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8![]() |
이제 곧 서울에서도 창밖에 벚꽃이 분분히 날릴 텐데 각 부처 공무원들은 휴일의 책상머리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처의 창조경제, 예컨대 농림축산부의 창조경제는 뭐라고 할까? 십중팔구 과거에 해왔던 부처의 역점 사업을 창조경제라는 낱말로 새롭게 분칠하는 데 그칠 것이다.
진심으로 얘기하건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공무원들의 이런 행동은 정권을 넘어선 장기 정책이 실행되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나는 환경부 공무원들이 전 정권의 ‘녹색성장’을 ‘창조경제’로 포장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의 커다란 한 축은 이미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과 핵발전을 뺀 나머지 녹색성장을 실천하면 된다. 예컨대 재생가능 분산형 발전과 스마트 그리드 사업은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며, 그 첫 발걸음으로 당장 탄소세(탄소배출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를 부과할 수 있다. 물론 에너지 집중형 산업과 핵산업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크겠지만 창조적 미래를 위해 이들을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아버지 박 대통령에게 배울 일이 아닌가? 아버지는 군화에 의존했지만 이제 딸은 시민을 믿어야 한다.
도대체 창조경제란 무엇인가? 각 부처 장관이나 비서관들의 설명이 가히 백화제방인데 이 또한 그리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정보기술과 기존 산업의 융합이든, 제2의 벤처 붐이든, 아니면 문화든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아니 국민들의 반짝거리는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 국회 합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 무릇 패러다임의 변화, 시스템 차원의 변화는 그 목표가 미리 결정되어 있을 수 없다.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래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모름지기 상상력과 창의력은 빈 공간(니치)에서 나온다. 질식할 것처럼 꽉 짜인 구조, 특히 승패가 이미 결정된 뻔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컨대 현재의 재벌경제시스템 안에서는 벤처가 성공하기 어렵다. 20년 전쯤 삼성이 야심차게 실리콘 밸리처럼 일하는 젊은 부서를 만든 적이 있었지만 1년을 못 넘기고 문을 닫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벤처 붐이 재벌개혁의 틈바구니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곧 창조경제의 전제조건이라는 얘기다.
더 나아가서 현재의 교육시스템 속에서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결코 나올 수 없다. 입시경쟁은 아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마저 체계적으로 말살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거의 암기력만으로 70만명의 등수를 매겨서 아이들이 갈 대학, 훗날 선택할 직업까지 결정하고 있다. “등수 없는 교육”을 교육부가 제시하지 못한다면 미래창조과학부에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라도 대통령 명령으로 중·고교의 일제고사를 없앤다면 우리는 교육분야에서도 창조경제의 첫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요컨대 진정 창조경제를 원한다면 정부는 기존의 모든 시스템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아낌없이 제공해서 시민과 기업들이 그 공간에서 할 일을 창조적으로 찾도록 해야 한다. 오직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수첩 속의 대한민국’은 결코 창조경제를 이룰 수 없다. 대통령이 수첩만 버려도 시민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용솟음칠 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
'새사연 2014 > [칼럼] 정태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태인칼럼] 어느 '청년 편의점주'의 호소 (0) | 2013.06.03 |
---|---|
[정태인 칼럼] 홍준표 지사여, 대처는 죽었다 (0) | 2013.05.07 |
[정태인 칼럼]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0) | 2013.05.07 |
[정태인칼럼] 개과천선 또는 개과천악 (박근혜 정부 경제성장률 하향조정에 부쳐) (0) | 2013.04.03 |
[정태인칼럼]한미 FTA는 현쟁 진행형 (한미FTA 발효 1주년에 부쳐) (0) | 2013.03.15 |
[정태인칼럼]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법 (0) | 2013.03.14 |