상대로 한 실험은 계속된다. 결과는 마찬가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무임승차·비양심적 성향이 더 강했다. 더 이기적이었다.

사회의 일반적 신뢰에 관하여 본문에서는 교육, 소득, 직업, 건강 등이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소득 불평등은 신뢰를 떨어뜨리고 평등과 다양성의 추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일반적 신뢰, 사회적 공공성의 ‘상향평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3부는 책의 주요 테마라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경제로서 ‘협동조합’의 의미와 현재 여러 협동조합들의 성과, 협동조합의 원칙, 산재된 과제와 문제점들을 두루 살펴본다. 또한 세계의 협동조합 성공 사례를 들며 그들의 성공요인 속에 남다른 역사적 배경과 전통이 있음을 소개한다.

협동조합이란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자본을 고용하는 형태, 노동이 스스로 주인이기 때문에 노동이 원하는 사회적 가치인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 지역사회 발전과 같은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183p.)

저자는 협동조합이 대세가 되지 못한 이유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외부적 환경과 협동조합의 조직의 내부적 특성을 원인으로 꼽는다. 자본 조달에서의 불리함과 금융기관에서의 차별적 대우, 운영 면의 불리함과 평등한 조직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구성원 간의 갈등. 국내에서, 협동조합은 다양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세계의 협동조합 성공사례는 협동조합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해 준다.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에 비해 임금이 14퍼센트 정도 낮지만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 경기 악화에도 조합원의 77.6퍼센트가 해고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의 1인당 GDP는 4만 달러로 이탈리아 국가 전체 GDP 평균의 2배에 달한다. 볼로냐에는 주택건설 협동조합과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도 있어 협동조합의 활동영역에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캐나다 퀘백의 ‘태양의 서커스’는 협동조합이 이뤄낸 기적이며 퀘백에는 경제의 모든 곳에 협동조합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협동조합 성공 사례의 소개를 통해 비록 몇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협동조합은 ‘가능성 있는 대안’임을 알리고 있다. 협동조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 실효성과 성장가능성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에게 좋은 대답이 되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주택협동조합’과 같이 한국적 특성에 더 유효한 사례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주택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새사연 홈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얻고 있는 바이다.)

 

 

 

 

 

 

보편적 복지국가, 녹색혁명에 대한 꿈

4부 공공경제에서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한 ‘공공성’을 논의한다. 오로지 효율성만 따지는 주류 경제학, 시장만능주의가 해결하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공공성의 중요함에 대해 살펴보고 보편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거시 경제 정책의 시행과 제도적 보완을 촉구한다.

효율성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공공성으로서 의료와 방송을 언급했고 의료와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 보편적 복지국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공공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19장 ‘한국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에서는 제목에서 주었던 기대와 달리 거시경제 정책, 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 자본통제 등 다소 원론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는 기존의 경제, 사회과학 서적과 달리 새롭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이에 대한 욕구가 온전히 충족되지 못했고 평이한 해설에 평이한 아쉬움이 뒤따랐다. 1부에서 3부까지 이어지는, 뜨겁고 즐거운 토론의 시간을 거쳤으나 결론을 내리는 것에 충분한 시간적 배려를 하지 못했다는 인상이었다.

마지막 5부 생태경제에서는 환경경제학을 통해 생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주류경제학의 시각을 벗어나, 경제를 자연 안에 뿌리내린 하위시스템으로 간주하는 생태경제학을 다룬다. 생태경제학은 동시대 사람들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명까지 생각한다. 생태경제학이 추구하는 핵심 목표는 지속가능성이며 경제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제약은 자연법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생태경제 문제는 해결방법이 쉽지 않다. ‘산업’과 ‘노동’에 직결된 생태경제 문제는 해결 과정에서 관련 집단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써는 ‘예방 우선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지켜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협동조합, 시작은 작은 곳에서부터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저자는 주류경제학과 시장만능주의의 전제가 잘못되었고, 우리는 잘못된 경제학 원칙에 따라 사회를 운영해 왔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실패로 촉발된 금융위기, 자본주의 실패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이타적 경제 혹은 협동조합을 제시한다.

저자는 시장경제의 문제점만 지적하거나 사회적 경제 혹은 공공경제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극단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시장경제의 한계를 인식하되, 그 원인이 ‘이기적 인간’이라는 전제에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타적 인간’,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협동의 경제학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현실적 실행방안들이 완벽하지는 않으며 저자 본인도 완성도 높은 해결책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주류경제학에 편중된 교육을 받은 우리가 시장경제,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류경제학의 ‘속임수’를 제대로 파악하고 어떤 선택이 우리 개인과 사회를 위해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을 강조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이 화두가 되고 있다.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창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도 많다. 그야말로 협동조합은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기 존재를 되찾는 '웰빙'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버린 선례가 있다. 무엇이든 유행처럼 번지면 그 본질이 호도, 변질되기 십상이다. 사회적 경제 혹은 협동조합이라는 시대의 대안이 열풍처럼 급격히 번지는 현상 또한 조금은 우려스럽다.

저자는 협동조합을 꿈꾸는 이들에게 ‘동네 문제 해결사가 되어라’라고 조언한다.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란 결국 신뢰와 협동이 바탕이 된 ‘협동의 문화’이며 이는 단기간에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협동의 경제학은 인간 개개인의 이타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지역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려 힘을 모으고, 에너지를 축적해가는 것이야말로 협동조합의 정신에 맞닿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우선 주류경제학의 문제점 혹은 모순들에 대한 궁금증들이 해소된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탐욕스러운 손’으로 똑똑히 보이게 된다.

협동의 경제학은 ‘경제학적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혹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내용들을 풀어 놓는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 그러니 이타적 인간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또한 “왜 협동조합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지극히 당위적인 답변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조금은 덜 추상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뜻밖의 기회에 읽게 된 협동의 경제학. 서평이라기엔 너무 난삽하고 부끄러운 글이다. 그럼에도 글을 남기는 것은 이 같은 양서가 조금이라도 더 알려져서 보다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 시간에 쫓겨 완독까지 시일이 많이 걸렸으나, 향후 다시 읽어도 좋을만큼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높은 책이다.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